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국회개원식 거행  
연월일1948년 05월 31일  
출전서울, 경향, 조선, 동아 1948년 06월 01일  
국회개원식 거행
국회가 탄생하는 날 어제 31일은 이날의 국회 성립을 축하하는 각 사회청년 시내 남녀 중등 대학생 분대는 중앙청 앞으로부터 서울시청까지 세종로와 태평로 넓은 거리에 정연히 줄을 지어 구름같이 모여 들었다.
이날의 의사당에서는 오전 10시 정각에 제1회 국회를 소집하고 의장과 부의장을 뽑았다.
기왕의 과도입법의원이 났을 때 의회훈련이 없었던 만큼 다소 유치한 파란곡절을 자아내었음에 또한 이번 국회는 어떠할 것인가? 궁금한 마음이 적지 않았으나 의장 부의장 선거에 질서가 정연함은 일반을 놀라게 하였다. 이날 動議 改義를 구별 못하는 의원도 있었으나 대체로 발언 내용이 좋았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런데 의원 자리를 정하는 문제가 나서 도별로 정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제비를 뽑아서 앞뒤 자리를 정하느냐 두 의견이 있을 때 도별로 하자는 의견이 나오면 도별로 따라서 이날 앞자리에 앉았던 의원들은 장내가 떠나가라 박수를 치고 제비를 뽑아서 제하자는 의견이 나오면 뒷자리를 차지한 의원들이 또한 손벽 아픈것도 잊은 듯 야단을 쳤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날 이 문제는 결말을 못짓고 후일로 미루기로 하고 겨우 안정되었다.
오전중의 회의는 의장·부의장을 뽑고 휴회, 이날 오후 두시부터는 의장과 부의장을 맞이하여 개회식이 베풀어졌다. 이어서 의장 이박사의 15분간에 걸친 식사가 있은 다음 의원은 일제히 기립하여 ‘맹세코 우리나라의 독립을 이룩하기에 온갖 힘과 정성을 바치겠나이다’라는 뜻의 굳은 선서를 하였다.
이 자리에 모인 이 주인이나 손님이나 만면에 희망에 찬 얼굴로 맞이하는 가운데 곧 국련대표 하지중장·딘장관 서재필박사의 축사로 이날의 기쁨을 나눈 다음 아악연주가 있고 우렁찬 만세삼창을 불러 개회식은 막을 닫혔다. 폐회가 된 후 의장 이박사는 자동차로 중앙청앞을 나오자 수만 군중은 두 손을 높이 들어 만세를 부르며 국회의 앞날을 마음껏 비는 것이었다.
국제연합 제2차 총회의 결의에 의하여 국련조선임시위원감시하에 5월 10일에 실시된 가능지역 총선거에 의하여 선량으로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198명은 昨 5월 31일 상오 제1회 국회초회의에 이어 하오 2시10분에 개회식을 성대히 거행하였다.
이날의 역사적 개회식인 중앙청내 의사당 정면에는 태극기가 늘여 있고 그 좌우층계 위에는 구왕궁 아악대가 자리를 잡고 그 아래 좌우계층에는 좌편에 머리에 붉은 리봉을 단 여아를 56명 우편에 남아를 56명의 시내 淸溪國民學校 아동 112명이 네줄로 기립하여 있다.
태극기 아래 정면에 정부의장석 그 단하에는 내빈석으로 국련대표 및 미군장성, 과도정부수처장석, 의원석 좌편에 미군요인, 우편에 국회선거위원회위원석이 마련되어 있다.
이윽고 2시 정각에 198명의 국회 제의원과 내빈으로 안재홍민정장관을 위시한 과도정부부처장, 국련대표, 하지중장, 딘군정장관, 헬믹소장 등 미군장성, 미국·중국·불란서 등 각국영사, 국회선거위원, 과정각부처장 미인고문관, 방청석인 2층에는 吳世昌·李始榮 梁翁을 비롯하여 국내 각사회단체대표 다수와 내외신문 기자가 각각 착석한 가운데 하오 2시10분 구왕궁 아악대의 엄숙한 頌九如之曲 주악으로 개회되었다.
