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하지, 미소공위무기휴회에 관해 특별성명 발표  
연월일1946년 05월 09일  
출전서울신문, 동아일보 1946년 05월 10일  
하지, 미소공위무기휴회에 관해 특별성명 발표
4월 18일 第5號聲明이 발표된 이래 美蘇共同委員會는 民主主義朝鮮臨時政府 수립을 목표로 연일 회의를 진행하여 오던 바, 뜻밖에도 同 委員會는 6일 無期休會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에 관하여 朝鮮駐屯美軍最高司令官 하지中將은 9일 오전 10시 반 다음과 같은 重大聲明書를 발표하였다.
3월 10일 共同委員會가 德壽宮內 石造殿에서 역사적인 개막이 있은 후 오늘의 無期休會에 이르기까지 실로 7주간 49일 만의 일이다. 美蘇共同委員會의 성공적인 진전으로써 임시정부가 하루바삐 수립되기를 주야 빌어마지 않던 3천만 동포로서 이제 無期休會의 報를 접하매 靑天霹靂의 감이 不無이며 실망하는 자 적지 않을 줄 생각한다. 그러나 無期休會는 문자 그대로 無期休會에 그치는 것으로서 결코 회의결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점을 깊이 명심하여 낙망함이 없이 시종일관 聯合國의 도의를 믿는 굳은 신념과 뜨거운 열정으로 共同委員會 속개의 날이 속히 오기를 염원할 뿐이다.
“朝鮮臨時政府를 수립하려고 美蘇共同委員이 회담할 때에 蘇聯代表는 朝鮮사람으로 모스크바협정을 반대한 사람은 전혀 朝鮮臨時政府 조직에 참여치 못하도록 제외하자는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美國代表는 그러한 제외 원칙은 朝鮮사람들에게 民主主義의 근본인 意思發表權을 거부하는 것이므로 반대했다.
朝鮮에 관한 모스크바決議가 세상에 발표되자 南朝鮮에 있는 政黨과 指導者들은 하나도 예외가 없이 즉시 朝鮮에 信託統治設置를 제시한 그 條文에 다 반대의 의사를 표시했다. 南朝鮮에 있는 절대다수의 朝鮮人이 이 條文을 반대한 이유는 條文이 그들의 독립을 무단히 遷延시킨다고 믿는 까닭이다. 그 후에 어디서 敎唆를 받은 南朝鮮의 少數黨은 이 문제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豹然히 돌변하여 가지고 反託을 託治支持로 전도했다.
南朝鮮에 있어서는 이 少數政黨을 제외하고는 오늘까지라도 탁치의 증오심이 그대로 성행하고 있다.
오래 동안 쌍방이 교섭한 후 蘇聯代表는 일종의 절충안을 제출하여 모스크바결의를 앞으로 지지하겠다고 선언하며, 동시에 그들을 그릇 引導한 지도자들을 공개비난하는 政黨과 團體와 협의하자는 것이다. 더구나 그러한 指導者들은 장래 조직될 朝鮮臨時政府에 참여치 못하도록 제외하자는 것이다. 美國代表는 이 절충안을 이러한 이유로 단연 반대했다. 이것은 급기야 政黨을 명령적으로 숙청하는데 불과하고, 다음으로는 민주적 정치행동의 美國理念에 부합치 않는 까닭이었다. 4주 간이나 회담한 결과 共同委員會는 협의의 상대가 될 政黨과 社會團體에게 상당한 정동의 협력을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共同聲明書 第5號에 발표된 결의는 信託支持를 요구한 것이 아니오, 오직 信託이 있게 된다면 거기에 관한 대책제출안을 작성하는 터, 어떤 政黨과 團體의 협력을 요구했던 것이다. 換言하면 共同委員이 信託에 대한 추천안을 작성할 때에 政黨과 團體들은 마음대로 자기네의 信託反對意思를 발표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은 共同聲明書 자체에도 명시되었고 또 쌍방에서 그 건을 결정할 때에 美國代表는 그것을 會錄에까지 기록한 것이다. 더구나 朝鮮駐屯美軍司令官의 追後 解釋聲明中에 어떠한 형식의 信託이 혹 있게 되든지 없게 되든지 간에, 南朝鮮에 있는 朝鮮사람들은 그 문제에 대하여 흉금을 터 놓고 자유롭게 말하리라고 했다.
