제목각정당행동통일위원회, 신탁실시반대 결의하고 성명서발표  
연월일1945년 10월 26일  
출전매일신보 1945년 10월 29일  
각정당행동통일위원회, 신탁실시반대 결의하고 성명서발표
각정당행동통일위원회에서는 26日 오후 2시 반 黃金町 일본생명빌딩1층에서 國民黨 明濟世, 建國同盟 李如星 韓鳳石 崔謹愚, 朝鮮共産黨 金炯善 鄭泰植, 高麗國民同盟 廉廷權, 臨時政府歡迎準備會 李豊求, 政黨統一期成會 朴文熹 金成琦 등 각 정당대표자 약 백여명(한국민주당에서는 불참)과 이 날 새로이 통일위원회에 참가를 희망한 문화·학술·산업단체대표 약 5백여명을 심사한 결과 정식으로 참석시키고서 의장 朴文熹의 사회로 전체위원회를 개최하였었는데 신탁통치문제를 비롯하여 左記와 같은 4개사항을 가결하였다.
1) 신탁관리에 관한 건
朝鮮共産黨 鄭泰植으로부터 신탁관리문제의 사실 여부는 확실치 않다 하더라도 이것은 조선민족으로서는 절대로 찬성치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각 정당이 통일된 보조로서 이 문제에 대한 조선민족의 총의를 대표하여 반대성명을 하는 동시 미대통령 트루만과 하지중장에게도 조선의 실정을 충분히 인식시키는 동시에 조선민족은 절대로 반대한다는 것을 표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동시에 민족반역자에 의한 조선통일의 본열이 이러한 문제를 일으키는 한계가 되는 것이니 여기에 대하여 민족반역자를 철저히 규탄하는 운동을 일으키자는 것을 제안한 결과 만장일치로 반대성명을 발표하며 이를 실천화시키고자 국내여론을 환기시키자는 것을 결의하였다. 이리하여 그 실행위원으로서 國民黨 安在鴻, 朝鮮共産黨 金炯善, 統一期成會 李甲成의 세분이 지명되어 별항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하는 동시 신탁통치반대 민족반역자 처단운동을 전민족적으로 실천화 시키기로 되었다.
2)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관한 건
이 문제에 관하여서는 동 협의회를 어디까지라도 강화시키자고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었으나 결국 金成琦, 韓鳳石의 제의가 채택되어
독립촉성중앙협의회는 국내 통일문제를 적당히 해결하기 위하여 국내실정을 가장 정확히 인식할 것이며 따라서 민의를 존중하는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하여 인민공화국정부와 해외임시정부의 양 진영이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조직체가 되도록 李承晩에게 진언키로
만장일치로 가결을 보게 되었다.
3) 행정통일위원회
독립촉성중앙협의회의 발전과정을 보아서 적당한 시기에 발전적 해산을 할 것을 결의 하였다.
4) 해외요인 환영에 관한 건
李承晩을 비롯하여 해외요인이 귀국할 때에는 각 적당이 공동주최로 환영회를 개최할 것을 결의 하였다.
그리고 각정당행동통일위원회 전체위원회에서 결의된 신탁통치에 대한 반대성명서는 다음과 같다.
◊ 성명서
일본이 패배하자 조선은 카이로회담에 의하여 당연히 완전한 자주독립이 될 것으로 확신하고 연합국에 만강의 사의를 표하면서 그 실현이 급속하기를 고대하였다. 우리가 목하 제종의 불편 불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정에 최대의 협력을 아끼지 않는 것도 자주독립의 과도적 단계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外電은 조선통치설을 전하고 있으니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기대에 배치됨이 너무나 크며 幼滅이 이에 더 할데 없다.
조선민족은 4천년의 장구한 역사와 혁혁한 문화를 가졌고 완전한 독립국가를 유지하며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실력과 열의를 가진 것은 각국이 충분히 인식할 줄 믿는다. 일본의 통치하에서도 우리는 해내외에서 수많은 동지가 혈전고투하여 해방에 노력해온 것을 그들이 시인하고 원조까지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신탁통치 운운함은 조선민족을 모욕하고 기만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우리는 3천만 민족의 총의를 대변하여 완전한 자주독립을 주장하며 신탁통치를 절대 반대한다.
1945年 10月 26日
각당행동통일위원회

매일신보 1945년 10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