아악이 끝난 다음 총기립리에 경건한 마음으로 구왕궁 아악대 반주, 청계국민학교 아동 선창으로 애국가봉창이 있고 국기에 향하여 경례하고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드린 다음 동 2시20분에 李承晩의장으로부터 조국의 독립전취에의 결의와 약속을 피력하는 별항과 같은 식사가 15분간에 亘하여 있었다.
다음으로 선서식으로 들어가 李의장의 선서로 제의원 총기립하여 별항과 같은 선언문을 힘차게 낭독하였다.
이어서 축사로 들어가 국련조선위원회 대표로 주중국대표와 영국총영사이며 국련대표인 카모레양씨 축사가 있고 李議長으로부터 ‘오늘 국회가 개회되기 까지 가장 노력한 한 분이 하지중장으로 가장 기뻐할 사람의 한 사람일 것이다’라고 소개를 받고 박수리에 하지중장은 등단하여 축하의 뜻과 동시에 하루바삐 조선정부가 수립되어 미군정이 철폐되기를 바랄뿐이라는 별항과 같은 내용의 열렬한 축사가 있어 만장의 박수는 장내를 진동하였다.
이어서 딘군정장관의 축사가 있은 다음 동 3시30분에 구왕궁 아악대의 萬波停息之曲 주악이 있고 徐載弼박사는 李承晩의장의 요청으로 등단하여 ‘오늘은 조선의 생일입니다. 오늘과 같은 조선의 생일이 있을 것을 63년전부터 바라고 있었던 바 살아서 이같은 광경을 보니 영광입니다. 나는 이미 늙었고 젊은 여러분은 국가를 위하여 훌륭한 일을 하여 주기 바란다’라는 축사를 피력하였고 다시 아악 주악이 있은 다음 포천군 선출 국회의원 徐廷禧 선창으로 만세삼창으로 역사적인 초국회 개회식은 엄숙하고도 성대리에 폐회되었다.
5월 10일 총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198명의 국회의원은 昨 31일 상오 10시 국회의사당에 총집회하여 제1차 국회를 개회하였다. 이 집회는 국회선거위원회의 알선에 의하여 소집된 것으로서 이날 회의는 상오 10시15분 선거위원회사무국장 全奎弘으로부터 의원출석수 198명(북제주갑·을구대표 미정)이라는 보고가 있고 국회선거위원장 盧鎭卨로부터 다음과 같은 인사가 있었다.
“국회선거위원회는 기간 선거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왔는데 오늘 국회의원 198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국회의원이 선거되었으나 국회소집이 문제된 바 있어 국회선위가 소집을 알선하기로 되어 오늘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참집을 요청하였든 것입니다.”
곧 이어서 盧氏로부터 임시의장으로 최고연령자 李博士의 추천이 있자 박수로서 이를 통과시키었다. 盧위원장이 하단하고 동 10시25분에 임시의장 李博士가 등단하여 ‘대한민국 독립민주국회 제1차의회를 열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바이다. 먼저 서울시 종로갑구 국회의원 李允榮氏 나와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기 바란다.’고 李氏를 지명하여 총기립하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게 하자 李允榮은 요지 다음과 같은 앞날의 독립과 행복을 비는 기도를 올리었다.
“인간의 역사를 승리의 길로 이끄시는 하나님이 민족을 보호하여 주시고 이 땅을 돌보아 주시와 감격의 이 날을 맞이하게 하여 주시니 감사하나이다. 우리 민족은 오랜 시일에 걸쳐 괴로움에 잠겨 있었습니다. 정의로 이끄시는 하나님은 이제 세계만방에 양심을 부르짖으시고 우리의 영원을 부르시와 이날이 오게 한 것은 하나님의 天示로 알고 감사하나이다. 원컨대 우리의 민족과 함께 앞으로 길이 독립을 주시고 평화를 세계에 펴게 하시와 하나님의 뜻을 받으러 성스럽게 글자 그대로 나라에 봉임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중책을 느끼고 무력함을 느끼오니 더욱 보호하여주시와 이제 국회가 성립되며 세계가 주시하며 기다리는 우리 독립문제가 완수되어 자손만대에 빛나는 역사를 전하는 자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어서 李임시의장으로부터 앞서 5월 27일 예비회의시에 국회준비위원회로부터 제출된 국회구성과 회의준칙에 관한 결의안 상정 선포가 있은 다음 토의로 들어가서 제3조 의장 1인, 부의장 1인을 선출할 것을 의장 1인, 부의장 2인으로 할 것(전남 李晶來 동의)을 가결하고 제5조 의석배정으로 도별로 할 것이냐 추첨으로 할 것이냐 하는 점에 장시간 양론이 대립되었으나 동 11시30분 의장의 직권으로 문구수정할 것을 수정하고(제3조) 보류할 것은 보류하고 (제5조) 국회구성과 회의준칙결의안 전문을 통과시키기로 하고 곧 의장 1인과 부의장 2인 선출로 들어갔다.
