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임정개선환영대회, 서울운동장에서 개최  
연월일1945년 12월 19일  
출전동아일보, 서울신문 1945년 12월 20일, 22일  
임정개선환영대회, 서울운동장에서 개최
3천만민족의 총의로 조국애에 타오르는 의열사가 중심되어 조직된 우리 임시정부의 개선을 환영하는 민족적 성전이 19일 오전11시에 서울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 36년간 포학 일본의 압박하에서 해방된 우리 3천만민중은 과거의 혈투를 회고할 때에 형언키 어려운 감격과 흥분에 충격되어 嚴寒을 무릅쓰고 물밀듯이 早朝부터 훈련원에 쇄도, 光復軍 朝鮮國軍을 선두로 유학생동맹, 각남녀학생, 기타 일반시민의 입장이 엄숙하게 거행되었는데 순식간에 장내는 15만의 군중으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으며 翩飜하는 임시정부 지지의 깃발은 우리 3천만의 총의가 임시정부 지지의 일점에 집중되어 건국일로로 매진한다는 것을 소리치는듯 하였다. 11시 정각이 가까워오자 金九主席 이하 요인일동의 입장에 뒤 이어서 각정당대표 기타 인사의 입장이 있었고 대비되었던 장엄한 취주악에 맞추어 일동 총기립으로 역사적 성전이 개막되었다. 일동은 북향하여 36년간 잊었던 우리의 태극기를 올렸다. 깃발은 서서히 창공을 향하여 나부꼈고 엄숙한 장내에는 희비의 교류곡이 소리없이 흘렀다. 일동의 애국가 제창, 梨花女專의 환영가 제창이 끝난 후 洪命憙의 환영사가 있었고 러취군정장관의 축사와 金九主席의 열렬한 답사 及 李承晩博士의 답사가 있은 후 천지를 진동하는 만세삼창으로 환영회는 폐회되었다.
◊ 洪命憙의 환영사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을 이 자리에 맞이하여 감격해 마지않는 바 있습니다. 더욱이 영수 여러분을 한 자리에 모시게 되었으니 우리들의 기쁨은 이위에 없습니다. 조선은 임시정부 요인이 가 계시던 중국과 연합국의 원조로 해방되었습니다. 그런데 연합국은 우리의 평화와 독립을 약속하였으니 어찌 평민의 자격으로 맞아들이겠습니까. 이제 우리 3천만동포는 우리의 유일무이한 우리 임시정부를 봉대하고 일치단결하여 조국독립에 분투하기를 맹서하는 바입니다.
◊ 러취군정장관의 축사
나는 미국인의 일인으로써 자주독립을 원하는 대한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것을 無上의 광영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최근 전쟁을 마친 獨, 佛, 伊國 등 歐亞各國을 보았는데 전후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산업부문의 재흥임을 통절히 느끼었습니다. 이제 비추어 볼 때 여러분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한국의 산업재건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이 산업의 재건은 단기간에 실현되는 것이 아니므로 여러분은 직장을 고수하고 서로 싸우지 말고 힘을 합하여 거룩한 사업 완수에 돌진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나라를 위하는 애국심으로 하루 바삐 건국의 대업을 성취하기를 원합니다.
