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10월 7일
이그나찌예프가 보고하다. 1946년 10월 6일 박헌영이 남조선을 탈출하여 북조선에 도착했다. 박헌영은 9월 29일부터 산악을 헤매며 방황했는데, 그를 관에 넣어 옮겼다.
박헌영이 휴식을 취하게 하라고 지시를 내리다.
합당 사업은 도 수준까지 진척되었고, 지하에 정치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선거에 대해 보고하다. 지식인들의 동향에 대해 보고하다. 지주들의 동향 - 지주들은 토지를 다시 몰수할 것이라는 선전을 해대고 있다. 각급 인민위원회 위원 입후보가 시작되었다.
발라사노프가 보고하다. 번스는 서로 상의하여 타협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번스와 조만식의 대담에 대해. 번스와 김일성의 대담에 대해 보고하다.048048 48) 번스와 김일성의 회담 기록은 러시아연방대외정책문서보관소 문서군 0102, 목록 6, 문서함 2, 문서철 3, 3-10쪽(번스와 김일성의 대담)에 수록되어 있다. 번스와 김일성의 회담에는 발라사노프와 그의 부관 샵쉰도 동석했다. 번스는 남조선에서 우익은 좌익을 반대해 투쟁하고 좌익도 좌우합작을 원치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번스는 이승만과 김구가 “좋지 못한 사람들”이며 박헌영도 정당들의 통일을 방해한다고 비난한 반면 김규식은 인민에게 영향력 있는 “훌륭한 사람”으로 친일파와 투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번스는 김규식과 여운형이 추진하는 좌우합작에 기대를 표명했다. 그는 박헌영과 여운형의 합작은 미군정에 대한 반대를 의미하기 때문에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번스는 모스크바 결정에 반대한 일부 세력을 용납할 필요가 있음을 언급했다. 번스는 미소공위 재개조건으로 반탁세력을 용인하되 이승만 김구 박헌영으로 대표되는 좌우 양극단이 아니라 김규식과 여운형으로 대표되는 중도 좌우파에 기초해 임시정부를 수립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닫기
 

註 048
48) 번스와 김일성의 회담 기록은 러시아연방대외정책문서보관소 문서군 0102, 목록 6, 문서함 2, 문서철 3, 3-10쪽(번스와 김일성의 대담)에 수록되어 있다. 번스와 김일성의 회담에는 발라사노프와 그의 부관 샵쉰도 동석했다. 번스는 남조선에서 우익은 좌익을 반대해 투쟁하고 좌익도 좌우합작을 원치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번스는 이승만과 김구가 “좋지 못한 사람들”이며 박헌영도 정당들의 통일을 방해한다고 비난한 반면 김규식은 인민에게 영향력 있는 “훌륭한 사람”으로 친일파와 투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번스는 김규식과 여운형이 추진하는 좌우합작에 기대를 표명했다. 그는 박헌영과 여운형의 합작은 미군정에 대한 반대를 의미하기 때문에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번스는 모스크바 결정에 반대한 일부 세력을 용납할 필요가 있음을 언급했다. 번스는 미소공위 재개조건으로 반탁세력을 용인하되 이승만 김구 박헌영으로 대표되는 좌우 양극단이 아니라 김규식과 여운형으로 대표되는 중도 좌우파에 기초해 임시정부를 수립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