먼저 단기무기명투표로 의장선출투표를 행하여 11시55분에 개표한 결과
李承晩 188표
李靑天 4표
申翼熙·金若水 각 2표
李允榮 1표
기권 1표
로 李博士가 피선되었다. 이어서 부의장선거 투표를 행하여 12시20분에 개표하였으나
申翼熙 76표
金東元 69표
李靑天 32표
李允榮 11표
金若水 5표
張勉 2표
李勳求 1표
모두 과반수에 달하지 못하였으므로 최고득점자 申翼熙와 金東元을 지명하여 재선거로 들어가 12시40분에 개표한 결과
申翼熙 116표
金東元 81표
無效 1표
白票 1표
로 申翼熙가 부의장에 피선되었다. 이어서 다시 부의장 1인 선거로 들어가 하오 1시에 개표하였으나
金東元 77표
李靑天 73표
李允榮 38표
金若水 6표
李勳求 曺奉岩 金俊淵 3씨 각 1표
로 역시 모두 과반수에 달하지 못하였으므로 최고득점자 金東元·李靑天 양씨를 지명하여 재선거로 들어가 1시20분에 개표한 결과
金東元 101표
李靑天 95표
로 金東元이 피선되었다.
의장 李博士로부터 부의장 申翼熙·金東元 양씩을 소개하자 박수로서 이를 맞이하였다. 이로서 제1차 국회초회의는 하오 1시23분에 폐회하였다.
(서울신문, 1948. 6. 1;조선일보, 1948. 6. 1)
전민족의 기대와 환호리에 중앙정부를 수립하여 과거 40여년간에 잃어버렸던 우리나라 국권을 회복하여 남북을 통일하며 완전 자주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동시에 세계우방과 국제친선 관계를 제휴할 중앙정부수립의 모체인 신국회 개원식은 국련대표, 하지중장, 딘군정장관 및 내외인사 다수 참석하에 국회의사당에서 거행되었다.
먼저 李承晩박사의 별항과 같은 개회식사가 있은 후 다음과 같은 선언문을 전의원이 의장 李박사와 함께 낭독하였다. 이어 국연 중·불대표 및 하지중장 및 딘군정장관의 다음과 같은 요지의 축사가 있었다.
“본의원은 조국재건과 자주독립을 완수하기 위하여 헌법을 제정하고 국민정부를 수립하여 남북통일의 대업을 완성하여 국가만년의 기초를 확정하고 국리민복을 도모하여 국제친선과 세계평화에 최대의 충성과 노력을 다 할 것을 이에 하나님과 순국선열과 3천만동포에 삼가 선서함”
◊ 李承晩의장 개회식사
국회의장 李承晩박사는 31일 하오2시10분부터 거행된 국회 개회식 석상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식사를 하였다.
“우리가 오늘 우리 민국 제1차 국회를 열기 위하여 모인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이 있게 된데 대하여 첫째로는 하나님의 은혜와 둘째 애국선열들의 희생적 혈전한 공적과 셋째로는 우리 우방들 특히 미국과 국연의 공의상 원조를 깊이 감사치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민족의 공선에 의하여 신성한 사명을 띄고 국회의원 자격으로 이에 모여 우리의 직무와 권위를 행할 것이니 먼저 헌법을 제정하고 대한독립민주정부를 재건설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이 대회를 대표하여 오늘의 대한민주국이 다시 탄생된 것과 따라서 이 국회가 우리 나라에 유일한 민족대표기관임을 세계만방에 공포합니다.
