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劉馭萬 총영사의 代電
[발 신] 劉馭萬
[수 신] 外交部
[연월일] 1948년 4월 20일
[번 호] 제119호
[내 용]
特急:남경 왕부장님 보십시오. 2김(김구·김규식)이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반대한 이후 저는 곧 이승만과 김구의 합작을 성사시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김구의 세력이 雄厚하여 경시할 수 없음을 거듭 말했더니 이승만도 김구의 의견을 상당히 중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김구는 한민당 당수 장덕수 암살사건에 연루된 혐의가 적지 않습니다. 김구 본인은 비록 어떠한 처분도 받지 않았지만 암살범을 비롯하여 8인이 미군사법정에 의해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이는 김구로서도 어쩔 수 없었고 이후 김 씨와 미군정당국의 관계는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162·163호 전보를 받은 뒤 최후의 노력으로 王·司徒 두 부대표를 보내 알선하였지만 아무런 성과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상황이 여의치 못해 더 이상 활동을 펼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蔣 주석께서 한국 각 당파의 통일을 위해 각 당파 영수에게 단결을 호소하는 전문을 보내시는 것은 주석님의 위신을 손상시키는 것이리라 생각됩니다. 주석님과 부장님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지난달 받은 147호 전보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전보를 받은 즉시 김구에게 주석님과 부장님의 뜻을 전하였으나 김 씨는 고집이 세 충고를 듣지 않으니 참으로 애석할 노릇입니다.
남북영수회의는 오늘까지의 상황으로 보아 성사될 것 같습니다. 김구·조소앙·엄항섭·여운홍·홍명희 등이 어제 저녁 북상하였는데, 듣자하니 오늘 새벽 이미 평양에 도착하였다 합니다. 김규식 일행 수십 명은 내일 새벽 6시 평양을 향해 출발할 것이라 합니다. 김구는 출발 전 사저에서 기자들에게 남북회의가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 殉國할 것이라 성명하였습니다. 김 씨의 고집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2김과 가까운 사람의 말에 의하면, 이번 북상한 1-2백 명 가운데 대부분이 남으로 내려오지 않을 것이라 합니다. 나머지는 2주일 정도 뒤 漢城으로 되돌아 올 것입니다.
김규식은 회의 성공에 회의적인데 남으로 돌아온 뒤에는 정계에서 은퇴할 것이라 합니다. 김구의 행동은 예측불허인데 전체적인 상황으로 보아 소련은 남한의 선거를 방해하려는 음모를 갖고 있는 듯합니다. 2김이 북상을 결정하기 전 연락원을 통해 회의 선결조건 5가지를 제안하였고, 북한은 이를 완전히 수용하기로 하여 2김의 북상이 성사되었습니다. 2김이 제안한 5가지를 아래에 보고 드립니다.
한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국제원조의 조건 하에 2김은 아래 5가지를 주장하였습니다.
첫째, 진정한 민주정부를 건립하며 어떠한 독재체제도 거부한다.
둘째, 사유재산제를 승인하며 독점적 자본주의를 거부한다.
셋째, 전국적인 보선을 실시하며 통일된 중앙정부를 건립한다.
넷째, 어떤 우방도 한국 영토 내에 군사근거지를 설치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 미소 양국은 즉각 담판을 개시하여 점령군의 철퇴 시간과 조건을 토의해야 한다(이는 철병의 선결문제와 선후방법을 칭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철병방법을 전 세계에 공포해야 한다. 【劉馭萬】
註) ① 亞東司 162호 전보는 신속히 김구와 이승만의 합작을 위해 노력하고 일체의 상황을 보고하라는 내용입니다.
② 亞東司 163호 전문은 한국 각 당파의 합작을 위해 노력하고 북한 방송의 내용을 보고하라는 지시를 담고 있음.
③ 亞東司 147호 대전은 남한의 선거문제에 관해 김구와 이승만의 합작을 위해 노력하고 수시로 진행 상황을 보고하라는 지시를 담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