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인민당, 민주의원 탈퇴성명 발표  
연월일1946년 02월 14일  
출전서울신문 1946년 02월 15일  
인민당, 민주의원 탈퇴성명 발표
朝鮮人民黨에서는 14일 오후 11시 緊急中央執行委員會를 소집하여 새로운 사태에 직면하여서 愼重 討議한 결과 下記와 같은 결의를 한 후 이를 同黨 金午星宣傳部長으로부터 出入記者團에게 정식 발표를 하였다.
本黨은 하지中將의 고문 굿펠로우로부터 당면의 民生問題에 관한 하지將軍 개인의 고문격인 諮問委員會를 파견하여 달라는 요청을 받고 조건부로 4인을 파견한 일이 있었다. 그 뒤 굿펠로우는 本黨黨首 呂運亨을 屢次 방문하고 출마를 요청하였으나 黨의 결의가 있으니 나갈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그러면 李承晩, 金九兩氏도 개인의 자격으로 참가하였으니 역시 개인으로 참가하기를 요청하였으며 前記 李 金兩氏를 만나 民族統一을 논의하기를 懇勸하므로 呂氏는 12일에 굿펠로우와 동반하여 먼저 李博士와 만나 統一의 원칙문제를 논의하였으며 동일 오후에 다시 金九氏를 만났으나 會議는 역시 原則問題에 국한되었을 뿐 소위 ‘非國’最高政務委員會에 대해서는 一言半句도 언급한 바 없었다. 굿펠로우에 대해서는 先般 本黨에서 提議한 조건하에 참가하기를 승낙하였을 뿐이다. 그런데 돌연 嚴恒燮氏가 呂運亨氏와 本黨에서 파견한 諮問委員 3인이 最高政務委員會에 참가하였다고 성명하였는데 이것은 전혀 事實無根이며 本黨에서는 13일 오후 4시경에 黃鎭南氏를 굿펠로우에게 보내어 諮問委員會와 最高政務委員會와의 관계를 질의한 즉 굿펠로우는 전연 관계없다고 언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3日 夜 하지中將 성명에는 이에 대해서는 一言半句의 언급도 없었고 오직 諮問委員會를 南朝鮮大韓民國代表民主議院이라고 그 명칭을 변경하였을 뿐이다. 이 前後가 相符되지 않은 사실에 비추어 本黨이 제시한 조건에 명확히 위배되는 것이므로 呂黨首가 諮問委員 승낙을 취소함은 물론 本黨에서 파견하였던 諮問委員 白象圭, 黃鎭南氏도 소환하는 동시 本黨으로서 諮問委員會로부터 전적으로 탈퇴할 것을 결의하였다.

서울신문 1946년 02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