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대한민국정부수립 선포 겸 광복 3주년기념식(2)  
연월일1948년 08월 15일  
출전서울신문, 경향신문 1948년 08월 18일  
대한민국정부수립 선포 겸 광복 3주년기념식(2)
태극기도 드높게 축복받은 이나라
40년간 어둠 속에서 헐벗고 굶주리고 상처를 받아가면서도 오늘을 맞이하기 위하여 이 땅의 겨레들은 밤길을 터벅터벅 굴치 않고 싸워온 불사조였으니 우리는 다 오늘 푸른 하늘을 우러러 눈물어린 얼굴을 서로 맞대고 독립선포를 외치려 이 넓은 뜰에 뛰어 나왔도다. 일찍기 일제침략의 아성이었던 이 건물 이 마당에서 비록 국토는 양단되어 남과 북이 서로 외국인양 갈리어 있으되 이보다 먼저 당당한 국호 아래 전세계를 향하여 주권을 찾고 군정이 물러가고 완전 독립을 선포하는 대한민주정부수립 국민축하식이 열리려 한다. 넓은 식장엔 군데군데 놓인 꽃향기와 더불어 가슴이 터질듯한 분류속에 드디어 축하식의 오전 11시부터 중앙청 넓은 뜰에서 장엄 성대히 우뢰같은 박수소리와 주악리에 개막되었다.
식장에는 새벽부터 모여든 군중으로 입추의 여지가 없고 식장 정면에는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며 축복받은 이 나라 이 백성의 감격은 그칠줄을 모른다. 단상에는 싱싱한 향기를 풍기는 오색 꽃다발이 양쪽으로 놓여있고 좌우로 유엔대표단과 미군 장성급이 앉았고 그 뒤로 이대통령을 비롯하여 신정부의 국무장관이 앉았고 단상앞에는 약대석을 비롯하여 국회의원 과도정부 부처장 외빈 내외신문기자 그리고 일반 단체와 군중이 구름같이 모여 이날을 경축코자 멀리 일본 동경서 오는 맥아더장군을 기다리고 있다. 이윽고 개회시각 11시가 될 즈음 김포비행장까지 마중나간 이대통령과 하지중장 맥아더장군이 터지는 듯한 환호 속에 식장에 도착하였다. 먼저 대통령과 맥아더장군에게 군악대로부터 축하하는 주악을 울리자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대통령과 맥아더장군이 단상 정면에 나와 손을 들어 흔들자 박수소리가 하늘이 터질 듯 쏟아져 나온다. 개회시각보다 늦게 11시 20분 역사적인 축하식이 시작되었다.
吳世昌 사회로 애국가 합창, ‘오늘 우리 정부가 수립되는 경사에 맥아더원수를 맞이한 것은 한층 뜻깊은 일로 자유를 잃었던 우리가 해방되어 주권을 찾고 이를 경축하는 것이니 오늘의 환희와 감격을 길이 살리자’는 오세창의 개회사를 明濟世가 대독하였다.
이어 대통령 李承晩의 뜻깊은 기념사에 계속하여 연합합창단의 정부수립기념가 합창이 있었다. 합창이 끝나자 대통령은 옆에 앉은 맥아더장군과 그의 부인을 단상에 나오게 하여 군중에게 소개하고 환영의 말을 하자 또다시 우뢰같은 환호와 박수가 일어남에 맥아더장군은 손을 흔들며 응한 후 이어서 그 늠름한 제구와 부드러운 얼굴로 ‘본관은 40년간에 걸쳐 왜국의 압제 속에 해방을 위해 싸워온 것을 감탄합니다. 이제 정부가 서고 완전한 독립이 되어 나는 무한한 마음으로 축하하며 그 위대한 민족성을 길이 빛내기 바란다’는 요지의 축사가 있었는데 축사를 끝마치자 대통령으로부터 맥아더장군 부인에게 대통령 부인으로부터 맥아더장군에게 환영의 꽃다발을 증정하고 하와이재류동포 玄彼得여사로부터 보낸 화환을 대통령이 맥아더장군 부처의 목에 걸어주자 동 장군부처는 군중을 향하여 손을 흔들며 감사의 뜻을 표하였고 이어서 하지중장 유엔위원단 대표 劉중국대사 뻔교황사절의 축사가 있은 후 오후 1시 20분경 역사적인 이날의 신전을 마치었다.
