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2) 『우리 通訊』  

2) 『우리 通訊』

 ◊ 緖 言

 이 小冊子는 大韓民國 二十四年 十月 十八日로 十一月 二十五日까지에 中華民國泗川省重慶市에서 開會되엿던 大韓民國臨時議政院 第三十四回 議會其間에 在重慶 朝鮮民族革命黨 同志들이 每議員의 主張과 其他 人士들의 重要한 言論, 人事動態, 消息 等을 各種各樣의 方式으로 發表하기 爲하야 「우리通信」社를 組織하고 發刊한 議會經過錄인대 今次 議會는 國際情勢의 發展과 世界的 輿論이 基本的으로 우리 民族獨立運動에 有利한 時期에 열니는 議會가 되여서 그 意義가 非常히 重大할 뿐 아니라 遠東에 있는 革命 各黨派가 各種關係로 過去에 參加치 아니하였던 各黨人士들이 이 의회에 參加하게 되야 挽近 數十年來로 前無한 統一機構가 形成되였으며 따라서 우리 獨立運動은 劃期的 發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으로 이 記錄은 우리 獨立運動에 重要한 歷史的 文獻이라 이에 本黨은 이 記錄을 再刊하야 同胞諸位에게 紹介하며 따라서 後日에 史料를 만들려 한다. 參考書類로 遠東서 온 文書 數件을 附錄함.

大韓民國 二十五年 五月 日

在美朝鮮民族革命黨 編輯人 民吾

 ◊ 『우리 通訊』 第一號

地址 重慶南岸大佛叚 一五○

 今次 議會의 成功을 祝함

 昨年 以來 全體 同胞가 熱烈히 企待하고 國際人士의 注目을 끌든 大韓民國臨時議政院 第三十四次 議會는 今日 붙어 正式으로 開幕하게 되였다. 俄領을 除한 十區의 代表 四十餘 名이 一堂에 團聚하여 우리 民族의 前程을 相計하는 이 때 우리들은 非常한 歡喜와 滿腔의 熱情을로써 今番 議會의 成功을 祝한다.

 今次 議會는 다른 어느 때의 議會보다 그 意義가 非常히 重大하다. 그것은 今日의 國際的 情勢와의 發展과 世界的 輿論에 基本上으로 우리 民族獨立運動에 有利한 時期에 열니는 議會가 되여서 그럴 뿐만 않이라 더욱히 今次의 議會에는 過去에 各種關係로 參加치 않이 하엿든 各黨 人士들이 參加한 까닭이다. 그럼으로 비로서 今次 議會에 各國 人士와 各地 同胞의 注視가 集中되는 것이다. 또 그 企待도 큰 것이다. 今次 議會에서 重要하게 討論 決定하여야 할 問題가 많을 줄 안다. 今後 議事日程에 進行됨을 딿아서 具體的 意見을 提供하기로 하고 우선 몇 가지 所望을 말하려 한다.

 첫재, 이번 議會는 實質上으로 各 黨派의 有力한 統一機構가 되여야 될 것이다. 今次 議會에 各黨 人士가 參加되엿다는 것 만으로 滿足할 수 없고, 또 各派의 有力한 信任과 支持가 반드시 集中되리라고 樂觀할 수도 없다. 問題의 中心은 議員 諸氏가 우리 民族의 生死存亡의 危期를 깊히 늣기는데서 過去 各 黨派間의 滿腔을 一掃하고 獨立至上의 崇高한 目標 아래서 精誠團結하며 黨派의 所信을 不文하고 人力을 총 集中 網羅하여 各盡其能케 하는대 잇다.

 둘재, 今次 議會에서는 반드시 우리 外地環境에 適合하고 比較的 事實에 接近한 諸島와 政策이 樹立되여야 할 것이다. 이에 있어 現 制度와 政策의 優點은 極力保存發揚하고 欠點은 果敢히 改革하여야 할 것이다.

 샛재, 今次 議會는 우리 民族의 全 民族 總 團結과 力量의 集中을 對外에 表達宣揚하야 臨時政府의 國際的承認을 휙得하며 光復軍을 名實相符하게 國軍化하야 우리 民族의 國際的地位를 提高하여야 할 것이다.

 各區 議員 名單(本社資料室)

 舊議員 二三員

 京畿道  趙素昻, 趙琬九, 李始榮, 趙始(時)元, 嚴恒燮(缺 一員)

 忠淸道  洪震, 李象萬, 安一靑, 申桓

 平安道  車利錫, 柳東說, 崔東旿, 李光濟

 咸鏡道  方順熙(女), 李興官, 李復源, 高雲起

 中 領  文逸民, 朴贊翊, 李靑天, 楊墨, 金學奎

 美 領  金九(缺 二員)

 補選議員 二一員

 忠淸道  柳子明, 沈光植

 全羅道  李仁洪(李集中), 宋旭東, 金在浩(胡建)(缺 三員)

 慶尙道  金若山, 李然皓, 柳林, 金尙德, 韓志成, 李貞浩

 平安道  崔友江, 申榮三

 咸鏡道  王通, 姜弘周

 江原道  李海鳴, 金冠五(缺 二員)

 黃海道  孫斗煥, 金鐵男, 金玄九

 中 領  朴健雄

 缺員 一三員

 俄領 六員, 美領 二員, 全羅道 三員, 京畿道 一員, 江原道 一員

 發刊辭

 우리들은 이번 議會開會期間에 있어 每議員의 主張과 其他 人士의 重要한 言論 人事動態 消息 等을 各種 各樣의 方式으로 發表하기 위하야 「우리 通訊社」를 組織하고 「우리 通訊」을 發刊한다. 이 通訊이 今次 會議의 圓滿한 進行에 多少의 有益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들의 光榮이다.

 會場速寫 第1日

 大韓民國臨時議政院

 第34回 開院式 順序

一. 開 式         二. 唱愛國歌

三. 向國旗致最敬禮    四. 爲先烈黙想

五. 致式辭(崔義山)    六. 致告辭(金九)

七. 致答辭(趙素昻)    八. 開 式

 會場의 佈置는 至極히 簡單 素朴하다. 正面壁上에는 太極旗가 걸렸고 조희르 旗左便에는 愛國가 右便에는 開院式 順序를 써서 붙엇고, 그 앞 테불우에는 花甁 二個가 노여 있다. 普通 집 客堂만한 會場에 數十個의 椅子가 노여 있을 뿐이다. 獨立國家가 自己國土 안에서 여는 華麗하고 莊嚴한 議會에 比할 때에 우리는 亡國民族의 悲慘한 情緖가 터 가슴을 북밧치며 눈물을 뜨겁게 흘은다. 둘너앉은 諸位 先輩들의 얼굴의 「줄임쌀」은 數十年海가 風霜의 惡戰苦鬪를 말하여 주고 있다.

 議席에는 이번 새로 補選된 議員들이 틈틈이 끼여 있는데 그 中 몃분은 特히 議員들의 視線을 끈다. 舊議員과 補選議員이 互相幄手하며 談笑한다. 오래동안의 隔□이 一時에 풀리는 듯이 每個人의 顔色은 喜色에 滿面이다.

 狹착한 會場 內는 團結과 緊張한 空氣가 充溢하고 있다.

 更 正

 昨日에 登載한 米領議員은 金九 先生 한 분인대 다시 探問한 結果 曹成煥 · 閔弼鎬 兩氏가 亦是 今次 選擧에 米領 議員으로 當選 되엿다더라.

 全體 議員이 極度로 緊張하고 嚴숙한 精神으로 愛國歌를 부르기 始作하엿다. 그러나 曲調가 合하지 않어서 3部合唱이 되고 말엇다. 또 엇던 분은 첫 머리말 떼고는 가詞를 몰나 목소리를 슬그만이 「收回」하고 만다. 第二節에 들어가자 各自 各 창으로 어느 老先生님 한 분이 「테너」式으로 高聲을 치니 唱歌進行 中에 그만 웃고 말엇다.

 四十餘 名 議員 中 女子議員은 오직 方順熙 女史 一人 뿐이니 萬綠叢中에 一點 紅이다. 婦女가 아직도 억울한 慶境에 있는 조선 社會임으로 方女士의 責任은 더욱 크다. 孤軍奮鬪의 孤獨感도 있을 것이나 一千萬 女性의 後營이 있는 것을 生각 할 때 勇氣도 날 것이다.

 傍청席과 傍청人이 없어 會場은 쓸쓸한 感이 있다. 勿論 오날은 처음날인 까닭이겟지? 會議는 다만 親애和목하는 情緖와 緊張 嚴肅한 空氣 속에 끈치고 말엇다.

 消息一束

1. 土橋와 南岸等地에 居住하는 議員들은 每日 議會에 出席하기 爲하여 城內에 住宿하는 中인대 政府는 經費困難으로 因하야 每日 每人 三十元式 支發하나 貧窮에 習慣化한 우리 議員들은 비록 最下等 旅館에 臨時 二人 同床生活을 할지언졍 그들의 國事를 爲하는 긴張한 精神은 사람으로 하여금 感服할 만하더라.

2. 咸鏡도 議員 李復源 · 公震遠 兩氏는 光復軍 七八名 同志와 十餘 日 前에 西安을 出發하여 今日 重慶에 到着된다더라.

3. 江西에서 오래동안 工作하든 申鳳彬 女史와 香港에서 脫險할 安金乭孃은 數日 前에 同襗來渝하엿다더라.

 發行日 十月 二十六日

 會場速寫 議會 第二日

 審査委員 主人을 選出

 十月 二十五 · 六日 午前 八時 正刻에 廟議圓만 會場集合하여 副議長 崔義山氏 主席으로 開會되엿다. 改正臨時議政法 第二章 第四條 「新到議員은 當選證書를 院에 提出하다. 審査謄錄케 함」이라는 院法에 依據하여 當席에서 審査委員은 李象萬 · 李光濟 · 嚴恒燮 三氏가 補選되엿다. 各 議員의 發言 中에서 所謂 審査 二字에 對한 解석 問題에 對하여 見解의 若干 出入이 잇다. 卽 新到 議員 個人 自身에 對한 「錯誤 有無의 審査」이나 或은 다만 「議員證書 手續上 錯誤 有無의 審査」이냐 하는 것이다. 이에 對하여 絶對多數 議員의 意見 더욱히 그 말에서도 洪震 先生의 解석을 證書手續에 對한 審査일 것 뿐이라는 것을 力說햇다. 獨立運動者요. 公民이며 또內 各部에서 發表한 選擧手續을 合議的으로 밟어 當选된 議員임으로 「資格 有無의 審査」는 根本으로 問題될 수 없고, 오직 「議員證書 手續上 錯誤 有無의 審査」의 範圍를 超越할 수 없다는 것이다. 洪震 先生의 如此히 正當한 理論 根據와 또 團結을 本位로 하는 精神에 對하여 全體는 滿足해 하엿다. 會는 곳 休會되엿다.

 洪震 先生이 正議長으로 當選

 審査委員 三氏의 審査結果 今次 새로 補選된 新到議員은 그 議員證書 手續上 正當하다는 것으로 全部 通過되엿다. 午后 二時 新到議員 三十人名(有故로 欠席한 議員 數氏를 除한 外)에 到會하여 亦是 崔義山氏 主席으로 開會되엿다. 卽時 無記名投票로 正議長 選擧가 開始되엿는데 開票結果 洪震 三十四票, 崔義山 四票로 洪震 先生이 當選되엿다. 二十七日 午後 一時에 開會할 것을 宣佈할 休會를 宣佈하엿다.

 中央社 發稿의 失手

 「中央社」에서 發한 臨時議政院 開會 消息이 本大日 · 重경 · 中文 各 新聞에 一齊히 登載되엿는데 그 記事 中에 不注意로 趙琬九 先生이 「曹琬九」로 朴贊翊 先生이 「林贊翊」으로 잘못 漢字 되엿든바에 依하면 中央社에 更正을 要求한다 하더라.

 洪震 先生의 略歷

 洪震 先生의 今年 六十六歲의 高齡이나 三十壯年과 같은 健康한 身體와 快活하고 嚴숙한 性格을 가졋다. 現在는 韓國獨立黨 中央執行委員 韓國臨時政府顧問. 籍貫은 忠淸道 光武問 京城法律專門學校를 畢業하고 忠淸道 地方裁判所 檢査 · 辯護士로 10餘 年을 지나며 民族이 哀弱하야 가는 運命을 挽回하려고 萬般의 努力을 하엿다. 己未 「三一」獨立運動이 全國的으로 普□될 때 漢城政府를 違主하고 海外무리 運動과 中國國民革命運動을 配合하려 漢城政府를 代表하여 上海에 와서 임시 建立되여 있는 韓國臨時政府와 漢城政府를 合倂식혓다. 그 後 臨時政府의 國各憲法 各 部長 議政院 議長 等 要職에 任 先生은 問來로 우리 民族은 思想分野를 不問하고 全民族的 草一黨建立을 主張하며 唯一黨 促成會를 促成하고 그의 代表로 南北滿에 가서 韓國獨立黨과 滿洲僑民自治會를 創立하야 우리 運動을 猛烈히 展開하엿다. 「九一八」事變 後 特히 武장運動에 着服하야 哈爾濱 附近 牙城과 嶺東에서 武장部隊를 建立하여 中國 我勇軍과 合作戰 하다가 一九三一年 南京에 와 新韓獨立黨을 建立하고 그 後 光復陣線 三黨 統一의 主要한 □□役割을 하엿다. 先生의 一生은 愛國과 獨立運動에 □□하고 □勇한 □史이다(本社 資料室).

 ◊ 『우리 通訊』 第二號

地址 重慶南岸大佛叚 一五○

社說

 社說 團結과 民主!

 日前 우리 民族의 最大任務가 統一團結에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잘 認識하는 바이다. 特히 太平洋戰爭이 暴發될 以來로 國際情勢의 發展은 우리 革命運動에 絶對 有利한 客觀條件으로 實現되고 있으나 다만 우리는 內部의 不團結로 因하야 可能한 國際援助를 完全히 爭取치 못하고 따라서 臨時政府 國際承認問題와 韓國光軍 發展問題는 다만 蹉跎한 歲月 가운데서 茫然無緖하게 되엿다. 이런 쓸아린 經驗과 敎訓은 異域에 流亡하는 우리 檀君子孫으로 하여금 良心 反省을 促하는 同時에 自身의 責任感을 더욱 늣기게 되엿다.

 勿論 우리 革命運動에 從事하고 關心하는 者는 모도다 統一과 團결을 爲하야 努力한다고 自認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運動者들은 每個人이 統一이 必要로 認하는 點에 있어서는 一致性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다만 엇던 原則 우에서 統一 하자는 方法은 完全히 一致하다고 볼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統一과 團結은 오직 民主政治의 基礎 우에서만 可能한 것이요. 만일 民主原則을 떠나서 統一을 云云한다면 그야말로 암만 自己 마음은 統一을 贊成한다 할지라도 그의 實際行動은 곳 統一을 反對하고 妨害한다고 않이 볼 수 없다. 그럼으로 今次 議會에 있어서 崔義山 議長은 그 開幕辭 中에 民主政治의 實現을 絶對 高調하엿으며 또 金主席 白死(凡) 先生은 告辭 中에 말하기를 우리는 다만 形式的 統一에 滿足할 것이 않이라 더욱 實際的으로 精誠團結하여 對外的으로 共同努하는 同時에 政府의 國際承認을 獲得하자고 하엿고 趙部長 兼 議員 素昂 先生은 答辭 中에서 亦是 各 黨派 統一合作 現像에 對하여 無限한 樂觀을 表하며, 또 議會와 政府가 配合할 것을 說明하는 同時에 가장 合理的 方法을 講究하여 우리의 團結을 더욱 强化하여야 되겟다고 말하엿다. 勿論 이 세분 先生의 말슴은 다만 形式上으로 差別이 있을 뿐이요. 그 基本精神은 完全히 一致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세분 先生의 말슴은 오직 우리 民族이 統一團結하여야 自身의 國際地位를 提高하는 同時에 政府의 國際承認을 獲取할 수 있고 또 오직 民主原則 우에서만 統一團結을 形成할 수 있다는 것을 說明한 것이다.

 最後로 다시 말할 바는 우리 大韓民國 臨時議政院은 三一 大革命運動의 民主的 精神의 産物이라 우리는 반드시 過去의 光榮한 歷史傳統을 繼承하는 同時에 또 發展變化하는 國內外 革命情勢를 配合하여 더욱 □楊光大하여야 될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들은 今次 議會에 出席하신 議會 諸公들이 大公無私한 民主精神으로 議會의 成功을 促하는 同時에 우리 內部의 團結을 强化식히며 앞으로 우리 革命運動을 順利로 展開하기를 深切히 바란다.

 ◊ 『우리 通訊』 第三號

地址 重慶南岸大佛叚 一五○

時日 十月 二十七日

社說

 洪議長의 當選을 祝함

 日前 우리가 當面한 時期는 全 世界 民主陣線과 침略陣線이 生死의 決鬪를 進行하는 때이며 따라서 우리 民族의 生死存亡을 決定하는 契機이다. 이와 같은 嚴重한 時機에 臨하여 今次의 議會은 過去 歷次의 議會보다도 더 完滿이 開幕되엿다. 그 理由는 다름이 안이라 今次 議會는 過去 歷次의 議會보다 만은 各 黨派가 參加한 까닭이다. 그러나 今次 議會에 參加한 黨派가 過去 歷次의 議會보다 만은 이 만큼 今次 議會는 過去 歷次의 議會보다 더 復什한 것도 事實이다. 더욱 時期도 時期이런이와 더욱 만은 復什한 黨派가 共同히 參加한 이만큼 今次 議會의 重要性은 다시 더 說明할 必要도 없다.

 이와 같이 今次 議會가 非常한 重要性을 띄고 또 完滿하고도 復什하게 進行할 때 議長의 職務가 더욱 重要한 것은 自明한 事實이요. 또 이와 같은 重要職務를 擔當한 者는 非常한 人物이 않이면 않될 것도 누구나 다 잘 認識할 것이다. 그럼으로 今次 洪震 先生이 三十八票 中에 絶對多數만 三十四票로 議長에 當選된 것은 偶然한 事實이 않이오. 오직 衆望所歸에 各個 議員의 公正히 投票한 結果이다.

 우리들은 잘 아는 바와 같이 洪先生은 우리 革命運동 線上에 崇高 德邵하신 元老일 뿐만 않이라 그는 一生으로 通하여 民族統一 事業에 忠實이 努力하여 왓고, 또 特히 靑年을 愛護指導하며 時代와 발마추어 進步한 方向으로 革命運동을 推動進 하려고 堅決이 奮斗하는 老戰士이엿다. 이와 같은 洪先生으로 議長의 직務를 擔任하게 된 것은 우리 議會의 幸이요 光榮이다. 뿐만 않이라 또 各 黨派의 幸이요 光榮인 同時에 主民族의 幸이요 光榮이다.

 洪議長은 잘 認識하실 것이다. 日前까지 各 黨派가 各自의 存在를 가지고 있으니 만큼 비록 議會에 參加하엿다 하드래도 다만 初步의 統一을 形成할 뿐이요. 아직까지 各 黨派의 矛盾을 完全히 調和할 수 있는 統一이 形成된 것은 않이다. 그럼으로 今次 新議長의 職務는 오직 大公無毒한 胸襟으로 黨派의 立場을 超越하여 全民 利益을 着眼하는 點에서 出發하여아만 모든 問題를 順利로 處理하고 우리 內部의 團結을 强化할 수 있을 것이다. 勿論 嚴格한 科學的 立場에서 본다면 一個革命運動者가 이미 한 黨派에 所屬한 以上 完全이 黨派의 立場을 超越할 수 없다고 볼 수 있지만 群衆의 基礎를 더난 우리 關內 特殊情形을 좀 더 深刻하게 考察한다면 眞正으로 某 階級을 代表는 黨派가 없는 것이다. 우리 議會 亦是가 基本身이 某 階級 或은 某 黨派의 專政하는 機構가 안이요. 오직 三千萬 全體 民族의 利益을 代表하는 卽 反日하는 各 階級 各 黨派의 全體 利益을 代表하는 機構이다, 그럼으로 이 全民族의 利益을 代表하는 機構의 代表者는 勿論 黨派의 立場을 超越할 수 있고, 또 오직 黨派의 立場을 超越하고 全民族 利益의 立場에서야만 各 黨派의 矛盾을 調和하고 團結을 强化하는 任務를 履行할 수 있다.

