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민족유일당운동의 전개

만주지방에서는 오랫만에 남만주 한족통일회(韓族統一會)를 개최하여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곧 의군부(義軍府)가 이탈하고 다시 대한통의부의 주력부대인 의용군(義勇軍)이 이탈하여 따로 1923년 말경 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를 조직하였다. 본 단체는 즙안(輯安)·관전(寬甸)·환인(桓仁) 등지에서 항일독립운동전투를 꾸준히 하였던 단체였다. 1924년 11월 대한통의부의 중추세력은 다시 정의부를 조직하여 하르빈〔哈爾濱〕이남 길림(吉林) 부근을 중심으로 항일독립운동의 전투를 하였다. 이듬해 3월 북만주 일대 독립운동단체는 부여족통일회(扶餘族統一會)를 개최하고 각 파를 통일하여 신민부를 조직하고 영안(寧安)을 중심으로 중동선일대에서 항일독립운동의 전투를 하였다. 본 3부는 각각 우리 동포 4·50만의 농민을 산하에 두고 서로 조국의 독립전투를 전개하고 있었다.001001 蔡根植,『武裝獨立運動秘史』(大韓民國公報處, 1948), pp. 146~148.닫기 이와 같이 3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의 국권회복을 위해서는 하나의 통일단체가 되기를 희구하였던 것이다.
1925년 하반기경의 해외 독립단 중 선각자들은 파벌의 극복과 전선통일을 주장하여 마침내 1926년 10월 27일 북경에서 한국독립유일당북 경촉성회를 창립하였다.002002 慶尙北道警察部,『高等警察要史』(高麗大學校民族文化硏究所, 1967), pp. 109~110 ; 在上海日本總領事館警察部 第二課, 『朝鮮民族運動年度』(東文社書店, 1946).닫기 그 강령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청하건데! 일반 동지는 깊이 심량하라!
2. 일본(日本) 제국주의를 복멸하라!
3. 한국의 절대 독립을 주장하라!
4. 한국 혁명동지는 당적으로 결합하라!
5. 민족혁명(民族革命)의 유일전선을 만들어라!
6. 전 세계 피압 민중은 단결하라!
건국기원 4259년 10월 28일
대한독립당조직북경촉성회(大韓獨立黨組織北京促成會)

북경촉성회의 집행위원은 강구우(姜九禹)·김광선(金廣善)·신익희(申翼熙)·원세훈(元世勳)·장건상(張建相)·조성환(曺成煥) 등 23명이었고 회원은 40여 명이었으며 사업기관지『촉성보(促成報)』는 4260년 1월 1일 3호까지 발행하였다. 아뭏든 각당 각파의 논쟁 속에 대한독립당조직북경촉성회가 성립되었던 것은 실로 민족유일당조직에 대한 이론을 실행에 옮겼던 제1보였다.
상해(上海)에서 그 이듬해 4월 11일 한국유일독립당 상해촉성회가 3·1당에서 창립총회를 거행하고 강령(綱領)을 발표하였는데 주 내용은

1. 한국유일당의 조직을 촉성할 것.
2. 한국민족의 독립적 역량을 집중하는 데 노력할 것.

이다.
당시 집행위원은 홍진(洪鎭)·이동녕(李東寧)·조완구(趙琬九)·송병조(宋秉祚)·김규식(金奎植)·조상섭(趙尙燮)·조봉암(曹奉岩)·정백(鄭伯)·안태근(安泰根) 등 25명이며 회원은 160명이었다. 상해촉성회에서는 북경대표 조성환·광동대표 정학빈(鄭學彬:有麟)·무창대표 백덕림(白德林)·남경대표 김영호(金永浩)·김일주(金一柱)의 출석으로 연석회의를 개최하고

전 민족의 생사유간(生死攸間)한 우리의 독립운동은 지금 여하한 상태에서도 2000년래의 왜구(倭寇)와 300년 전의 구수(仇讐)와 18년 간의 치욕은 말할 수 없고 현재와 장래에 있어서 우리들의 생존조건을 편단(片端)에서 박탈하는 저들 왜적(倭敵)에 대하여 사활결투(死活決鬪)인 바 이의 독립운동이 과연 어떠한 상태에 있다고 말하지만 전율(戰慄)에 이기는 것이 빈틈없는 사실로서 위미부진(萎靡不振)의 상태라고 말하여도 모두 운동전선의 통일에 노력하므로서 소기의 목적을 달할 것이다.

라는 선언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강령(綱領)은 다음과 같다.