(서울,동아,조선,경향, 1948. 8. 16)
해방후 세번째 맞는 8·15 해방기념일인 이날은 대한민국정부 수립 축하의 날이다. 이날 가가호호에는 태극기를 드높이 달아 지루한 장마도 그쳐 맑게 개인 창공에 휘날리고 각 상가는 일제히 철시를 하는 등 경축의 빛으로 가득차 있었다.
축하식장인 중앙청 앞에는 경축하러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전차 운행도 일시 중지되고 다만 새정부 수립을 경축하는 수대의 꽃전차와 꽃자동차가 시내를 돌았다. 남대문과 동대문 문루 드높이 대한민국만세를 가운데에 새겨 5색으로 찬란히 단장되었고 거리 양축에 도열한 군중들은 가두에 설치한 라우드·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중앙청 광장의 축하식 실황 방송에 맞추어 만세를 부르고 식이 끝난후 가두행열에 박수를 치는 등 장안은 경축의 빛으로 하루종일 넘쳐 흘렀다.
(서울,동아,조선,경향, 1948. 8. 16)
◊ 吳世昌의 開會辭 內容
이날 회장 吳世昌을 대표하여 明濟世가 낭독한 개회사는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수립을 천하에 선포하는 거룩한 이 날에 UN朝委 각국대표와 맥아더元帥 등 귀빈 여러분을 모시게 된 것을 광영으로 생각합니다.
8·15 이날은 우리 대한민국으로서는 영원히 경축하는 날입니다 3년전 이날로서 우리는 해방되었고 금년 이날 우리는 정부를 수립하였습니다. 이보다 더 경사가 있겠습니까? 역사적인 이날에 미국과 중국은 우리의 정부를 승인하였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로 발전하여 세계평화를 일층 더 촉진시켜야 하겠습니다.”
(조선일보, 1948. 8. 16)
카이로 포츠담선언의 약속으로 3년전인 1945년 8월 15일 조국은 해방되었으나 미·소 양군의 분점으로 강토의 양단을 보게 되어 남한에는 미군정이 3년간 계속되어 오던중 15일 대한민국정부 수립을 보게되어 동일 子正으로서 미군정은 종지부를 찍고 신생 대한의 역사의 첫 페이지는 열리었다.
이날 4천여년 조국 역사에 찬연한 一頁을 장식할 曠古의 성전인 대한민국정부 선포식은 3천만의 환희와 세계의 시청을 모으면서 15일 오전 11시 30분부터 중앙청 대광장에서 드디어 막을 열고 장엄리에 진행하여 오후 1시 20분에 폐회하였다. 이로서 대한민국은 그 정부 수립을 세계에 선포하여 역사적인 거보를 내 디디었다.
(조선일보, 1948. 8. 16)
◊ 대통령 식사
외국귀빈 제씨와 사랑하는 나의 동포 여러분! 8월 15일 오늘에 거행하는 이 식은 우리의 해방을 기념하는 동시에 우리 민국이 새로 탄생한 것을 겸하는 것입니다.
이날 동양의 한 고대국인 대한민국정부가 회복되어서 40여년을 두고 바라며 꿈꾸며 투쟁하여온 사실이 실현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은 내 평생에 제일 緊重한 시기입니다. 내가 다시 고국에 돌아와서 내 동포의 자치 자주하는 정부 밑에서 자유공기를 호흡하며 이 자리에 서서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격으로 이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마음에는 대통령의 존귀한 지위보다 대한민국의 한 公僕인 직책을 다하기에 두려운 생각이 앞서는 터입니다.
