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장덕수살해사건 피의자 8명에게 사형 언도  
연월일1948년 04월 01일  
출전조선일보 1948년 04월 02일  
장덕수살해사건 피의자 8명에게 사형 언도
오랫동안 세인의 이목을 끌어오던 張德秀 살해사건 군률재판 공판은 지난 3월 2일 개정된 이래 한달동안 무려 21회에 걸쳐 검사와 변호인의 논박이 거듭되어 오던 바 1일 드디어 그 마지막 공판으로 다음과 같은 언도가 내리어 종막을 보게 되었다.
金錫璜(54) 絞首刑 趙尙恒(56) 絞首刑 辛日俊(36) 絞首刑 孫禎洙(58) 絞首刑 金重穆(38) 絞首刑 崔重夏(24) 絞首刑 朴光玉(24) 絞首刑 裵熙範(22) 絞首刑 趙燁(23) 징역 10년 朴鼎悳(25) 징역 10년
이날 검사는 이번 사건에 관하여는 범행을 감행한 박광옥 배희범 외에는 물적 증거가 불충분하고 다만 진술서가 있을 뿐인데 이 진술서는 자발적 진술이라고는 볼 수 없으며 더구나 이 중대한 사건을 정황증거만으로 처단한다는 것은 위험한 것이니 재판관의 관대한 처분을 바란다라는 변호인들의 작일의 변론을 반박하여 이 사건에 관하여는 내가 처음부터 정황 증거만으로도 추진시킨다고 말하였고 또 피고들의 자백 기대 여러 가지 물적 증거로 보아 음모 교사 범행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드러났는데 법률에 의한 바엔 범행을 교사한 자는 범행한 자와 같이 처단할 수 있다 우리가 태평양전쟁에서 많은 희생을 하고 싸운 것은 조선뿐 아니라 세계평화수립을 위한 것인데 이번 사건에 대하여는 비애를 금치 못하는 바이며 정치적 압력으로 말미암아 사법당국이 공정한 판결을 하지 못할 우려가 있어 군률재판을 하게 된 것이다는 논고가 있은 다음 방청석과 신문기자 등 외인은 전부 밖으로 내보내고 법정에서는 군사위원만이 남아 비밀투표를 한 후 11시 공판은 엄숙하게 다시 열리었다.
피고들의 운명을 결정할 최후심판이 내리는 이 순간 법정안은 물을 끼얹은 듯 숨소리조차 없고 오직 피고들의 초조한 얼굴빛이 무엇을 요구하는 듯 군사위원측을 향하여 망설이고 있다. 이때 재판관은 심중한 어조로서 이제부터 언도를 할터이니 정숙하라는 훈시가 있고 이어 헤론재판장으로부터 언도가 나리었는데 언도가 나리자 방청객석에서는 피고들의 친척인 듯 울음소리가 들리고 피고들은 쇠사슬에 손을 묶이어 무거운 발걸음으로 퇴정하였다.
이 공판이 끝난 후 기자는 방청석에서 나오는 고 장씨부인 박은혜와 피고 박광옥 모친에 감상을 물었는데 각각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故 張氏未亡人 朴恩惠 談:나에게는 아무 말도 묻지 말아주세요. 무어라 말할 수가 없오.
▷朴光玉母親 談:정신이 없어 모르겠오. 아마 잘못된 것 같소.

조선일보 1948년 04월 0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