이 民國은 己未 3월 1일에 우리 13도 대표들이 서울에 모여서 국민대회를 열고 대한독립민주국임을 세계에 공포하고 임시정부를 건설하여 민주주의의 기초를 세운 것입니다. 불행이 세계 대세에 인연해서 우리 혁명이 그때에 성공이 못되었으나 우리 애국남녀가 해내 해외에서 그 정부를 지지하며 많은 생명을 바치고 혈전고투하여 이 정신만을 지켜온 것이니 오늘 여기서 열리는 국회는 즉 국민대회의 계승이요 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는 즉 기미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임시정부의 계승이니 이날이 29년 만에 민국의 부활일임을 우리는 이에 공포하며 민국년호는 기미년에서 起算할 것이오 이 국회는 전민족을 대표한 국회이며 이 국회에서 탄생되는 민국정부는 완전한 한국전체를 대표한 중앙정부임을 이에 또한 공포하는 바입니다.
우리 이북 오도 동포가 우리와 같이 공선으로 대표를 선정하여 우리와 이 자리에서 원만히 합석치 못한 것은 우리가 극히 통분히 여기는 바입니다. 그러나 이북에서 넘어온 450만 이재동포가 우리 선거에 참가하였고 피선된 대표로 여러분일 뿐아니라 이 국회에 자리를 상당한 수효대로 비어 놓아 하루바삐 자유선거로 이북 대표가 와서 이 자리를 점령하고 우리와 함께 직책과 권리를 분담하여 완전무결한 국가를 회복하도록 준비하리니 우리는 이북동포와 합심합력하여 미국과 국련의 협조로 통일의 조속 성공을 齊來하기를 결심할 것이며 또다시 맹서하는 바는 우리 민족은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 것이오 우리 강토는 일척일촌이라도 남에게 양여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이 국회의 최대한 목적은 이미 세계에 일러진 바와 같이 민주주의를 토대로 한 헌법을 제정하고 그 헌법에 따라 정부를 수립하고 국방군을 조직하여 안녕 질서와 강토를 보장하며 민생곤란을 구하기 위하여 확고한 경제정책을 공평히 실시할 것과 개인의 평등권을 법률로 제정하여 보호할 것과 해외에 거류하는 동포의 생명과 권리를 국제상 교섭으로 보호할 것과 교육을 향상하며 공업을 발전하며 평등호혜의 조건으로 해외통상을 열 것과 언론·출판·집회·종교 등 자유를 보장할 것과 국제상 交誼를 敦睦하여 세계평화를 증진할 것과 소련과 교제를 열어서 양국의 중대관계를 시정할 것과 길이 열리는데로 일본과 담판을 열어서 정치와 경제상 모든 문제를 妥定할 것 등이니 우리 국회의원들의 책임 중대하고 긴박합니다.
시일이 급박하니만치 우리는 사소한 조리와 무익한 이론으로 시간을 허송할 수 없는 형태이니 중대문제만을 次序로 토의 결정하여 실행하기에만 주력할 것입니다.
우리 정부가 수립되는 날은 미군정은 자연 폐지될 것이니 미군정당국은 이미 다 철폐하기를 준비하고 있는 터이며 군정기관에서 서울과 각도에 중요책임을 가지고 우리를 도와서 시무한 미국 친우중에 혹은 고문으로나 혹은 기술자로 필요한 인사들은 미정부와 교섭해서 얼마 동안 협조하기를 요청할 수 있을 것이며 미주둔군은 우리 국방군이 준비될 때까지 머물러 있기를 우리가 바라는 터이나 이 문제는 국련에서 결정되는 바를 따라서 미정부에서 행할 터임으로 미국과 국연과 우리 정부 사이에 상당한 협의로 조건을 정해서 진행할 것입니다.
다만 우리의 주장하는 바는 주둔군의 연장으로 인연해서 우리 주권사용에는 조금도 침손되는 일이 없을 것과 언제든지 우리가 그 주둔군의 철폐를 요구할 때는 즉시 철폐할 것 등이니 別事端이 없을 것입니다. 미국은 어느 나라를 대해서든지 영토나 정치상 야심이없는 것은 세계가 다 아는 바입니다.
