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한독·국민·신한민족당 합동, 성명서 발표  
연월일1946년 04월 18일  
출전서울신문 1946년 04월 19일, 20일  
한독·국민·신한민족당 합동, 성명서 발표
民主主義陣營의 政黨 합동문제는 합당조건의 불일치로써 韓民黨은 독립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고 獨立黨·國民黨·新韓民族黨 3黨만의 합동이 논의되어 國民黨은 당초부터 獨立黨에의 무조건 합류의 태도를 표명해 왔거니와 新韓民族黨에서도 누차 三合同案을 협의한 결과 결국 합동파와 반대파로 분열되어 반대파에서는 무조건 합류는 거부하여 19일부로 불합동의 성명서까지 발표하였으나 결국 합동파만으로써 獨立黨에 합류하게 되었고 따로 急進自由黨·大韓獨立協會·自由同志會·愛國同志會 등 4政治團體도 동일한 원칙으로 이에 합동귀일하게 되어 18일 하오 2시에 國民黨에서 如左한 合同聲明書와 인사기구까지 발표하였다. 이리하여 民主主義 진영의 일부는 金九를 委員長으로 趙素昻을 副委員長으로 한 韓國獨立黨의 黨名下에 확대 재편성되었다.
◊ 合同聲明書
자유인 조국의 광휘있는 재건설을 위하여는 전민족 총력의 집결로써 정체없는 敢鬪가 요청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韓國獨立黨과 國民黨은 벌써부터 무조건합동을 결의하고 대중에게 합동을 성명한 바 있었다. 이와 공통한 취지로써 韓國民主黨과 新韓民族黨도 모두 무조건합동을 협의하게 되었으나 韓國民主黨은 중도에서 그 黨議 協洽치 못하므로 한동안 보류되었고 新韓民族黨은 수차의 회동에서 그 黨議 歸結되어 이에 韓國獨立黨·新韓民族黨 등 三黨合同은 실현되었다. 따로히 急進自由黨·大韓獨立協會·自由同志會 等 동일한 원칙에서 합동귀일함에 있어 韓國獨立黨은 이에 모든 혁명적·전투적·애국적·진보적인 역량을 집결하면서 획기적 신출발을 하게 되었다. 금후 외지의 제당파와는 더욱 동지적 신합동과 행동 통일 등으로써 전민족 총력집중의 전투적 실천을 기하고 있다. 이것만이 가일층 중대하여지는 역사적 방면에 대응하는 최대한 방법인 것을 강조하여 둔다.
大韓民國 28년 4월 18일
韓國獨立黨
國民黨
新韓民族黨
急進自由黨
大韓獨立協會
自由同志會

서울신문 1946년 04월 19일,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