 洪議長은 우리가 말하지 않하여도 이와 같은 平凡한 導理는 잘 認識하실 줄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衷心으로 嚮幕하고 企待하는 바에 몇 마듸의 말슴을 貢獻할 뿐이다. 끝으로 洪議長의 健康을 祝한다.

 會場速寫 第三日

 十月 二十七日 午後 二時에 議長 洪震氏 主席으로 開會되엿다.

 議事日程

一. 新選議員審査에 關한 件    一. 各種 委員會 設置에 關한 件

一. 本院 行政報告        一. 政府報告

 孫斗煥 · 金鐵男 兩氏를 審査

 新議員 孫斗煥 · 金鐵男 兩氏는 個人의 事情으로 因하여 議員 證書를 이제야 提出 하엿슴으로 前日 選擧된 審査委員 三氏가 審査하기로 決定되엿다.

 副議長 崔東旿氏가 辭職書를 提出

 崔東旿氏는 前後 事務處理上 耘耘問題로 因하여 辭職願書를 議會에 提出하엿다. 그러나 議員들 中에서 崔氏의 辭職을 反對함으로 辭職의 뜻이 堅決한 崔氏는 議長에게 一日請假를 求하고 退席하고 말엇다. 退席한 後 辭職書를 返還하기로 決議되엿다.

 各種 委員會를 設置

 各種 委員會를 두기로 하엿는데 如下하다.

一. 第一科(法制) 第七科(請願 · 懲戒)를 合倂

二. 第二科(內務 · 外務), 第五科(支通), 第八科(敎育 · 實業)를 合倂

三. 第三科(財務), 第六科(豫算 · 決算)를 合倂

四. 第四科(軍務)

 各科에 常任委員 五人 都合 二十人을 置하기로 하고 議長이 全衡委員 趙素昻 · 車利錫 · 嚴恒燮 3氏를 指定하엿다.

 致賀電通過

 現今 開會 中에 있는 中國參政會에 議員 全體 名義로 賀電을 致할 案을 通過.

 2二日間 休會를 決議

 二十八 · 二十九日 兩日은 休(体)會하기로 決議 後 休會를 宣布하엿다.

短評

 如何히 하면 今次 議會를 順利하게 進行할까?

 今次 議會는 各 黨派가 參加함으로 完滿하고 또 復什하게 進行되고 있다. 그럼으로 이 議會를 順利하게 進行하자면 以下의 몃가지 條件이 必要하다고 生각된다.

 첫재로 各種 重要한 政治軍事問題에 關하여 會場에서 討論하기 前에 各 黨派間 彼此 意見交換과 疏通이 必要하다. 勿論 議會는 國歌의 最高機關이라 憲法에 依하여 一切를 決定할 것이다. 그러나 從法이 不能 自行이라 法이 群衆의 基礎와 黨派의 擁護를 떠나면 亦是 實行하기 困難한 것도 事實이요. 또 今次 會議는 國會인 同時에 또 黨派의 合作場所이다. 그럼으로 重要한 問題가 提起 前에 各 黨派의 意見交換과 疏通이 絶對 必要하다고 生覺된다.

 둘재로 各 黨派의게 所屬한 議員이었던 問題를 提起할 때 私黨派의 利益을 떠나서 全民族利益을 着眼할 것이다. 勿議한 革命黨派의 利益가 全民族利益을 連絡하여 볼 수도 있다. 그러나 日前 關內의 黨派別 이 특별히 復什한이 만큼 만일 每黨派에 所屬된 議員이 自己의 黨派의 利益을 過重視 한다면 이 議會를 順利히 進行하기 困難하다. 그럼으로 全 民族의 利益을 爲하여 各 黨派間 互相 양步가 絶對必要하다고 生覺한다.

 셋재로 每個議員이 議會를 進行할 때에 小小한 枝葉問題나 惑은 不重要한 法理解釋을 中心하거나 또 時日을 浪費할 것이 않이라 主로 엇떠케 해야 우리 團結을 加强하며 外交軍事의 難局을 打開할가 하는데 着眼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日前 우리 內部團結과 外交軍事難局을 打開하는대 有利한다면 憲法도 改正하여야 할 것이요. 더구나 實際革命事業에 何等 無河益한 法理解釋으로 時日을 浪費하며 互相 爭執하는 것은 完全히 無意味하다고 生覺한다.

 ◊ 『우리 通訊』 第四號

社址 重慶南岸大佛叚 一五○

時日 十月 二十八日

社說

 覺運 委員會의 任務

 昨年 二十七日 臨時議政院 議會에서 臨時議政院法 第四章 委員會 條例에 依據하여 各種 委員會를 組織하기로 決定되엿다. 第三十二條에 依하면 都合 八科인데 實際情況에 빛우워(第一科 法制)와 第七科(請願 · 懲戒), 第二科(內務 · 外務)와 第五科(交通) 及 第八科(敎育 · 實業), 第三科(財務)와 第六科(豫算 · 決算)를 各各 合倂하고 第四科(軍務)를 合하여 共四個 委員會를 設置하기로 하고 各 委員會에는 常任委員會 各 五人 都合 二十人을 選定하기로 되엿다.

 우리가 더 말하지 않어도 諸位는 다 잘 알줄 알지만은 今次 各種 委員會의 政治的 任務는 歷次 어느 때 委員會보다도 重大하다.

 國際情勢가 基本上으로 우리 朝鮮民族解放運動에 有利하여 짐을 딸아 全世界民主國家의 人士 及 朝鮮同胞들은 우리 運動의 進展에 對하여 非常한 關心을 갖게 되는 同時에 더욱 今次는 各黨派人士가 一堂에 集合하여 親愛하는 精神으로 國事를 討論하게되는 고로 그 企待와 勉녀가 매우 큰 것이다. 또 이번 議會에서는 急速度로 變化發展하는 新時代에 適合한 各種 事項이 討議決定될 것을 確信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各方의 企待에 억으러지지 않고 議會의 任務를 美滿하게 完成하기 爲하여서는 各黨派 精誠團結의 基礎 우에서 法制 · 內務 · 外務 · 財務 · 軍務 等에 對하여 過去를 細密하게 審査 · 檢討하여야 할 것이며, 또 더욱 今后에 對하여는 過去보다 더 良好한 더 새로운 方策이 決定되여야 할 것이다.

 우리 臨時政府가 實際的으로 三千萬 群衆 基礎 우에 擴大强化되고 國際的 有力한 援助를 받도록 우리 全體는 極力努力하자.

 勿論 各 黨派가 今次 議政院에 參加함으로 因하며 對內 對外的으로 주는 그 影向은 말할 수 없이 크다. 그러나 參加하엿다는 形式만을 보고서만이 그 影向이 큰 것이 않이고 오직 今次 議會에서는 許多히 良好한 決定에 있을 것이라는 데서 各方이 重視하는 것이다. 그럼으로 萬一 아모런 良好한 決定도 없이 議會가 開會된다면 全體 同胞의 友邦人士의 企待는 失望으로 도라가고 말 것이며, 그러치 않고 精誠團結로서 良好한 決定이 있다면 支持와 援助는 참으로 클 것이다.

 이런 重大한 任務를 雙肩에 걸머진 議員 中에서 選出된 各種 委員會 委員 諸氏는 眞理를 爲한 革命的 精神으로 大公無私하여야 하여 科學者의 眼光과 같이 細密銳利하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일에 處하는 態度는 朝鮮民族의 우良傳統이다. 이 結果는 各個 議員을 爲하는 것 뿐만 않이라 우리 臨時政府를 爲하는 것이며 朝鮮民族을 爲하는 것이다.

 諸委員의 努力을 祝한다.

一. 公平하게 審査를 進行하자!

二. 親愛和睦하고 精誠團結하자!

專論

 憲法修改에 關한 우리의 意見

 한 革命國家의 憲法은 그 國家의 實際的 革命情勢의 要求에 依하여 規定되며 또 變化發展되는 것이요. 決코 固定不變하는 것이 안이다. 우리의 現行 約憲은 過去에 規定된 것이무로 日前 實際情況에 있어서 만은 缺點이 包含되여 있고 또 이와 같은 缺點이 有함으로 因하여 臨時政府의 發展前途를 阻礙하고 있다. 그럼으로 우리는 臨時政府가 自身의 組織이 健全하게 되는 同時에 우리의 革命 力量을 能히 總 集中하며, 또 國際的 承認을 獲得하기 爲하여 下와 같은 幾個條件을 列擧하며 그에 對한 改正意見을 提出한다.

 첫재로 臨時約憲 第二章 第四條 第二項에 말하되 「內地 各 選擧區에 選擧할 수 없을 때는 各該 選擧區에 原籍을 두고 臨時政府所在地에 僑居하는 光復運動者가 各該區 選擧人의 選擧權을 代行」한다고 規定하엿다. 萬一 이 規定을 修正 안한다면 日前에 있어서 重경에 僑居하는 光復運動者를 除한 外에 各地에 있는 光復運動者나 甚至 前線에서 直接 敵과 戰鬪하고 있는 가장 優待 받을 光復運動者가 도리여 選擧權과 被選擧權이 喪失되고, 또 그런 結果로 選擧에 參加하기 爲하여 重要한 前方工作을 等閑視 或 放棄하고 後方으로 모아드는 現像도 發生된다. 또 뿐만 않이라 代行者의 原籍을 區別하여 選擧 하는 것도 亦是 不合理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代行者의 原籍을 標準하여 選擧하는 결과에 某道에서는 後選人이 過剩이 되고 某道에서는 根本後選人 不足으로 議員을 다 補選할 수 없게 된다. 그럼으로 우리는 이 條文을 下와 같이 改正하게 提議한다.

 「國內人民이 直接選擧할 수 없을 때는 臨時政府 法令□ 通行할 수 있는 地帶에 있는 光復運動者가 選擧權을 代行할 수 있음」

 둘재 現行 約憲에 議員의 任期가 無定한 것은 等於終身 任期인대 이야말로 各國에 例 없는 不合理한 現像이요. 또 一般民主國家議員의 任期는 대개 不過 三十四年이나 우리는 日前에 動탑한 世界局세와 劇烈變化하는 革命時期에 處하엿슴으로 議員의 任期를 短促 식히며 一年으로 規定하기로 提議한다.

 셋재 各部 部長制는 各部에 對한 事務를 部長 一人이 負責함으로 그 制度가 進步한 革命的 制度하고 볼 수 없고, 또 各項 事務를 完滿하게 進行할 수 없는 것이 事實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各部 部長制를 各部 委員會制로 改變하여 各方 人才를 網羅 집中하기로 提議한다.

 勿論 이 外에도 改正할 點이 있다고 보나 다만 篇幅上關係 一一히 列擧치 못하는 것은 遺憾이다. 또 今次 李議員 復原 等 約憲改正提議에 對하여 우리는 原則上 同情을 表하다. 다만 次期에 提出하자는대 對해서는 不滿하다고 生覺한다. 그 理由는 다름이 않이라. 日前에 緊急히 修改할 問題를 次期로 밀우는 것은 等於臨時政府를 次期에 擴大 及 强化하자고 하는 主張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以上의 理由로 提議하고 議員諸賢들이 다시 再考慮하시기를 深切히 바란다.

 會場速寫 第四日

 十月 三十日 午前 八時 半 開會豫定보담 三十分에 넛게 開會되엿다.

 議事日程

一. 新選議員審査의 件

一. 各種 委員會組織의 件

一. 本院 行政報告

一. 政府의 政務報告

一. 各部行政告

 開 會

 二日間 休會한 後 議員諸公은 새로운 精神과 和睦한 氣象으로 다시 一堂에 團聚 金議員 學奎를 除한 外 全體 議員 出席.

 開會벽두에 趙議員 碗九의 提議로 每日 開會는 議員 一同이 국긔를 向하야 最敬禮로 開始할 것을 滿堂一致로 通過하고 곳 議員 一同은 起立하야 국긔를 向하야 最敬禮하엿다.

▪ 閔議員 弼浩氏의 辭職提出 辭職 接受

▪ 孫斗煥 · 金鐵男 兩議員에 對하야 審査委員會에서 審査 通過

▪ 分科委員會組직

 當選된 各科常任委員

  第一科(法制 請願 懲戒) 朴贊翊, 崔東旿, 柳子明, 委員長 車利錫

  第二科(內務 外務 交通 敎育 實業) 趙琬九, 趙素昻, 李光濟, 申榮三, 李然浩, 委員長, 趙琬九

  第三科(財政 預算 決算) 李始榮, 崔錫淳, 安勳, 嚴恒燮, 文逸民, 委員長, 崔錫淳

  第四科(軍事) 曺成煥, 柳東說, 李靑天, 金若山, 李復源, 委員長, 柳東說

▪ 臨時議政院行政報告

 議長 洪震, 副議長 崔東旿, 秘書長 李雄, 秘書 尹澄宇 · 崔省吾議員總數 四十八員

 第三十三屆 議會 以來 一年間 院務는 六日에 座談會 一次를 向하엿을 뿐

 政府의 政務報告

 秘書長 車利錫은 金主席九를 代表하야 一年間 政務報告를 하엿다. 多事한 過去 一年間 臨時政府의 對內對外한 施政은 如何히 하엿든가? 이는 議員諸公만이 알고저 渴望할 뿐 않이다. 每個 조선同포가 다갗이 알고저 하든 것이다. 三十年에 亘한 十餘 年의 報告는 議員들의 注視를 끄럿다. 一年間 國務會議 三十一次 其中 主要한 決議事項으로 光復軍活動 九個 準繩, 大韓民國建國綱領, 光復軍內韓國獨立黨黨部設置, 美州韓僑志願兵組織 外交委員會 設置.

 臨時政府所在地 範圍規定, 國旗樣式規定 等 十餘 件에 關한 決議簡單한 報告나마 記者로 하야금 政府諸公이 國家獨立을 爲하야 惡戰苦鬪하엿다는 感을 준다. 貧弱한 우리 民族의 現 處地를 脫出하랴면 오즉 우리 民族의 民主的 團結과 力量의 總 集中 培養에 있다.

 下午 一時부터 各部 行政報告가 開始되다. 傍聽席에는 벌서부터 滿席이다. 內各部長 趙琬九氏는 前日보담 快活한 姿態로 一年間 內務를 僅 十分에 報告完了하엿다. 議員들의 顔色에는 알고저 하는 問題가 많엇다.

 軍務部長 曺成煥氏의 報告

 「民族獨立에 千載難逢」에 機會를 마저 원수 敵과 총 한 방 쏘지 못하는 우리의 形便에 軍務部長이라 年老한 曹部長에 嚴숙하고도 悲壯한 목소리는 聽者에게 無限한 愛國的情緖를 너어주었다. 우리는 엇지 하여서 우리의 光復軍은 充實히 하여 民族獨立解放運動을 爭取할 有力한 革命的國軍으로 만들 수 있을가? 氏의 報告는 西北軍事代表團光復軍總司令部 第一支隊, 第二支隊 及 原來 第五支隊에 關한 工作 及 人事 等事에 關한 것이다.

 法務部長 朴贊翊氏 報告

 「나의 職務는 不管部部長의 格으로 아무 일이라도 하게 되며 事實上 主席의 紀要秘書의 일을 하여 왓슴니다. 法務에 關한 報告는 없음니다.」

 財務部長 李始榮氏 報告

 七十三歲의 最高齡의 議員이다. 政府의 財政收支에 關한 簡單한 報告 二十三年度 結算總數 五十四萬 三千九百十六元 二十四年 一月 至 九月 總收入 六十五萬 餘元

 마지막을 洪議長은 明日 議事日程은 向의와 質問이라고 宣佈하고 散會.

 外務部長 趙素昻氏의 外務報告

 氏는 洪랑한 音聲과 嚴숙한 姿態로 臨時政府의 外交目標는 「國家獨立」, 「政府承認」에 있다고 言明하며 一年間 對外關係와 國際來往에 關한 報告를 하엿다. 「今後 外交를 打開하라면 반다시 먼저 우리 民族 內部의 精誠團結과 强壓力한 民族의 革命力量이 있어야 된다. 이러한 事實을 創造하는대서 비로소 우리의 外交는 打開될 것이다. 對外問題의 鮮決은 오즉 우리 民族 內部에서 求할 것이다.」 滿場에 拍手로 氏는 이 結語를 마치고 말엇다. 氏의 結語는 氏의 多年間 外交生活 中 體驗한 苦衷이고 日前의 우리 運動展開에 鐵則이다.

 第五日

 十月 三十一日 上午 九時 開會 今日붙어 議會는 漸次로 興味있고 긴장한 節目으로 進入하엿다. 議員들의 顔色은 긴장 興奮하여 辯論을 準備하고 嚴숙한 態度를 가지고 있다. 開會벽두. 王通氏 問:「헐 聲明의 仔細한 내용」. 李然浩氏 問:韓吉수氏에 關한 것의 疑問. 趙素昻氏 金主席九 答覆:韓吉壽氏 經歷 等에 對한 嚴恒燮氏 補充說明이 錯誤되엿다고 王通氏가 熱烈히 辯明. 朴建雄氏 問疑:韓國光復軍內韓國獨立黨特別黨部를 設置할 것을 特許. 國務會議에서 決議한 用意와 今後 各 黨派에게도 同等한 黨派的活動을 容許할 것인가? 政府代表 趙素앙氏의 答覆:過去 되여온 事實을 說明하고 今後 問題는 今後로 미룬다고 하엿다. 韓志成氏 問疑 光復軍活動 九個 準繩에 交涉經過와 共同活動責任은 어대서 질 것인가? 趙素昻氏의 答복:過去對外關係의 不統一現象과 光復軍交涉經過를 말하고 그 責任 如何는 다음 質問에 미루기로 한다.

 美領信任議員 柳光波에 對한 것:孫議員 斗煥氏는 柳光波 議員이 當選에 있어서 그 被選된 法律手續問題에 關한 것을 問하되 保留하야 質物하기로 한다고 하엿다.

 下午 二時붙어 續會

 柳林 議員의 羅月煥 事件에 關한 問의 確實한 消息에 依據하면 羅月煥 사건을 被捕된 者의게 韓國光復軍總司令部에서는 被捕된 人名을 槍決하야달나고 中國當局에 要求하엿다는대 政府當局이 其有無와 眞相을 說明하야 주기 要請한다」. 軍務部長 曺成煥氏 答覆:「一言이면 本人은 잘 모르겟다.」 柳議員:한 革命者의 죽음에 對하야 잘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된 소리이다. 그 眞相을 잘 아라서 限期 答覆하야 주기 바란다. 李興官 議員의 發言이 있엇다.

 柳東說 議員에 美州議員選擧手續에 關한 問題의 嚴議員 恒燮의 說明. 王通氏의 今番 土僑選거問題에 關한 問疑 金議員 冠吾答覆.



孫斗煥 議員 質問 昨年 議會에서 議長이 補選할 것을 內各部에 通知하엿슴에도 不拘하고 內務部에서 補選하지 않이 한 것을 約憲에 規定된 人民의 主張을 侵憲하엿다고 認定한다. 그 뿐 안이라 今番 美領選擧도 亦是 公布한 選擧의 法的手續을 밟지 못하엿다고 認定한다.

趙內長 答 慣例에 依據하야 또 現實事情에 依據해서 늉通하엿다는 意思를 表示. 孫議員 斗煥:約憲은 現實事情에 依據하야 늉通應用할 수 없는 것이고, 또 今年 八月 四日에 公布한 第十六條에 依據하야 慣例는 今番 選擧에 適用할 수 없는 것이다. 美領도 亦是 重慶에서 行한 것과 같은 選擧手續을 經過하여야 될 것이다. 政府代表:「無答」

申議員 榮三 質問 建國綱領은 建國의 基本精神과 國家의 基本制度를 規定한 것이다. 이 重大한 綱領을 議會에 通過없이 國務會議에서 決議로 公布한 것은 政府의 越權이고 違憲이라고 認定한다. 趙委員 素昻答:政府는 約憲 第二十六條 一項 「光復運動方略과 建國方案을 議決함」에 依據하야 建國綱領의 決議公布는 職權行使라고 認定한다. 李議員 光濟 質問:第二十六條 一項은 單 「議決함」이라고 있을 뿐이지 公布하라는 말은 없으니 엇지 公布하엿는가? 趙委員 答:「政啓는 議決할 뿐 아니라 또 公佈도 할 수 있는 것이다」고 했다.

