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해주군관구 군사평의회 위원 쉬띄꼬프 상장에게
1946년 9월 25일 서울을 떠난 여운형이 북조선인민위원회 위원장 김일성의 사무실로 직접 도착했음을 보고합니다. 남조선 신민당 중앙위원 고찬보, 인민당 중앙위원 이영선이 그와 동행하고 있고, 신원 미상의 남조선 정치가 한 사람도 동행하고 있습니다.
여운형은 조성된 정세와 관련하여 남조선 좌익이 어떠한 정치노선을 취해야 하는지 조언을 얻기 위해 북에 온 것이라고 김일성에게 말했습니다.
김일성은 대담 날짜를 9월 26일로 정했습니다.
9월 25일의 예비 회담에서 여운형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박헌영은 내가 그와 항상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신뢰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항상 북조선을 주시하고 있지만 북조선은 나를 신임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좌익 진영으로부터 이탈하고 싶지 않지만, 북조선과 박헌영이 나를 불신하는 것이 느껴진다. 반면에 미국인들은 나를 신임한다. 나는 여기서 사흘 동안 머물 예정이다. 나는 김일성, 김두봉을 비롯한 북조선의 여러 지도자들과 만나고 싶다. 쉬띄꼬프 상장이나 혹은 소련군사령부 대표도 만나고 싶다. 나의 오랜 친구인 샵쉰과도 만나고 싶다. 나에게 생긴 모둔 문제에 대해 분명한 답을 얻지 못한다면 나는 남으로 가지 않겠다.”
9월 26일 귀하의 허락에 따라 여운형은 김일성, 김두봉, 주영하, 최창익, 허가이 등 북로선로동당 정치위원들과 만났습니다. 남조선에서 그와 함께 온 사람들도 이 회담에 참석했습니다. 여운형은 2시간에 걸쳐 남조선의 정치정세에 대해 보고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1. 남조선에서 미국의 정책
2. 좌우합작
3. 로동당 합당
4. 미국인들에 의한 입법의원의 창설
일본이 항복한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좌우 각 정당의 활동을 분석하면서 여운형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조선 임시정부 수립에 대한 미소공동위원회가 활동 중일 때 미국인들은 좌익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공산주의자들을 고립시키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된 이후 미국인들은 좌익 정당들에 탄압을 가하기 시작했다. 우선적인 탄압대상은 공산주의자들이었다. 이것은 미국 정부의 명령에 따라 시작된 것이며, 미군정의 정책에 항의하는 모든 조직들을 붕괴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미군정은 정치가가 아닌 야전사령관 하지 중장의 정책을 남조선에서 실시하고 있다. 맥아더와 미국 정부는 하지의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그들은 아놀드 소장을 조선 정책에서 지나치게 유약한 인물로 간주하고 그를 조선에서 소환했다.
미국인들은 좌익정당들의 합당을 남조선에서 미군정의 정책에 반대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때문에 합당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3당합당 문제
“우리는 박헌영이 북조선 체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북조선에서 우리의 활동 방향에 대한 훌륭한 지시를 내려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그는 18일 동안 나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채 합당 준비를 시작했다.
나와 만난 후 박헌영은 공산당 내부에서 합당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야 했고, 인민당을 준비시키는 것은 나의 책임이었다. 내가 아파서 이틀 동안 시골에 가 있을 때, 박헌영은 나의 명의로 인민당에 지령을 내렸고 내가 서울에 도착한 후 나에게 이 지령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나는 이 지령에 서명하는 것을 거부했다. 당수인 나에게 내용도 알리지 않은 채 지령을 하달했기 때문이다.
나는 박헌영에게 심한 모욕을 느꼈다. 백남운은 나에게 야유조로 공산주의자들이 나를 정치적으로 강간했다고 말했다. 나는 박헌영에게 화가 나서 옆으로 물러섰다. 나 없이는 합당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싶었다. 박헌영은 로동당의 세 지도자로 나, 박헌영 그리고 이주하를 추천했다. 나는 로동당이 이 세 지도자들 밑에 있는 한 내가 공산주의자들 손안에서 농락거리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인민당 당수직에서 사퇴했다. 박헌영이 저지른 오류 때문에 나는 합당을 지연시켰다. 얼마간 숙고한 끝에 나는 인민당 당수직에 복귀했으며 합당사업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사업해야 할지 여러분에게 조언을 받고자 여기에 왔다.
내 의견으로는 합당이 이루어진다면 미국인들의 압박 때문에 로동당은 지하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하로 들어갈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합당은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김일성은 “만일 그러한 사정이 조성되었다면 보다 유리한 시기까지 일시적으로 합당을 중지해야 한다.”고 여운형에게 답변했습니다.
이와 함께 북조선의 정치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며 북조선에서 공산당과 신민당의 합당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설명했습니다. 합당 결과 로동당이 북조선에서 가장 강력하고 권위 있는 정당이 되었으며 자기 대열에 30만의 당원을 포괄하게 되었고, 북조선의 근로대중은 로동당의 창립을 열렬히 환영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우리는 남조선에서 귀하와 박헌영, 백남운 및 기타 저명한 정치인들의 지도하에 좌익 정당들의 합당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미국인들에게 유리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만일 이 사업이 우리에게 힘겨운 것이라면 일시적으로 중지해야 한다.”
