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봉창·윤봉길·백정기 3의사의 국민장 거행  
연월일1946년 07월 07일  
출전동아일보 1946년 07월 07일  
이봉창·윤봉길·백정기 3의사의 국민장 거행
李奉昌 尹奉吉 白貞基 3열사의 국민장은 7일 서울의 성지 孝昌園에서 李承晩 金九 吳世昌 李始榮 呂運亨과 한국민주당 조선공산당 한국독립당 민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전평 부총 애국부인회 여자국민당 등 각 정당 단체 대표자와 각 정화 각 학교대표자들 5만여 명이 참열하여 하오 2시부터 엄숙히 거행되었다.
먼저 애국가를 합창하고 李康勳의 개회사가 있은 후 주악이 끝나자 趙琬九가 식사를 낭독하고 분향한 다음 申鉉商이 목메이는 소리로 제문을 낭독하고 이어서 金九 총리와 3열사 유가족의 분향 각 단체의 제문 낭독이 있은 후 하오 3시 지나 하관 입토하여 30여 년 품었던 원한을 풀어 이 땅에 고이 잠드신 감격의 국민장은 의의 깊게 끝을 마쳤다.
이 날의 장례를 조상하고자 맑게 개인 아침부터 수만 시민이 시내 太古寺에 운집하였고 국민장의 행열은 상오 10시 3義士奉葬委員會의 지도를 받아 엄숙한 주악리에 효창원으로 향하였다.
태극기를 선두로 소년군악대 각 정당 단체화환과 조기 그 뒤에 무장경찰대가 경호하고 李의사의 명적 遺影 남학생들이 앞을 인도하고 여학생들이 뒤를 따르는 태극기로 싼 흰 영구차는 소리 없이 굴러갔다.
이와 같이 尹의사와 白의사의 명정과 유영 영구를 모시었는데 연로에 늘어서 삼가 영구를 맞이하는 시민들의 가슴을 한층 더 자아내게 하는 것은 尹의사의 십자가 死刑架였다.
이리하여 행렬은 수만 시민의 봉배와 눈물어린 감회 속에 안국정 사거리 종로 남대문 앞을 지나 경성역을 거쳐 연병정으로 행하였다. 더우기 동지의 유골을 받들은 金九 총리의 얼굴에는 새로운 감회가 깊이 깊이 우러나오는 듯 용산서 앞을 지나 錦町에 이르니 이 곳이 곧 고 李奉昌의사의 출생지다. 연고 깊은 이 곳 장지인 효창원에 도착한 것은 하오 12시 40분이었다.

동아일보 1946년 07월 0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