◊ 宋鎭禹의 환영사
오늘 대한민국 임시정부요인 제위를 맞이하여 환영회를 개최하게 된 것은 우리 3천만 민중의 무한한 감격으로 여기는 바이며 또한 이 자리에서 환영의 사를 올리는 본인의 無雙한 광영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생각컨대 庚戌이래 왜적은 이 땅을 유린하고 이 백성을 苛壓한지라 정부 제위는 의분을 품고 怨淚를 머금은 채 해외로 망명한지 36個星霜 悲雨慘風중에도 一意初一念을 굽히지 않고 오직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의연히 血鬪勇戰하여 왔습니다. 특히 1919년 민족자결의 時潮에 따라서 3천리 방방곡곡에 傍樣한 독립만세의 소리에 호응하여 李承晩을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은 세계에 우리 민족의 존재를 선양하였고 1932년 4월 28일 상해사변이 종국을 고할 즈음에 金九主席의 용의주도한 지도하에서 의사 尹奉吉 선생의 痛擊은 倭將 白川을 위시하여 文武巨頭를 폭사 혹은 중상케 하므로써 우리 민족의 성가를 천하에 주지시켰습니다. 어찌 그뿐이겠습니까. 勇略無比한 義烈團의 활동을 비롯하여 허다한 혁명적 사실은 마디마디 민족투쟁의 통한사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점을 묵묵히 상기할 때에 金九主席, 李承晩博士를 위시하여 정부 제위의 우리 민족에게 준 공헌이야말로 실로 절대하다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오늘 3천만 민중이 정부 제위를 맞아 환호하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외정세를 環視하건대 우리나라에는 8월 해방 이래 독립이 약속만 된 채 강토는 단절되고 사상은 분열하여 용이히 통일되고 접속될 기운이 간취되지 않을 뿐더러 연합국의 분할군정은 국제적으로 미묘한 동향을 示하여 완전한 자주독립의 달성에는 아직도 전도가 요원한 감이 없지 아니 하니 정부 제위를 맞이하여 환영하는 이 날에 있어서 이러한 보고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는 진실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태는 시급한 해결을 요하나니 그 해결방법은 오직 한 가지가 있다고 믿습니다. 1919년 이래 우리민족의 정치력의 본류로서 신념해 왔던 임시정부가 중핵이 되어서 모든 亞流 支派를 구심력적으로 凝集하므로써 국내통일에 절대의 영도를 발휘하는 동시에 우리의 자주독립의 능력을 국외에 宣示하여 급속히 연합국의 승인을 요청하지 아니하면 아니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정부 제위의 정치적 역량과 수완에 기대한 바 크다 하겠거니와 우리도 정부 제위의 현명한 지도에 협력하므로서 국민으로서 부담하여야 할 책무에 절대로 충실할 것을 맹서하는 바입니다. 蕪辭로서 환영의 辭를 대신합니다.
大韓民國 27년 12월 19일
◊ 金九主席 답사
친애하는 동포제군! 나는 오늘 이 성대한 환영을 받을 때에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임시정부를 대표해서 오랫동안 왜적의 통치하에서 갖은 고난을 당하여 온 국내 동포형제에게 가장 친절한 위문을 드립니다. 나와 및 임시정부 동인들이 오늘 이 자리에서 동포들의 이와 같이 열렬한 환영을 받게될 때에 과연 형언할 수 없는 감격이 있고 흥분이 있습니다. 수십년간 해외에서 離顚沛하던 우리들로서 그립던 조국의 땅을 밟게 되고 사랑하는 동포들의 품에 안기게 된것은 참으로 無上한 광영이외다. 여러분은 여러분도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 임시정부는 3·1대혁명의 민족적 대유혈투쟁중에서 산출한 유일무이한 정부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전민족의 총의로 조직된 정부이었고 동시에 왜적의 조선통치에 대한 유일한 적대적 존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임시정부는 과거 27년간 일대혁명의 정신을 계승하여 전민족 총단결의 입장과 민주주의 원칙을 일관하게 고수하여 왔던 것입니다.
임시정부는 결코 某一階級 某一黨派의 정부가 아니라 전민족 각계급 각당파의 공동한 이해입장에 입각한 민주단결의 정부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정부의 유일한 목적은 오직 전민족으로 총단결하여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한국에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건립하자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분투한 결과는 즉시 완전한 독립을 취득하지 못하고 소위 상당시기의 독립을 보증한다는 동맹국의 一紙聲明書를 얻어가지고 입국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실로 유감천만인 동시에 금일 우리가 이 성대한 환영을 받게 되는 것이 도리어 부끄러운 점이외다. 