1. 본회는 한국의 유일한 독립당의 성립을 촉성하고 각지 촉성회 조직주비회 성립에 노력함.
2·본회는 한국독립에 필요한 전 민족적 일체 혁명역량을 총 집중함에 앞장 설 것을 기약함.
3. 본회는 우리의 실상과 세제대세에 감하여 독립당 조직에 관하여 계획을 연구 제공할 것을 기도함.

그리고 만주의 유일당 촉성을 종용하기 위하여 대표 2명(상해 1명, 북경 1명)을 파견하기로 결정하였다.
광동에서는 1927년 5월 8일 한국유일독립당 광동촉성회를 조직하고 그 회원은 김성숙(金成淑 ; 혁명동지회 집행위원 및 의열단원)·정학빈등 170명인데 대부분이 혁명동지회 회원 및 의열단원이었다. 무창에 한국 유일독립 당무창촉성회가 조직되었다. 대표는 백덕림으로 회원은 150명이었다. 남경에서는 1927년 9월 27일 한국유일독립당 남경촉성회가 창립되었다. 김일주·김영호의 주재로 영남 유림대표의 중진 김창숙(金昌淑)과 의열단 간부 양건호(梁建浩)·이덕생(李德生)·김종철(金鍾喆)·권중환(權重煥)과 상해에는 김태연(金泰淵)·김원식(金元植)이 활동하고 있었다.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1928년 대한민족통일촉성회(大韓民族統一促成會)를 창립하고 다음의 강령을 발표하였다.003003 在上海日本總領事館警察部 第二課, 앞 책, p.223.닫기

1. 전 민족 정신을 단결하여 운동전선을 일치시킴.
2. 전 민족의 역량을 집중하여 대업(大業)의 책임을 다함.
3. 전 민족의 이상을 종합하여 국가건설을 선미(善美)케 함.

전 만주 독립운동 단체 중 유일당 조직 운동열이 가장 고조된 단체는 정의부로 재만독립운동단체의 영도권을 파악할 목적으로 1927년 4월 15일부터 길림성 신안둔에서 제1회 대표자회를 개최하였다. 여기에 참가한 단체 및 대표로는

정의부김동삼(金東三)·오동진(吳東振)·이광민(李光民)·김원식·고할신(高豁信)·현정경(玄正卿) 외 11명
정의부(군대측)이웅(李雄) 외 11명
남만청총(南滿淸總)박병희(朴秉熙) 외 10수 명
한족노동당(韓族勞動黨)김응섭(金應燮)
기타안창호(安昌浩)·이일세(李一世)

등 유지 52명이 모여 유일당조직에 대하여 협의하였다.004004 慶尙北道警察部, 앞 책, p.124.닫기 그러나 회의 제1일부터 김응섭 등은 완전한 각 단체 대표회의가 아니므로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제4일에 들어서서는 퇴석자가 속출하여 하등의 결의도 보지 못한 채 해산되고 말았다. 그래도 일부에서는 그대로 해산만 할 수는 없다 하고 다시 논의한 결과, 유일당조직준비기관으로 ‘시사연구회(時事硏究會)’를 조직하기로 하고 위원으로 이탁(李沰)·최동욱(崔東旭)·박병회·이일세·김응섭을 선임하여 유일당조직을 관철시키기로 하였다.005005 주 3)과 같음 ; 國史編纂委員會編,『韓國獨立運動史』四(1968), pp. 875~876.닫기
본래부터 이 유일당 조직의 근본이론에는 3파로 나뉘어져 있었던 것으로 그 논거는 첫째, 단체본위조직론(團體本位組織論)으로는 해외운동자의 거의 대부분은 기성단체에 관계하지 않고 현재 다수의 소운동단체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유일당은 이 다수의 소운동단체를 기초로 하여 조직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단체중심조직론(團體中心組織論)으로는 단체본위론에 따르면 유일당이 아니면 각 단체 연합회로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 조직은 반드시 기성단체 중 가장 혁명적 권위가 있고 또 많은 역사적 전적(戰績)을 가진 유력단체를 중심으로 하여 다른 각 소단체를 이에 종속시켜 점차 그 세력을 확충함이 득책이라고 한 것이다. 셋째는 개인본위조직론(個人本位組織論)으로는 종래의 유력한 운동단체는 대부분 지방적 또는 파별적 결합이다. 따라서 군소단체를 본위로 하여 당을 조직하려고 하면 반드시 당파전의 소굴이 될 것이고 또 기성단체 중에는 타당을 인솔할 실력과 권위가 있는 단체가 현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유일당은 개인본위로 조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006006 國史編纂委員會編, 앞 책, p. 874.닫기
이상과 같이 3파는 서로 상당한 논거를 가지고 자파를 옹호하여 쉽사리 타협을 보지 못하였다. 전 민족운동의 통일은 각 단체 각 파벌간에서로 엉켜서 실현을 촉진하며 점차 그 주장도 타협성을 띠게 되었다.007007 주 5)와 같음.닫기 그리하여 중국대륙 각지에서 각 단체 각 파벌 간에 촉성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1927년 8월 정의부는 제4회 중앙의회를 개최하고

1. 만주 운동선의 통일을 위하여 신민부 참의부의 연합을 적극적으로 도모할 것.
2. 전 민족운동 통일을 위하여 유일당 촉성을 준비할 것.

