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구두 정보 보고
№ C-15, 1946년 4월 7일
(가) 4월 5일 아놀드와 홍진 사이의 2차 회담이 개최되었다. 홍진은 정부 구성을 위해 아놀드가 제안한 각료 후보자들에 대해 민주주의민족전선의 모든 위원들로부터 동의를 얻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홍진은 계속해서 아놀드에게 민주의원 위원들의 동의를 얻어낼 것과 실패할 경우라도 그들이 테러행위에 의지하지 말도록 경고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아놀드는 민주의원이 이에 동의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성명하였다. 이 밖에도 그는 소련대표단이 이 각료 후보자 명단에 동의할 것이라는 확실한 징후가 있다고 말하였다.
홍진은 여운형을 비롯하여 좌익 대표 2명과도 이 명단을 검토하였는데, 이들 모두 아놀드가 제안한 후보자들에 전적으로 동의했다고 말하였다.
(나) 망명정부001001 1)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가리킨다.닫기는 인민들에게 혼란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이 과거에 신탁통치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정부 수립에 참여하는 것이 거부될 경우 신탁통치 반대운동은 현실화될 것이다. 그들은 혼란을 이용하여 좌익들에게 테러행위를 가하기로 결정하였다. 망명정부의 장관들인 엄항섭과 신익희가 이를 준비하고 있다. 엄항섭은 서울에서, 신익희는 지방에서 테러행위를 조직하고 있다. 신익희의 지도 하에 있는 “정치행동단”이 이러한 테러행위를 실행에 옮길 것이다.
(다) 여운형과의 회담에서 버치는 4월 5일 미소공동위원회에서 두 후보자, 즉 조만식과 김일성이 논의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미국대표단은 조만식을 “조선의 가장 훌륭한 애국자”로 규정하며 그를 추천하였다. 소련대표단은 조만식이 친일분자이며 반소분자라고 주장하며 미국 측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조만식을 거부한 소련대표단은 김일성을 천거하였다. 미국대표단은 김일성의 신원에 대한 일련의 질문을 쏟아 부으면서 현재의 김일성이 일본인들에 대항해 빨치산 부대를 이끈 진짜 김일성인지에 대해 공공연히 의심을 드러냈다.
(마) 미 군정청은 서울 시민들로부터 정당들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국민당을 지지하는 사람 2,900명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 2,900명
인민당을 지지하는 사람 2,800명
공산당을 지지하는 사람 2,820명
(마) 미소공동위원회 회의에서 소련대표단은 이승만과 김구를 절대 반대하고 미국대표단은 김일성과 박헌영을 절대 반대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김규식을 대통령으로, 김두봉을 부통령으로, 여운형을 국무총리로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략 의견 일치를 본 것으로 보인다.
(바) 수도경찰청장이 다음과 같은 내용의 명령을 하달했다는 보고가 있다. “입수된 정보에 따르면 최근 북조선의 좌익 정당들이 남조선의 좌익 정당들과 연계하여 비밀리에 남조선의 각 도와 군으로 무기를 반입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 무기는 농민동맹들과 노동조합들에 분배되고 있다. 농민동맹들과 노동조합들은 1946년 가을로 예정된 무장봉기의 개시시점을 기다리고 있다.
미소공동위원회의 사업 개시와 관련하여 일단의 테러분자들이 북조선에서 서울로 잠입했는데, 이들은 목적은 우익 지도자들을 암살하는 것이다.
각급 경찰서장들은 이 모든 것을 엄격히 비밀로 하고 안녕질서를 유지하며 위에서 언급한 인물들을 색출해내고 인민들의 동태를 주의 깊게 감시해야 한다.”
(사) 어떤 미군 장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쉬띄꼬브의 연설이 대단히 어설프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미소공동위원회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에 따라 조선에 대한 문제들 해결해야 한다.”
(아) 어떤 공장의 노동자들은 대화에서 지금 조선에서 외국 군대들을 철수시킨다면 정당들 사이에 유혈사태가 발행할 것이기 때문에 외국 군대들의 철수시기를 다소간 지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자) 최근 여운형의 건강 상태가 아주 양호하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차) 4월 5일 서울에서 민주의원과 비상국민회의의 통합 문제를 다루기 위한 협의회가 개최되었다. 홍진을 수반으로 하는 그룹은 민주의원의 해산을 주장하고, 이승만 그룹은 민주의원의 존속을 주장하고 있다. 20일 이내에 비상국민회의를 소집하여 이 문제를 검토하기로 결정하였다.
(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대한독립촉성부인단과 한국애국부인회는 독립촉성애국부인회로 불리는 하나의 단체로 통합되었다. 통합을 위한 협의회는 4월 5일에 개최되었다. 이 협의회에 130명이 참석하였다. 독립촉성애국부인회 회장에는 박승호가, 부회장에는 황기선과 박순천이 선출되었다. 이 밖에도 총무부, 정보부, 재정부, 외무부, 선전부, 조직부, 보건부, 산업부, 예술부, 출판부의 각 부장이 선출되었다.
다음과 같은 강령이 채택되었다.
1) 국가의 자주독립을 촉성함.
2) 여성의 지위향상을 도모함.
3) 세계평화에 공헌을 기함.
협의회에서 앞서 언급한 것 이외에 다음과 같은 문제들도 검토되었다.
1) 식량 문제
2) 38선 문제
3) 전조선 부인 대회 소집 문제
4) 협동조합 조직 문제
【출전】러시아국방성 중앙문서보관소 문서군 172, 목록 614631, 문서철 12, 71~75쪽.

註 001
1)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