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인민당 중앙위원회 회의,
1946년 8월 27일
8월 27일 인민당 중앙위원회 확대집행위원회가 개최되었다. 회의는 자신의 인민당 당수직 사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구실로 최014014 14) 인민당 당수 여운형으로 보인다.닫기의 발의에 따라 소집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 회의에서 인민당의 우익 그룹은 사직 성명서를 제출한 당수의 사직 문제를 구실로 하여 인민당 중앙위원회 전체의 사퇴를 이끌어내려고 획책하였다. 우익 그룹은 현재의 중앙위원회가 모두 사퇴한 이후 당수에게 새로운 중앙위원회를 구성한 권한을 위임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계획은 현재의 중앙위원회에서 좌익분자들을 축출하고 중앙위원회를 우익 일색으로 구성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일이 달성된 이후 우익 그룹은 좌익 정당의 합당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혹은 신당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차지하게 된다면 합당에 합의할 심산이었던 것이다.
회의에서 토론에 나선 최는 합당과 관련된 일체의 비밀을 일반에게 널리 공개해버렸다. 그는 만일 좌익 정당들의 합당이 인민당의 노선에 합당하게 추진되지 않는다면 자신은 그러한 합당에 동의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지금까지 인민당의 노선은 미 군정청과 협력하고 우익과 연합하는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
100여 명이 참석한 회의에서는 최의 연설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우익 그룹은 최의 사퇴를 지지했지만 좌익은 그러한 사퇴에 반대하였다. 8월 27일 회의는 아무런 결정도 채택하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회의는 8월 28일 계속되었다.
회의에서는 좌익이 우위를 점했지만 최가 우익 편에 서있는 관계로 중도분자들이 우익에 가담하였고 이 결과 투표 결과가 좌익에 유리하게 나올 것이라고 전적으로 확신할 수 없었다. 회의는 최가 만일 자신의 희망이 충족된다면 당수직을 계속 맡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당을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또한 인민당에서 우익 그룹의 승리는 인민당을 미 군정청 및 우익과의 협력의 길로 인도할 것이며 좌익 정당의 합당을 무산시킬 것도 분명해 졌다.
8월 27일 저녁 버치는 김원봉과 만나 그에게 좌우합작 사업에 참여할 것을 제안하였다. 김원봉은 버치의 제안을 거부하며 좌익에 대해 탄압이 가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좌우 양진영의 어떠한 합작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민주인사들이 집단적으로 체포되고 수배를 당하고 있으며 자신의 집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이 실시되었다고 말하였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는 좌우 양진영의 합작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1946년 8월 27일
【출전】러시아국방성중앙문서보관소 문서군 172, 목록 614631, 문서철 8, 23~24쪽.

註 014
14) 인민당 당수 여운형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