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군정청 공보국 ,박헌영의 기자회견에 대한 존스톤의 기사가 사실이라고발표  
연월일1946년 02월 18일  
출전조선일보 1946년 02월 19일  
군정청 공보국 ,박헌영의 기자회견에 대한 존스톤의 기사가 사실이라고발표
朝鮮共産黨責任秘書 朴憲永이 지난 1월 5일 記者團會見席上에서 발표한 談話事件은 그동안 복잡한 문제와 큰 파문을 일으켰었는데 이 문제에 대하여 18일 軍政廳公報局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발표가 있었다.
◊ 軍政廳 報道發表
美國人記者에 대한 비난을 풀기 위하여 다음의 기사를 발표하는 바이다.
1월 26일 朴憲永氏는 뉴욕타임즈紙 記者 존스톤氏를 朝鮮으로부터 추방하기를 요구한다는 公文書를 朝鮮共産黨 責任秘書의 자격으로 서명 날인하여 美軍司令官에게 제출하였고 동시에 朝鮮人記者 數名도 존스톤氏에게 대한 비난서에 각각 서명하였다. 즉 朴氏는 1월 5일 記者團會見席上 자기가 발표한 聲明書中에 존스톤氏는 완전히 共産黨 黨首의 聲明을 오해하여 인용하였다는 사실을 특별히 비난하였다. 美軍司令官은 이러한 문제에 관하여 발생한 記事와 최근의 논쟁의 사실과 정확성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으로 이 비난을 대단히 중대한 사건이라고 생각하여 그 사실을 究明하고자 萬般 調査를 시켰다. 조사한 결과의 사실은 다음과 같다.
朝鮮共産黨 정식대변자 朴氏는 1월 5일 記者團會見에 美國人記者를 초청하였다. 3명의 美紙特派員, 존스톤氏, 콘월軍曹는 美軍司令部 피·알·오將校 턱카大尉와 동반하여 정식으로 記者團會見에 출석하였다. 美國人記者會見席上에서는 모두 英語를 사용하였다.
당시 기록한 턱카大尉와 존스톤氏의 手記中에는 질문한 것과 대답한 것이 있는데 그 내용은 정확한 것으로 콘월軍曹도 其後에 그 정확성을 인정하였다. (마속크氏는 이미 朝鮮에 없으나 그 당시 同氏가 동료들과 말한 중에 同氏는 이와 똑같은 問答을 들었다고 한다) 즉 朴氏와 朝鮮人記者의 비난 중에 인용된 限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데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質問)(존스톤) 朝鮮을 蘇聯國의 信託統治로 하는 問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對答)(朴氏 英語로) 나는 그 問題에 대해서는 아무 異議가 없다. 즉 우리는 蘇聯 1國信託統治에 異議가 없다.
(問) 將來 朝鮮의 政治的 發展過程에 대한 意見 如何?
(答) 우리는 蘇聯化한 社會主義的 路線에 따라 10년 내지 20년 안에 自主獨立 民主主義國家로 발전되기를 바란다.
(問) 이것은 결국 가까운 장래에 朝鮮을 蘇聯邦의 一聯邦으로 하고자 朝鮮을 蘇聯化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答)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 不可能하다.
(問) 왜 只今 不可能하냐?
(答) 현재 朝鮮人은 이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地理的으로 보아서 只今 蘇聯邦에 포함되는 것은 불가능할는지도 모른다.
記者團會見席上 英語로 한 中, 以上 以外는 朴氏가 하지中將이 朝鮮의 진정한 民主主義 精神을 억제한다고 하며 하지將軍을 적극적으로 공격한 것이 대부분이있었다고 출석한 美國人 記者들은 승인하였다. 존스톤氏의 會見 전내용을 송신하였으나 뉴욕에 송신중 일부만이 선택되었으므로 전 내용은 발표되지 않았다. 朴氏가 존스톤氏의 私有文書를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모른다. 이것은 존스톤氏와 뉴욕타임즈紙의 절대적 私有物이므로 朝鮮에서는 발표되지 못한다. 그러나 調査中 존스톤氏는 調査材料로 이 記者團會見에 관한 발표되지 않았던 記事를 제공하였다. 朴氏와의 問答內容의 引用文은 여기에 발표한 바와 같으며 당시 참석한 다른 신용할 만한 美國人의 手記나 發表에 의하여 증명되었다는 것이다. 朴氏의 記者團會見이 있은 며칠 후 존스톤氏는 1월 5일 발표한 것을 朴氏가 부인하였다는 다른 記事를 썼는데 그것은 이미 뉴욕타임즈紙에 발표되었다. 그러므로 前述한 記事를 보아서도 존스톤氏는 1월 5일 朴氏의 발표중에 朴憲永氏와의 會見內容을 잘못 인용하였다는 중대한 責任을 면하게 된다.

조선일보 1946년 02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