이 자리에서 미국극동사령관 맥아더장군과 그 부인을 환영하게 되는 것은 우리에게 큰 영광입니다. 우리는 맥아더장군의 경력을 빠타안반도에서 모험하던 날보다 승전하고 일본에 들어가서 한국을 해방시킬 때까지 심심한 관심과 상쾌한 기분을 가지고 주시하여 오던 바 입니다. 태평양전쟁중 미군최고지휘관으로 있을 때와 승전후 일본연합군총사령관인 맥아더장군은 다만 미군의 영도자뿐만 아니라 가혹한 일본의 침략하에서 유린을 당하고 있던 많은 민족들에게 유일한 희망의 표적이었습니다. 우리 한국도 일본의 모욕을 무한히 받았으므로 맥아더장군의 지도하에서 일본 사람들이 전적으로 변화해서 진정한 민주제도를 흡수하여 새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맥아더장군은 미국극동최고사령관이므로 따라서 한국주둔군의 총지휘관이 되었으므로 미군의 우의적 원조를 바라는 것이 많은 중 맥아더장군의 功效가 작지 않은 것을 우리가 감히 아는 바이다. 내가 직접으로 맥아더장군과 그 부인께 감격을 느끼는 바는 이때에 특별히 우리를 심방해서 이 기회에 이 특수한 영광을 주게 된 것입니다. 이분들이 여기를 참석하게 된 것은 한국 전민족이 말할 수 없는 감흥을 받게 되는 것이니 용감한 군인으로 정치대가를 겸하고 가장 우리 韓人에게 진정한 친우요 해방자인 맥아더장군의 이번 심방을 영광스러히 생각하며 영구히 기념할 것입니다. 우리가 목적지에 도달하기에는 아직도 험하고 어렵습니다. 4천여년을 자치 자주해온 역사는 막론하고 세인들이 남의 선전만 믿어 우리의 독립 자치할 능력에 대하여 의문하던 것을 금년 5월 10일 전민족의 민주적 자결주의에 의한 전국총선거로 우리가 다 청소시켰으며 모든 방해와 지장을 일시 惡感이나 落心에 절하는 상태를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인내와 정당한 행동으로 극복하여 온 것이니 우리는 이 태도로 연일 진행함으로 앞서 많은 지장을 또 일일이 이겨나갈 것입니다. 조금도 우려하거나 退縮할 것도 없고 작일을 통분히 여기거나 오늘을 기뻐하지만 말고 來日을 위해서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앞에 할 일은 우리의 애국심과 노력으로 우리 민족을 반석과 같은 기초에 둘 것이니 이에 대하여 공헌과 희생을 많이 한 남녀는 더 큰 희생과 더 굳은 결심을 가져야 될 것이요 더욱 굳센 마음과 힘을 다하여 다만 우리의 평화와 안전뿐 아니라 온 인류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 힘써야 될 것입니다. 이 건국 기초에 요소될만한 몇 조건을 간단히 말하려하니
1) 민주주의를 전적으로 믿어야 될 것입니다. 우리 국민중에 혹은 독재제도가 아니면 이 어려운 시기에 나갈 길이 없는 줄로 생각하며 또 혹은 공산분자의 피상적 운동에 중대한 문제를 해결할만한 지혜와 능력이 없다는 관찰로 독재권이 아니면 방식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으니 이것을 우리가 다 큰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목하에 사소한 장애로 인하여 영구한 복리를 줄 민주주의 방침을 무효하게 만드는 것을 우리가 결코 허락치 않을 것입니다. 독재가 자유와 진흥을 가져오지 못하는 것은 역사에 증명된 것입니다. 민주제도가 어렵기도 하고 또한 더디기도 한 것이지만 의로운 것이 종말에는 악을 이기는 이치를 우리는 믿어야 할 것입니다. 민주제도가 세계우방들이 다 믿는 바요 우리 우방들이 전제정치와 싸웠고 또 싸우는 중입니다. 세계의 안목이 우리를 들여다 보며 역사의 거울이 우리에게 비추어 보이는 이 때에 우리가 민주주의를 채용하기로 30년전부터 결정하고 실행하여 온 것을 또 간단없이 실천해야 될 것입니다. 이 제도로 성립된 정부만이 인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부입니다.
2) 인권과 개인 자유를 보호할 것입니다. 민주정체의 요소는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국민이나 정부는 항상 주의해서 개인의 언론과 집회와 종교와 사상 등 자유를 극력 보호하여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40여년 동안을 왜적의 손에 모든 학대를 받아서 다만 말과 행동뿐 아니라 생각까지도 자유로 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민족이 절대로 싸워온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 자유활동과 자유 판단력을 위해서 쉬지 않고 싸워온 것입니다.
우리를 압박하는 사람은 유래로 저의 나라의 전제정치를 고집하였으므로 우리의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마음이 더욱 굳어져서 속으로 민주제도를 배워 우리끼리 진행하는 사회나 정치상 모든 일에는 서양민주국에서 행하는 방식을 모범하여 자유로 우리의 공화적 사상과 습관을 은근히 발전하여 왔으므로 우리의 민주주의는 실로 뿌리가 깊이 박혔던 것입니다. 공화주의가 30년 동안에 뿌리를 깊이 박고 지금 결실이 되는 것이므로 굳게 서 있을 것을 믿습니다.