美蘇代表間 이러한 협정이 되었고, 따라 政府組織에 參與除外案을 일단 불쾌한 차제에 蘇聯代表는 모스크바결의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자는 民主政黨과 社會團體의 대표도 배제하자는 案을 또 한번 共同委員會에 제출했다.
이 案은 이미 언급한 결의에 위반되는 듯 하고 또한 의사표시자유원칙에 정반대가 되느니만큼 美國代表는 蘇聯案에 찬동할 수가 없다고 거부한 것이다.
그러나 회담 진행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만일 어떤 대표자 개인에 관하여 자격문제가 난다면 共同委員會에서 개별적으로 검토를 하자고도 했다. 그러나 蘇聯代表는 모스크바협정을 반대한 자는 단체대표로 선택치 않도록 警告聲明을 내자고 고집했다.
이 점에 대한 토의가 아직 진행중인데 蘇聯代表는 美國代表에 통고하기를 “朝鮮駐屯美軍司令官의 諮問機關인 南朝鮮大韓國民代表民主議院과 관련된 政黨과 단체는 共同委員의 협의상대로의 자격이 없다. 이는 그 議員長 대리의 聲明으로 인함”이라 하였다. 蘇聯代表는 그 議員長代理의 성명을 如下히 인용한다.
共同聲明書 第5號를 신중히 토의한 후 우리는 결정하기를 宣言書署名은 臨時政府組織件에 있어 美蘇共同委員會와 협력하며 그 政府가 성립된 후에는 信託統治에 대하여 우리의 반대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蘇聯代表는 上 諸政黨이 共同聲明書 第5號에 있는 선언서에 서명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 政黨들이 이러한 견해를 포기하지 않는 한(포기할때 까지는) 그들과 협의할 용의가 없다는 것을 명시했다.
이렇게 蘇聯代表로 말미암아 생긴 신사태는 이 문제(政黨·團體代表問題)로 이미 없이 한 과거 6주 간은 막론하고 이 앞으로도 臨時政府를 조직하자면 상당한 지연이 있을 것은 불가피한 사실이매 美國代表는 이 현안을 해결시키는 동안 朝鮮再統一의 일대 장애물인 38도선 철폐에 착수하자고 제의했고 蘇聯代表는 이 案을 거절했다. 이 거절을 당한 美國代表에게는 이 단계에 있어서 더 다른 과제가 없으매 부득이 休會를 구하는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政黨代表와의 협의건이 해결이 현안으로 있던 동안은 無期休會하기로 1946년 5월 6일에 결정되었다.
南朝鮮駐屯美軍司令官은 民主主義 旣定原則에 의하여 軍事安全에 지장이 없는 한 어떤 政黨人에게나 의사발표의 완전 자유를 주어 왔다. 이 권리를 이용하여 美軍政方針을 꾸준히 맹렬히 비평하는 자가 있느니만큼 政黨과 指導者들은 信託條文에 반대의사를 자유롭게 표시해온 것이다. 朝鮮政府組織에 어떠한 民主主義分子에게나 발언권을 거부하는 것은 그들의 의견발표를 罰科하는 것이며 朝鮮解放後 美軍駐屯以來 南朝鮮 各 政黨과 團體가 한결같이 향유하던 일종의 권리를 거부하는 것이다.
美國代表의 의도는 어떤 政治思想系를 옹호하자는 것도 아니오, 모스크바결정 이해에 방해를 용인하자는 것도 또는 美國代表로는 信託統治가 朝鮮獨立을 쓸데 없이 지연시킨다는 신념을 가진 자의 견해를 변호함도 아니다. 그러나 美國代表로는 단순히 信託統治보다는 즉시 독립을 더 좋아한다는 의견을 솔직히 공개발표했다고 해서 모스크바협정에서도 보장된 朝鮮政府組織에 참여하는 그 권리조차 100여 개 이상의 民主政黨과 社會團體에게 거부하자는 共同委員會의 案은 찬동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겠다.
이러한 배제안에 찬동한다는 것은 오직 앞으로 信託을 감수하겠다는 少數黨을 제한 기타 모든 사람의 정치적 활동을 제거할 뿐 아니라 大西洋憲章에 공약한 세계적으로 승인한 모든 사람의 意思表示自由權에 위반하는 것이다.”
1946년 5월 일
朝鮮駐屯美軍最高司令官 陸軍中將 존 알 하지

서울신문, 동아일보 1946년 05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