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명 흑치준 묘지명 (黑齒俊 墓誌銘)
소재지/출토지 中國 河南省 洛陽
연대 唐 神龍 二年(七○六)
크기 53×52cm
서체 및 재질 楷書
주제분류 백제|문화> 문화재> 금석문> 墓誌·墨書
역주자 宋基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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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釋文
大唐의 故人 右金吾衛 守翊府中郞將 上柱國 黑齒府君 墓誌銘 및 序文.
公의 이름은 俊이니, 즉 唐나라 左領軍衛大將軍 燕國公의 아들이다. 바닷가의 땅을 나누어 나라를 이루매 木華가 지은 「海賦」에서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늪지가 많은 나라에서 우두머리를 칭하매 左思가 지은 「三都賦」에서 그 소중함을 얻을 수 있도다. 먼 오랑캐의 땅에서 부락을 크게 일으켰고, 중국에 들어와서 누차 벼슬을 하였구나. 공을 세우고 일을 이루니 해와 달을 그린 깃발에 그의 명성이 걸렸고, 효성스럽고 충성스러우니 연대순으로 적은 역사책에 그의 덕이 기록되었도다.
증조부는 이름이 加亥로서 본국에서 刺史를 역임하였고, 할아버지는 沙子로서 본국에서 戶部尙書를 역임하였다. 이들은 모두 荊山에서 玉이 빼어난 것 같았고, 蔚浦에서 진주가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해뜨는 동방에서 비단옷에 빛을 발하니 풍속의 교화가 크게 이루어졌고, 머나먼 하늘 끝에서 仙署를 어루만지니 □臺가 때맞추어 질서가 잡혔다. 아버지는 常之로서, 당나라의 左武衛大將軍 上柱國 燕國公이 되었고, 左領軍衛大將軍에 추증되었다. 그의 재주는 뛰어난 재주꾼들 중에서도 으뜸이었고, 그의 행동은 훌륭한 씨족들 중에서도 빛이 났다. 공훈은 천지를 덮었으니 灌夫와 같이 장군을 맡았었고, 포상은 山河에 무성하였으니 召公과 같이 燕國에 봉해졌었다. 죽어서도 능히 그러하였으니 그를 기려 추증함에 영예가 가득하였다.
公은 장군의 가문에서 가르침을 받아 일찍부터 武略을 품었다. 陶謙처럼 어려서 놀 때에는 깃발을 펼치면서 놀았고, 李廣처럼 평상시에 거처할 때에도 반드시 軍陣을 그리면서 즐겼다. 이런 까닭으로 먼 異域에서 공을 세우려는 원대한 계획을 품었으며, 군대의 進退, 攻守를 자유자재로 하는 기묘한 기술이 뛰어났다. 스무살의 나이에 別奏(관직 또는 특별히 주청하여?)로서 梁王을 따라 西道로 종군하였다. 이에 軍功을 세워 游擊將軍에 제수되었고, 右豹韜衛翊府左郞將에 임명되었으며, 곧이어 右金吾衛翊府中郞將 上柱國으로 옮겼다. 높이 구름에 잇닿아 있는 누각을 밟았고, 고개숙여 가을의 수렵 놀이를 따랐으며, 晉나라 때의 아름다운 담비 꼬리를 꽂았고, 漢나라 때의 수레와 의복을 엄숙히 갖추었다. 바야흐로 7대에 걸쳐 경사스러움을 전하여 西漢의 金日磾와 같은 영광을 향유하고자 하였으나, 어찌 病魔를 (피할 수 있겠는가?) 얼마 뒤 북망산에 오르는 대열을 따르게 되었으니, 神龍 2년(706) 5월 23일에 병환으로 洛陽縣 從善坊에 있는 (집에서) 사망하였다. 이 때의 나이는 31세였다. 아아 슬프도다, 온 장안에 바람이 스산하게 불고, 온 나라가 병들어 초췌하듯 하였도다. 생각건대, 공은 의지와 기개가 굳세고 맹렬하였으며, 재능과 도량이 높고 깊었다. 비록 더할 나위없는 최상의 공을 세웠고, 힘들여 싸우면서 전장에서 고생하였지만, 불운하기가 이보다 더할 수 없었으니, 마침내 제후에 봉해지지도 못하였다. 갑자기 현량한 사람이 돌아가게 되니 조정에 있는 사람이나 재야에 있는 사람이나 모두 슬퍼하고 아깝게 여겼다. 그런즉 神龍 2년 丙午年 8월, 초하루 壬寅(壬申)日, 13일에 北邙山 언덕에 장례를 치렀으니, 이것은 예의에 맞는 것이다. 楚나라의 슬픈 상여꾼 노래 소리 길따라 이어지고 周나라의 퉁소 소리 길게 빼는 가운데, 무덤 속 광중을 문득 열어 관을 넣고 급히 닫기에 이르렀구나. 땅을 높여 봉토 쌓기를 이미 끝내고, 무덤가에 심은 비취색 잣나무가 바야흐로 푸르른데, 이제 □玉에 餘恨을 기록하고자 하니, 비석의 글자가 마치 황금에 새긴 것과 같기를 바라노라. 명문을 다음과 같이 짓는다.
아아, 堯 임금은 현명한 사람을 구하여 나라를 다스렸으니, 頹當이 쓰여지게 되었고 金日磾가 벼슬을 얻었구나. 西戎의 외로운 … 이고 東夷의 자손으로서, 구하기를 마치 미치지 못하는 듯이 끝없이 하였으니, 여기에 그의 조그마한 착한 일들을 기록해두노라. 이것이 첫째이다.
착한 일을 기록함은 무엇을 이름인가? 갓을 쓰고 갓끈을 매게 되니, 충성스러움으로 업적을 이루었고, 효성스러움으로 이름을 떨쳤도다. 미쁘구나 아버지여, 맑고 곧은 심성을 가지기에 겸손히 힘썼도다. 효성스럽구나 아들이여, 아버지의 명성을 떨어뜨리지 않았구나. 이것이 둘째이다.
그 명성이란 무엇인가? 장군 가문에서 무장의 덕을 이어받았고, 성 밖에서 장군으로서의 명을 받들어, 異域에서 공을 세웠도다. 재앙과 난리를 능히 평정하였고, 난리를 피운 적들을 깨끗이 쓸어버렸으니, 編鍾 소리는 그의 현명함을 기리는 것이고, 그에게 내려준 수레와 의복은 그의 덕을 드러내는 것이로다. 이것이 셋째이다.
수레와 의복이란 무엇인가? 金吾衛에서 가장 많이 받았으니, 아름답도다 大夫여, 천자의 총애를 이처럼 받았구나. 높은 누각은 구름에 잇대었고, 관에 꽂은 화려한 담비 꼬리는 거듭 빛났으니, 착한 일을 많이 하여 그 즐거움을 여기에서 누릴 뿐 아니라, 그 응보로 경사가 부디 자손에게까지 전해지기를 바라노라. 이것이 넷째이다.
경사스러움이 이어지지 못해 갑자기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으니, 여기 대들보가 무너졌는 데에도 저기 푸르른 것은 하늘이로다. 쑥이 더부룩한 무덤에는 상여꾼의 노래 소리 구슬프고, 소나무 심은 무덤 길에는 퉁소 소리 울리는데, 밝은 날에 한 번 묻히니, 무덤 속에서 영원히 머물 것이로다. 이것이 다섯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