자유의 뜻을 바로 알고 尊崇히 하며 한도내에서 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어느나라에서든지 자유를 사랑하는 지식계급에 진보적 의사를 가진 청년들이 정부에 단계를 밟아 진행하는 일을 비평하는 폐단이 종종있는 터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언론과 행실을 듣고 보는 이들이 과도히 책망해서 위험분자라 혹은 파괴분자라고 판단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상의 자유는 민주국가의 기본적 요소이므로 자유권리를 사용하여 남과 대치되는 의사를 발표하는 사람들을 포용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해서 이런 사람들을 탄압한다면 이것은 남의 사상을 존중히 하며 남의 이론을 참고하는 원칙에 위반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비와 선악이 항상 싸우는 이 세상에 우리는 의로운 자가 불의를 항상 이기는 법을 확실히 믿어서 흔들리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서로 이해하며 협의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관건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새 국가를 건설하는 이때에 정부가 안에서는 공고하며 밖에서는 위신이 있게 하기에 제일 필요한 것은 이 정부를 국민이 자기들을 위하여 자기들 손으로 세운 자기들의 정부임을 깊이 각오해야 될 것입니다. 이 정부의 법적 조직은 외국군사가 방해하는 지역외에는 전국에서 공동히 거행한 총선거가 된 것이니 이 정부는 국회에서 충분히 토의하고 제정한 헌법으로써 모든 권리를 확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는 우리 일반시민은 누구나 다 일체로 투표할 권리와 참정할 권리를 가진 것입니다. 일반 국민은 누구를 물론하고 이 정부에서 반포되는 법령을 다 복종할 것이며 충성스러히 받들어야만 될 것입니다. 국민은 국권의 자유를 할 담보를 가졌으나 이 정부에 불복하거나 顚履하려는 권리는 허락할 일이 없나니 어떤 불충분자가 있다면 공산분자 여부를 물론하고 혹은 개인으로나 從黨으로나 정부를 전복하려는 사실이 증명되는 때에는 결코 용서가 없을 것이니 극히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인민의 자유권리와 참정권을 다 허락하되 불량분자가 민권자유라는 구실을 이용해서 정부를 전복하려는 것을 허락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니 누구나 다 이것을 밝히 알아 조심해야 될 것입니다.
정부에서 가장 전력하려는 바는 도시에서나 농촌에서나 근로하며 고생하는 동포들의 생활 정도를 개량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기왕에는 정부나 사회에 가장 귀중히 여기는 것은 양반들의 생활을 위했던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이런 사상을 다 버리고 새 주의로 모든 사람의 균일한 기회와 권리를 주장하며 개인의 신분을 존중히 하며 노동을 우대하여 법률앞에는 다 동등으로 보호할 것입니다. 이것이 곧 이 정부의 결심이므로 전에는 자기들의 형편을 개량할 수 없는 농민과 노동자들에게 특별히 주의하려 하는 것입니다. 또 이 정부에 결심하는 바는 국제통상과 공업발전을 우리나라의 필요를 따라 발전시킬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민족의 생활정도를 상당히 향상시키려면 모든 공업에 발전을 꾀하여 우리 농장과 공장의 소출을 외국에 수출하고 우리는 없는 필요한 물건을 수입해야 될 것입니다. 그런즉 공장과 상업과 노동은 서로 떠날 수 없이 함께 병행 불패해야만 될 것입니다. 경영주들은 노동자들을 이용만 하지 못할 것이고 노동자는 자본가를 해롭게 못할 것입니다. 공산당의 주의는 계급과 계급 사이에 충돌을 붙이며 단체와 단체간에 분쟁을 붙여서 서로 미워하며 모해를 일삼는 것이나 우리의 가장 주장하는 바는 계급 전쟁을 피하여 전민족에 和同을 도모하나니 우리의 和同과 단체성은 우리 앞에 달린 국기가 증명하는 것입니다. 상고적부터 태극이 天地萬物에 융합되는 이치를 표명한 것이므로 이 이치를 실행하기에 가장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필요를 느끼는 것은 외국의 경제 원조입니다. 과연 기왕에는 외국의 원조를 받는 것이 받는 나라에 위험스러운 것을 각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든지 무조건하고 청구하는 것은 불가한 줄로 아는 바입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는 이 세계 대세가 변해서 각국간에 대소 강약을 물론하고 서로 의지해야 살게 되는 것과 전쟁과 평화의 화복 안위를 같이 당하는 이치를 다 깨닫게 됨으로 어떤 적은 나라에 자유와 건전이 모든 큰 나라들에게 동일히 관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연합국과 모든 그 민족들이 개별적으로나 단체적으로나 기왕에 밝히 표시하였고 앞으로도 계속하여 발표할 것은 이 세계의 대부분이 민주적 자유를 누리게 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우방들이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며 또 계속해서 도움을 줄 것인데 결코 사욕이나 제국주의적 욕망이 없고 오직 세계평화와 친선을 증진할 목적으로 되는 것이니 다른 오심이 조금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미군정은 끝나며 대한정부는 시작되는 이날에는 모든 미국인과 모든 한인 사이에 친선을 한층 더 새롭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자유를 회복하는 것은 첫째로 미국이 일본에 강권을 타도하기 위하여 우리나라에 있던 적군을 몰아내었고 지금은 자발적으로 우리의 독립을 회복하기에 돕는 것이니 우리 지상에 一尺 一寸이나 우리 재정에 分錢이라도 원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미국은 과연 정의와 인도의 주의로 그 나라에 토대를 삼고 이것을 세계에 실천하는 증거가 이에 또다시 표명되는 것입니다. 겸하여 과도기에 미국장관들을 도와서 계속 노력한 모든 동포들의 업적은 우리가 감사치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직원이 일을 계속하기 바라며 부득이 改遞할 경우가 있더라도 국사에 순조 진행을 위해서 끝까지 기능과 성심을 다하여 애국심에 責心을 다하기 바라는 것입니다.
