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김구·김규식, 남북회담의 성과에 대해 공동성명서 발표  
연월일1948년 05월 06일  
출전조선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1948년 05월 07일  
김구·김규식, 남북회담의 성과에 대해 공동성명서 발표
작보한 바와 같이 金九, 金奎植 양 김씨는 지난달 중순 이번 남북요인협상에 참석차로 평양까지 북행하여 그동안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드디어 5일 저녁 여덟시반경 약 두주일 만에 단체 대표일행과 함께 무사히 귀경하였는 데 양 김씨는 6일 아침 기자단과 회견하고 귀경 제일성을 발하여 공동성명서를 별항과 같이 발표하는 동시에 이번 귀경의 경위를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우리 두 사람은 수원으로 金信, 鮮于鎭, 宋南憲, 金永暉 4명을 대동하고 지난 4일 아침 11시 북조선인민위원회 내무부부국장 李柱鳳, 북조선인전 沈升燮 양씨의 안내로 자동차 3대에 분승하고 평양을 떠났다. 그날 金郊에서 하루밤 유하고 5일 아침 8시반에 그곳을 떠나 한낮 넘짓해서 이북 관문인 礪峴에 도착하여 곧 38선을 넘어 개성까지 와서 30분 가량 쉰 다음 일로 서울을 향하여 그날밤 8시 반경 서울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단체대표로 갔던 民族自主聯盟側 대표 25명과 한독당측 32명 일행은 4일 정오 특별열차로 평양을 떠나 도중 금교에서 일박한 후 5일 아침 10시반 여현에서 합류되어 그 후 행동을 같이한 것이다.”
(조선일보, 1948. 5. 7)
남북협상차 지난 19일 북행하였던 金九, 金奎植 양씨는 5일 오후 8시경 일행 60여명과 같이 서울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그리고 金九는 귀경직후 ‘경교장에서 내가 떠날 때 만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몰래 다녀왔는데 이번 우리 일행의 큰 소득은 말할 수 없으나 장차로 남북의 우리 동포는 통일적으로 영구히 손잡고 살아가겠다는 기초를 튼튼히 닦아 놓았다. 첫술에 배부르는 법은 없는 것이니 다만 한 두 번 또다시 만난다면 우리의 목적 달성을 확신하는 바이다’라고 다음과 같은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 공동성명
“금반 우리 북행은 우리 민족의 단결을 의심하는 세계 인사에게는 물론이요 조국의 통일을 갈망하는 다수 동포들에게 까지 금차 행동으로서 많은 기대를 이루어 준 것이다. 그리고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며 민족의 생존을 위하여는 우리 민족도 세계의 어느 우수한 민족과 같이 주의와 당파를 초월하여서 단결할 수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행동으로서 증명한 것이다. 이 회의는 자주적 민주적 통일조국을 재건하기 위하여서 남조선 단선단정을 반대하여 미소양군철퇴를 요구하는데 의견이 일치하였다. 북조선당국자도 단정은 절대 수립하지 아니하겠다고 확언하였다.
이것은 우리 독립운동의 역사적 신발전이며 우리에게 큰 서광을 주는 바이다. 더욱이 남북제정당사회단체들의 공동성명서는 양군 철퇴후 전국 정법회의를 소집하여 통일적 임시정부를 소집하고 전국 총선거를 經하여 헌법을 제정하고 정식통일정부를 수립할 것을 약속함으로써 우리 민족통일의 기초를 尊定할 수 있게 할 수 있으며 자주적 민주적 통일조국을 건설할 방향을 명시하였으며 외력의 간섭만 없으면 우리도 평화로운 국가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증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여하한 엄악한 정세에 빠지드라도 공동성명서에 표시된 바와 같이 동족상잔에 빠지지 아니할 것을 확언한다. 첫술에 배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니 우리가 이것으로서 만족을 느낄 수는 없는 것이나 이미 거두어진 성과를 가지고 최후의 성공을 하는 것은 오직 우리의 애국동포전체가 일치하게 노력하는데 있을 뿐이다. 상술한 연석회의에서 국제협조와 및 기타 수개문제에 대하여 우리의 종래 주장이 관철되지 못한 것은 우리로서는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국제협조문제에 대하여는 앞으로 어느 나라가 우리의 독립을 더 잘 도와주느냐는 실지행동에서 용이하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며 또 기타 문제에 있어서도 앞으로 각자가 노력하며 남북지도자들이 자주 접족하는데서 원만히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우리는 행동으로서만 우리 민족은 단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 아니라 사실로도 우리 민족끼리는 무슨 문제든지 협조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으로 증명하였다.
한 예에 들어 말하면 첫째 북조선당국자가 남조선미당국자와의 분규로 인하여 남조선에 대하여 송전을 최단기간내에 정지하겠다고 남조선신문기자에게 언명한 바 있었고 둘째 연일 등 수개처의 저수지개방문제도 원활히 하지 아니한 일이 있었지마는 이번 우리의 협상을 통하여 그것이 다 잘 해결될 것이다. 앞으로 북조선당국자는 단전도 하지 아니하며 저수지도 원활히 개방할 것을 쾌락하였다. 그리고 曺晩植선생과 동반하여 남행하겠다는 우리의 요구에 대하여 북조선당국자는 금차에 실행시킬 수는 없으나 미구에 그리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끝으로 우리 일행의 안부를 위하여 관심하여 주신 동포와 및 우리에게 환대와 편의를 주신 남북의 당국자와 여론계 또 양 주둔군사령장관에게 사의를 표한다.”
(경향, 동아, 1948. 5. 7)

조선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1948년 05월 0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