오직 민주정권을 세워서 세계의 평화를 유지하고 국제상 통상과 우호로 공동이익이 될 것을 주장할 뿐이니 한국에 대해서도 기대하는 바는 오직 우리 민중의 호의뿐인 것이므로 설령 국제정세에 綠田해서 주둔군이 얼마 동안 있을지라도 언제든지 우리가 원치 아니할 때에는 곧 걷어 갈 것이니 우리는 이에 대해서 조금도 염려할 바가 없는 것입니다. 공산당 諸人들에게 우리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줄 것이니 改過回心해서 전민족이 주장하는 국권 회복에 우리와 같이 합심합력하여 민족진영으로 同舟竝濟하는 결심을 충분히 표명하게 되면 우리는 前過를 잊어버리고 다 같이 종시회개치 못하고 국가를 남의 나라에 부속시키자는 주의로 살인·방화·파괴 등을 자행할진대 국법으로 준엄히 처단할 것이니 지금부터는 타국의 간섭으로 용서나 석방한다는 것은 다 막힐 것을 확실히 깨달아서 자기도 살고 남도 살아서 자유복리를 같이 누리도록 법망에 복종해야 될 것이니 우리 나라에서 살려면 이렇지 않고서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일반동포에게 충고할 것은 국회가 서고 정부가 생긴 후에는 아무 일도 아니하고 다 각각 개인의 원대로 될 것을 바라고 앉았으면 결코 될 수 없는 정세입니다. 군왕정치시대에는 정부당국들에게 맡기고 일없이 지냈지만은 민주정체에는 민중이 주권자이므로 주권자가 잠자코 있으면 나라는 다시 위태한 자리에 빠질 것이니 지금부터 시민된 남녀는 다 각각 제 직책과 제 권리를 충분히 이행하며 사용해서 부지런히 분투노력함으로 국권을 공고케 하며 인권을 보호하여 만인공영을 원할지니 남녀노소를 물론하고 한 사람도 직책없이 노는 사람이 없어야 할 것이오 국권을 방해하고 민생을 곤란케 하는 자는 법률로 제재하여 造葦의 폐를 막아야 될 것이며 모든 부패한 협잡·모리 등 폐단은 정부와 민중이 일심합력으로 막아서 관민을 물론하고 이런 폐습에 빠진 자는 용서없이 懲治하여 淸潔刷新하리니 각각 개인으로나 단체로나 합심노력하기를 부탁합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안위와 3천만민중의 화복이 전혀 우리 각 개인의 손에 달렸으니 우리가 잘못하면 害도 우리가 당하고 책망도 우리가 질 것이며 잘만하면 모든 복리가 날로 증진되며 세계 친우들이 극력 동정하여 후원하리니 일반 국회의원들은 나와 함께 兢兢嵂嵂하는 성심성력과 우국애족의 순결한 지조로 기미년 국민대회원들의 결사 혈투한 정신을 본받아 최후 1인 최후 1각까지 분투하여 나갈 것을 우리가 하나님과 3천만동포 앞에서 일심맹서합시다.”
대한민국 30년 5월 31일
대한민국 국민의회
의장 李承晩
작 31일 하오 2시부터 의사당에서 개최된 국회 개원식에서 남조선주둔미군사령관 하지중장과 군정장관 딘소장은 각각 다음과 같은 축사를 하였다.
◊ 하지중장 축사
“의장, 조선국민대표 제위 및 귀빈 여러분! 오늘은 조선의 큰 역사상날의 한 날입니다. 조선 국민의 모든 대표들의 이 회합을 조선독립을 향하여 오늘까지 있은 민주적 발전의 제일 중대한 보조입니다. 미국관민과 현지에 와서 조선독립과 통일 회복에 최대 노력을 하고 있는 여러 천명의 미국인은 애국적이요 평화를 사랑하는 조선국민과 더불어 이 역사적인 개원식을 같이 축하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큰 소망과 자신을 가지고 여러분의 문제를 건전히 행복스럽게 해결할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국회가 있을 수 있고 지금 형성이 된 것은 1947년 11월 14일 43대0으로 국제연합 총회에서 국련감시하에 조선에 선거를 시행하기로 표결된 결과인데 그 선거에서 조선국민은 여러분을 자기네의 대표로 선출한 것입니다.
