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대구 6연대 반란사건에 대한 국방부 발표 제9호  
연월일1948년 11월 03일  
출전서울신문 1948년 11월 05일  
대구 6연대 반란사건에 대한 국방부 발표 제9호
전남지구 반란사건이 아직 완전 진압을 보지 못한 이 때 지난 2일 하오 1시 20분 경 대구 제6연대 병영에서 일부 병사와 군기대 간에 교전이 벌어진 불상사가 또다시 발생하였는데 국방부에서는 동 사건의 진상을 발표 제9호로써 3일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 국방부 발표 제9호
금반 사건의 발생원인은 대구 제6연대 내 남로당계열인 40명의 사병을 구금 조사한 결과 연대의 세포조직 주의자인 연대인사계 선임하사관 곽상사를 파면키로 되어 군기대의 장교가 곽을 체포코자 연대본부에 갔던 바, 곽은 장교에 대항하여 권총을 발사한 결과 동 장교는 절명하였다. 곽은 후사를 두려워하여 “여수 제14연대 반란군이 6연대에 내습 중이니 이에 대응하여야 하겠다”는 모략을 꾸며 비상소집을 하고 병졸에게 무기를 지급하였다. 이를 탐지한 군기대장 부연대장 및 美人고문관은 사태를 수집하기 위하여 군기병 30명을 인솔하고 연대부근에 도착하였던 바, 기관총 소사를 받았으므로 군기대장과 부연단장은 포복하여 부근 미군부대의 응원을 청하여 동 부대 유성기를 이용하여 부연대장이 훈시를 한 결과 무장병 150명을 무장해제시키고 사태는 진압되었다. 이로 말미암은 민간의 피해는 전연 없었으며 군대 내의 일이었으므로 외부에서는 전연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정보선임하사관 이정택상사 외 10명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칠곡·동명·가산 경찰지서를 폭도 200여 명과 협조해서 습격한 후 왜관을 거쳐 김천으로 향하려 하였던 것이다. 이 급보에 접한 제6연대 김천 파견중대가 출동하여 반군을 즉시 격멸하고 사태는 완전 진압된 것이다.

서울신문 1948년 11월 0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