 白熱化한 質問戰(選擧問題에 關하여 趙內長과 孫議員 斗煥間에)

 選거規定과 議員選거問題에 關하야 孫議員 斗煥이 「今次 政府에서 制定公布한 選거規定은 臨時約憲에 違背될 것이라고」 約憲 第四條와 選거規定 第二條를 들어 明白하고도 適切한 法理解석을 한 後 趙內長에게 答覆을 要求.

 趙內長은 現勢로 보아서 滿洲는 內地와 情形이 近似함으로 約憲 第四條 第二項의 規定은 滿洲에도 適用할 수 있다고 認한다고 答辯. 孫議員은 다시 「憲法은 類推解석을 許諾지 안는다고」 趙內長에게 肉迫하매 趙內長은 答辯을 避하엿다. 孫議員은 다시 論鋒을 轉하야 法은 그 法을 制定한 者도 遵守치 안으면 안된다고 前提를 置한 後에 約憲 第一條 第四條를 들어 우리나라의 主權者는 人民이라는 것과 選거는 우리 主權者의 主權發動의 唯一한 形式이라는 것을 公論한 後에 憲法 第十八條 末項을 引用하야 「昨年에 議政院開院 前 一月에 議長이 政府로 議員補選 通告로 함에도 不拘하고 內長이 選거手續을 行치 안는 것은 그 主要 事務에 對한 失職인 同時에 約憲上의 義務를 履行치 안는 것이냐?」고 질問하매 趙內長은 「그것은 事實과 政策에 置重해서 되여진 일이니 法理로 따지자면 責任을 질 수 밧게 없다」고 答覆.

 孫議員은 또 論鋒을 轉하야 政府委員과 內長의 說明을 들으면 今次 美領議員의 選거는 慣例에 依하여 行하엿다고 하나 今次 公布된 選거規定 第十六條에는 「從前에 施行하는 規例는 此를 廢止함」이라는 明文의 規定이 有한대도 不拘하고 美領에 限해서는 從前의 慣例에 依하엿다는 것을 確實히 違法이라고 斷定한다. 內長은 엇더케 생각하느냐?」고 質問함에 對하여 內長은 答변을 하지 안엇다. 孫議員은 「答변치 못하는 以上 더 窮追할 必要는 없다」라고 座位에 안즌 채로 말하고 質問을 終了하엿다.

 質問戰의 重要性

 우리들은 政府와 政府諸公을 愛戴한다. 愛애하는 마음이 많으면 많을 싸록 政府 及 政府諸公에 對한 關心과 督녀가 더 큰 것이다. 疑問과 錯誤가 없을 수 있으랴? 그럼으로 우리들 議員은 어대의 基本정神 우에서 或은 苛혹한 질問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政府를 爲한 것이며, 또 우리 民족을 爲하는 것이다.

 會場速寫 第六日

 十一月 一日 上午 九時 開會 今日 節目은 昨日에 게속하야 질문. 全體議員 出席傍聽席에는 王海公 · 金穀漢 · 金仁哲 等으로 만座.

 建國강領에 關한 질問

 李議員 然浩 約憲 第二十六條 一項:「光復軍運動方略과 建國方案을 議決함.」 方案의 「案」字의 字義는 凡未決에 件을 말하는 것이다. 그럼으로 그것을 發表하는 것은 越權이다. 趙政府 委員 答:政府는 生覺하는대 이것은 越權이 안이라 職權行使이며 同時에 이것은 卽時 實施하자는 것은 안이고 오즉 장來 鴨綠江을 건너서 實施할 建國大計를 말하는 것이다. 例를 든다면 中國政府도 建國大綱을 發表實施햇다.



金議員 鉄男 질問 廣東政府 때 中國政府가 建國大綱을 發表實施한 것은 中國이 國民黨의 以黨治國인 까닭이지마는 우리는 以黨治國의 形便이 않이다. 뭇고저 하는 것은 建國綱領이 法令이야? 法令이 않이냐? 孫議員 斗煥 質問(見白 熱化한 質問戰)

 外交問제에 관한 質問



崔議員 錫淳 趙外長 報告에 依하면 對外問題는 對內에서 求하여야 한다. 中國外交部長 郭泰棋氏, 中國外交部 傳次長, 中國最高國防委員會 王秘書長과 面談 가운데 亦是 그러한 意思를 表示하엿다 하며 政府當局으로서는 얻어한 努力이 있엇는가?

趙政府 委員會 答 過去는 유감이다. 今番 議會 內에 各方 人士가 集中된 것도 한갓 表現이겟지만은 今後 새로운 方策과 實施될 것을 確信한다.

 補選問題에 關한 질問



崔議員 錫淳 質問 昨年 第二十三屆 議會 때 中國憲兵을 請하야 議員의 入場을 간涉한 것은 國家政府의 尊嚴과 體面을 손상하는 行動이엿다.

趙內長 答 本人도 이 事件에 對하야 유감으로 生각한다. 그러나 그 當時의 實情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모다가 逮捕되여 갈 우려가 보이기에 그렇게 하엿다.

金議員 鐵男 質問 本人의 理由는 崔議員과 같다. 단지 바라는 것은 趙內長은 事件에 對하야 法的으로 責任을 져야한다.

趙內長 答 萬一 法的으로 責任을 져야 한다면 그는 議院에서 處理할 問題라는 意思를 表示하엿다.

때는 벌서 四時 四十分 光復軍問題에 對한 質問은 時間關係로 明日로 미루고 散會하엿다.

 白熱化한 質問戰(建國강領에 對하여 政府議員 趙素昻과 孫議員 斗煥間에)

 孫議員 斗煥氏가 建國강領問題에 關하야 『建國강領이 法令이냐 或은 現 內각의 政策을 表明하는데 不過한 一種政治的 프로그람이냐? 萬一 法令이라면 그 法領을 土地國有 等 財産制度를 規定한 것이니 憲法이 안이면 規定할 수 없는 것을 議會가 않인 國務會議의 議決로 規定한 것은 合法이 않이며, 萬一 一種 政治的 綱領에 不過한 것이라면 今次 選거人 登記表에 一切 法領과 並列하야 그 遵否 如何를 人民에게 問한 것은 失當한 것이라고 認한다. 法領이냐 않이냐를 明白히 答覆하라』고 趙政府委員에게 質問하매 趙政府委員은 『政府는 憲法 第二十六條 第項에 規定에 依하야 그러한 간領을 公布할 職權이 있다고 認하야 議決公布한 것이다. 그것을 法領이라고 하든지 않이하든지는 君等의 解석에 맛긴다』고 答변. 孫議員은 다시 『政府委員의 答覆 要領이 없고 誠意가 없는 答覆이나, 政府에서 議決할 수 있는 것은 「命令」도 있고 其他 案件도 있는 것이다. 第二十六條 二項 法律과 命令에 關한 事項을 議決함. 三項 豫算結算 豫算基礎 及 其外支出을 議決함. 4項 宣戰講和 及 條約締結에 關한 一切를 議決함 等도 政府職權이다. 그러타하야 이 모든 것을 議會의 通過없이 政府가 모다 公布 或 實施한다면 議會는 무엇을 하는 것인가? 내가 只今 뭇는 것은 建國강領이 法領이냐 않이냐를 뭇는 것이다』라고 進述. 趙委員은 長兵舌을 吐하야 問題의 焦點을 回避하고 着席. 孫議員은 다시 起立하야 『內容이 없는 長兵舌로 問題의 焦點을 回避하는 것은 窮策이다. 是냐 否냐의 明確한 答覆을 하라』고 脅迫. 그 때에 洪議長이 起立하야 質問은 明確하고 要領이 있엇으나 政府委員의 答覆은 要領을 不得하엿다. 더 무러야 나올 것이 없으니 質問을 修了하는 것이 좋겟다고 宣布하매 孫議員은 『政府委員이 지금 明確한 答覆을 할 勇氣가 없다면 國務會議를 열고 討議해 가지고 明日 開會時에 答覆하라』고 質問을 中止. 王議員通이 起立하야 『孫議員의 質問에 對한 政府委員의 答覆은 퍽 어색하엿다. 答覆을 하는 것은 屈服을 表하는 것이다. 本員은 趙政府委員에게 對하야 同情을 禁치 못한다. 그러나 答覆할 것은 하여야 한다』고 暗中에 族矢. 그 뒤를 니여 金議員 鉄男이 起立하야 『政府委員으로써 예쓰 或은 노의 答覆을 하짐 하는 것은 卑怯한 行動이다. 開會이냐 아니냐를 明答하라』고 短刀直入 하엿으나 趙委員은 答覆이 없으매, 洪議長이 起立하야 “孫議員의 要求대로 明日에 答覆하게 한다”라고 論戰을 排開하엿다.

短評

 昨今 兩日間 白熱化한 질問戰이 本格的으로 展開되엿다. 그런데 場內에 表現된 一耘 現象은 所謂 「在野黨議員」의 質問이 第一 많고, 「政府黨格인 議員」의 質問은 퍽 적다. 그래서 맛치 「在野黨議員」과 「政府黨議員」間에 區分이 있는 듯이 表現된 것은 퍽 유憾이다. 正當한 質問戰은 善意的 立場에서 政府를 鞭撻하는 것임으로 全體議員은 이 質問戰에 踊躍參加하자!

 今夜(十一月 一日) 午後 六時에 金主席九의 招待로 全體議員이 晩餐宴會에 參加햇다. 全體議員은 金主席 及 政府諸公의 이러한 好意에 對하여 眞心으로 謝意를 表햇스며 또 精誠團結과 親家의 情緖가 滿堂에 充溢하엿다.

 金九 · 李靑天 · 洪震 · 金若山 · 趙素昻 · 朴建雄 · 孫建 · 朴贊翊 · 趙琬九 · 李興官 諸氏의 順序로 意味深長한 演說이 있엇는데 모다 團結의 必要를 力說햇다. 各 黨派 人士가 參加될 今次 會議는 非常히 重大한 民族運命을 決定할 會議이다. 우리는 意見의 不一致로 다시 分裂되여서는 않이된다. 이것의 唯一한 關鍵은 投票決로 解決될 것이 않이라 오직 和平的 協議的 方法으로 主張의 不一致를 接近一致 식혀서 合理的으로 解決하는데 있을 뿐이다.

 ◊ 『우리 通訊』 第五號

社址 重慶南岸大佛叚一五○號

時日 十一月 一日

社說

 團結을 爲한 우리의 主張!

 五千年間의 찬란한 文化와 歷史를 갖인 우리 民族은 不幸이도 主로 內爭으로 因하여 國力이 疲弊하게 되자, 마침내 日本帝國主義의 殖民地가 된 後 今日 같이 朝鮮民族解放運動에 有利한 國際的 情勢는 없엇다. 이러한 千載一遇의 機會에 海外에 있는, 우리들의 主要한 任務는 全世界 反侵略民族과 國家의 物質的 技術的 援助를 獲得하여, 祖國獨立의 基礎를 確立하는데 있다. 이러한 時期에 臨時議政院 第三十四次 會議는 열렷다. 今次 會議에는 各黨 各派 及 無黨 無派의 優秀한 분들이 參加됨을 따라서, 內部不團結의 약點을 能히 冕服하고 政府를 强化할 有力한 前提를 形成한 것이다. 이 前提를 善히 利用하여 國際的 有利한 條件을 놋치지 않기 爲하여서는 以下 몃가지를 執行하는데 있다.

 첫재:우리 臨時政府는 主權을 가진 獨立國家의 政府도 않이요, 따라서 統治機構도 못된다. 祖國光復을 爲하여 鬪爭하는 流는 政府인 것이다. 그럼으로 目前, 이 곧 具體的 事實로 보아, 우리 政府는 絶對로 某黨 某派의 政府가 되여서도 않이 되고, 또 될 수도 없다. 오직 各 黨派나, 各 個人의 優秀한 人物을 網羅식인, 各 黨派 聯合의 政府가 되여야 한다. 다만 議政院 內部에 各 黨派나, 各 個人들이 形式的으로 參加되였다는 點에서 實質的으로 各 黨派 聯合의 政府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오직 各 黨派 及 個人들의 優秀한 分子를 政府에 參加식히는데 있다.

 둘재:지난 時間과 條件에서 制定되엿든 現行 約憲과 建國綱領을 今日의 現實에 符合하도록 卽時 修改하여야 할 것이다. 各黨 各派 合作의 政治的 基礎 우에서 反日民主를 原則으로한 國家制度 · 政治 · 經濟 · 文化에 關한 明確한 規定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이 있어야 비로소 事實上으로 强한 團結이 있을 수 있고, 또 政治的 堡障이 生기게 된다. 이와 反對로 現狀을 延長하자는 것은 緊急한 革命任務를 遲延하는 것이며, 眞正한 合作團結의 堡障을 去勢하는 것 뿐이다. 이것은 有害한 見解임으로 우리는 堅決히 反對한다.

 셋재, 今次 會議는 一種 各 黨派合作 場所라고도 할 수 있음으로 意見과 主장의 不一致한 點이 不少할 것이다. 그럼으로, 다만 投票決에만 滿足할 것이 않이라. 不一致를 調和 接近싴이기 爲하여 議員俱樂部 같은 것을 院外에 設立할 必要가 있다고 生각하며, 이 臨時性의 組직을 會議 完了后는 더 發展식혀서 各 黨派合作의 聯合機構로 轉化식히는 것이 必要하다고 生각한다. 그럼으로 各 黨派, 各 個人의 眞正한 統一團結의 完成과 强有力한 政府의 建立은 반드시 以上 3項의 實現을 通해서만 可能하다. 그럿치 않고 現在의 이 程度의 狀態로 滿足한 統一이 造成되엿다고 할 수 없으니 우리는 精誠團結하며 게속 共同奮鬪하자!

 ◊ 『우리 通訊』 第六號

社址 重慶南岸大佛叚一五○

時日 十一月 二日

社說

 우리의 主張!

 우리들은 강한 統一을 主張한다. 또 그 實現을 爲하여 極力 奮鬪하겟다. 그런데 그 강한 統一의 實現은 形式的 集合에 있는 것도 않이며, 또 無條件的 讓步 或은 消極的 服從에 있는 것도 않이다. 반드시 原則이 있고 方法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그 原則은 무엇이냐? 原則은 卽 現臨時政府의 優良한 要素는 極力 保存하고, 缺陷의 要素는 改正하여 적어도 海外에 있는 各 方面 人士가 眞正으로 支持할 수 있는 강有力한 政府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方法은 如何한가? 其方法으로서 今次 議會에서 반드시 討論되여야 할 몃가지가 있다.

 첫재:建國綱領이 必要하다. 建國강領을 全體 共同信條로 우리들의 意志를 集中하는데 누가 反對할 것인가? 積極 贊同한다. 그러나 現在의 建國강領을 部分的으로 修改한 后 議會에 通過식히는 臨時手續을 밟자!

 둘재:臨時約憲을 部分的으로 今次에 修改하자. 이와 같이 緊急한 時期에 缺陷을 發見하고서도 次期로 미는 것은 革命의 利益에 對한 損害이다. 「우리 通信」 第五號 專論에도 임이 말한 바와 같이 重경과 美洲에 있는 光復運動者를 除한 外에는 其他 前后方 各地에 있는 光復運動者는 選거權, 被選거權이 없는 것이 事實이니 얼마나 不合理냐? 全部 參加식히는 것이 事實에 合當하다. 議員의 任期를 規定하자. 任期가 終身이라는 것은 理論으로나 實際로나 너머나 不合當하지 않느냐?

 各部 部長制를 各部 委員會制로 改正하자!

 셋재, 政府의 機構에 各黨의 人士를 實際情形과 □□前 形便에 맛도록 適當히 參加식히자. 이렇게 하는데서 各 方面의 人力을 可能한대로 動員 集中하게 되는 것이다.

 以上의 세가지는 우리 主장의 大體의 輪廓이다. 이것에 對한 더 詳細한 討론은 全體 議員이 共同討論하여 보자. 討論하는 方式으로는 正式 會議에서도 되겟지만 더 좋은 것은 非公式으로 討論하는 것이다. -끝-

 ◊ 『우리 通訊』 第七號

社址 重慶南岸大佛叚一五○號

時日 十一月 四日

社說

 謠言을 闢함

 今次 議會의 七,八日 동안 經過를 본다면 一般的으로 順利하게 進行되고 있다. 그러나 順利한 過程 가운대에서 相當한 複雜性과 困難性이 包含되고 있는 것도 亦是 不可 否認한 事實이다. 勿論 이 複雜性과 困難性은 決코 偶然한 現象이 않이요 各 黨派間 彼此의 一時的 矛盾과 또 多年間 咸見과 隔膜으로 因하야 相互間 信任關係가 建立되지 못한 것이 이 複雜性과 困難성의 産生의 原因이다. 그러나 이 複雜性과 困難은 우리 客觀的 環境과 自新의 主觀的 努力에 依하야 解消되며 克服될 수 있다. 그럼으로 우리는 今次 議會의 前途에 對하야 그의 光明을 膽望하면서 無限한 樂觀을 表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만 原則的 樂觀에 陶醉하여 實際에 逢着하고 있는 暗流를 等閒視할 수 없는 것이 事實이다. 다시 明白하게 말하면 日前 議會進行中에서 名种無稽한 謠言蜚語가 公公然하게 流行되고 있으며 또 이 謠言蜚語의 流行으로 因하여 今次 議會의 複雜性과 困難性을 增加식이고 있다. 이 謠言蜚語는 勿論 彼此 無意識中 誤解와 錯覺으로 因하야 産生되는 것도 事實이다. 그러나 統一의 機會를 利用하야 當權者에게 媚視하며 自己의 地位慾을 만足하려고 하는 投機者가 故意로 製造하는 것도 事實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이 無稽한 謠言蜚語를 暴露하는 同時에 우리의 態度와 立場을 鮮明히 하려고 한다.

 그러면 目前에 流行하고 있는 謠言蜚語의 內容은 무엇인가?

 첫재:『南岸新議員들은 基本的으로 建國강領을 否認한다는 것이다』고

 둘재로 『臨時約憲을 修改하자는 目的이 基本으로 現內閣을 打倒하자는대 있고 또 內각 人數를 十七,八人 或 二十餘人에 增加하려고 한다는 것이다』고

 셋재로 『臨時政府와 光復軍을 基本으로 推翻 或 取消하려 한다는 것이다』고

 以上 세가지 問題에 關하여 本報 社說에 이미 우리의 見解를 表示한 바이나 우리는 謠言을 闢하고 團結을 爲하는 12萬 分의 誠意로 下와 같이 우리의 主張을 다시 鄭重히 宣佈한다.

 첫재, 建國강領에 對하야 內容을 修改하고 또 今次 議會에서 法的 手續을 經過한 後 우리 民族의 共同한 강녕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요 決코 基本的으로 否認하자는 것이 않이다.

 둘재, 憲法 改正하자는 目的은 臨時政府를 群衆의 基礎우에 擴大 强化하자는데 있고 決코 現任 國務委員을 打倒하자는 것이 않이다. 우리는 現任 國務委員 七人에 對하야 現在에만 擁護支持할 뿐만 않이라 또 憲法 修改한 後에도 亦是 國務委員으로 推戴할 것을 誓言하며 또 現 國務委員 七人 外 其他 各 黨派 中에 年高德邵하고 現 國務委員과 同等한 資格을 가진 人士들을 國務委員에 參加식히자는 것이요 決코 無原則하게 國務委員 人數를 過多하게 增加하자는 것이 않이다.

