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제5관구 경찰청, 대구반란사건 전투상황 추가 발표  
연월일1948년 11월 04일  
출전대구시보 1948년 11월 05일  
제5관구 경찰청, 대구반란사건 전투상황 추가 발표
2일 하오 돌연 발생한 제6연대 일부 병사의 반란병력은 최초 3대로 나누어 행동을 개시하여 대구 시내 중요처 공격에 주력을 기울였으나, 도처에서 國警의 狹擊을 받아 그 작전이 여의케 되지 않자, 그 세력은 지천지구에 집결하여 북방으로 이동하였다. 이 병력도 金烏山부근에서 또 다시 국경의 협격을 받아 3일 정오 드디어 투항하고 말았다. 그리고 淸道, 河陽지구에 일어난 국군병사의 행동은 반란이 아니고 대구사건의 전달로써 일시 동요한 것이므로 이 지구의 행동도 즉시 진압되었다. 이로서 사건 발생 28시간만에 반란병력은 완전히 소멸되어 치안에 완벽을 기하고 있다. 그러나 잠복한 반란병의 게릴라전만은 아직도 절멸되지 않아 삼엄한 비상경계는 여수사건의 충격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10·1사건의 기억조차 지금도 생생한 시민들에게 약간의 불안을 느끼게 하는 채 엄중이 단속되고 시내 각처에서는 소총성이 은은하게 들리고 있다.
4일 아침 제5관구 경찰청에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대구 국군 일부 병사 반란사건의 그후 상황은 3일 오후 1시 이후부터 4일 오전 8시 현재로 다음과 같다고 한다.
1. 포로 : 대구에서 행동을 개시하여 칠곡 방면으로 도피중인 70여 명의 반란병사는 2일 오후 5시 경 김천에서 71명이 포로되었던 바, 그 후 6명이 도피하고 현재 65명이 김천형무소에 수용되어 있다한다.
2. 무기실탄 압수 : M1 총 10정, 기관총 2정, 실탄 수천 발(김천에서)
3. 기타 : 포로 대구시내 及 道내에 분산된 반란병사 23명 실탄 압수 274발, 카빈총 1정, 기타 실탄 다수 압수
4. 반군 사체 발견 : 11명(대구 시내에서)

대구시보 1948년 11월 0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