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金奎植, 신년인사차 李承晩 대통령을 방문  
연월일1949년 01월 01일  
출전한성일보 1949년 01월 05일  
金奎植, 신년인사차 李承晩 대통령을 방문
새해를 맞이한 경무대의 대통령관저에서는 1월 1일 오후 4시 지나 金奎植박사의 방문을 받아, 세배손님도 거의 다 끝난 고요하고도 명랑한 대통령 書室에서는 한 시간 가까이 만담이 열리어 근자에 드문 탐탁스러운 광경을 나타내었다. 민족주의 진영의 연합은 3영수의 결합으로부터 비롯하여야 할 것인데 세칭 5거두의 대표자회합이 수차 거듭된 후 벌써 신년을 맞게 되자, 거북살스러운 정치적 회합보다도 자연스러운 신년의 우호적 회합부터 개시되기를 희망하였던 것이다. 김구·김규식 양 지도자에게 이 말이 들어가 김규식박사는 “신년 회합은 예상사”이라고 가벼이 수긍하고 경무대를 찾아, 반기어 맞는 李承晩 대통령과 굳은 악수를 나누면서 즉시 서재에 들어갔었고, 김구선생은 이날 마침 정릉리 그 친산에 성묘간 끝에 재류하는 향리의 노옹들이 夕飯을 준비하고 만류함도 있어 불참하였다. 李대통령과 金박사가 회합한 석상에는 明濟世·安在鴻 양 씨가 참석하였는데 이 자리에는 아무런 정치적 담화도 없었고 오직 今昔漫談에 그쳤다고 한다. 그리고 김구翁 편에서는 “무의미하게 예의적 회합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시국 匡扶의 정치협의라도 함이 可치 않느냐”는 의사이었다고 한다. 남에서 민족주의진영의 불합작은 북한 또는 左方으로 더욱 그 정치적 진로를 誤算하게 만드는 因來로도 되는 것이고, 그의 연합통일만으로도 민중巨大한 신의를 가져오는 기틀이 매인 바이므로 금후의 추이가 가장 주목된다. 머지 않아 3영수 회합은 다시 실현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성일보 1949년 01월 0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