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여운형 장례식 거행  
연월일1947년 08월 03일  
출전조선일보 1947년 08월 05일  
여운형 장례식 거행
故 夢陽 呂運亨의 인민장의는 3일 민족적 추모와 애도리에 엄숙히 거행되었다. 이날 거리에 늘어서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모름지기 내일의 조선을 우려하는 인민들의 애끓고 불안스러운 모습은 그대로 오늘의 심각한 이 민족의 운명을 상징하는 듯 고인을 잃고 이제 민족적 반성의 감격적 씬을 빚어 냈다.
이른 아침부터 퍼붓는 폭우를 무릅쓰고 광화문네거리에는 입추의 여지없이 조객이 쇄도한 가운데 발인식은 8시 45분 애국가와 봉도가의 주악리에 개시 이때 아침비는 개어 지난날의 사자후 하던 거대한 고인의 靈柩는 꽃다발 속에 파묻쳐 영원히 잠든채 주의는 묻친 것처럼 고요하다. 李英이 발인문 낭독 묵상이 있은 후 10시 15분 靈輿는 합창대의 가냘픈 선률에 맞추어 시발 태극기 합창대 조기 輓章隊 生花隊를 선두로 血依 大輿를 안치하고 뒤이어 主葬 유가족 순으로 長蛇같은 장의행렬은 종로 1·2가 을지로 3·4가를 굽이치면서 행진, 길가의 점포들도 문을 닫고 모두 같이 울고 같이 반성하는 엄숙한 일장의 파노라마, 유달리 노인과 청년이 많은 행렬은 을지로 4가에서 난데없는 전차 1대가 행렬을 헤치고자 하다가 단념 11시 35분 영구차에 옮긴 영해 입장
한편 서울운동장에는 입추의 여지가 없는 다수 군중이 운집 영구입장 10분전에 헬믹代將 파라소노프소장 샤브신도 참석 영구 배례의 뒤를 이어 劉英俊의 식사가 있자 만장에는 일시에 곡성이 터졌다. 다음 “반탁과 독립과는 무관계 운운”이라는 고인의 녹음재생 洪命憙의 봉도문 낭독의 내빈조사로 하지중장(대독) 브라운소장(대독) 헬믹代將 쉬티코프중장(대독) 미·영총영사번스부처 뉴욕만국기독교회 총무 시카고 올림픽위원장 국내조문으로 북선민전 합위 金奎植 남조선민전 지난 27일의 인민대회에서 보낸 조사 등의 낭독이 있고 각 정당대표 장의위원장단 근민당 최후로는 가족대표의 배례 張建相의 인사 추도가 묵상으로 1시 15분 폐식 동 35분 영구차 시발
동대문과 대학 앞길을 지나 2시 50분 혜화동 로타리에 도착 추도가와 묵상이 있은 후 일반 장의행렬은 해산 3시 20분 일로 우이동으로 향하였다.
백은빛 영구차를 앞세우고 수십대의 트럭이 이를 호위하여 5시반경 □□어린 태봉 장지에 도착하여 丁相允의 下棺文 낭독이 있은 후 160관의 철제 영구는 하관되었고 미망인 陳씨는 세번 흙을 집어 고인의 가슴에 덮었다. 때마침 석양은 서산에 떨어지고 파란곡절을 거듭한 혁명가는 드디어 고요히 땅속에 잠들었다.
夢陽 呂運亨 인민장의위원회에서는 3일의 몽양선생장의식에 대하여 인민전체가 열렬한 거족적 행동으로 장엄한 가운데 예정대로 식을 끝마친데 대하여 동포제위에게 깊이 감사하다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조선일보 1947년 08월 0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