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가 설치  
연월일1945년 12월 28일  
출전동아일보 1945년 12월 30일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가 설치
약소민족의 해방없이는 세계의 항구적 평화건설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번 세계대전의 슬로간이었다. 전세계 제민족이 모두 이렇게 신뢰하였고 열망하였던 것이다. 전후에 열강대표가 집합한 강화회의에서 세계평화를 논의하였던 1차대전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하여 이번 전쟁에는 작전과 병행하여 전후 평화기구회의가 여러번 열렸다. 이와같이 용의주도하게 전쟁을 지도하여 결국 정의의 전승을 누리게 하였던 것이다. 약탈이 아니오 침략이 아니오 기만이 아니었던 이번 전쟁목적은 전인류 제민족이 공인하는 바이다. 그리하여 36년간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우리 3천만 민족도 당당히 민족자결의 원칙에 의하여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할 카이로선언에 약속되었다는 것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와같이 희망과 기대에 넘쳐있던 우리 3천만 민족에는 청천벽력이 내렸으니 이것이 바로 모스크바會議에서 결의된 美, 蘇, 英, 中 4국의 조선신탁통치제 실시이다. 두말 할것없이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목적 위반이요 약소민족해방운동에 역행하는 것이다. 공약과 정의에 위반된 소위 신탁통치제는 우리에 대한 모독일뿐 아니라 5천만의 피투성이로 된 연합국헌장에 배반되는 것이니 우리 3천만 민족은 국제정의와 민족보존을 위하여 최후의 일인까지 혈투의 각오를 굳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비록 촌철이 없을지언정 3천만의 총역량을 총집결하는 민족혼이 있고 국제정의감이 있는지라 전민족이 거국적으로 신탁통치제에 반대하는 일대 불합작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다소 예상은 했지만 천만의외의 돌발사라 임시정부에서도 사태의 중대성을 느끼고 28일 오후 4시부터 긴급 국무위원회를 개최한 후 바로 각정당(2인) 각종교단체(2인) 각언론기관 대표자를 초청하여 비상대책회의를 동일 하오 8시반부터 개최, 深更에 이르기까지 백척간두에 서있는 국운을 구출하고자 白熱的 논의를 거듭한 결과 신탁통치반대 국민총동원위원회를 설치하고 금후 임시정부 국무위원회 지시하에 일대 민족적 불합작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탁치반대에 대한 긴급조처안 4항과 연합국에 발송할 전문과 그 이유 4항을 결의한 후 임정에서는 각정당에 대표 2인씩과 6대종교단체의 대표와 각신문사기자의 참집을 요청하여 지난 28일 하오 8시에 약 70명의 애국동지의 모임을 열게 되었다. 8시반에 金九주석, 李始榮元老를 중심하여 좌우는 요인이 열석한 후 각당 각계의 대표 70여명이 一堂에 모여 흥분과 울분 속에서 연합회의를 열었다. 긴장된 가운데 金九주석으로부터 “해외에서 30년동안 싸우다가 고국의 강토를 밟게 되어 3천만동포를 해후케 된 때에 이 사람은 3천만동포와 독립운동을 계속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언명한 바 있었다. 불행히도 이 사람의 말이 들어 맞아서 지금부터 새 출발로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지 않으면 아니되게 되었다. 우리가 기대치 않던 탁치라는 문제가 3천만의 머리위에 덮어 씌워졌다. 우리가 이것을 물리치기 위하여 덮어 씌우려는 탁치의 보자기를 벗어날 운동을 전개하여야 하겠는데 오늘밤 모인 각대표의 이 모임으로 만족한 회합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일이 급하므로 우선 우리의 생각으로는 이만하면 우리 정부의 결정적 의사를 발표하여도 좋겠다 하여 발표하는 바이다”라는 말이 있었다.
韓民黨 元世勳으로부터 “우리는 좌우 남북을 막론하고 싸우자 이 사람도 정당대표로서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이 아니고 독립운동자로서 참가했다”는 말이 있었고 기타 각대표의 열렬한 의견이 있은 후 전국민에게 불합작케 하는 기구가 있어야 하겠고 이런 조직이 있어야겠다 하여 만장일치로 다음과 같은 성명서와 결의안 7항 급 표어를 결의하였다. 그리고 금일 1일간의 잠정행사로서 歌舞音曲을 일절 정지하고 대시위운동을 전개키로 하여 새벽 창공이 밝아질 때에 산회하였다.
◊ 聲明書
우리는 피로써 건립한 독립국과 정부가 이미 존재하였음을 다시 선언한다.
5천년의 주권과 3천만의 자유를 전취하기 위하여는 자기의 정치활동을 옹호하고 외래의 탁치세력을 배격함에 있다. 우리의 혁혁한 혁명을 완성하자면 민족이 일치로써 최후까지 분투할 뿐이다.
일어나자 동포여!
大韓民國 27년 12월 28일
◊ 결의문
1) 신탁통치를 반대하기 위하여 기구를 창립하되 명칭은 탁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라 칭함
2) 탁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는 각정당 각종교 각회사 단체 기타유지인사로 조직함
3) 탁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의 기관은 中央郡面에 從으로 分設할 것
4) 탁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는 국무위원회의 지도를 受할 것
5) 탁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에는 탁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를 지도하는 위원 7인을 선출하여 해외에 대한 지도위원회를 설치함
6) 재정은 지원자의 희망과 정부의 보조로써 충용할 것
7) 탁치반대총동원위원회의 章程委員 9인을 金九, 趙素昻, 金若山, 趙韓, 柳林, 金奎植, 申翼熙, 金明濬, 嚴恒燮, 崔東 제씨로 선출하여 기초를 제출케 할 것

동아일보 1945년 12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