사랑하는 동포제군! 今次 反파시즘 세계대전의 승리의 결과로 우리의 국토와 인민은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해방은 무수한 동맹국 인민과 전사들의 寶貴한 피와 땀의 대가로 된 것이며 또 망국 이래 수십년간 우리 독립운동자들의 계산할 수 없는 유혈 희생의 대가로 된 것임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지금 우리는 국토와 인민이 해방된 이 기초 위에서 우리의 독립주권을 창조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긴급하고 중대한 임무이외다. 우리가 이 임무를 달성하면 오직 3·1대혁명의 민주단결정신을 계속발양해야 합니다. 南鮮 北鮮의 동포가 단결해야 하고 좌파 우파가 단결해야 하고 남녀노소 다 단결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 개개인의 혈관속에는 다 같이 檀君聖祖의 聖血이 흐르고 있습니다. 極小의 친일파 민족반도를 제한 외에 무릇 한국동포는 마치 한 사람 같이 굳게 단결해야 합니다. 오직 이러한 단결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우리의 독립주권을 창조할 수 있고 소위 38도선을 물리쳐 없앨 수 있고 친일파 민족반도를 숙청할 수 있습니다. 나는 確言不疑 합니다. 유구한 문화 역사를 가진 우수한 우리 민족은 시기에 있어서 반드시 단결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와 및 政府同人들은 보다 더 많은 자신과 용기를 가지고 전민족 각계당파의 철같은 단결을 완성하기 위하여 분투하려 합니다. 친애하는 동포제군! 지금 우리 국토를 分區 점령하고 있는 미소 양국군대는 우리 민족을 해방하여 준 은혜 깊은 友軍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들을 잘 협조하여 왜적의 殘勢力을 철저히 숙청하는 동시에 그들이 回國하는 날까지 모든 편리와 수요를 잘 제공하여야 합니다. 또 우리는 美, 蘇, 中, 英, 佛등 동맹국과 다같은 친밀한 관계를 가진 中, 美, 蘇 3국의 密切한 합작을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이 3국의 친밀한 합작기초 위에서만 우리의 자주독립을 신속히 가져 올 수 있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우리 민족내부가 철같이 단결될 때에 동맹국은 다같이 우리 독립주권을 승인하여 줄 것이며 우리의 신국가 건설을 위하여 적극 원조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포형제자매들이여 우리 국가의 즉시 완전한 독립을 찾을 때는 正히 이 때입니다. 우리 동포들은 3·1대혁명의 전민족 총단결 총궐기의 정신을 다시 한번 발양해서 우리의 독립주권을 찾고 자주, 평등, 행복의 신한국을 건설합시다. 이것으로서 나의 답사는 그칩니다.
◊ 李承晩 답사요지
大韓半島 3천리강산에 한 자나 한 치 땅도 우리의 물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 扶餘민족 3천만 남녀중에 하나도 이 땅에 주인아닌 사람이 없다. 지금 밖에서는 우리를 넘겨다 보는 나라들도 있고 안에는 이 나라를 팔아 먹으려는 분자들이 있어 우리 민족의 운명은 朝夕에 달렸다. 그러나 우리 민중이 한 몸 한 뜻으로 한 뭉치를 이루워 죽으나 사나 同進 同退만 하면 타국정부들이 무슨 작정을 하던지 아무 걱정이 없을 것이다. 임시정부 요인을 맞이하여 더욱 일치단결하여야 한다.
(동아일보, 1945. 12. 20)
19일 열린 임시정부개선환영전국대회에서 조선을 해방시켜준 연합국에 감사를 표시하는 동시에 조선의 자주독립을 하루라도 빨리 실천시켜 달라는 결의문을 美, 蘇, 中, 英 4개국에 보내기로 되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결의문 내용
우리들 全韓國 남북각지로부터 회동한 각정당과 실업 기술, 문화, 종교 및 직업관계의 제집단을 종합한 670여 단체의 대표자들은 3천만 민중의 총의의 집결로서 美 蘇 中 英 등 연합국과 佛國과 및 그 모든 국민에게 공동성명서를 보내는 광영을 갖는다.
우리들은 41년간 피예속의 밑에 일본제국주의의 포학한 억압착취를 받으면서 해내 해외에서 부단한 반항을 계속하던 중 연합국의 민주주의 옹호를 위한 거대한 희생을 아끼지 않는 영웅적인 전쟁이 日, 獨등 국제팟쇼의 세력을 철저히 타도하고 우리 한국민족에게도 해방을 약속하는 우호적인 원조를 주는데 대하여 다시금 최대의 감사와 최고의 경의를 표한다. 우리들은 이러한 연합국의 원조에 인하여 중경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과 전각원들을 환영하는 공전의 성전을 중심으로 일로 매진하려는 한국민족의 총의를 표명함이 타당함을 확신하고 겸하여 左記의 제사항의 要項을 제시키로 한다.