 셋재, 臨時政府를 우리 最高革命機構로 하자는 것은 우리의 一貫한 主張인 以上, 臨時政府를 推번한다는 謠言에 對하야 다시 더 辨明할 必要도 없고 또 光復軍은 九個 條件을 改正하자는 것이요 決코 光復軍을 取消하자는 것은 않이다.

 우리는 以上과 같이 明白하게 聲明하는 同時에 謠言製造者에게 至誠으로 愼重 自處하게 忠告한다. -끝-

短評

 團–結

 團결은 우리 民族의 獨立運動에 있어서 生命이다. 그럼으로 누구나 다 團결을 갈望하고 또 團결을 위하야 努力하랴고 하며 今番 議會를 通하야 實際上 團결을 求하자 하였다. 그러나 議會 十日동안을 經過하는 中 우리가 갈望하는 團결의 實現은 많은 支障을 보이며 이 支障을 共同히 克복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前途는 樂관을 許하지 않으며 그 結果는 民族 全體의 悲극을 演出할 우려가 보인다.

 如何히 하야 實際 團결을 促成할가?

 첫재, 當面한 約憲修改, 建國강녕 等 主要問題에 對하야 各方의 不同한 見解가 存在하고 있는 것은 嚴然한 事實이다.

 如何한 方式을 選用하든지를 不問하고 이 不同한 見解의 統一이 우리의 團결의 急先務이다.

 둘재, 今番 議會에는 互相理해와 信任이 박약한 各方 人士가 集合하엿슴으로 自然 複雜하다. 그럼으로 互相間 全民族 利益의 立場에서 黨派的 偏見 · 固執 · 優越感을 避하고 雙方을 容許하며 合理의 服從하는 誠意한 態度와 團결을 爲한 各方의 自覺的 意識的 努力이 必要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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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通訊』 第八號

發行者 周世敏

社–址 重慶南岸大佛叚一五○號

時–日 十一月 五日

社說

 今次에 約憲을 修改하여야 할 必要性과 可能性을 略論함!

 昨日 會議에서 約憲修改를 今年에 할 것이냐? 明年에 할 것이냐는 問題로 意見이 一致되지 못했다. 쉽게 生각하거나 또는 問題를 表面만 본다면 相差가 얼마 않이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事實은 相差가 멀다. 이 問題에 對한 態度를 通하며 議員들의 政治理想과 思考方法의 互相差異를 볼 수 있는 問題인 까닭이다.

 今次 반다시 實行하여야 할 必要性과 可能性에 對한 우리들의 信念은 堅決하다. 그러면 그 必要性은 무엇이냐?

 1. 急激히 變化하는 戰時에 있어 一年이라는 것은 平時의 十年, 二十年에 相當한 것이다. 永久히 修改 않이할 憲法이 있을 수 없고, 더욱 隨時로 變化되는 우리들 形便으로는 隨時로 修改하는 것은 일로 보아 有益하다. 缺陷을 發見 못했으면 모르거니와 임이 發見한 바에 缺陷을 延長식히는 것은 「祖國을 光復하며 社會를 改革」(憲法 第一章 第三條)라는 革命精神에 違背된다.

 2. 各地 獨立運動者와 同胞로 하여금 事實上으로 先鋒運動에 參加케 하여야 한다. 이렇케 하는 데서 事實上의 信任과 誠意를 政府에 集中하는 것이다. 全體 同胞가 아모리 愛國心이 强하다 할지라도 自身들이 直接 參考되지 않는限 아모리 宣佈를 하고 信任을 强要한다 할지라도 適切한 關係는 建立 못되는 것이다. 1年이라는 時間은 엇덯게 延長할 것이냐?

 3. 人民 及 光復運動者에게 可能한 凡 國內에서 廣範한 民主를 주어야 한다. 『光復 完成前에는 主權이 光復運動者 全體에 있음』(約憲 第一章 第一條)이라는 約憲의 民主精神이 實施되고 있는냐? 條文에는 있다 하지만 各地에 있는 光復運動者로서는 目前 아모런 主權이 없다. 主權의 發動, 民主의 發揚은 時刻을 다투는 問題이다.

 4. 過去의 政府는 『남의 발길에 채왔고, 上海 亭子間으로 몰려 달녓으나』(諸公-政府-미달) 今后는 重경 · 와싱톤 · 론돈 · 모스크바의 世略的 光榮한 政治舞台에 登臺하게 될려하는 이때에 우리와 旗幟-約憲은 現在의 것으로는 너머나 不合理하고 群衆과 隔離 □□된 것으로 보여준다. 벌서부터 友邦人士들 中에는 約憲中 缺陷을 指定하는 사람도 있으니 政府 承認을 希望하는 이때에 이러한 狀態는 二年을 더 延期한다는 것은 우리들이 堅決히 反對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可能性은 如何한가?

 明年으로 밀자는 분 中에는 그 理由의 하나로 修改는 煩雜한 일임으로 短時日에 不可能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可能하다고 確信한다.

1.完善 完美한 約憲은 數年을 두고 硏究해도 우리 形便으로는 不可能한 것이다. 다만 目前 急需한 點만 修改하자는 것이니 可能하다.

2.「憲法 修改의 必要는 벌서 十餘年 前부터 늣겨왓섯고」(政府 諸公의 말) 또 議員 마음속에도 오래 前부터 修改에 對한 一定한 計劃이 있는 것임으로 只今 새삼스럽게 새것을 創造하는 것이 않이라 다만 年末의 生각을 文字로 形象化, 具體化하는 것 뿐임으로 可能하다.

3.아모리 困難한 일이라 할지라도 非常時期에는 非常한 方法과 精力으로써 못할 理가 없고 光復運動者 中 優秀한 분과 友邦 專家의 協力下에서 短速한 期間에 確實히 修改하기가 可能하다. -끝-

 會場速寫 第七日

 十一月 二日 午전 九時 開會. 主席이 美洲 韓僑聯合會로부터 온 祝電을 朗讀. 昨日 質問戰이 繼속 展開되엿다-建國강領 問題를 中心하고서 議員과 趙素昻氏 間에 質問.



李議員 然皓 建國강領이 法令이냐? 않이냐?

趙部長 答 내가 只今 答覆하려 하는 것은 昨日 임이 말한 바에 지나지 않는다. 이 問題는 法令이냐? 않이냐 答할 수 없다. 다만 國務委員會가 約憲에 依하야 議決한 것을 法令과 近似한 效力이 發生하는 것이다. 現案은? 國務委員이 約憲 二十六條에 根據하여 決定한 것이나 議院은 또 自己 權利대로 處리할 수 있다.

孫議員 斗煥 法令 與否를 뭇는 것은 다름 않이라 萬一 法令이라면 人民이 服從할 義務가 있지만 法令이 않이라면 服從의 義務가 없는 것인즉 法令인가 않인가를 答覆하라고 質問.

議長은 結論하되 이 問題는 質問할대로하고 答覆할대로 하엿스니 더 質問하엿쟈 더 나올 答覆이 없다. 그럼으로 이로부터 이 質問은 終結한다 하엿다.

王議長通은 趙部長에 向하여 臨時政府로서의 中英美佛에 對한 外交政策을 무럿다.



趙部長 答 臨時政府 承認을 獲得하자는 것은 過去 綦江會議때 임이 決定한 바이나 臨時政府라는 일흠은 再昨年 「三一」紀念日 以后로 비로소 對外的으로 宣佈되엿고, 또 去年 光復軍 問題가 一段落을 짓게 됨을 따라 政府承認問題를 各國에 向해 交涉햇는데 그 主要對象은 中國이요, 勞聯과의 關係는 아직 勞聯이 日本과 某種 條約이 締結되여있음으로 우리와 正式外交關係를 못햇다고 하였다. 또 米國과의 關係는 過去부터 密接햇고, 軍火租借法을 우리 韓國에도 實施하여 주고 政府 承認하여 줄 것을 要求한 일이 있다. 英國은 印度關係로 外交界에서 大西洋憲章이 太平洋에 適用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英國은 四大 强國의 하나임으로 繼속 努力하여 外交關係를 打開하려 한다.

王議員 通 問 印度 國民大會와의 外交關係는 如何한가?

趙部長 答 깐듸氏 等이 被捕된 后 慰問電報를 친 일이 있다.

王議員 通 問 國民外交에 對한 政策은 如何한가?

趙部長 答 過去 多少 努力은 해보앗스나 成功은 되지 못햇다.

金議員 若山 問 크롬웰이 헐國務鄕에게준 書信中 「米國이 韓國政府를 承認치 않기 前에는 韓國은 聯盟國과 肩作戰치 않겟다」는 意思의 語句로 因하여 헐의 所謂 「警告」가 通信社를 通하여 全世界에 宣佈되엿으니 이것은 우리 外交上 一大 暫時的 挫折이다. 또 臨時政府를 代表하야 米國에서 活動하는 李承晩氏는 個人 言語 或은 太平洋回報雜誌에 非暴力主義를 主張하는데 如此한 點에 對하여 政府로서는 如何한 保證이 잇는가?

 크롬웰의 信이 萬若 李博士의 意思로 된 것이라면 政府는 勿論 李博士를 譴責하겟다. 李博士의 政見(非暴力主義)에 對하여는 나도 前부터 反對하여왓다. 軍隊總司令官의 責任을 준다면 나도 反對한다. 그러나 外交人材로서는 쓸 수 있다고 말하였다.

孫議員 斗煥 問 크롬웰 信의 內容이 韓民과 我 政府 意思가 않이라는 것을 海內外에 宣佈햇는가?

 헐에게는 電報로 임이 聲明햇다.

孫氏 問 非暴力主義를 信仰하는 李博士로서 엇덯게 軍火租借法을 要求할 것인가?

嚴議員 恒燮 報告 李博士의 最近 著述을 通하여서 暴力主義를 反對치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孫氏 問 웰키가 來渝하엿는데 우리는 何故로 國民外交의 方式을 取하며 歡迎도 못햇는가?

 如此한 計劃에 對하여는 반갑게 接受한다. 不日 英國議會 訪華團이 또 온다 하니 協力하여 잘하자.

 質問은 이로서 完了.

 會場速寫 第八日

 十一月 三日 午前 九時 開會

 政府로부터 臨時政務 報告:「光復軍內 韓獨特別黨部 取消의 件」

 提議案討論

 右無異通過

 提議者:李然皓 · 趙琬九 等 二十五人

 臨時政府 承認問題에 關하여

 臨時政府 二十二年度 豫算超過追認案

 一讀會를 經過한 后 二讀會로 移交하기로 議決

 臨時政府 二十三年度 決算案

 一讀會를 經過한 后 二讀會로 移交하기로 議決

 會場速寫 第九日

十一月 四日 午前 九時 開會

一. 生活費統一問題:右 原案대로 通過

二. 議員歲給支發問題:豫算案 提出될 때까지 保留

三. 國歌 及 軍歌制定問題:右 原案대로 通過

 以上 午前

四. 約憲修正案에 關하여

 『約憲修正委員 九人을 選出하여 修改케 한 后, 次期(明年) 議會에 提出하자는 議案』(提案者:崔東旿 · 嚴恒燮 等)에 對하여 討論이 展開되엿다.崔東旿 · 趙素昻氏 等 諸 議員은 今次에는 修改할 수 없으니 次期로 밀자는 理由를 力說햇고, 金若山 · 金鐵男 · 孫斗煥 · 韓志成 · 王通氏 等諸 議員은 今次 議會에 卽刻 修改한 后 次期 議會時에 效力을 發生하도록 하자는 理由를 力說하엿다. 兩個 主張에 對한 辯論은 끝을 못맛고 散會되엿다.

一. 約憲改正委員會 · 第一次 會議

 a. 時日:十一月 二十一日 午后 二時

 b. 出席委員:車利錫 · 申榮三 兩氏가 缺席 外 全部가 出席

 c. 委員長選거:趙素昻 被選–秘書選거:車利錫 被選

 d. 召集日期:委員長에게 一任

二. 院法 改正委員會 第一次 會議

 a. 時日:同前

 b. 出席:全部 出席

 c. 委員長選거:崔東旿 被選

三. 第三十四次 議會 同人宣言 起草委員會

 a. 時日:同前

 b. 宣言書 通過

四. 約憲改正委員會 第二次 會議

 a. 時日:十一月 二十七日 午後 二時

 b. 會議程序의 決定

  1. 定期會議의 日期:每星期 六十二時 至 午後 五時

  2. 會議期間:卽 大體의 改正範圍 討論期間-一個月 半

  3. 一般的 討論內容

   ㄱ. 體裁    ㄴ. 法的體系    ㄷ. 經驗 及 實際

   ㄹ. 政府形式  ㅁ. 議會政治內容

  4. 分擔

  5. 選擧法起草

  6. 其他

 ◊ 『우리 通訊』 第九號

發行者 周世敏

社 址 南岸大佛叚一五○號

時 日 十一月 六日

社說

 信任關係를 論함

 群衆의 基礎를 떠난 우리 關內 統一運動 戰上에서는 自來로 人與人間 黨派 對黨파 사이의 「信任」問題가 重視되여 왓고 特히 今次 議會進行中에서 自來로 宿題되여 오든 「信任」問題는 더욱 高調되고 있다. 그럼으로 우리는 이 問題에 關하야 若干의 議見을 말하고저 한다.

 信任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所謂 人與人間의 信任이라는 것은 決코 彼此의 감정的 關係나 或은 單純한 人間的 交際來往에 依하야 自然 成立되는 不可摸捉할 抽象的 名詞가 않이요 오직 某 時期 某 地點에서 共同한 目標와 共同한 事實을 中心하고 合作奮鬪하는 過程 가운데서 形成되는 人間關係의 具體的 實踐의 反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으로 古語에도 云하되 「期之以事」 「以看其信」이라 하엿고 또 革命的 立場에서 말한다면 共同한 革命目標와 共同한 革命事業을 떠나서 「信任」問題를 云謂할 수 없는 것이다. 例를 들어 말한다면 目前 中 · 蘇 · 英 · 米의 信任關係는 共同한 反파쇼의 目標와 共同한 反파쇼의 鬪爭으로 因하야 建立된 것이요 在中國 國共의 信任關係는 亦是 日本 帝國主義의 炮火下에서 國共 兩黨의 流血이 共同한 抗日戰場上에 凝結됨으로 因하여 建立되고 있다.

 그러면 日前 우리의 共同目標가 日本 帝國主義를 打倒하고 우리 民族의 自由獨立을 爭取하는대 있다는 것은 다시 說明할 必要도 없고 또 日前 우리의 具體的 事業이 臨時政府와 光復軍을 擴大 强化하자는대 있는 것이 事實인 以上에 우리의 彼此間 不信任할 條件은 무엇인가? 또 雙方에서 다 不信任한다는대에도 不拘하고 一方에서는 依然히 不信任하고 또 信任할 수 없다는 理由는 무엇인가? 勿論 우리는 信任할 수 없다는대 對하야 自身의 反省이 絶對 必要로 認하나 雙方의 反省도 亦是 必要로 認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事業을 中心으로 한 信任을 要求하는 바이요. 共同의 事業이 必要함에도 不拘하고 自身에 對한 服從 如何로 信任 不信任을 標準할 수 없는 것이라고 認한다.

 더욱이 目前 우리가 處한 形便으로 만일 自己의 民族과 自己나라의 革命同志를 不信任한다면 어너 民族과 어너 나라의 革命同志를 信任할 것인가? 勿論 中 · 蘇 · 英 · 美가 모다 우리의 友軍이요 또 中國은 우리와 가장 親切한 友軍이나 암만하여도 民族과 國家의 차異가 있는 以上 自己의 民族을 信任하는 것과 比較할 수 없는 것이요 또 오직 自己의 民族을 信任하는 우에서나두 民族의 信任을 @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 만일 自己 民族의 前途에 對하야 失望하고 悲觀하지 안은다면 오직 自己 民族과 自己나라의 革命同志를 信任할 수박게 없다고 生각한다. 最後에 다시 具的으로 말하고 싶은 바는 …

 첫재 甲方이 乙方에 對한 信任 不信任은 自己에 對한 讚成 不讚成으로 標準할 것이 안이라 오직 革命工作에 對한 忠實 不忠實로 標準할 것이고, 둘재 甲方이 乙方과 事業上 關係로 合作이 必要로 認한다면 먼저 自身이 雙方에 對한 誠意와 信任을 表現할 것이요 決코 自己가 表現하기 前에 먼저 對方의 誠意와 信任을 要求할 것이 안다라, 셋재 甲方이 乙方과 信任關係를 建立할 必要가 有하다면 먼저 合作關係를 建立하여 具體的 革命工作에 共同從事하도록 努力할 것이요, 決코 먼저 信任關係가 建立된 後에 革命工作을 같이 하겟다고 生각할 것이 안이다. 우리는 以上과 같이 說명하는 同時에 海外에 流亡하는 우리 朝鮮民族은 老年과 先輩가 靑年과 後進을 信任하며 靑年과 後進이 老年과 先輩를 擁護하여 光明한 自由的 朝鮮의 前途로 共同邁進하게 바란다.

 會場速寫 第十日

十一月 五日 上午 九時 開會

 구슬픈 山城에 秋雨는 興奮된 사람의 腦를 다시 沈內케 한다. 各 議員은 벌서부터 臨時政府 집에 모이엿다. 방청席에는 王海公 · 蔡元凱 等 諸氏로 滿座, 昨日부터 緊張히 討論된 約憲修正案은 今日 다시 登程.

 約憲修正 一讀會

 時間 節省과 秩序維持를 爲하야 趙議員琬九는 發言人이 十分式 發言하기를 提議하였다.



申議員 榮三 約憲은 今次 議會에서 修改하여야 된다. 現行 約憲은 한 生物體에 比한다면 慢性病이 안이요 急性病이다. 또한 生物體의 慢性病을 急性病으로 治療하여도 生物體에 被害가 되는 것은 안이다. 그럼으로 나는 우리 憲法을 急性病으로 治療하기로 主張한다.

趙議員 素昻 지금 約憲을 改正하자는 意見은 一致하다. 그러나 時間問題에 있으니 今次 議會에서 修正하라면 議會를 延長하여야 되고 따라서 經費가 만이 들고 또 政府의 모든 事業이 停頓될 것이다. 그럼으로 漸進的 方法을 取함이 可하다고 認한다.

李議員 興官 時間關係로 今次 議會에서 約憲을 修正하지 못한다는 것은 理由가 되지 안는다. 本員에 主張하는 것은 約憲 全體를 修改하야 完滿無缺한 것을 作成하자는 것은 안이다. 但 目前 海外運動 情勢에 適宜한 約憲을 制定하야 海外 各 黨派 統一을 促成하라는대 있다.

李議員 海鳴 臨時政府는 二十餘年來로만은 努力이 있어스나 何等에 重大한 成續이 없는 것도 事實입니다. 目下 海外 各 黨派□는 臨時政府 旗幟下에 集合하엿다. 政府는 此 機會를 如何히 運用할 것인가? 約憲을 今次에 修改하라는 理由는 우리의 內部團體를 加强하는대 있고 우리 革命事業에 發展性이 確實이 有하다고 認함. 絶對 자리다툼을 할나는 것이 안으니 겁내지 말으시고 速한 內로 修改하는 것이 可하다고 認함.

金議員 尙德 今次 議會에서 約憲으로 修改하기를 主張한다. 現階段은 革命時期이다. 따라서 革命的 手段을 運用하여야 한다. 對內하야 團結을 强化하고 對外하야 世界情勢에 配給하기 爲하야 今次 議會에서 반다시 修改하여야 한다. 政府立場에서 본다하여도 約憲修改는 工作의 停頓이 안이 된다. 지금 「革命利益이 高務 一切」의 原則下에서 約憲을 修改하는대서 人民을 總動員할 수 있고, 各 黨派를 臨時政府 旗幟下에 集結식힐 수 있다. 不然이면 總動員 식힐 수 없다고 보니 各 工作을 停頓식히지 말고 速히 修改하여야 된다.

趙議員 琬九 今次 議會에서 冒險的으로 「隨便」하게 修改할 수 없다. 나는 決코 典型的 孤立派나 保守派도 안이다. 事實上 今年에 憲法을 修改하다가 도리어 더 많은 糾紛을 産生케 한다면 그 結果는 더 좋치 못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려되는 바이다.

