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金九, 李承晩·金奎植과의 3영수합작으로 민족단결이 시급하다고 발언  
연월일1949년 05월 20일  
출전동아일보 1949년 05월 22일  
金九, 李承晩·金奎植과의 3영수합작으로 민족단결이 시급하다고 발언
남한에서는 외군철퇴 후에 대비하는 동시에 남북통일의 준비태세로서 민족진영 대동단결이 고조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그 구체적 완성을 위하여 활동하는 한편 우선 3영수의 타협합작을 居中 알선중이라는 설이 있는 이 때 지난 19일 오후 덕수궁에서 李대통령과 김구선생이 함께 꽃구경을 하면서 환담하였다는 것은 그 환담의 내용이 비록 정치적 성격을 띤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시간성에 비추어 그 의의가 자못 중대하다고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북한에서는 남북한 공산분자들이 한국의 공산통일을 음모하기 위하여 소위 조국통일민주전선이라는 통일전선을 획책중에 있으며 韓獨黨으로서는 이에 대하여 ‘民戰의 再版’이라는 신랄한 一矢를 보낸 후인 만큼 양 영수의 환담은 3천만 민족의 주의를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사실에 의하여 기자가 20일 하오 京橋莊으로 김구선생을 방문하니 선생은 지극히 명랑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대통령과 덕수궁에서 만난 것은 우연한 해우이다. 우리들의 환담 내용이라는 것은 별로 정치적인 것은 아니었었다. 민족진영의 대동단결은 시기의 여하를 불문하고 있어야 할 것이며 더욱이 민주주의 남북통일을 위하여서는 緊切한 문제이다. 일반국민들이 3영수의 재합작을 懇望한다는 것은 현 시국에 비추어 있음직한 일이나 본래부터 대통령과 김박사와 나의 사이에는 별반 간격은 없었던 것이므로 이런 문제가 새삼스러이 일어난다는 것이 오히려 우스운 일이다.
우리들의 심정은 언제나 우리 한국을 민주주의 통일국가로 완성 발전시키기 위하여 있는 힘과 정성을 다하겠다는 것 뿐이다. 그런데 과거 우리들의 노력방법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시간과 공간은 차차로 이러한 차이를 해소하고 합일점으로 도달케 할 것을 의심하지 않는 바이다. 우리는 항상 민주주의원칙에 입각하여 민의의 대세에 순응하는 아량과 노력이 없어서는 안될 것으로 믿는다. 대통령과 金박사와는 앞으로도 종종 만날 기회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

동아일보 1949년 05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