또한 미국군인이 점령한 동안에 군정이나 민정에 사역한 미국친우들이 우리에게 동정하며 인내하여 많은 양해로 노력해 준 것은 우리가 또 깊이 감사하는 바입니다. 또다시 설명코자 하는 바는 미점령군의 사령장관이요 인도자인 하지중장에 모든 성공을 치하하는 동시에 우리는 그 분을 용감한 군인일 뿐아니라 우리 韓人들의 참된 친우임을 다시금 인정하는 바입니다. 이 새로 건설되는 대한민주국이 세계 모든 나라중 우리의 좋은 친구되는 나라가 많은 것을 큰 행복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 정부에 주장하는 바는 기왕에 친근히 지내던 나라와는 더욱 친선을 도모하는 것이요 교제가 없는 나라들도 친밀한 교제를 열기로 힘쓸 것입니다. 미국과 우리관계가 더욱 밀접해지는 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 韓中 양국은 자고로 우의가 자별했던 바인데 이번에 또다시 중국정부에서 특별후의를 표한 것은 금월 12일에 한국정부를 임시승인으로 공포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親信하며 좋은 親友로 아는 劉馭萬公使가 大使로 승진케 된 것을 우리는 더욱 기뻐하는 바입니다.
지금 劉박사를 中華民國 대사자격으로 이 자리에서 환영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태평양에 새 민주국인 필리핀과 정의 상통이 더욱 밀접한 것을 기뻐하는 바입니다. 때에 유엔위원단장으로 이에 참석하신 이가 필리핀의 대표로 된 것이 또한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비율빈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아세아민족일뿐 아니라 또한 일본의 침략에 독해를 많이 당했고 또한 우의적 원조로 자유를 회복하게 된 것이 우리와 자연한 동감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국제연합에 회원된 나라들을 일일이 다 지명하여 말할 수는 없으나 이 모든 나라들이 우리에게 많은 동정을 표하였으며 작년 11월 14일에 한국을 위하여 통과한 결의로 우리의 독립문제를 해결하게 한 것을 감사히 여기는 중 더욱이 임시위원단에 대표를 파견한 그 나라들이 민주적 총선거를 자유로 거행하는데 도와 주어서 이 정부가 생기게 한 것을 특별히 고마워하는 바 입니다.
이 앞으로 유엔총회가 파리에서 열릴 때에 우리 승인문제에다 동심협조하여 이만치 성공된 대사업을 완수케 하기를 바라며 또 믿습니다. 우리 전국이 기뻐하는 이 날에 우리가 北便을 돌아보고 비감한 생각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거의 1천만 우리 동포가 우리와 민국 건설에 같이 追行하기를 남북이 다 원하였으나 유엔대표단을 소련군이 막아 못하게 된 것이니 우리는 장차 소련사람들에게 정당한 조처를 요구할 것이오 다음에는 세계대중의 양심에 호소하리니 아무리 강한 나라이라도 약한 이웃의 나라를 무단히 점령케 하기를 세계가 허락케 한다면 나중에는 세계의 평화를 유지할 나라가 없을 것입니다.
기왕에도 말한 바 있지마는 소련이 우리에 접근한 이웃이므로 우리는 그 큰나라로 더불어 평화의 친선을 유지하려는 터입니다. 그 나라와 자유로 사는 것을 우리가 원할 것입니다. 언제든지 우리에 이 원하는 바를 그 나라도 원한다면 우리 국민은 세계의 모든 자유국과 친선히 지내는 것과 같이 소련과도 친선할 우의를 다시 교환키에 노력할 것입니다.