을 결의하고008008 國史編纂委員會編, 앞 책, p.875.닫기 10월에는 한족노동당(韓族勞動黨) 중앙집행위원회가 다 음을 결의 하였다.009009 주 7)과 같음.닫기

1. 혁명역량을 총 집중하기 위하여 민족유일당 조직에 전 혁명분자의 합동 조직을 주장한다.
2. 남만에 신속한 기간 내에 촉성회를 성립시키도록 노력한다.
3. 각지에 재류한 본 당원으로 하여금 해지(該地) 민족당촉성회(民族黨促成會)에 찬동 가입시킨다.

곧 11월에는 상해에서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관내 촉성회연합회는 각지 대표로부터 다음과 같은 강령을 결정하였다.010010 주 7)과 같음.닫기

1. 본회는 한국의 유일대독립당 성립을 촉진하기 위하여 각지 촉성회를 조직 확장 및 당조직주비회 성립에 노력함.
2. 본회는 한국독립에 필요한 전 민족의 일체 혁명 역량의 총 집중을 실현하는 선구(先驅)를 기약함.
3. 본회는 우리들의 실상과 세계의 대세에 비추어 독립당 조직에 관한 계획을 연구 제공할 것을 도모함.

이와 같이 전 민족의 숙원이던 민족운동의 통일은 민족주의자는 물론 공산주의자도 일제를 대상으로 하는 항일투쟁에는 오직 유일당의 조직 아래에서 통일전선을 구축하자는 것이었으니, 당시 상황을 상해에서 발행된 1927년 11월 27일의『신도(新道)』에「한국유일독립당의 촉성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선언을 발표하였다.

산만하고 무통일한 각 소단체의 분립으로부터 조직적이고 통일적이며 전 민족적인 결합을 촉성하고 국부적 경제투쟁…자연생장적 운동…으로부터 전 민족적 정치투쟁…목적의식적 운동…을 절규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전자는 이 민족운동자의 전선통일에 관한 노력이며 후자는 바로 공산주의자와 전선확충에 대한 규호이다.
과연 이 양자의 방향, 주장이 함께 일치하고 또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당위성을 명시한 것이 아닌가. 마땅히 양자가 반드시 진공(進攻)할 수 밖에 없는 그의 목적…대상 일본제국주의…의 동일한 소이(所以)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당면의 목적에 대하여 성공을 획득하는 최대의 급무는 구체적인 이론투쟁이며 이 방향은 즉 민족협동전선의 원칙에 근거하여 진보하는 현대민족운동…전 민족 각층의 혁명역량을 총 집중하는 데 있으며 그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또 최대 혁명성을 갖는 노동군중으로써 운동의 주력군으로 삼고 일면 세계피압박민족…계급과 융합전선을 만드는 데 있다고 표현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혁명적 비혁명적 분야의 경계선을 명확히 확정하야 일반으로 하여금 정사(正邪)의 두 길을 판단 선택하게 할 필요가 있다.011011 國史編纂委員會編, 앞 책, pp.874~875.닫기


註 001
: 蔡根植,『武裝獨立運動秘史』(大韓民國公報處, 1948), pp. 146~148.
註 002
: 慶尙北道警察部,『高等警察要史』(高麗大學校民族文化硏究所, 1967), pp. 109~110 ; 在上海日本總領事館警察部 第二課, 『朝鮮民族運動年度』(東文社書店, 1946).
註 003
: 在上海日本總領事館警察部 第二課, 앞 책, p.223.
註 004
: 慶尙北道警察部, 앞 책, p.124.
註 005
: 주 3)과 같음 ; 國史編纂委員會編,『韓國獨立運動史』四(1968), pp. 875~876.
註 006
: 國史編纂委員會編, 앞 책, p. 874.
註 007
: 주 5)와 같음.
註 008
: 國史編纂委員會編, 앞 책, p.875.
註 009
: 주 7)과 같음.
註 010
: 주 7)과 같음.
註 011
: 國史編纂委員會編, 앞 책, pp.874~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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