김일성의 이 발언은 여운형의 아픈 곳을 건드렸습니다. 여운형은 의자에서 일어나 방 안을 돌며 한참 만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합당이 우리에게 힘겨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공산당, 인민당, 신민당을 로동당으로 합당할 것이다. 남조선으로 돌아가면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것을 완수해 낼 것이다. 나는 로동당의 지도자가 될 것이고 우리 당은 남조선에서 가장 강력한 당이 될 것이다. 나는 미국인들이 나를 체포할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를 체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 9월 총파업의 지도자를 체포하려 한 결과를 보고 있다.”
김일성은 “남조선 민주주의민족전선이 미군정에 박헌영의 체포령을 조속히 취소할 것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운형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고 또 우리는 인민대중의 지지 아래 그렇게 하고 있다. 나는 끝까지 남조선 로동당 창립을 위해 투쟁할 것이며 로동당은 무조건적으로 창립될 것이다.”
9월 26일에도 회담은 계속되었습니다. 회담에는 김두봉, 김일성, 그리고 여운형이 참석했습니다.
여운형은 좌우합작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박헌영의 제안에 따라 우리는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정당한 결정을 인정하는 기초 위에서 좌우합작 사업을 수행하고, 정부 수립을 위한 미소공동위원회 사업이 신속히 재개되도록 요구하되, 이승만과 김구 등 반동분자들이 정부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박헌영이 북조선에서 돌아온 이후 그의 제안에 따라 좌우합작 사업이 정체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 때문에 우리의 권위는 현저히 실추되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합작을 주창해 놓고 이 합작을 결렬시켰기 때문이다. 나는 좌우합작의 결렬 책임자로 지목되어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입법의원에 대해
“미군정은 입법의원을 조직할 것이다. 우리 좌익은 반드시 입법위원에 들어가야 한다.” 이 점에 대해 여운형은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습니다. “만일 좌익이 입법의원에 들어가지 않으면 우익이 고지를 점령하게 될 것이고 좌익은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입법의원에 들어가서 거기서 우익과 싸우고 누가 누구를 입법의원에서 축출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입법의원을 거부한다면 입법의원은 반동적 법령들을 발포할 것이고 우리 좌익은 아무 것도 못하게 될 것이다.
물론 우리가 입법의원에 들어가는 것에도 위험이 있다. 첫째는 우리가 미군정의 반동적인 정책을 정당화해 주고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할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는 좌익 가운데서 기회주의자들, 미국의 반동적인 정책에 대한 협력자들이 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김일성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미국인들이 남조선에서 입법기관을 창설하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목적 때문이다.
1. 민주주의조선 임시정부의 수립에서 조선 인민의 관심을 돌린다.
2. 조선을 영구적으로 두 개로 분할한다.
3. 이러한 비민주적인 기구를 통해 미국인들의 의사를 강요한다.
입법의원 구성원 가운데 50 퍼센트를 하지가 임명하게 되면 조선인 자신의 손으로 민주정당들을 압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좌익은 조선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미소공동위원회 사업의 신속한 재개를 요구해야 한다.”
이에 대해 여운형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
“당신이 입법의원에 좌익이 참여하는 것을 반대한다면 나는 입법의원에 들어가지 않겠다. 서울로 돌아가서 로동당 창립을 위해 애쓰겠다. 만일 미국인들이 로동당의 합법적인 창당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낡은 간판 아래서 로동당을 만들 것이다. 그런데 본질상 당은 하나이며 나는 그것을 근로인민당이라고 부를 것을 제안한다. 남과 북의 통일이 이루어질 때 전당대회에서 당의 이름을 정하면 될 것이다. 내 생각에 당의 향후 전술은 한편으로는 미국인들에게 미소 지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을 치는 것이어야 한다.”
여운형은 세계정치에서 소련이 차지하고 있는 지위의 견고함에 의문을 표시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소련이 국제생활에서 고립되고 국제연합에서 탈퇴하는 경우가 생기면, 소련 없이 국제정치 문제들이 결정되어, 장래 조선정부에 관한 협상에서 소련이 소수파로 남게 되고, 미국·영국·중국이 소련의 참가 없이 정부를 수립하는 사태가 우리에게 일어날 수도 있다. 그렇게 될 경우 김구 또는 이승만의 정부가 수립될 것이다.
이 점에 대해 김일성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달라졌고 소련 역시 달라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파시즘과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으며, 서유럽의 모든 나라와 아시아 국가들을 파시스트의 노예상태로부터 해방시킨 국가로서 배타적인 권위를 획득했다. 이제 소련 없이는 어떠한 국제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소련 없이는 조선 문제 역시 해결될 수 없다. 당신의 의혹은 무익한 것이다. 좌익의 입장을 확고하게 고수해야 한다.”
여운형이 여기에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나도 당신의 결론에 동의한다. 조선은 소련의 원조하에서만 독립을 얻을 수 있다.”
대담 후 김일성은 여운형에게 내일 소련군사령부 대표와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귀하의 명령에 따라, 또 귀하가 본인에게 내린 지시에 정확히 의거하여, 1946년 9월 27일 여운형과의 회담이 진행되었습니다. 회담은 3시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회담 후 여운형은 회담이 매우 만족스러웠다고 언급했습니다.
회담 후에 여운형은 연회에 초대되었습니다. 연회는 따뜻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첨부 문서 11쪽.
 
북조선 주둔 소련군 민정담당 부사령관
소장 로마넨꼬
1946년 9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