결론으로 오늘에 지나간 역사는 마치고 새 역사가 시작되어 세계 모든 정부중에 우리 새 정부가 나서게 됨으로 우리는 남에게 배울 것도 많고 도움을 받을 것도 많습니다. 모든 자유우방들의 후의와 도움이 아니면 우리의 문제는 해결키 어려울 것입니다. 이 우방들이 이미 표시한 바와 같이 앞으로 계속할 것을 우리는 길이 믿는 바이며 동시에 가장 중대한 바는 일단 국민의 충성과 책임심과 굳센 결심입니다. 이것을 신뢰하는 우리로는 모든 어려운 일에 주저하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하며 장애를 극복하여 이 정부가 대한민국에 처음으로 서서 끝까지 변함이 없이 민주주의에 모범적 정부임을 세계에 표명되도록 매진할 것을 우리는 이에 선언합니다.”
대한민국 30년 8월 15일
대한민국 대통령 李承晩
(서울신문, 1948. 8. 18;조선일보, 1948. 8. 16;경향신문, 1948. 8. 16·18, 동아일보, 1948. 8. 16)
◊ 맥아더원수 축사
“이 역사적 순간에 본관이 대한국토에 입각하여 이 땅에 자유가 소생하여 자유가 풍미함을 볼 때에 감개무량하다.
본관은 40년간 여러분의 애국자들이 외국의 압박의 羈絆을 벗느라고 분투하는 것을 감탄해 가며 지켜보았다. 그들의 백절불굴하는 굳은 결의는 운명과 절충하기를 거부했고 대한민국의 자유를 전세계에 한 번 마음속에 박힌 자유의 정신은 영원불멸한다는 만고불멸의 진리의 변증이 되었다. 그러나 정의의 위력이 용진하는 찰나에 그 정의의 凱旋은 근대 역사의 일대 비극인 귀국 강토의 인위적 장벽과 분할로 무색해졌다. 이 장벽은 반드시 파열해야 될 것이요 도한 파열될 것이다. 여러분들이 자유국가의 자유로운 국민으로 결국 통일하는 데 있어 이것을 금할 것이 천하에 아무 것도 없다. 한국국민은 너무나 위대한 선조의 후손이라 외래분열의 철학에 굴하여 그들의 성업을 희생할 리가 없다. 아세아대륙이 이 땅에서 멀리 西便을 바라보면 거기에는 공포와 위협과 비참이 사람의 마음속에 가득하고 대중은 死間에 갇혀 있고 사상적 압박에 기진맥진하여 자유의 향기를 구하고 있다. 이 땅과 저 서쪽에서 되고 있는 그 사태가 평화의 세계냐 전쟁의 세계냐를 결정할 요소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두어야 한다. 과거 3년간 나의 나라(미국)의 총포는 침묵을 지켜왔고 그 동안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과 협력하여 근대세계의 도덕의 힘을 가지고 세계평화를 역력히 유지할 수 있는 인간적 관계를 구하여 왔다. 우리의 노력은 권력에 대한 탐욕과 강욕과 갈망의 악한 정신으로 인하여 저해를 당했다.
그러나 금일 귀국의 재생은 인류 자유의 이념에 의한 인간사회에 깊이 깊이 뿌리를 박아 영원히 멸할 수 없다는 것의 산 증거가 된다. 여러분은 자유롭고 독립한 민주국으로 여러분의 운명의 길을 출발하도록 된 이때에 여러분이 선출한 지도자들의 지혜로 여러분의 국가의 힘을 측정하게 된다. 만일 그들이 개인의 복리와 적당한 지위를 보장하여 그 개인의 근실의 정도와 자연의 제한이 없는 한 향상 발전의 기회를 부여한다면 이곳에는 행복되고 근실한 국민의 강국이 자랄 것이요 그 국가는 모든 불량분자 공격에 不落의 요새가 될 것이다.
민주적 생활의 방어는 무엇보다도 개인 자유의 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이것을 지킬 결심과 용의를 가진 사람뿐이다. 미국국민은 귀국민과 단연 格別한 우호적 관계를 가졌다.
일찍이 1882년에 양국 국민간에 우호통상조약이 체결되어 양국간에 영원한 평화와 우의를 선포하였다. 미국국민은 이 서약에서 이탈한 것이 결코 없다. 이만큼 여러분은 그 不可分 不可離의 우호관계를 신뢰할 수 있다.