金議員 鐵男 現 政府 諸公이 臨時政府 承認問題와 光復軍問題를 努力치 않은 것은 않이나 至今 如此한 地境에 達한 이때에 約憲을 今次에 修改하여 新旗幟로 다시 나가면 모든 問題가 前보다 有力하게 順利로 解決될 수 있다. 問題의 解決은 如此 討論하는대 있는 것이 않이다. 서로 誠意를 다하야 信任하고 努力하면 今次 議會에서 約憲을 修改하여 新面目으로 나서야 된다.

王議員 通 約憲을 修改하는 問題는 重要한 政治問題이다. 그럼으로 時間을 爭取하야 修改하여야 된다. 修改는 全民族 團結에 關係되여 臨時政府의 國際地位 提高의 前提이다. 그럼으로 今次에 修改치 안으면 民族革命에 有害하다. 完全無缺한 約憲의 産生은 當面實際環境이 容許치 않는다. 또 革命時期에 있어서는 約憲도 자조 갈 수 있는 것이며, 그뿐 않이라 우리의 修改하자는 點은 우리가 오래두고 生覺하든 것이니 지금 修改는 말머리 속에 있으니 事實은 간단하다.

孫議員 斗煥 完美한 憲法을 作成하자면 不可能하다. 단 時間問題에 있으니 今年에 修改하면 明年부터 效力이 發生된다(選거). 그러나 明年 議會에서 修改한다면 後年부터 效力이 發生되니 時間의 相差가 一年이다. 崔議員東旿氏가 말한 바와 같이 全體 人民을 一是할 政治路線에 引導할나면 반다시 今次에 約憲을 修改하여야 된다. 또 約憲修改는 對內 團結을 表示하며 對外하야 一致性을 表示하는 것이다.
다음에는 今次 議會에서 修改할 수 없는냐, 꼭 할 수 있다고 確信한다. 그리하야 明年 議會에는 滿洲에서 美洲에서 新憲法에 依據하야 直接 議員을 選派하고, 臨時政府는 비로소 人民土台 우에 建立될 것이다. 우리는 무슨 理由로 當面한 이 主要한 問題를 明年으로 미루는가?

安議員 勳 問題는 時間問題이다. 만일 今次 議會에서 修改를 할 수만 잇다면 本員도 今次에 修改하기를 바란다. 然이나 本人이 보건대 政治信條가 달은 各方 人士가 集合한 것이니 때문에 今次 議會에 短期日에 能히 圓滿히 修改할 把握이 보이지 안는다. 萬一 確한 把握이 있으면 그것을 잘 說하야 주시요.

孫議員 斗煥 지금은 民主革命階段으로 다 共同히 認定한다. 그럼으로 政治信條가 달으다고해도 短時日內로 修改할 수 있는 것이다.

議長 一讀會 討論이 如此 進行되엿으니 此案을 二讀會 宣佈하고 散會하였다. 午后는 休會하기로 하엿다. - 끝-

短評

 明年 來明年에도 우리는 重慶에서 流亡生活을 繼속할까?

 今次 約憲問題에 關하야 修改하자는 意見은 完全히 一致하나, 다만 修正時間 問題에 關하여 雙方의 意見은 完全이 分裂되고 있다. 우리가 今年에 修改하자는 것은 다름이 않이라 오직 現行 約憲이 目前 우리의 革命情勢와 不適合함으로 만일 短速한 時間內에서 改正치 않는다면 臨時政府를 群衆의 基礎 우에서 擴大 强化식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만일 改正할 時間을 明年까지 延長한다면 臨時政府는 明年 안으로 擴大 强化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簡單한 問題임에도 不拘하고 期여히 明年까지 時間을 延長하자는 理由는 무엇인가? 또 만일 明年 議會에 修改한다면 來明年에 가야 비로소 眞正한 群衆의 代表가 臨時政府에 參加할 수 있는 것이 안인가? 또 今年에 修正하야 明年 議會에 通過하자는 것은 우리 臨時政府가 來明年까지 重慶에 流亡政府로 繼續될 것을 前提하는 것이 안인가? 만일 二年後에도 우리 臨時政府가 依然히 重경에 流亡政府로 前提하고 約憲을 修改한다면 그야말로 自己 民族에 對한 悲觀과 失望이 안이고 무엇인가? 假令 明年에 우리 臨時政府가 滿洲로 遷移하게 된다면 今年에 憲法을 修改하엿다 하여도 明年에 다시 修改할 必要가 있을 것이 事實이다. 그러면 明年에 우리의 革命情勢가 如何할 것을 엇더케 豫測하고 今年에 修改案을 起草하여 明年에 通過할 것인가? 그럼으로 明年에 修改하자는 것은 來明年까지 우리가 重慶의 流亡生活을 繼속하는 것을 想像하는 失望의 見地에 出發한 것이 안이라고 볼 수 없다.

 補充(本月 三日 會場速寫에 遺漏된 것)

 光復軍 九個 準繩取消案

 光復軍 九個 準繩을 取消하자는 案(提案者:李然皓 · 崔東旿 · 嚴恒燮 · 安勳 等)

이 討論 끝에 孫斗煥 · 金尙德 議員의 主張으로 本案員을 修改하기로 決定하고 本案 修正案으로 金尙德 · 柳子明 · 孫斗煥 · 安勳 · 公震遠 五人을 指定하엿다.

 ◊ 『우리 通訊』 第十號

發行者 周世敏

社–址 重慶 南岸大佛一五○號

時–日 十一月 九日

社說

 約憲修改의 政治的 重要性과 具體的 意見

 今次 議政院會議에 있어서 第一 重要한 中心問題는 約憲修改問題이다. 이 問題는 우리 運動을 앞으로 發展식히고 群衆과 聯系를 確保하느냐 않이하느냐의 政策問題이다. 이 問題로 因하여 會議 初의 精誠團結의 希望은 漸漸 憂려하지 않할 수 없게 되엿다. 그럼으로 이 問題를 다시 한 번 革命運動者와 同胞 앞에서 公開的으로 討論하려고 한다.

 憲法 修改에 對한 中心點과 具體的 內容을 討論하여 보자.

 現在 憲法을 더 完美하게 하고 或은 體裁上 先後顚倒를 바로 잡기 爲한 修改도 必要하지만 이것보다도 더 實際的이고 當面運動과 緊密한 關係를 가진 條目 修改에 中心點을 두어야 한다. 臨時約憲 第二章 第四條 第二項에 「內地 各 選擧區에서 選擧할 수 없을 때는 各 該 選擧區에 原籍을 두고 臨時政府 所在地에 僑居하는 光復運動者가 各 該區 選擧人의 選擧權을 代行할 수 있음」이라 한 것이 今次 修改하여야 할 骨子이며 中心點이다. 이것을 修改치 않코 다른 것을 全部 修改하엿다 할지라도 그 結果는 目前 實際運動에 切實한 利益을 産生 못하게 된다. 이 條目에 依하여 選擧한 結果는 어떻한가? 重경에 僑居하는 少數 光復運動者가 各自의 原籍地 階別에 依하여 國內 各道 數百萬人 選擧權을 代行하게 되는 것이다. 全羅道의 例를 하나 들면 重慶에 僑居하는 全羅籍 光復運動者가 全部 六人(男 三○, 女 三)이 全羅道議員 六人을 選擧하는 奇現象까지 보게 되엿다. 中領(滿洲)議員은 自由로 中領區에 登記한 選거人들이 모이여 中領議員을 選거하게 되는 것이고 美領(美洲)議員 選거는 美洲에 僑居하는 同胞 全體가 直接 選거한 것이 않이고 美洲 韓族聯合會(이것도 全部를 網羅한 組織이 못됨)에서 議員을 指定하여 보내는 非合法的 方法에 依하여 된 것이다. 그럼으로 第四條는 重慶에 僑居하는 少數 光復運動者를 除할 外에는 後方 · 前方 · 敵後 · 美洲에 있는 廣大한 同胞, 光復運動者, 武裝隊伍는 아모 選擧權 被選擧權도 없는 것이다. 現在의 狀態로는 議政院과 臨時政府는 國內 廣大한 群衆의 基礎 우에 建立 못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中國 美洲 各地 前後方의 群衆으로부터도 隔離되엿으니 엇지 嚴重한 問題가 않느냐? 群衆으로부터 隔離된 政府는 强大한 力量을 發揮 못하는 것이며 友邦의 實際的 援助를 爭取하기도 不可能한 것이다. 重慶에 僑居하는 少數人의 政府가 되어서는 않이 된다. 各地에 散在한 廣大한 光復運動者 及 同胞들의 基礎 우에 建立된 力量 있는 政府를 만드러야 한다. 各方의 信任을 集中하고 그 基礎 우에 確立할녀면 重慶에 있는 사람뿐만 않이라 各地에 있는 사람에게 選擧權 · 被選擧權을 주어야 한다. 廣範圍의 民主를 實施하여야 한다. 이것을 實施하기 爲해서는 憲法 第四條가 確實히 桎梏이 된다. 政府의 威信을 提高하고 國際的으로 承認을 獲得할 것을 一致 渴望한다면 「宣言」이나 「承認要求」에서 되는 것이 않이고 오직 上述한 實際工作으로부터 開始되여야 하며, 이것이야말로 永遠히 群衆을 떠나지 않는 現化 政治家의 作風인 것이다. 政治를 廣大한 群衆에게 開放하는 普通의 精神이 卽 大韓民國의 精神이라고 生각된다. 重慶 少數人의 支持를 밧는 것 모다 廣大한 群衆의 支持를 받는 데서 비로서 領導者로서의 無上의 光榮이 될 것이다.

 以上과 같은 緊迫 嚴重한 政治意義를 가진 憲法 修改를 明年으로 延期한다는 것은 우리들 良心으로 許諾 않이 되는 것이다.

 「憲法을 今年에 修改하자」 「憲法을 明年에 修改하자」 하는 意見의 差異는 다만 時間問題에 限한 相差이니 적은 問題라고 認識하는 분도 있으나 錯誤的 見解이라고 生각한다. 革命의 利害感의 立場에서 修改할 必要를 늣겻다면 時間을 爭取하여 卽時로 修改하는 것이 全體 同胞와 光復運動者의 利益을 第一 尊重하고 關心하는 革命領導者로 應當 取할 光明正大한 態度이다.

 今日과 같은 「革命과 戰爭」의 時期에 있어  年은 平時의 十年 二十年 보다 더 緊迫하고 重要하다. 明年으로 밀자는 분 中에는 그 理由로 「修改는 煩雜한 일이다」라고 말한다. 煩雜을 겁내어 이러한 重大한 問題를 卽時 處理 못한다는 것은 祖國獨立의 艱難한 任務를 雙肩에 질머진 우리들로서는 理由가 될 수 없다. 英美와 같은 國家에서도 憲法 修改의 必要를 늣길대는 敏活하게 卽時 修改하기든 하물며 國內 群衆과 完全히 隔離되여 重慶에 流亡하는 政府로서 一年이나 延期할 무슨 煩雜性이 있느냐? 革命에 有益만 한다면 煩雜을 두려워 할 것이 없고 甚至於 體裁의 不完美도 副次的이다. 憲法 修改를 明年으로 미는 것은 憲法을 修改할 誠意가 없는 것이며 甚至於 修改를 反對하는 案이라고까지 生각하는 분도 있게 되는 이때 萬一 그런 것이 않이라면 今次 修改를 反對하는 理由는 甚히 貧弱하다고 않이할 수 없다.

 以上과 같은 理論에 根據하여 이에 具體的 意見을 陳述하려 한다.

(一) 三個 선거區의 設置

 1. 軍隊特別選거區 設置後方 · 前方 · 敵後에 있는 各種 武裝隊伍를 軍隊特別選擧區라 하고 選거 · 被選거權을 줄 분만 않이라, 流血鬪爭하는 隊伍인 까닭에 選거人數 比例에 있어 優待할 것

 2. 臨時政府 所在地 特別選거區 設置自由中國에 僑居하는 光復運動者, 同胞를 總網羅하여 臨時政府 現在地 特別選거區라 하고, 光復運動者의 領導人物이 集結되여 있는 까닭에 人數比例에 있어 優待할 것

 3. 普通選거區 設置美洲 · 俄領 等을 普通選거區로 할 것

(二) 반드시 登記하기로 하자

 各地 選거人을 반드시 登記하기로 하자. 이렇게 하는 데서 臨時政府는 事實上 人民의 基礎 우에 建立되는 것이다.

(三) 議員任期 作定

 議員任期가 終身이라는 것은 世界 어느 憲法上에도 없는 것이니 반드시 適當하게 作定하자.

 以上 三項은 革命利益의 立場에서 今次에 반드시 規定되여야 할 것을 堅持한다. 三項 以外의 憲法 修改는 緊急한 것이 않이니, 차차 修改하는 것도 無防하리라고 生각한다. 閣員問題, 委員制냐, 部長制냐 하는 問題도 決코 今次 議會의 中心問題가 않이다.

 閣員 四人을 補選하고 部長制로 한다는 政府案에 反對하지 않는다.

 以上에서 說한 바와 같이 選거法에 對한 修改는 우리 運動을 앞으로 發展식히고 群衆과 聯系를 確保하는 政策問題임으로 이 問題에 限하여서는 全體 議員이 冷靜한 頭腦와 遠大한 眼光으로 硏究하고 修改되도록 一致努力하기를 바란다. 이렇게 되는데서만이 오직 우리 合作團結의 前途는 樂觀을 許할 뿐이다.

 ◊ 『우리 通訊』 第十一號

發行者 周世敏

社–址 重慶南岸大佛叚一五○號

時–日 十一月 十日

社說

 建國紀元節 獻辭

 祖國와 同胞를 떠나서 異域에 流亡하는 우리 檀君子孫들은 友邦의 抗戰 首都-重慶에서 또 建國 紀元절을 迎接하게 되엿다. 우리는 이날을 깁부게 慶祝하기보다 도러혀 亡國의 서름과 슬품이 가슴에 복바치여 온다. 그러나, 이 反面에 있어서 今日의 世界는 全世界 反파쑈鬪爭의 勝利의 날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이날을 迎接할데 軸心陣戰의 罪魁인 德國의 百萬 匪軍은 이미 斯太林그라드 爭奪戰에 慘重한 失敗를 當하엿고 南太平洋에 蠢動하든 倭敵은 美國의 龐大한 海空軍의 進攻下에 致命傷의 打擊을 遭受하엿고, 또 北美洲에서 惡戰苦鬪하여 오든 英軍은 最近 驚人的 勝利를 獲得하엿고, 따라서 오래동안 養精畜銳하여 오든 美國의 大軍은 迅雷不及掩耳하는 手段으로 突然히 北美洲에 登陸하엿다. 더욱이 重大한 歷史的 意義를 가진 今次(三十四次) 議員會의 進行中에서 各 黨派의 人士가 同聚一堂하여 이날을 迎接할 때 우리는 世界 民主國의 勝利를 더욱 確信하고 또 自由 新朝鮮의 曙光을 膽望하면서 우리 民族의 前途에 對하여 無限한 樂觀과 自信을 가지게 된다.

 우리 조선은 檀君 建國한 後 四千餘年 輝煌한 文化의 歷史를 가진 東方古老한 國家이엿다. 그러나 三十年前에 우리의 國家는 不幸히 倭敵에게 滅亡되엿다. 三十餘年 來로 우리의 民族은 前仆後繼로 堅決한 反日鬪爭을 進行하여 왓으며 光榮한 우리 檀君子孫의 歷史的 革命的 侍統을 表現하였다.

 勿論 過去 우리의 革命은 强한 敵의 壓迫下에서 屢次 失敗하엿으며 또 迂廻曲折한 길을 발바오게 되엿으나 目前에 臨하여 世界情勢의 發展은 우리 革命에 絶對有利한 客觀條件으로 呈現되고 있다. 이와 같은 千載一遇의 機會에 있어서 우리는 自身 力量의 薄弱으로 因하야 더욱히 內部의 不團結로 因하여 可能한 國際的 援助를 爭取하지 못하는 同時에 强有力하게 革命을 推進치 못한 것도 事實이다. 그러나 오래동안 積來하여 오든 實踐的 經驗과 發訓은 關內 各 黨派 及 各 個人으로 하여금 今次 議會에 共同參加하여 初步的 統一을 形成하엿다. 그럼으로 우리 關內 運動은 今次 議會를 契機로 하여 飛확的 發展이 있거나 或은 支離滅裂한 狀態로 循環하거나 決定될 것이다. 勿論 우리는 前者를 確信하며 候者는 豫想치 안는다.

 그러나 今次 議會中에 雙方에서 爭執하고 있는 約憲修正問題는 依然히 解決되지 못할 것도 事實이다. 우리는 우리의 主張이 革命에 有利하다는 것이 對方에 理解되며 또 各種 問題에 關하여 우리의 讓步와 誠意가 對方으로 하여금 信任하리라고 自信한다.

 建國紀元節을 臨하야 우리는 檀君의 靈魂 앞에서 共同히 깊이 誓約하고 彼此의 讓步와 互相의 信任으로 今次 議會를 完滿하게 進行식히여 이날을 紀念하기 바란다. -끝-

 會場速寫 第十一日

十一月 六日 午前 九時 開會

一. 二十二,二十三年度 結算 第二讀會右無異 通過함

一. 二十三年度 豫算科目 流用追認案右無異 通過함

一. 議員選擧에 對한 件

 趙素昻:提案者가 今日 出席치 않이 하엿고 또 約憲 修改에 關連된 案이니 좀 기달려서 하는 것이 좋다.

 散會

 午後 二時 續會

一. 建國紀念節改正案

 李始榮 · 趙琬九 · 趙素昻 等 各 議員間에 陽曆으로 할 것이냐 陰曆으로 할 것이냐 하는 問題로 辯論이 있엇으나 無期保留하기로 決議

一. 政府部署支實問題에 關한 案

 各部에 次長制를 採用함이 必要하다는 것을 中心으로 辯論이 있은 后 二讀會로 넘기기로 決議

 會場速寫 第十二日

十一月 七日 午前 九時 開會

 光復軍 九個 準繩取消案 修正案 第一讀會

 修正委員中 金尙德 · 孫斗煥 二議員이 不出席으로 柳子明 議員이 修正委員의 資格으로 修正案을 說함



趙素昻 光復軍 問題에 對하여 責任者가 必要하다. 過去 光復軍 九個 準繩은 光復軍 當局에서 接受하엿스니 이것을 取消할라면 便宜上 效果上 政府 當局의 責任지는 것이 좋겟다.

朴贊翊 本來 金主席 個人 名儀로 交涉되엿스나 文字內容은 國軍으로 되엿다.九個 準繩은 忍痛 接受하게 된 것이다. 最近에 또 交涉成功을 期望한다.

崔東旿 修正案中 우리 政府와 中國 政府와 交涉하자는 此案이 決議가 되고 보면 議政院과 關係없이는 못하게 된다.

洪震 此案은 重要한 것이니 充分히 討論하기를 希望한다.

趙素昻 此 議會에서 黙認해 주지 않으면 九個 條約이 成立되지 못할 것 같다.

崔東旿 原案과 修正案이 反對되는 듯하다.

洪震 再修正함이 如何한가?

 此案에 對하여 非公式 談話가 있은 后 休會

 會場速寫 第十三日

十一月 八日 午前 九時 開會

 光復軍 九個 準繩 取消案 修正案을 第二讀會로 넘기엿다.

 午後 休會

 會場速寫 第十四日

十一月 九日 午前 九時 開會

一. 大韓民國 二十五年(臨時政府)度 豫算書 第一讀會 通過

一. 光復軍 九個 準繩 取消案 修正案 第三讀會 通過

一. 政府部署 充實案 第二讀會 通過

 次長制 實施를 決議(第三讀會를 省略하기로 하고 通過)

 午後 二時 續會

 約憲修正案 第二讀會

 午前 會議는 크다란 辯論도 없이 一瀉千里로 進行되엿으나 午后가 되여 約憲 修正案에 드러가자 問題가 問題인 만큼 熾烈한 辯論戰이 展開되엿다. 今次 議會에 잇어 第一 中心 問題가 約憲 修改問題인 까닭에 이 問題가 提起될 때마다 會場內는 緊張해지고 議員들은 興奮된다.