이 국회에서 국사를 심의하는 것도 여러분의 책임인 동시에 여러분을 선발한 국민의 희망과 의사에도 여러분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본관은 지적하는 바입니다. 이 국회는 군정이나 남조선 과도정부의 부속이나 혹은 일부가 아니라 조선국민 유권자 대표의 국회로 조선국가를 위하여 민주정부를 조직하고 그런 정부가 조직되면 국제위원단에 통지하도록 될 것입니다.
정부가 조직된 후 운용할 준비가 되면 그 정부가 국제연합조선위원단과 협의하여 정부의 직능을 인수할 것이오 그 정부는 세계자유국가에게서 자주독립국가로 승인을 받을 자격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선의 장래는 주로 조선인 자신의 손에 놓여 있습니다. 그 장래의 큰 책임은 이 국회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곳에서 앞으로 수일 혹은 수주간에 하는 조선국가의 장래를 대부분 결정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큰 문제를 당면하고 계십니다. 그 문제는 여러분이 잘아시고 일상 말씀하는 문제인데 해결만은 여러분이 마땅히 하여야 할 문제입니다. 전세계의 안목은 여러분과 國事심의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 국회에서 결의하는 결과를 가지고 여러분의 나라를 판단할 것을 아셔야 합니다. 조선국민은 5월 10일 대성황의 투표로 여러분을 자기네 대표로 신임한다는 것을 표시했으며 국제연합 결의문에 있는 조선민주정부 조직의 의무이행을 유권자의 투표로 여러분에게 위임한 것입니다.
미국을 대표하여 조선주둔미군사령관의 자격으로 또한 조선민족의 친구의 한 사람으로 여러분의 성공을 빌며 여러분의 실패할 수가 없다는 신념을 표현합니다. 본관은 귀국정부 수립에 있어 제위의 심의에 좌우할 의사는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黙으로든지 도울 길이 있다면 힘있는 데까지 돕고저 하며 도울 용의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중한 의무이행에 있어 하나님의 편달과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
◊ 딘군정장관 축사
“의장, 국민을 대표하는 대의원 여러분, 귀빈 제위 오늘은 우리가 다 같이 고대하던 날입니다. 해방이래 조선국민으로부터 정당히 피선된 대표가 모여서 대표적 독립 중앙정부 수립에 착수할 그 날이 오기를 갈망하였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조선국민들과 같이 일해온 우리 미국인들로서는 여러분들이 조선국민들로부터 받은 그 사명 즉 헌법을 제정하고 진정한 대표적 정부를 수립하는 대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실 것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지금 하지중장께서도 언급하신 바와 같이 국회는 절대로 군정이 일부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군정당국으로서는 여러분들이 원하신다면 어떤 협력도 아끼지 않을 용의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여러분들이 수립할 그 정부가 조직되고 적당한 준비가 완료되는 대로 정권을 질서있게 이양할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언명하는 바입니다. 끝으로 본관은 군정관하 미국인일동을 대표하는 심심한 축의를 표하는 동시에 여러분이 중대한 그 사명을 원만히 완수하게 되기를 충심으로 기원하는 바입니다.”
(서울신문, 1948. 6. 1;동아일보, 1948. 6. 1;경향신문, 1948. 6. 1)
국회개원식이 거행되는 31일 서울시내는 이른 아침부터 집집마다 태극기를 달게 하고 각관공서원·학생·청년단체·사회단체·시민들이 손에 국기를 들고 삼삼오오 대를 지어 세종로와 태평로를 향하여 행진을 시작하였다. 나팔소리 태극기 프랑카트로 의사당인 중앙청으로부터 남대문까지의 넓은 가도는 입추의 여지가 없이 차 있었는데 각 단체 배치는 중앙청으로부터 광화문 네거리 까지는 학생, 광화문으로부터 남대문까지는 각 청년단체의 순서로 양편에 행렬을 짓고 오후 2시부터 시작되는 개원식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3시반경 개원식이 끝나자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이승만박사는 삼엄한 경호리에 부인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일반이 도열한 세종로로부터 남대문로로 향하여 군중의 만세와 박수를 받으면서 통과하고 뒤이어 각 단체·악대를 선두로 시가행진을 시작하여 동 5시경 각각 소정의 장소에서 해산하여 국회개원의 행사를 끝막았다.
(경향신문, 1948. 6. 1)

서울, 경향, 조선, 동아 1948년 06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