李대통령각하와 신생 민주국가 영도에 있어 각하를 보좌할 閣員 諸位는 정치적 경험에 있어서 이미 찾아보지 못한 가장 복잡한 문제에 당면할 것이다. 이 문제를 여하한 방법으로 해결하느냐가 귀국 국민의 통일과 복리를 대부분 측정할 뿐만 아니라 역시 아세아대륙의 장래 안정을 결정할 것이다.
본관은 각하의 대한국민에게 신임을 가지고 있다. 여러분의 聖業에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보호가 각하와 애국민에게 있을 것을 축원한다.”
(서울신문, 1948. 8. 16)
유엔임시조선위원단 의장 루나는 요지 다음과 같은 축사를 하였다.
“ㄴ대통령 국회의장 대법관 및 신사숙녀 제위
극동에 있어서 그 국가적 존속이 한국 이상 더 관대한 관심을 받는 나라는 없습니다.
제2차 세계전쟁중의 암담한 시일에 있어서도 연합제국은 한국이 자주독립하려는 정치적 열망을 잊을 수도 없으며 또한 잊지도 않았습니다.
1943년 11월 22일 내지 26일의 카이로 회의에서 합중국 루즈벨트대통령 英國 처칠수상 中華民國 蔣介石主席이 유명한 카이로선언을 구상하여 발표하였습니다. 동 선언중에는
‘전기 3대국은 한국민의 隷를 유의함으로 한국을 적당한 시기에 자주독립할 것으로 결의함’
1945년 7월 26일 동 선언을 포츠담회의에서 인정하여 러시아는 선언을 수락하고 연합제국에 대한 의무에 충실하여 소련정부는 본 제안을 수락하며 또한 7월 28일부의 선언에 협동함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본 협의에 의하여 미소공동위원회가 구성되어 임시정부 수립을 원조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이유로 본위원회는 그 업무를 가장 한심하게 종식하였느냐는 것은 세계가 주지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제국은 한국인민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한국에 대한 주의주장을 포기치 않았습니다.
연합국총회에 한인의 문제는 제출되어 성의있는 토의가 있은 후 연합국임시조선위원회를 창설하는 1947년 11월 14일부의 결의가 가결되었습니다. 동 위원회는 그 관문을 조직하고 그 결의를 실천하기 위하여 직시로 한국에 왔습니다. 1948년 5월 10일 동 위원회는 한국선거를 감시하였습니다. 본 선거를 감시한 것은 본 위원회뿐이 아니었고 전세계가 긴장한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매우 만족하였습니다. 본 위원회의 의견에 의하면 동 선거는 동 위원의 감시가 불가능하고 또한 전한국 인구의 대략 3분지 2를 점령하는 한국지역에 주거하는 선거인의 자유의사를 정당히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이상에 말씀한 것이 연합제국과 (국제연합)연합국이 한국문제를 해결하려는 주요방안이었습니다.
금일 우리는 귀국의 신정부 수립을 축하하기 위하여 모였습니다.
동 정부는 한인이 조직하였으니 한인을 위하여 한인이 운영하는 바입니다. 동 정부는 귀국이 국제가족의 완전한 일원에 도달하는 도로상의 한 이정표입니다. 지난 14일 본 위원단은 귀한국정부와 정식으로 협조할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연합국임시조선위원회 의장으로 본인은 동 위원회 일동을 대표하여 제위에게 귀국정부 수립을 축하하는 바입니다. 또한 필리핀대표로 말씀하자면 정부를 전연 조직치 않은 것보다는 귀국 자체의 정부를 조직한 것이 數倍 좋다고 확언하는 바입니다.”
(동아,서울,경향,조선, 1948. 8. 16)
◊ 하지중장 축사
“대통령각하 국무위원 귀빈 신사 숙녀 여러분! 본관이 조선에 진주한지 근 3년 여러 가지 축하식장에 참석한 일이 있으나 오늘 이 자리에 이 식전이야말로 제일 중대하고 따라서 이 자리에 참석한 우리들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아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日本降伏 3개년인 이날에 대한민국정부 수립을 축하하도록 된 것은 한국국민의 위대한 업적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이 신정부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지난 금요일 워싱턴에서 발표된 성명에 표현되었는데 그 일부를 인용하면 미국정부의 견해로서는 이렇게 수립된 한국정부는 1947년 11월 14일 UN총회 결의문에서 직시된 그러한 정부로 간주될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국제연합임시조선위원단의 제3차 보고를 접수 심의할 총회의 심의가 있기 전이라도 미국은 점령국의 책임 이행으로 특사를 서울에 파견하여 그로 하여금 국제연합임시조선위원단과 협의하여 1947년 11월 14일 총회결의문 제2호 5절에 있는 성문을 실행하도록 한국정부와 교섭을 추진하도록 명한 것입니다.