1) 우리들은 한국민족의 철저 해방과 독립과 완전한 자주독립국가됨을 요청하고 그에 대한 모든 지장의 시급한 철폐를 강조한다. 강토와 인민과 주권과 기타의 행정의 특권을 회복하는 것이 우리 국민의 자유에 의한 통일된 독립국가 건설에 절대 필수의 요건인 것은 이에 특히 지적함을 요치 안할 바다. 북위 38도선을 경계선 삼아 한국을 남북으로 양단점령은 그것이 8·15 이전에 있어 전략적 필요에 기인한 바이라 치더라도 4개월이 넘어 간 오늘날에 오히려 이를 답습하는 것은 우리 한국으로 정치적, 경제적 및 사상적인 방면과 따라서 민중의 전생활부면에 에 걸쳐서 심대한 해악을 입히고 통일된 민족국가 건설에 막대한 지장으로 된다. 이러한 감내키 어려운 지장의 계속은 우호국에 대한 의외의 오해와 疎隔의 감정을 자아낼 수 있으므로 정당한 우리들 3천만의 총의를 돌아 보아 신속 철폐의 처단 있기를 요구한다.
2) 우리 한국민족은 太平洋岸에 입국한지 40수세기에 항상 독립과 평화와 정의때문에 분전한 역사로서 연속되었다. 上代에서는 長城을 넘어 남진하는 침략군을 방지하기에 수세기를 싸웠고 중세에서는 몽고의 남침을 저해하기에 백년의 항쟁을 계속하였고 근세에는 일본의 대륙침략을 방지하기에 거대한 민족적 정력을 소모하였다. 이처럼 해륙의 요충에 있어 침략, 방호자로 허구 혈전한 공로는 국제사상 그 유례가 드물다. 이는 금후에도 우리에게 부과된 사명이오 우리에게는 자유됨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 고도의 문화전통을 가진 우리 3천만민중에게 자유와 독립을 허여치 않는 것은 우리 자체의 부단한 반항을 일으키게 할 뿐 아니라 어느 일국으로 하여금 한국에서 세력을 독천케 하는 것이 즉 전동방의 평화를 파괴하고 따라서 세계의 전란을 야기하는 화근으로 되는 사유는 1910년의 한일합병 이래 1941년의 태평양전쟁까지의 경험을 회고하므로써 족히 입증된다. 우리는 연합국이 국제팟쇼를 공동으로 파쇄하고 침략주의 국가를 영원히 근절하려는 숭고한 본래의 의도를 돌아보아 하루 바삐 우리에게 그 공약한 철저한 해방과 독립국가의 완성과 및 그 주권국가로서의 승인을 주려고 하는 용의 있는 것을 신뢰하여 의심치 않으려고 한다.
3) 우리들은 강토와 인민과의 완전통일을 촉진한 후 거기에 열렬한 민족애와 조국애에 입각한 각층 각계의 집결된 세력으로서 계급적 대립 모순을 지양 會通시킨 萬民共和의 민주적 국가의 주권을 재건하여 국제평화에 공헌할만한 독립국가로서 발전하여야 할 것을 기획 염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명확한 국제정의의 이념에서 마땅히 우리의 민족자결의 수단에 맡길 것이고 어떠한 형태로서의 외국의 간섭과 강제는 許치 않는 바이다.
4) 한국의 국내정세는 하루 바삐 견고한 통일정권을 내세워서 독자적으로 시국수습 임무에 當케 함을 강렬히 요청되고 있다. 한국으로 하여금 목하와 같은 반신불수적 형태로서 지속하게 하는 것은 모든 실업 실직군의 범람을 강대케 하고 민중으로 하여금 실망과 불안을 증대케 하는 결과로 되어 전 동방의 사회적 동요의 因素를 짓게 하는 바이다. 한국의 완전독립 없이는 인접국가의 안전도 있을 수 없고 한국의 사회적 불안정은 인접국의 국정의 불안정에도 지대한 영향이 있을 것이다. 한국문제를 과소평가하고 과오를 새로이 하면 전 동방 및 전 세계평화에도 거대한 위협이 있을 뿐 아니라 美, 中, 蘇, 英, 佛등의 積年血鬪로 혹은 그 대부분의 가치를 損耗치 아니함을 누구 보장하랴? 이 위기를 신속 해소하는 것은 오직 한국으로 하여금 완전통일정권을 가지기에 아무런 지장도 없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待望하는 우리의 자유를 위하여 전 생명으로서 관철키로 하고 이에 새로운 결의를 굳게 한다. 우리는 우정과 신뢰와 경의로서 貴列國의 명료한 회답을 고대키로 한다.
大韓民國 27년 12월 19일
大韓民國臨時政府凱旋全國歡迎大會
(서울신문, 1945. 12. 22)

동아일보, 서울신문 1945년 12월 20일,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