 社說에서도 數次 言及한 바이지만, 오날 亦是 修改時間問題로 辯論이 開始되엿다. 李靑天(次期로 主張) · 金尙德(今次로 主張) · 李仁洪(今次로 主張) · 金若山(今次로 主張) · 趙素昻(次期로 主張) · 李興官(今次로 主張) · 孫斗煥(今次로 主張) 等 諸 議員들이 順次로 發言이 있었다.

 金若山議員의 發言(大意)

 우리의 約憲은 日本 帝國主義를 打倒하고 獨立自由의 國家를 建設하려는 總綱이며 卽 精神的 武器이다. 이것이 錯誤가 있다면 우리는 千百萬 人民을 動員團結해서 日本 帝國主義를 打倒하고 自由의 獨立的 新國家를 建設하기 어렵다. 그럼으로 約憲은 非常히 重要性을 가진다. 過去는 政府를 직히는데서 意義가 있섯지만 今日은 우리 政府가 力量을 發動해서 그 權能을 實踐할 때이다. 그럼으로 不適한 點이 있다면 卽時로 修改하여야 된다. 例를 들어 말하면 戰場에 있어서 戰鬪中의 作戰計劃의 錯誤點이 發見되엿다면 卽刻으로 끗치지 안을 것이냐? 錯誤點이 發見되고도 끗치지 안는다면 한 번 더 失敗를 經驗하자는 것이다.

 또 憲法 修改案은 今次 會議에 提出하고 修改는 明年 議會時에 하자는 것은 그 意義를 알 수 없다. 明年에 할 것이라면 明年에 提出할 것이지 今次 會議에 提出할 必要가 없는 것이다. 憲法 修改는 巨大한 일임으로 短時日에 修改할 可能이 없으니 一年間을 硏究 修改한다는 것은 一理由를 承認할 수 없다. 數十年間 革命의 經驗을 가진 革命의 指導者와 政治運動者들이 決코 이만한 能力이 없다는 것은 理由가 안된다.

 約憲의 字字句句로 修改하는 것도 重要한 것이지만 더 重要한 것은 精神과 力量의 統一에 障碍되는 條文은 應當 修改하여야 한다. 各地에 僑居하고 있는 革命運動者와 同胞를 如何히 政府指揮 領導下에 服從식힐 것인가? 一張의 命令만으로는 絶對로 不可能하다. 오직 政治上으로 有機的 關係가 建立될 때, 自己가 選거한 議員을 通하여 自己의 意見을 發表할 機會가 있을 때 政府는 「내」政府라는 愛護感과 信任이 發生되는 것이다. 그런데 美洲는 말 말고라도 西安에 있는 同志들에게 選擧權이 있느냐? 老河口에 있는 同志들에게 選擧權이 있느냐? 其他 地方에 있는 同胞들에게 選거權이 있느냐? 各地에 數만은 革命者와 同胞를 團結 統一식히고 이 事實上 基礎 우에 政府를 建立하기 爲하여 現憲法中 이에 違背되는 第四條 第二項을 今次에 修改하여야 되겟다. 全體 議員이 誠意 우에서 討論한다면 不可能한 것이 않이다. 이것을 修改하는 때 비로서 우리들의 團結을 鞏固해지는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臨時政府의 强化와 欣快한 統一團結의 實現을 爲하야 團結에 障凝되는 이 條文만 卽時로 修改하자는 것이다.

 午後 五時 休會

 消–息

 今日은(十一月 十日~음 十月 三日) 檀군建國紀元節임으로 議會를 一日 休會한다더라.

一. 今日(음 十月 三日) 臨時政府 及 南岸 其他 各地에서 建國紀元式을 擧行한다더라.

一. 中韓文化協會 會長 孫科氏가 今日 下午 三時에 中華文化協會에서 우리 議員 全體를 招待한다더라. -끝-

 ◊ 『우리 通迅』 第十二號

發行者 周世敏

社 址 重慶南岸大佛叚 一五○號

時 日 十一月 十三日

社說

 約憲修正案通過와 우리 團結關契를 論함

 오래동안 難産의 苦痛 中에 걸녀 있든 約憲修正案은 昨日 午後에 雙方의 折束한 案으로 修正起草委員 九人을 選出하여 今後 六個月 內에 修正案을 作成한 後 卽時 議會를 召集하여 通過하기로 決議되였다.

 勿論 이 問題에 關하여 우리가 最初에 堅決히 今次에 修改하자고 主張한 것은 決코 私黨派의 利益을 爲한 것이 아니라 民族의 利益 또 臨時政府의 利益을 爲해서 그리하였던 것이고 또 對□의 反對도 亦是 主視的으로는 우리와 같은 立場에서 出發한 것이라고 確信한다. 그럼으로 우리들의 數年間의 彼此의 激烈한 爭論은 無意味한 爭論이 않이였엇고 우리들의 革命運動理論과 實踐을 發展식힌 것이라고 認識한다. 그럼으로 爭論中에 있어 비록 彼此의 衝突과 誤解도 많엇스나. 또 爭論을 通하여 彼此의 誠意와 信任이 某程度로 者現된 것도 事實이요, 뿐만 않이라 爭論 中에 彼此의 誠意와 信任이 某程度에 表現됨으로 因하여 彼此의 讓步도 亦是 相當한 程度에 達하엿다. 우리는 「時間」問題에 關하여 讓步하엿을 뿐만 않이라 또 約憲修改의 內容 特히 第四條 第五條 修改에 對한 輪廓的 原則을 決定하여 九人 修改委員에게 주자는 主張도, 다만 修正委員에게 一任하기로 되고만 것도 亦是 讓步의 하나인 것이다. 이것은 일로 보아 큰 遺憾인 것이나 오직 和平과 團結을 爭取하기 爲한 本意에서 크게 爭執하지 않은 것이다.

 約憲修改安이 通過됨을 따라 今次 議會는 將次 順利하게 閉幕하게 될 것이고 또 우리의 統一戰線은 이로부터 形成의 有利한 條件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生각된다. 이에 臨하여 우리는 朝鮮民族前途에 對한 無限한 樂觀과 慶祝을 表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만 原則上 樂觀에 陶醉하여서 아직도 앞에 있는 難關을 等閑視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修政委員間에 今次 議會에서 一致되지 못한 約憲修改內容을 中心하고 또 爭論이 있을 것도 事實이다. 우리는 이 難關을 等閑視할 수 없는 것이며 修改委員의 任務는 非常히 重大하다. 今次 約憲修改委員은 如何한 方法을 다 써서라도 一致한 修改案을 産生하여야 하며, 이뿐만 않이라 約憲修改를 通하여 進一步 하여 各方의 意見을 調和 接近식히고 內部團結을 强化하도록 努力하여야 한다. 그럼으로 九人 委員을 難苦하게 처음 形成된 統一局面을 爲하여 彼此 虛心 讓步하고 和衷 共濟하는 精神으로 日前 우리 實際 革命情勢에 適合한 憲法을 起草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約憲 等 四條 及 第五條 修正에 對한 意見은 徹底히 堅持할 것을 이에 다시 한 번 聲名한다. 앞으로 (以下續第五頁)

  轉 載

 建國記念日(十一月 十日)날 中韓文化協會 主催로 우리 議員을 招待하는 席上에서 孫哲生會長 及 其他 諸氏는 朝鮮民族의 團結과 組織을 强調하엿다. 그 演說詞 內容이 非常히 價値가 있는 것임으로 新華日報에 登載된 演詞를 이에 轉載한다.

  孫哲生先生 演詞

 「今天ノ期望 韓國革命同志的合作與團結, 使命的 現象, 根致了民族的危韓國民族早日在遠東獲取獨立解放. 這糧工作是難苦的革命工作, 由於中韓兩民族共同和日冠 數十年的鬪爭, 尤其是中國四五年抗戰中的奮鬪, 使中韓兩民族的前面己呈現了勝利的 曙光. 在全世界民主國妄的聯盟作戰中韓國必恢復爲獨立國家. 本人藉此願建設給韓國革命同志幾點意見 …

團結是任何國家救亡圖存, 復國與邦的首要手件, 沒有團結, 就不能復國建國. 中國過去有不團結的現象, 招致了民族的危機. 這五年來, 中國能抗戰, 卽在於中國能團結, 無論國民黨, 共産黨都能發揚無上的民族團結精神. 今天, 我們雖還沒有把敵人趕出去, 但我們已有了勝利的光輝. 孫氏講至此, 情緖異常興奮, 大聲疾呼團結! 謂韓國革命和中國革命一樣, 不是那一黨那一派的事, 不是那一黨那一派去包韓, 而是要團結一致努力! 這沒有别的, 關爲現在的時機太好了, 這是中國的好時機, 也是韓國的好時機. 因之熱望韓人無論在何時何地, 都要毋忘團結! 團結! 團結!

孫氏建議之次一點, 卽希望韓民族今後應重視組織, 無論韓國本部之二千萬同胞, 或在中國及其他國家之韓胞! 都應有堅固之組織. 渠卽擧蘇聯爲例, 謂此次蘇聯抗戰成績, 爲全世界所歌頌, 卽在於蘇聯民族團結與有組織. 故渠希望韓國議會中對團結與組織問題, 能多有高對的成就.」

 馮玉祥先生演詞

忠言逆耳利於行, 良葯苦國利於病-, 渠願大家深體團結重要之旨.

 吳鐵城先生演詞

渠同意孫氏之意見, 並勉韓人能愈趨團結, 則外援愈多.

 周恩來先生演詞

「剛才孫院長所建議的團結與組織問題, 確是由中國數十年革命的經驗□血的教訓中得來這是中國四萬萬五千萬人民和各黨各派所共同感到和推䕶的. 也是我所代表的中國共產黨的意見. 記得在學生時代, 和立黃捕時代以及革命軍隊中, 都會和韓國的同志們同過事. 韓國人民的勇敢犧牲精神是大家目睹的事實, 他們爲了中華民國的解放而流過血在中國的大地上. 抗戰以來, 朝鮮義勇隊(現己改爲韓國光復運)□各戰線, 各戰場上與日寇作戰, 㳘血㳘□, 在北方平原上, 犧牲□很多□, □這此壯士都出身於光榮的黃埔軍校. 朝鮮志土的熱血酒遍在中國的大地上. 但是□談到朝鮮革命問題, 復國問題的時候, 他們彼此間便有了爭執, 實際上大家的目標都是爲了韓國的復國與獨立, 所差的只是玄法不同而巳. 因此對孫院長的提議, 個人極爲感動. 韓國同志們爲中國流血, 但在自己的問題上部不能合作, 這是可惋惜的事. 但是今天席上韓國領袖們一致團結的表示及抗戰五年來他們在事實上的表現都證□□他們的團結確有進步. 韓國人民旣能以他們的血來幇助中國的求得解永更應該把他們的血流到他們自己的祖國去. 我們希望不久的將來, 他們都能同到韓國, 實現韓國的自由與獨立.」

 -上接社說-

있는 참말로의 難關 突破는 오직 彼此의 讓步와 合作 外에 別다른 方法이 없으며, 內部團結의 强化도 이 難關을 突破하지 않고는 困難할 것이라고 生각된다. 우리는 對方에서 우리의 意見을 尊重하게하고 自信하며 또 우리의 意見이 對方에 理解되도록 하기 爲하여 最大의 誠意를 다할 것을 言明한다.

會場速寫 第十五日

十一月 十一日 午前 九時 開會

 洪議長의 絶叫

 昨日 中 · 韓 文化協會 相待 議政院 全體議會 茶會에서 孫科 · 馮玉祥 · 吳鎭城 · 周恩來, 徐恩曾 諸氏가 … “韓國民族! 너이는 亡國한 民族이다. 團結해라, 團結해라, 團結해라, 團結해라! 團結하지 못하면 獨立할 수 없다.”고 하였다. 뼈에 사못치고, 마음에 찔리는 이말을 들은 우리 議員 議氏는 누구하나 스사로 反省하고 決心하지 안흔 者 없엇다. 洪議長은 開會벽두에 넘치는 悲憤에 이기지 못하야 感개한 語죠로 우리 民族의 團結을 絶叫하엿다. 七十이 가까운 議長의가 삼속에서 소사나는 우렁찬 말은 會場을 肅然 莊嚴하게 하엿다.

 約憲修正案 第二讀會

 今次 議會에서 가장 中心 問題이요 또 爭執이 많엇든 約憲修正案이 繼續 登程. 몇일을 두고 甲論乙駁하야 모든 이 問題가 今日 비로서 逐段討論通過하기로 議長은 宣布하엿다.

第一段:約憲을 修正하자는 件 “그러면 約憲을 어 어ㅼ어한 修政할 것인가? 어ㅼ어한 點을 修政할 것인가? 內容 없는 空洞한 提案만을 그대로 通過하야 修政委員의게 一任한다는 것은 너무도 虛無하다. 그럼으로 議院에서는 반다시 修正할 點을 大體 討論하야 修正委員의게 範圍와 輪廓的 意見을 供給하여야 될 것이라고 卽時 修正하자는 方面에 原案 提案者는 그와 反對로 約憲修正의 內容은 修正委員이 討論할 것이지 此 議會에서는 하기 困難하다고 主張하엿다. 政策이 不同한 各 黨派의 見解를 一致하게 하랴면 많은 時日이 수要됨으로 約憲修政의 內容은 修正委員의게 一任하고 但 硏究修正委員을 選거할 때는 各 黨派人物을 망나하야 各 方面 意見을 統一하는 것이 좋다고 李靑天 · 安勳 諸議員은 特히 强調하엿다. 이러한 認識 아래서 約憲을 修正하기로 滿場一致通過.

第二段:約憲硏究修正委員 九人의 件 … 約憲硏究修正委員을 九人으로 하자는 原案에 對하야 五人 或 七人으로 減少하자는 意見이 있엇으나, 九人으로 하자는 原案대로 滿場一致를 通過.

 下午 二時 續會

第三段:時間問題 … 이 問題는 約憲修正內容과 같이 主要하게 爭論되는 問題이다. 原案 提案者의 主張 … 約憲을 修政하는대 있어 우리의 能力보담 法律的 問題보담 우리 相互間에 政策統一問題가 信任問題에 主要關係가 됨으로 적어도 一年이라는 긴 歲月이 事實上 必要된다고 하여 原案대로 明年 議會까지 修正 完成하자고 主張, 反對意見으로 此 約憲을 此 議會에서 修正하자는 方面이 主張 … 約憲修正은 急迫한 問題이다. 우리의 當面한 問題는 우리의 革命運動力量을 臨時政府旗幟下에 總發動 總集中하는대 있다. 그리하야 우리 臨時政府를 名實相符하게 우리 獨立運動者가 옹어하는 政府가 되여야 된다. 그리하는 대서 또 政府의 國際的 承認도 比較的 容易하게 獲取할 수 있다. 우리의 이 急迫한 問題를 解決하라면 現行하는 不合理한 選거制度를 하로速히 修正하야 全體 光復運動者에게 參政의 權利를 주어야 된다. 이러하는데서 이로서 政府와 人民을 連게식힐 수 있다. 急迫한 國內外 情勢에 차하야 엊이 一年이라는 긴 歲月을 두고 천천히 硏究한다는 말인가? 萬一 우리 彼此가 民族的 危期를 切實히 痛感하고, 하로速히 團結하여야 되겟다고 意識的 努力을 한다면, 무슨 큰 政策의 差異가 있고, 또 不信任할 問題가 있어 速한 時日內로 修正 못하고 戰時에 一年을 延長하랴는가? 萬一 此 議會에 修正하기 너무도 促迫하다면 今年 十二月 末 以前으로 修正 完成하는 것도 좋다고, 政府修正論使은 主張하엿다. 여기에 있어 提案者 一部 議員은 早速히 修正할 것, 但 一年을 超過 못할 것 하는 條件付의 意見을 提出하엿다. 또 一部 議員은 折衷하야서 明年 四月까지 修正 完成하는 것이 可하다 하엿다. 이리하야 問題의 時間은 漸漸 接近性이 보이며 議長과 여러 議員의 顔面에는 喜色이 띄엿다.

 五時 散會

 十一月 二十二日 上午 九時 開會出席議員-四十四號-

 約憲修改案 時間問題繼續 討議

 하로 밤을 經過하면 좀더 進步的 接近性이 있는 意見이 提起되어야 될 것인데, 開會벽두에 提案者는 亦은 明年 次期에 修正하자는 原案 그대로 固執. 여기에 있어 今年 末 以前으로 完成하자는 方面에서는 明年 二月까지 하자고 時間을 延長하야 疆局에 빠진 問題를 救하랴 하엿다. 그러나 昨日에 接近되엿든 時間問題가 다시 疆局에 陷하엿으니 참 답답한 것이다. 李海鳴議員은 그 理由가 何在인가 하고 議長에게 說明을 要求하였다. 議員 一同은 奇特한 이 質問에 大笑하엿다. 그러나 아모 接近性을 보지 못하고 散會

 下午 二時 散會

 問題의 「時間」 決議 通過. 數日을 두고 辯論하든 時間問題는 結局 느저도 半年을 超過하지 못한다는 一點에 統一되엿다. (一) 約憲修正草案을 早速히 議會幹部에 提出할 일 (二) 議會幹部는 約憲草案을 接受하고 一個月 以內로 議會를 召集치 안니함을 不得함 (三) 起草完成은 半年을 超過함을 不得함. 이것이 滿場一致로 通過되자, 어려운 고개를 넘은 議員들 中에는 우숨소래 높혀졋다. 議長도 微笑를 띄우고 한숨을 쉬어야 오날도 落着이 안되면 本 議長은 辭職하기로 決心하엿소 하엿다. (四) 約憲修正案은 三讀會를 削하고 直決하기로 決定通過하엿다.

 貳拾參年度 豫算 第二讀會

 二讀會에서 逐條 討論 通過한 後 三讀會를 削하고 直決함.

 選거法案 起草案

 約憲修正委員의게 一任하야 起草하기로함.

 院法修正案

 院法(議政院法案) 起草委員 三人을 選擧하야 次期 임時會議에 提出케 할 것.

 國務院增設案

 約憲에 依據하야 國務委員 四人을 增設하자는 原案에 對하야 國務委員 四人을 增加하는 同時에 部增設도 討論 決定하는 것이 可하다고 孫斗煥議員은 主張하엿으나 結局은 原案대로 通過하다.

 ◊ 『우리 通迅』 第十三號

發行者 周世敏

社 址 重慶南岸大佛叚 一五○號

時 日 十一月 十七日

社說

 一致合力하여 日前 困難을 祝福하자:殉國先烈의 靈魂 앞에 서서-

 今日은 祖國의 獨立, 自由, 幸福을 爲하여 寶貴한 生命의 犧牲한 殉國諸烈士를 記念하는 날이다.

 殉國烈士의 靈魂 앞에 서서 눈을 감고 黙想하는 이 瞬間의 우리들의 마음은 嚴숙하여지고 純潔化하여 진다.

 過去 數千數萬의 愛國烈士들은 祖國을 爲하여 自己個人의 幸福과 自由를 犧牲하엿을 뿐만 않이라. 敵의 監獄에서, 斷頭臺에서 或은 戰場에서 寶貴한 生命까지도 犧牲하였다. 그들의 崇古한 靈魂은 今日이 瞬間 太極旗우에 鮮明히 再現되고 各ケ人의 心靈속에 再生되여 後繼者-우리들을 慈悲하나 그러나 嚴숙한 顔面色으로 審判을 나리고 있다.

 우리들은 이날을 當하여 殉國烈士의 犧牲精神을 學習하고, 自身을 徹底히 한번 反省하여 보는데서 無上한 意義가 있는 것이다.