이 특사로서 미대통령은 로드·아일랜드주의 무쵸각하를 임명하고 대사급의 대우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 한국인이나 미국인이나 국제연합임시조선위원들이 다같이 최근 몇 달 동안 요원하고 混渾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오늘날 이 축하가 있기 까지의 성공에는 우리가 다 자랑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민주적 경제를 통하여 귀국 국민의 3분지 2가 자주정부를 수립하였는데 이 자리의 우리들과 전세계의 자유국가는 미구에 이 정부가 전한국국민을 포옹하도록 되기를 바랍니다. 이 축하식에서 우리가 반드시 명심하여야 할 것은 우리가 피차 희망하는 열국의 일원으로서 완전 통일 독립국가 한국을 건설하기에는 아직도 다른 어려운 단계를 밟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전진 전진의 결의를 굳게 할 뿐이오 주저도 퇴보도 없습니다. 본관이 거듭 강조하는 것은 남어지 일을 계속하여 성공시키려는 우리들 즉 한국인 그리고 미국인이 단결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한국인은 정부를 안정시켜야 하고 그들의 가진 바 온갖 수단과 힘을 다하여 민족단결과 국토통일을 완성하고 유지하여야 하겠습니다.
한국인과 미국인은 오는 과도기에 倍前 협력하여 한국의 통일국방 안정에 가장 효과적으로 정무를 질서있게 민첩히 이양하도록 보장하여야 하겠습니다. 본관으로서 약속할 수 있는 것은 한국 내외정세가 완전히 조정되어 그 정부가 안정되도록 미국인은 모든 일에 원조할 것입니다.
한국인과 미국인이 한결같이 바라는 바는 국제연합임시조선위원단이 작년 12월 UN총회의 결의가 금년 2월 소총회에서 다시 결의한 그 사명을 완수하며 UN총회로서 지난 1월이래 우리가 밟아온 중요한 보조를 전적으로 승인하였으면 합니다. 오직 우리가 전원의 총력과 단결과 상호의 동정과 양해로만 외래의 지배를 방어하고 한국의 주권을 보존할 수 있으며 우리가 이 성과를 얻는다면 세계평화에 공헌하는 바가 클 것입니다.
이 식은 미국지배지역내의 정무를 한국정부에 이양하는 시초입니다. 정무와 민주의 큰 지장을 피하기 위하여 이양사무는 피차 질서있게 점진적으로 할 것입니다. UN위원의 감시와 협의하에 내일부터 미국대표 남조선과도정부대표간에 회담이 개시될 터이며 행정권 이양은 모든 정부운영과 경제행동에 지장이 없는 한 가급적 속히 완수될 것입니다. 미국정부 대표로 대사의 대우를 받는 이가 임명되어 교섭을 조절할 터인데 현재 부임도중이며 수일내 이곳에 도착할 것입니다. 재조선미국군정부는 오늘밤 자정으로 폐지되고 한국주둔미군사령관 민사처가 생깁니다. 이 민사처는 대한정부에 정권이양을 맞추며 과도기내 군정잔무를 해갈 것입니다. 한국주둔미군사령관으로 본관은 다시 언약합니다. 미국인은 자기네가 할 능력이 있는 한 무슨 일에든지 여러분이 방금 수립한 그 신정부를 도울 용의를 가지고 대기하고 있습니다. 사령관의 자격으로 한국인의 친구의 한사람으로 본관은 대한민국정부의 안정과 장수와 전국민의 절대지지와 국사에 혁혁한 성공이 있기를 충심으로 축원합니다.”
(서울,조선,경향,동아, 1948. 8. 16)
자유종 시당식 거행
15일 오후 2시 민주주의자유옹호위원회에서는 덕수궁에서 자유종 시당식을 거행하였는데 먼저 국민의례가 있은 후 명예회장 徐載弼의 개회사가 있고 위원장 金炳魯 외 각계 각 원로 귀빈들의 시당과 축사가 있은 후 方應謨 선도의 만세 삼창으로 식을 끝마치고 오후 4시부터는 다시 시민들의 시당식이 속행되었다.

서울신문, 경향신문 1948년 08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