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대구 6연대 반란사건, 대구 제6연대, 반란을 일으켜 시내 교전 뒤 후퇴  
연월일1948년 11월 02일  
출전서울신문 1948년 11월 05일  
대구 6연대 반란사건, 대구 제6연대, 반란을 일으켜 시내 교전 뒤 후퇴
[대구 3일발 합동] 지난 2일 하오 1시 10분 경 대구 제6연대 일부 병사가 돌연 반란을 일으켜 그 일부는 시내에 몰입하여 주요기관 습격행동을 개시하였으므로 군경 당국에서는 즉시 긴급비상출동을 하여 요소 요소에서 이를 방지하고 그 주력을 분쇄하여 반란군의 소기 목적을 좌절시켰는데, 반란병은 시내에 적은 세력을 산재시켜 게릴라전을 시작하였으나 군경당국의 삼엄한 경계로 이를 완전히 교외로 격퇴하였다. 그런데 사건 발단은 지난 2일 정오 경 대구 군기대 조장필소위가 사상범으로 주목되는 전기 제6연대 인사계 근무 박종진 총특무상사를 체포하려다가 박상사는 동 소위를 총살하고 즉시 통신망을 절단한 다음 동료를 규합하여 3대로 나누어 반란행동을 일으킨 것이라 하는데, 동 반란군의 총병력은 약 4, 5백 명으로 추산된다고 하며 그 중 일대는 대구 앞산을 거쳐 달성공원 앞을 통과하여 시내 북성로에 이르러 경찰부대와 교전하게 되자 동 지검과 동 대 뒤 길에서 게릴라전이 벌어 졌으나 반란군 2명이 사망됨에 따라 퇴각하여 하오 5시 경 통근열차에 편수하여 枝川역 방면으로 도망하여 금오산으로 도피하였다 하는데, 군대 외에 병력은 약 20명이라고 한다. 또 일대는 트럭 2대에 분승하여 총기탄환을 적재하고 대□중학 옆 미국부대 앞을 통과하다가 미군 일조의 제지를 받고 발포하여 미군과 교전 상태에 들어갔으나, 교전 수 분 후에 전원 70명은 전부 미군에게 포로되고 무기 탄환도 압수되었다 한다. 이 교전에서 미군 1명이 사망하였는데 이 반란부대는 남대구경찰서를 습격하려 하였던 것이라 한다. 나머지 일대는 수성 방면으로 가서 산재하고 있다 하는데 동 부대는 마침 화재로 출동 중이던 대구소방서의 자동차 3대를 탈취하였다 한다. 이리하여 대구 시민은 뜻하지 않은 총성과 삼엄한 경비상태로 침묵과 공포의 밤을 맞이하였었는데, 이날 하오 6시 반경에 이르러 반란군의 약 350명은 포로가 되고 나머지 약 100가량의 반란군은 교외로 격퇴되었다 한다. 그런데 2일 하오 9시까지 판명된 피해 상황은 다음과 같으며 한편 동 사건으로 2일 하오 2시 40분 경 대구경찰학교와 수성지서도 반란군의 습격을 당하였다 하는데 피해상황은 방금 조사중이라 한다.
△국군측 조장필소위 외 장교 3명 전사 △경찰측 4명 순직, 중경상 5명 △민간측 유탄으로 남녀학생 10여 명이 중경상을 입고 도립병원에 수용.

서울신문 1948년 11월 0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