 우리 民族은 비록 亡國된 民族이라 하지만 그 愛國心의 極烈한 精度에 있어서는 世界 어느 革命民族의 愛國心에도 遜色이 없다는 것은 우리 民族革命史를 조곰이라도 아는 사람은 承認하는 바이다. 亡國以後 或은 國內에서 或은 國外에서 殉國한 數千數萬의 愛國烈士의 가가가 可歌可泣할 壯熱한 行動은 우리 民族革命史上에 있어 燦爛光輝한 一頁일 뿐만 아니라, 世界革命史上에도 그 例가 드믄 바이다. 그들이 인 鮮血은 過去 五千年 民族魂의 繼承 밑만 않이라 發揚光大이며, 그들의 인 赤血은 敵에 對한 反抗일 뿐 않이라 우리 民族을 再生식힐 힘인 것이다.

 우리 先烈의 인 피는 너머도 만타. 혁명을 成功한 如何한 民族의 革命歷史도 우리 先烈 以上으로는 피를 못 엿을 것이다. 그러나 今日까지 우리 民族의 獨立은 完成 못되올 왜 創造하지 못하엿느냐? 勿論 이 原因으로 우리 民族革命運動이 處한 客觀 環境의 難苦性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過去의 우리는 强大한 日本帝國主義를 相對로 單獨作戰하엿을 뿐만 안이라 其外 各종 困難한 條件에 있어서도 確實이 全世界 어느 民族의 革命運動者도 經驗하여 보지 못한 惡劣한 環境 속에서 惡戰苦鬪하여 온 것이 事實이다. 이와 같이 全世界 革命史上에 比類가 없는 惡劣한 客觀 環境은 無數한 先烈의 피 우에 發芽되는 「새싹」-革命力量을 殘忍하게도 摧殘하고 마럿다. 그러나 이 原因外에 않이 이 보다도 큰 原因을 民族 內部의 不團結이였던 것을 잊어서는 않이된다. 不團結하여 發生된 許多한 不幸한 事件에 對한 經驗은 참으로 悲痛하다. 民族內部의 互相間의 不團結을 先烈의 寶貴한 鮮血을 얼마나 浪費하엿든가? 비록 우리들이 處한 全部가 能히 精誠 團結하여 一致하게 敵에게 何하엿든들 오날 우리 革命力量은 참으로 可觀이엿을 것을 生각할 때 先烈의 靈魂 앞에 서서 눈을 감고 黙念하는 우리 全體의 마음 各其 自我反省을 않이할 수 없는 것이다. 先烈의 高度의 愛國精神을 더 發揚光大는 못하엿을 망정 損傷이나 하지 않이하엿는가 하여 죄송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以上은 다 過去 이야기이다. 우리가 處하엿든 惡劣한 環境도 原因이엿지만 그보다 더 重要하고 큰 原因은 民族內部의 不團結이엿슴으로 共同하게 그 責任을 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이제 다시 先烈의 靈魂 앞에서 過去의 一切 缺陷을 淸算하고 새 光明과 새 前途를 向하여 邁進할 때라고 본다.

 今日 우리가 處한 客觀的 環境은 勿論 아직도 各種 困難과 支障이 있지만 過去에 比한다면 好轉되엿고 有利하다고 않이 볼 수 없다. 卽 基本으로 今日의 全世界는 우리 民族獨立의 絶好의 時期이다. 過去 어느 때 今日과 같은 有利한 環境이 있엇느냐? 이러한 有利한 環境이 眼前에 展開될 뿐만 않이라 團結도 過去에 없었든 程度로 形成되여가고 있는 것이 事實이라. 今次 會議를 通하여 처음으로 形成되는 것 뿐많 않이라. 時間으로 보아도 짧은 만큼 日前의 團結도 滿足할 수는 없지만 今後 날이 갈사록 團結은 더욱더 鞏固하여 갈 것을 우리들은 確信한다.

 過去는 形言할 수 없는 惡劣한 環境과 內部의 不團結로 因하여 우리 運動이 活潑하게 進展 못 되엿다. 더욱 內部의 不團結로 因하여 惡劣한 環境을 克服하지도 못하엿을 뿐만 안이라, 그 惡劣한 環境 앞에 許多한 사라들이 失望도 한 것이다. 過去의 이러한 影響이 今日까지도 있다. 그러나 今日은 우리가 處한 바 環境이 過去보다 有利한 것이며, 설사 아직도 各種 困難과 支障이 있다 할지라도 全民團結의 힘으로 一致合力하여 努力한다면 克服할 수 있을 뿐많 않이라 더 나아가서는 새로운 環境도 創造할 수 있으리라고 生각된다.

 그럼으로 殉國烈士節을 當하여 우리들은 先烈의 靈魂 앞에서 過去의 悲痛한 經驗을 다시 한번 回想하는 同時에 今後는 一致合力하여 先烈의 血跡을 발부면서 日前 困難을 克服하고 祖國獨立의 光明한 大道를 向하여 邁進하기를 盟誓하자! -끝-

 會場速寫 第十七日

十一月 十三日 午前 九時 開會

 告同胞書退草委員 三人을 指定

 議員 一同의 名義로 「告同胞書」를 發表하기로 決議한 바 議長에 金尙德 · 柳子明 · 李然浩 三人을 起草委員으로 指定하엿다.

 四部 增設

 現主는 內 · 外 · 軍 · 法 · 財 五部 뿐인데 昨日 議會에서 國務委員 四人을 增加하기로 決議하엿음으로 다시 宣傳部 · 生界部 · 學務部 · 交通部 等 四部를 增設하기로 決議하였다.

 午後 休會

 會場速寫 第十八日

 十一月 十四日

 傍聽을 禁止하고 午前 · 午後 公式座談會가 있엇다(速記文 省略).

 十一月 十五日 一日을 休會하기로 宣佈

 會場速寫 第十九日

 十一月 十六日

 非公式座談會(傍쳥禁止)

(速記省略) -完-

 ◊ 『우리 通迅』 第十四號

發行者 周世敏

社 址 重慶南岸大佛叚 一五○

時 日 十一月 二十九日

 今次 議會의 閉院과 今後의 努力할 方向을 略論함

 開院以來 各地 僑胞의 熱烈한 關心과 國際人士의 注目을 惹起하든 大韓民國 臨時議政院 第三十四次 議會는 十一月 十八日 그 豫定한 議事日程을 맟이고 十九日 午前 閉院式을 擧行하엿다.

 十月 二十五日부터 十一月 十八日까지 前後 二十五日間의 會期는 勿論 多少 긴感이 있는 것도 事實이지만 아직도 基礎가 確立되지 못햇고 規模가 째우지 못한 우리 臨時政府 일뿐만 않이라 더욱 未來로부터 顯著한 政策見解 等々의 相差로 分立되여오든 各方 人士들이 처음으로 一堂에 團聚하여 許多한 議案을 討論하여 그 接近性 乃至 一致性을 求하게 되는 것임으로 二十五日間의 會期는 그다지 긴 時日이 않이엿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 開會期間 內에 있어 今次 議會는 重大한 各種政治任務를 比較的 順利하게 遂行한데 對하여 우리는 歡喜를 눗낀다.

 今次 議會의 最大의 政治的 收獲은 統一局面의 完成이다.

 過去 우리 革命運動은 自體 內部의 不團結로 말미아마 外로는 國際友邦人士의 同情을 받지 못햇을 뿐만 않이라 可能한 國際的 援助도 爭取 못하엿섯으며 內로는 强大한 革命力量을 創造할 機會를 많이 놋쳣슴에 따라 革命運動을 强有力하게 推進싴이지 못하엿든 것이다.

 우리들이 現도 處하여 있는 中國關內의 革命運動도 年來로부터 政策見解의 不同 及 其他 等々으로 因하여 비록 統一을 爲한 努力이 不斷이 繼續되여 왓섯지만 依然히 不統一의 現象을 克服못하엿든 것이다.

 今次 議會에는 비로서 各黨 各派 人士가 一堂에 集合하엿다.

 關內運動은 今次 議會를 契機로 하여 飛약的 發展이 있거나 或은 支離滅裂한 狀態로 循環하거나 가決定될 重大한 政治意義를 가진 議會이엿다. 會議進行中 重要한 案件ㅏ이 提起 討論될 때 場內 空氣가 緊張하여지고 彼此의 意見의 差異를 一致化, 甚至於 接近싴일 可能性도 보이지 않어 會議가 一時的으로 僵局에 빠진 젹도 있엇다. 그러나 日前에 우리 민족의 最大 任務와 最高 眞理가 民族的 團結인 것을 深刻히 認識하는 全體 議員의 努力 그 中에서도 더욱 重要한 議員 諸氏들의 愼重한 態度, 團結을 爲한 率直한 言論 等의 誠意로 困하여 議會를 比較的 順利하게 進行싴엿으며 그 缺課로는 우리들의 統一局面을 形成하엿고 朝鮮民族도 남과 같이 團結하엿다는 것을 友邦人士에세 보여주게 된 것이다. 今次 會議에 있어 討論 決定된 問題中 重要한 것은 約憲修改案 · 光復軍 九行動準繩取消案, 國務委員 四人 補選案, 政府部署 充實案 等々이다. 以上 機ケ 重要한 案이 互相間의 充分한 理解우에서 圓滿하게 決定 못된 것도 있으니 이를 遺憾이라 않이할 수 없다. 또 建國 綱領修正問題, 外交使節問題 等에 關하야는 質問은 있엇으나 한個의 提案을 討論 決定되지 못한 것은 今後 事業進行上으로 보아 損失이라 않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된 原因은 年來로 分立되여 오든 各方 人士가 一堂에 모여 討論하게 되니 相差나는 政策 見解를 短時日에 接近식히기 困難한 까닭이 엿엇다. 그럿치만 日前 最高眞理인 團結을 爭取하기 爲한 誠意에서 能히 困難을 克服한 것이다. 이에 우리는 今次 議會의 成功的 開院을 慶賀하면서 同時에 應當히 努力할 點 몃 가지를 略論하여 보려 한다.

1. 尙存한 政策, 政策의 相差를 接近 乃至 一致化 식히고 統一의 局面을 더 鞏固化하기 爲하여 不斷히 經常的 努力이 있어야 할 것이다. 議會를 統一 機構로써 統一局面이 構成된 것은 우리 運動의 好轉이요, 發展인 것이 事實이다. 그러나 아직도 엇던 問題에 있어서는 主張의 顯著한 差異가 있고 或은 多少 相差가 있으며 今後 具體的 事業發展, 內外情勢의 變化를 딿아 不斷히 相差가 發生 않이 되리라고 確言키 困難할 것이다. 그럼으로 各 黨派를 總網羅한 聯合的 政治機構가 需要된다. 우리들은 우리 臨時政府를 擁護한다. 그러나 이것은 無條件的 擁護나 無條件的 服從과 區別된다. 그럼으로 各 黨派는 議會 及 政府에 對하여 正確한 政策과 方法을 主張할 수 있고 或 때로는 批判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 이러한 不斷히 經常的으로 있을 各 黨派의 正當한 政治的 活動이 聯合機構에서 되여지여야 할 것이다. 이 聯合機構는 議會나 政府와 代立되는 것이 않이라, 議會나 政府事業을 有力하게 또는 順利하게 推進식히는 作用을 하게 되는 것이다.

2. 今后 우리 臨時政府로써 特히 注重하여야 할 點은 海外 乃至 國內 民衆을 事實上으로 領導할 實際的 各種 工作에 置重하여야 할 것이다. 過去 우리 臨時政府는 이 工作에 있어 主觀的 客觀的 種々關係로 海外 各地 僑胞를 全部 組織 領導 못하엿을 뿐만 않이라, 國內 民衆에 對하여서는 더욱 實施 못하엿든 것이 事實이다. 今後부터는 新 環境과 新 條件우에서 이 實際工作에 全力을 다하여야 된다. 國際承認을 要求하는 外交的 活動도 勿論 重要 않이하다 할 수 없지만 萬一 이러한 外交活動에 中心을 두고 가장 必要한 民衆組織領導工作에 等閑 한다면 그 結果는 外交活動을 有力하게 進行 못할 뿐만 않이라 우리 運動은 實際工作을 脫離하게 되는 境地까지 가고 말 念녀가 있다.

3. 가장 必要하고 緊急性을 要하는 約憲修改는 今次 議會에서 修改치 못하고 約憲修改起草委員 九人에게 修改起草를 委任하여 半年後에 臨時議會를 召集하여 通過키로 되엿다. 約憲修改의 政治的 重要性과 具體的 意見에 對하여서는 議論席上에서 임이 充分히 討論되엿고 또 「우리 通信」에도 數次 發表된 바와 같이 選擧法 修改는 우리 運動을 앞으로 發展식히고 群衆과 聯系를 確保하느냐 않이하는냐를 左右하는 重大한 政治的 意義를 갖인 것이다. 九人 起草委員의 責任은 實로 重大한 것이며 政府諸公 · 議員全體 · 各黨派諸位들의 努力할 일이 今後에 더만은 것이다. 現行的 憲選擧法에 依한다면 重慶에 僑居하는 少數 光復運動者를 除한 外에는 後方 · 前方 · 敵後 美洲에 있는 廣大한 同胞, 光復運動者, 武裝隊伍는 아모 選擧權 被選擧權도 없는 것이다. 現在의 狀態로는 議政院 · 臨時政府는 國內 廣大한 群衆의 基礎우에 建立 못될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中國 · 美洲 各地, 前方後方의 群衆으로부터도 隔離되엿으니 嚴重한 問題이다. 群衆으로부터 隔離된 政府는 强大한 力量을 發揮 못하는 것이다. 友邦의 實際的 援助를 爭取하기도 不可能한 것이다. 重경에 僑居하는 少數人의 政府가 되여서는 않이된다. 各地에 散도한 廣大한 光復運動者 及 同胞들의 基礎우에 建立된 力量있는 政府를 만들어야 한다. 各方의 信任을 集中하고 그 基礎우에 確立할녀면 中慶에 있는 사람뿐만 않이라 各地에 있는 사람에게 選擧權, 被選擧權을 주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永遠히 群衆을 떠나지 않는 現代 政治家의 作風인 것이며 政治를 廣大한 群衆에게 開放하는 普選의 精神이 卽 大韓民國의 精神이라고 生각된다. 그럼으로 九人 起草委員의 責任도 重하지만 政府諸公, 議員一同, 各黨派諸位의 全力 努力에 依하여서만이 完成될 큰 일이다.

4. 光復軍 九個 行動準繩에 對하여는 臨時政府 負責 諸氏는 友邦과의 友誼的 關係와 自主平等의 立場에서 全體가 滿足한 條文으로 協約이 되도록 短期內에 努力하여야 할 것이다. 日前에 있어 武裝隊伍의 建立의 重要性 · 緊迫性은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重要性 · 緊迫性을 갖인 武裝隊伍 建立에 障碍되는 條文은 取消 或은 適當히 修改되여야 된다. 政府負責 諸氏의 領導威信을 크게 發揮할 點도 이 點이라고 生각한다.

5. 建國강領 · 外交使節 等 問題는 議會에서 正式決議案은 없엇다 하지만, 今後 重要하게 取扱하여야 할 問題이다. 現在 建國강領은 그 內容 · 體裁 等에 있어 반드시 修改할 點이 있는 것이다. 임이 統一局面을 形成하여 나아가는 今日에 있어서는 강領內容이 各方 人士가 滿足해 할 수 있는 公同강領이 되여야 한다는 것은 理論上 · 實際上으로 다 急需한 問題이다. 外交使節問題에 있어서 具體的으로 말하면 美洲 外交使節問題이다. 世上이 다 아는 바와 같이 美洲 僑胞들 間에도 年來로부터 團結이 잘 되지 못하고 李承晩 · 韓吉壽 兩氏間에 不合한 것도 否認 못할 事實이다. 今後 美洲僑胞들의 統一局面을 形成하기 爲하여서는 그 具體的 方法으로 美洲에 外交委員會를 組織하고 李 · 韓 兩氏 及 其外에 有力한 人物을 網羅하여 外交 及 其他 活動을 進行하도록 하는 것이 賢明한 定策이라고 生각하며 이것을 政府諸位에게 希望하는 바이다.

6. 今次에 金奎植 · 柳東說 · 張建相 · 黃學秀 네 분이 國務委員으로 當選(本來 委員 四席이 缺員이엿든 것을 今次에 補選)된데 對하여 滿腔으로 歡迎과 祝賀의 意를 表한다. 네 분은 모다가 年高德邵한, 우리 運動界의 先輩이다. 네 분은 原 國務委員과 合心合力하야 今後 各種 困難을 果敢히 克復하면서 우리 運動戰上의 前頭에 서서 大略를 打開하여 주서야 하며 또 반드시 그러할 것을 確信한다.

끝으로 우리 議政院과 政府의 無限한 發展을 祝願한다. -끝-

 議會 最後 一日

 國務委員 四人 補選

 金奎植 · 柳東說 · 張建相 · 黃學秀

 議政院 院法改正委員選擧

 崔東旿 · 孫斗煥 · 李然皓

 約憲改正委員選擧

 趙素昻 · 崔錫淳 · 趙琬九 · 申榮三 · 金尙德 · 柳子明 · 車利錫 · 安勳 · 朴建雄

 祭 文 -第十五號, □□出刊-

 維 一九四二年 十二月 十二日에 韓國光復軍 第一支隊 駐渝隊 本部職 隊員一同은 삼가 香花一束과 數行文을 備하여 孫一峯 · 王現淳 · 崔鐵鎬 · 朴喆東 四同志가 邢臺戰役에서 陣亡한 一週年에 致祭한다. 슲우다! 同志들! 이 世上에 무엇보다도 원痛스러운 것은 自己의 理想과 抱負를 實現하기 前에 靑春의 生命을 빼앗기게 된 것이며! 또 이 世上에 무엇보다도 光榮한 것은 國家民族의 自由獨立과 人類社會의 眞理와 幸福을 爲하여 勇敢히 싸우다가 壯烈리 犧牲하는 것이다. 그러나 怨痛한 것은 相對的이요, 光榮한 것은 絶對的이다. 勿論 同志들의 英靈은 後者에 對한 驕傲로서 前者를 忘却하리라고 우리는 믿는 바이다. 그러나 同志들과 十餘年동안 異域風霜에 同生花共患難하든 우리들은 모다 「太上忘情」者가 않인 以上, 同志들의 陣亡一週年記念式을 가장 意義 깊고 歷史 많은 大佛叚隊 本部에서 擧行할 때 우리의 서름과 우리의 눈물이 얼마나 될 줄 同志들은 잘 짐작할 것이다. 슲으다. 同志들! 同志들이 殉國한 後 一周年 동안에 世界의 形勢와 關內 朝鮮革命運動을 많이 變化發展하였다. 獨逸 히틀너의 數百萬 大軍은 英勇한 蘇軍의 冬季 反攻下에서 蘇聯 各 前戰으로부터 狼狽不甚한 潰退를 開始하고 있으며, 北非의 英 · 美軍은 乘勝長驅의 勢로 軸心軍을 掃蕩 追出하는 中이며, 所羅門島一帶의 美國 海空軍의 屢次 表現한 輝煌한 戰績과 「中國 各 前戰의 英勇 堅決한 反掃蕩戰의 進行을 全體 太平洋 形세를 改觀식히고 있다. 그럼으로 우리들에 同志들의 陣은 한 一周年을 記念할 이때가 곳 全世界民主國의 勝利하는 시期이다. 우리의 關內 革命운動에 關하여 말한다면 첫재, 同志들의 生時에 同志들과 함께 華北戰線에서 惡戰苦鬪하엿고 또 同志들의 死後에 同志들의 怨수를 報復하며 同志들의 精神을 發揚하며 同志들의 事業을 게承하기 爲하여 同志들의 血跡을 밟아 勇감히 前進하고 있는 華北同志들의 工作은 그동안 敵后 群衆속에 더욱더욱 深入하여 많은 同胞를 爭取하며 組織訓練하는 同時에 敵에 對한 堅決한 革命鬪爭을 계속 展開하는 中이다. 둘째, 同志들의 生時에 愛護支持하며 最後로 生命까지 貢獻하여 준 朝鮮義勇隊는 今秋에 韓國 光復軍 第一支隊로 改編하엿다. 勿論 同志들은 우리의 武장 力量을 集中하기 爲한 軍事通一에 對하여 우리와 같이 깁어할 것이요, 朝鮮義勇隊의 名義가 取消되었다고 遺감스럽게 生각지 안을 것이다. 셋재, 歷來로 支離滅裂한 局面에 陷入하여 있는 關內 朝鮮革命運動은 今番 韓國臨時政府議會를 通하여 初步의 統一을 形成하엿다. 이것은 關內 朝鮮革命運動의 十數年 來의 큰 發展인 同時에 그의 意義는 非常히 重大할 것이다. 總括하여 달한다면 全世界 民主陣線의 勝利는 漸次로 迫近하고 또 우리 革命運動의 發展統一을 따라서 自由 新朝鮮의 光明은 우리의 眼前에 빛이고 있다. 이 말슴을 들을 때 同志들은 많이 安想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때 있어서 우리의 革命利益이 同志들을 더욱 需要함을 느끼며 同志들에 對한 우리의 痛惜한 마음은 무엇으로 抑制할 수 없다. 우리는 오직 同志들의 갖어둔 壯烈 犧牲한 革命精神과 難苦 奮鬪한 工作作風을 학습하며 發揚하여, 同志들의 未完成한 遺業- 朝鮮革命과 全世界 反파쇼戰爭의 勝利를 爲하여 努力奮鬪할 분이다. 슬푸다! 同志들은 永遠히 安息하여라! 明年 이날에 우리는 朝鮮獨立萬歲와 全世界 民主國의 勝利의 우렁찬 노래 가운데서 漢陽城 春滿春花로 다시 그대들의 靈魂을 公祭하마!

 孫 · 王 · 崔 · 朴 四同志의 殉國一週年을 記念하면서 華北同志들에게 보내는 말슴

 金若山

 오늘은 孫 · 王 · 崔 · 朴 四同志가 華北聯隊戰役에서 陣亡한 一週年 記念日이다. 이날을 臨하며 나는 無限히 沈痛한 마음으로 犧牲한 同志들을 追念하면서 멀리 華北 前戰에서 惡戰苦鬪하고 있는 그리운 同志들에게 몇마듸 말슴을 보내려고 한다. 孫 · 王 · 崔 · 朴 四同志가 中國大地에서 壯烈히 犧牲한 後 一年 이라는 歲月이 흐르는 가운데서 우리는 一面으로 犧牲한 同志들의 偉大한 革命精神과 그들의 優수한 生前의 工作作風을 學習하며 發揚하려고 不斷히 自身과 他人에게 向하여 勉려를 加하면서 一面으로 간苦 奮鬪하는 우리 華北同志들의 生死安危를 時々刻々으로 關心하는 同時에 또 그들의 工作發展의 消息을 들을 때마다 나는 興奮하기도 하고 愉快하기도 하엿다.

 昨春 以來로 只今까지 華北 敵後工作의 發전은 全朝鮮獨立運動線上에 無比한 큰 收獲이다.

 廣大한 華北 淪陷區에서 敵의 蹂躪과 欺騙과 搾取를 當하는 數十萬 우리 朝鮮同胞들은 이미 睡夢 中에서 警覺하여 우리의 革命旗빨에 향應하고 있으며 또 그들의 反日의 革命情緖는 날마다 增加되는 同時에 敵에 對한 鬪爭의 組織과 準備는 더욱 擴大 發展하고 있다. 이로 因하여 우리의 關內革命運動은 비로서 群衆의 基礎우에 展開되는 同時에 우리 民族의 國際的 地位는 提事되며 또 友邦이 우리에게 對한 同情과 援助는 더 크게 表現되고 있다. 勿論 이와 같은 收穫은 우리 犧牲한 同志들의 血肉의 代價인 同時에 또 犧牲한 同志들의 血跡을 밟아서 前進하는 여러 同志들의 奮鬪努力할 結果이다.

 同志들의 華北으로 떠난 後로 比較的 安全地帶인 後方-重경에 있는 同志들의 努力과 工作成績은 華北同志들의 努力과 工作成績에 比할 때 참으로 慚愧할만치 微薄하다. 그러나 이를 同志들도 亦是 如前히 奮鬪努力하고 있는 것을 同志들이 잘 알고 있을 줄 믿는다.

 우리들이 다같이 平素에 自己의 生命과 같이 貴重視하며 또 愛護支持하든 中國抗戰에 參加한 우리 民族의 草名的 戰鬪旗幟인-朝鮮義勇隊는 今年 秋에 韓國光復軍 第一支隊를 改編하게 되엿으며 또 이를 軍事統一을 當한 誠意에서 우리의 最大의 讓步인 것이다. 勿論 우리 義勇隊의 發展을 當하여 多年間 奮투努力하여온 同志들과 더욱 自己의 生命까지 犧牲한 同志들로서는 某程度의 遺감스러운 生각이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武장力量을 集中 統一하기 爲한 朝鮮義勇隊와 韓國光復軍의 合倂은 우리 運動의 步進와 發展을 意味한 것이라고 共同히 認識할 것이며 또 共同히 歡喜 □奉할 바이라고 밋는다.

 우리들이 평소에 共同히 努力하는 關內 革命運動의 統一은 今次 韓國臨時議政院 第三十四次의 議會로 因하여 形成되엿다. 全世界 民主陣線의 勝利가 漸次 迫近할 이때에 오래동안 分裂 獨立하여 오든 우리의 各 革命團體 及 各個人들이 모다 一臺에 聚集하여 空前한 大團結을 形成하는 同時에 和衷共濟하는 精神으로 우리 民族의 革命大計를 討議 決定하게 된 것은 그 義意가 非常히 重大한 것이다. 그럼으로 今次 議會를 게機로 하여 우리 關內 革命運動은 □時期的 發展을 期望할 수 있으며, 또 따라서 우리의 民族的 地位와 臨時政府의 權威가 더욱 提高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亦是 共同히 認識할 것이며 또 共同히 歡喜 慶華할 바이라고 밋는 바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統一에 對하여 過大한 樂觀視만을 가질 것이 안이라, 오직 堅決하고 正確한 革命的 實踐을 通하여 우리의 團結을 强化하며 우리의 革命運動을 强有力하게 推進하여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光復軍과 臨時政府를 群衆의 基礎우에 擴大强化하여야 할 것이며, 또 이를 通하여 可能한 外援도 爭取하여야 할 것이다. 이 任務의 達成을 爲하여 後方에 있는 우리들도 積極 努力할 바이나, 더욱 關內 革命運動의 한 生動한 力量으로 實際的 群衆工作을 展開하고 있는 華北同志들에 對한 우리의 企待는 自然 重大하게 되며 또 同時에 우리는 前後方을 勿論하고, 共同한 目標下에 强固한 團結로 一致 努力할 것을 深信하는 바이다. -끝-

 四同志의 壯烈한 殉國經過

 韓志成

 朝鮮義勇隊 第三支隊(現 韓國光復軍 第1支隊 第3支隊) 隊長 金世光 以下 三十餘 同志는 平漢線 石家莊 以南 百餘里 되는 元氏서 붙어 邢臺 一帶에 武裝宣傳工作을 擔任하고 昨年 十一月부터 工作을 展開하여 오는 바, 每 黨에 工作은 順理로 展開되엿다. 그리하여 十一月 四日붙어는 敵과 小接촉이 있어 我隊同志들도 全部 武裝하야 警戒하여 오던 次 十一日 正午에는 二百餘 敵과 遭遇하야 猛烈한 實力으로 敵을 出退하고 同 夜敵堡壘를 包圍하고 金隊長 世光同志가 二十分間 中語로 國際情勢에 關한 對敵演說을 하고, 金學鐵同志가 다시 日語로 十五分間 反戰演說을 하엿다. 그래도 敵營에서는 아모 反應이 없음으로 趙少卿同志가 反戰唱歌를 하엿으나, 亦是 下等의 反應이 無해서 도라오고 말엇다. 翌日은 그곳을 떠나 贊皇으로 가기로 約束허고 그날 밤의 警戒는 地方 自衛隊에게 一任하고 連日 戰鬪의 疫困한 몸을 休息하기 爲하야 하로 밤 잘-자기로 하엿다.

 戰鬪의 開始

 十二日 拂曉, 夜間 我隊를 包圍하여 노코, 날이 밝이를 기다리던 敵은 먼동이 틀때 屋頂上에서 放哨하고 있는 我隊 曺寬同志를 向하야 射出하엿다. 이리하야 깊은 안개 속에서 고요히 잠자든 充凉한 山村은 依然 間 激烈한 戰場으로 變하엿다. 曺寬同志는 敵의 銃소리를 듯고, 急히 金隊長에게 報告할 때 地方自衛隊隊長도 와서 報告하기를 敵이 二里밖에서 我軍을 包圍 進攻하고 있으니 速히 準備하라고 하엿다. 我隊 同志들은 習慣된 準備工作을 瞬間에 맟이고, 大門을 나가랴 할때 敵機 關槍의 火力은 우리 大門에 集中하엿다. 그럼으로 大門으로 나갈 수 없는 我隊 同志들은 屋頂에다 機關槍을 걸고 還擊하였다 敵의 火力은 다시 屋頂으로 集中하엿다. 이틈을 탄 我隊 同志들은 速히 大門을 나가 西便山끝로 退하랴 할때 敵의 火力은 또 사면에서 我隊를 向하야 集中 攻擊하엿다. 그때마참 敵은 「敵は何處に居るか?(敵은 어데 있느냐?)」하고 소리첫다. 이것을 들은 我 金隊長은 從容 沈着하게 「敵は南の方へ逃がたぞ(敵은 南쪽으로 逃亡쳣다)」 하고 答하엿다. 敵은 이 소리를 듯고 南方으로 兵力과 火力을 集中하엿다. 이 틈을 탄 我 同志들은 急速히 西部高地를 占領하고 「이리 오시요!」 「이리 오시요!」 소리 찔너 混亂한 우리 同志들을 集中식히며 一面 戰鬪를 繼續하엿다. 敵은 我軍을 向하야 亂射, 金隊長은 指揮 中 처음으로 「다리」를 맞엇다. 이여서 腹部를 또 마젓다. 中彈한 隊長은 벌서 神氣를 喪失하고 指揮 소리는 漸漸 弱하야지엿다. 이것을 본 곁에 있든 曺寬同志(新同志)는 「隊長 동무 高麗精神을 發揮하시요!」하고 외쳣다. 隊長은 이에 感動되여 다시 精神을 차리고 機關銃을 손에 잡고 쏘랴할 때 敵의 彈丸은 또 金世光同志의 왼편 손목을 命中하엿다. 하는 수 없이 銃을 두고 다른 同志의 救援을 받게 되엿다. 趙烈光同志는 다시 그 機關槍을 가지고 射擊하야 할때 亦是 二發을 맞게 되엿다. 中彈한 趙烈光同志는 十步를 行할 수 없어 最後의 決心을 하고 敵 오기를 기다리든 次 金鑫同志가 지나며 그 光景을 보고 趙烈光同志를 등에 없고 眼前地帶에 退出하랴 하엿다. 「機關槍은 全隊의 生命이다, 나를 關心 말고 速히 機關槍을 가지고 가라」하고 趙同志는 소리쳣다. 金鑫同志는 그래도 同志를 救하라고 하엿으나 趙光烈同志는 再三拒絶함으로 하는 수 없이 槍을 메고 가랴할 때 曺寬同志가 지나게 되여 金鑫同志는 機關槍을 曺寬同志게 막기고 趙烈光同志를 등에 업고 一日間을 敵의 包圍를 避하여 安全地帶에 倒着하엿다. 신도 버선도 없이 山길을 달린 까닭에 「발껌지」와 「살」은 모도다 떠러지고 뼈밧게 남지 않엇다. 그 後 三個月間 治療하고 처음 것게 되엿다. 그리하야 大部 同志는 安全地帶로 退出하 激戰하고 및어 退出하지 못하고 敵에게 包圍當하야 犧牲한 四同志의 戰鬪는 特히 悲壯하엿다. 佔領한 高地에서 我同志가 敵에게 包圍되여 單獨奮戰하며, 肉박하는 것을 반히 보면서 救할 수 없이 그대로 犧牲싴이는 我隊 同志들의 心情이 如何하엿을가? 孫一峯同志는 처음 敵과 步槍으로 싸우다 다시 接近된 敵에게 手榴彈을 던저 많은 敵을 죽이엿다. 手榴彈까지 다 쓰게 되여 彈丸이 盡함에 孫同志를 사로 잡으라는 敵과 肉박이 始作되엿다. 이 肉박 格鬪를 目睹하는 我隊同志는 하는 수 없이 그를 向하야 機關槍을 掃射하엿다. 到底히 사로 잡어갈 수 없음을 안 敵은 最後의 方法으로 刻刀로 孫同志의 왼편 가삼을 찔너 죽엿다.

 王現淳同志는 大門을 나와서 뒤담에다 隱身을 하고 敵과 激戰하다가 所有의 彈丸을 다 便用하고 不幸히 敵의 彈丸이 大腦에 命中하야 小腦를 둘고 나가게 되여 卽死하엿다.

 崔鐵鎬同志는 屋頂에서 激戰하다 하는 수 없이 뒤담을 뛰여서 넘어 가다 局部를 命中 當하야 呻吟하다 죽엇다.

 朴喆東同志는 彈丸을 用盡하고 사로잡으려는 二敵과 잡히여 가지 않으려고 肉博格鬪하여 언덕에서 골창으로 굴너가며 惡戰苦鬪하다가 敵은 하는 수 없음을 알고 刺力로 왼편 가삼을 찔너 죽엿다. 死體를 發見할때 同志는 두 눈을 드고 이를 악물고 두 손으로 自己 옷 가슴을 혓치고 꿀어 안즌 채로 죽엇다. 同志의 壯烈한 죽엄을 全華北 坊坊谷谷에 가장 英용한 故事로 傳해지고 있다.

 敵我의 激烈한 戰鬪가 두 時間 半을 經한 後 友軍의 援軍이 到着되자 敵은 慌하야 擊退하엿다. 此後에 百餘 敵을 擊斃고 無數한 戰利品을 獲取하엿다. 我軍은 孫一峰 · 王現淳 · 崔鐵鎬 · 朴喆東 四同志가 悲壯히 犧牲되고 金世光 · 趙烈光 · 黃通三 同志가 受傷하엿다. -끝-

 孫一峯同志의 略史

 韓國光復軍 第一支隊 第三區隊 第二分隊長, 平北 義州郡 威化面人. 韓國이 亡한 後 二年 卽 一九一二年에 出生하엿다. 어려서붙어 國境에 出入하는 獨立軍의 英勇한 場面과 敵의게 몰니여 살수 없이 故國을 떠나 滿洲로 가는 同胞들의 悲壯한 情景을 많이 듯고 보아 적은 가삼속에는 遠大한 抱負와 熱烈한 愛國精神이 가득 찻섯다. 그리하야 一九三三年 十九歲 되는 해 집을 떠나 上海에 와서 除奸工作에 參加하다. 一九三七年 落陽軍□에서 多數 朝鮮靑年들과 같이 受訓하고 一九三五年 中央陸軍軍校廣東 第四分校에 入學. 一九三八年 優秀한 成績으로 砲科를 畢業하고 同年 中國 胞兵五三 · 五六團에 派遣되여 彈藥隊長, 幹訓班 敎官 等 職을 歷任하고, 其後 砲兵 五四團 戰軍防禦砲連長에 榮任하야 中國兵士를 領導하고 豫南鄂北에 轉戰 十餘次 하엿다. 一九四○年 朝鮮義勇隊에 參加하야 四十一年 五月 第三支隊에 編入되여 華北 敵後에 進出하여 英勇히 作戰하다. 十二月 十二日 邢臺戰役에서 壯烈히 殉國하엿다. 年 三十.

 王現淳同志의 略歷

 韓國光復軍 第一支隊 第三區隊 隊員, 平安北道碧潼郡 松西面人. 一九一七年 出生하엿다. 十五歲에 公立普通學校를 畢業하고, 비록 年齡은 어리지만 堅決한 다음과 遠大한 抱負를 가지고 그의 長兄인 故英俊同志를 차저 中國 南京으로 왓다. 南京에 와서 朝鮮革命幹部學校에 入學하여 六個月 受訓하고 南京서 秘密工作을 하다가 自己自身 能力不足을 깨닫고 一九三四年에 다시 朝鮮革命幹部學校 第三期에 入學하여 再次 政治軍事敎育을 받엇다. 一九三五-至 三六年 初에 南京서 工作하나가 自己 基本 學力이 不足하여 日後 많은 能力을 指揮할 수 없음을 알고 一九三六年 八月에 廣東으로 나러가서 一年間 工夫하다가 一九三七 事變을 이여 「八一三」 中國抗戰이 爆發됨을 따라 工夫를 停止하고 여러 朝鮮學生들과 같이 南京에 도라와서 다시 中國陸軍官學校特別訓鍊班에 林學하여 軍事政治敎育을 밧엇다. 이때에는 一個의 偉大한 革命幹部이엿다. 一九三八年 十月 十日 漢口에서 成立된 朝鮮義勇隊에 參加하여 宣傳工作을 하다가 隊依命令을 밧어 여러 同志들과 같이 湖南江西 等地에서 對政宣傳工作에 從事하엿다. 一九三九年 南岳遊擊 幹部訓鍊班에서 三個月 受訓하고 義勇隊가 華北으로 進出하게 되자, 河南 洛陽에서 秀ケ月 있다가 다시 隊의 命令을 밧고 重慶 와서 一個月 동안 있다가, 第三區隊 同志들과 같이 重경을 떠나 黃河를 건너가게 되엿다. 一九四○ 秋에 華北 一帶에서 敵과 많은 奮戰을 하는 中 昨年 邢臺 戰役에서 不幸히 敵의 彈丸에 命中되며 殉國되고 말엇다. 現年 二十六歲

 崔鐵鎬同志의 略歷

 韓國光復軍 第一支隊 三區隊隊員, 忠淸南道 大田人, 一九一五年 六月 十九日에 出生하엿다. 그의 家庭은 朝鮮封建社會에서 가장 賤待받든 白丁이다. 그럼으로 어려서부터 日本帝國主義와 封建의 壓迫 아래서 자라낫슴으로 그 生活은 崔 同志의 反帝反封建의 基礎가 되엿다. 一九二九年 大田 第二普校를 畢業하고, 곳 衡平社運動에 參加하야 猛烈히 活動하다, 一九三五年에 來華하야, 中日戰爭이 開始된 後 中央軍校特別班이 入學하여 受訓하엿다. 一九三八年 訓鍊班을 畢業하고 漢口에서 組織된 在漢朝鮮靑年戰地服務團에 參加하야 演극, 歌詠 等 宣傳으로 保衛大戰漢工作에 參加하여 特히 同志의 農夫役割과 悲壯한 노래소리는 늘 觀衆의 人氣를 끌엇다. 一九三八年 十月 十日 朝鮮義勇隊 創立隊員으로 第五 第一 各戰區로 工作하다가 一九四一年 第三支隊에 編入되여 華北敵後工作에 參加하야 平漢戰 正太路 一帶 群衆工作에 巨大한 成績을 남기엿다. 一九四一年 十二月 十二日 邢臺 戰役에서 光榮히 犧牲되엿다. 年 二十八.

 朴喆東同志의 略歷

 韓國光復軍 第一支隊 第三區隊隊員. 京城人, 一九三三年 來華, 三十四年 洛陽 軍校軍官訓鍊班 第3期를 畢業한 後 上海 福建 等地에 派遣되여 革命工作에 參加하야 鬪爭타가 敵에게 被捕되여 年餘를 苦生하엿다. 一九三九年 다시 來華하여 朝鮮義勇隊에 參加하야 洛陽 中 條少 等地에서 工作. 一九四一年 五月 다시 華北 敵後에 派遣되여 晋東南平漢線 安養, 磁縣, 元氏 等地에서 轉戰하다가 一九四一年 十二月 十二日 邢臺戰役에서 悲壯히 殉國하엿다. 年 二十九. -끝-

 大韓民國 二十四年 十一月 日

 中華民國 泗川省 重慶市南岸大佛叚 一五○號

 우리通信社 發行

 大韓民國 二十五年 五月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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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s Angeles, California, U. S. A.

 朝鮮民族革命黨 再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