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16) 체포된 안창호 관련 기사  
문서번호Asie 1918~1940, Vol.7 Vues.188:f°109  
발신일1932년 6월 29일
발신자중국 주재 프랑스 공사관  
수신자프랑스 외무부 장관  

16) 체포된 안창호 관련 기사

Asie 1918~1940, Vol.7 Vues.188:f°109

중국 주재 프랑스 공사관

프랑스 외무부 장관

1932년 6월 29일

중국 주재
프랑스공화국 공사관
정치통상국
아시아 · 오세아니아부
제96호
               
          

          
          
          
     베이징, 1932년 6월 29일

     윌덴 중국 주재 프랑스 전권공사가
           외무부 장관 각하께
                파리

한국인 안창호에 관하여

 『노스차이나데일리뉴스(North China Daily News)』에 게재된 기사의 번역본을 동봉하는 바입니다. 이 기사는 홍커우 공원 테러 사건 이후 프랑스 조계지에서 체포된 한국인 중 가장 유명한 안창호를 다루고 있습니다.

 상하이 주재 총영사관 소속인 이누이(Inui) 일본인 법률고문은 해당 기사에서 일본 정부가 안창호 씨의 지인들의 항의를 고려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지인들은 안창호 씨가 귀화를 했으므로 중국 시민이라고 항변했습니다.

안창호 씨가 조계지에서 체포될 당시 중국 국적을 갖고 있다고 프랑스 경찰에게 주장한 적이 한 번도 없음을 주지해야 합니다. 저는 일본 당국에 안창호 씨를 인도했다고 항의한-분명 형식적으로-waikiaopou에게 그렇게 회신했습니다.

윌덴

일본에 전달함.


[別紙]
제목『노스차이나데일리뉴스』-1932년 6월 21일  

『노스차이나데일리뉴스』-1932년 6월 21일

안창호 씨 사건

 귀화의 결과에 관한 논평. 일본 국민. 체포 및 한국 압송에 관한 정당화.

 (K. S. 이누이Hogakuhakushi LL.D.)

 본 기사의 저자 이누이 박사는 일본 영사관 관리로서가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글을 썼음을 밝혔습니다.

 최근 한국의 서울로 이송된 안창호 씨의 외국인 지인들은 그의 운명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저자로서 알고 있는 정보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자 한다.

 안 씨는 1879년 1월 11일 한국, 즉 옛 체제인 한국 왕국에서 태어났다. 열렬한 애국자인 그는 1910년 한국이 일본에 합방되기 직전에 조국을 떠났다. 그 후로 전 세계를 다녔지만 한 번도 조국에 되돌아간 적이 없다. 그는 늘 동포들의 교육에 관심을 보였고, 조국 독립을 위한 모든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렇게 미국과 중국에서 오래 활동하다가 최근에는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지에 정착했다. 그는 1923년에 중국 시민이 되었다고 했으며 귀화 증명서 번호가 8631번이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변호사 자격으로 출석했다고 알려진 노우드 F. 올맨(Norwood F. Allman) 씨는 일본 당국의 허가를 받아 안 씨의 ‘변호사’가 아니라 친구의 자격으로 증명서를 확인할 수 있었다.

1. 외국으로의 귀화가 보편적인 국외 이주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기는 하나 그렇다고 본래 국적을 아예 잃는 것은 아니다. 국외 이주의 자유 원칙을 받아들이는 나라가 많기는 하나 그 원칙은 아직 국제법의 일반적인 규칙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합법적인 국외 이주 방식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본인은 해당 분야의 권위자인 예일 대학교의 보차드(E. M. Borchard) 교수를 인용한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독일, 몬테네그로와 같은 몇몇 나라에서는 법적 조건을 충족시키면 얻을 수 있는 국적 파기 증명서를 통해 국외 이주를 인정한다. 러시아, 터키, 페르시아, 세르비아 같은 나라들에서는 국적 취득에 법적 조건을 내걸지 않아 정부의 서면 동의만 있으면 된다. 이런 나라에서는 국적 취득이 임의적으로 거부될 수도 있다.

  또 미국, 독일,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같은 나라에서는 본국에서의 거주권 파기만으로도 충분하며, 표면적으로는 아니어도 요구되는 경우가 많은 조건이다. 스위스 같은 나라는 본래 국적 포기 의사를 분명히 밝히라고 요구한다. 일본, 프랑스 독일 같은 나라는 병역을 마쳤다는 선제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허가를 해준다. 아르헨티나는 외국으로 귀화하면 참정권만 박탈할 뿐 시민으로서의 자격까지 박탈하지 않는다. 독일은 다른 나라로 귀화하더라도 조건부로 독일 국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2. 우리가 아는 바에 의하면 안 씨는 본국의 허가를 받은 적이 없다. 그 허가는 중국으로의 귀화가 효력을 갖기 위해 필요하다. 그는 1923년에 중국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당시 중국법이 본국의 국적을 완전 파기하는 것을 중국 귀화를 위한 선제조건의 하나로 내걸었음을 알고 있다.일본이 한국을 합방한 이후 안 씨는 1889년 3월 16일 공포된 일본법에 따라 자유롭게 국외 이주를 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칠 수도 있다. 그 법은 의도적으로 해외 국적을 취득한 일본 국민이 그로 인해 일본 국적을 잃는다고 정의한다.순수한 일본인이라면 그러한 국외 이주 방식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본의 국제법 연구자들 중에는 단순히 해외 국적을 취득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일본 국적이 소멸되지는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해서 이중국적 사례가 나올 수도 있는데, 그것은 ‘속인주의와 속지주의(jus sanguinis et le jus soli)’에 대한 논쟁과 같은 것이다.어쨌든 법적 분쟁을 피하기 위해 상기 일본법이 마련한 통보 및 승인이라는 단순한 방식이 안 씨와 같은 사례에는 적용될 수 없다. 안 씨는 일본이 합방하기 전 자기 나라의 법이 정한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그 나라의 법은 외국으로의 귀화를 일체 허용하지 않았다. 1910년에 한국을 합방한 일본은 한국의 기존 법을 모두 엄격하게 보존했다. 특히 한국인들은 외국으로 귀화할 수 없었고, 외국인들도 한국인이 될 수 없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1899년의 일본법은 일본인들의 국외 이주를 용이하게 했지만 일본의 새로운 식민지로 확장 적용되지 않았다. 따라서 안 씨는 그 법을 준거로 내세울 수 없다.

3. 그러나 중국과 일본은 일부 지위 변경에 동의했는데, 그에 따르면 일본에 거주하고 활동하는 한국인들은 일본 국민으로서의 전적인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 거기에는 선거권과 공직에 대한 피선거권이 포함된다. 이에 대한 가장 훌륭한 사례는 현재 진행 중인 일본 국회 회기에 한국 태생의 의원이 있다는 사실이다. 국제법과 국제의전 상 그 한국인은 일본인이며 상치되는 조약의 조항이 없다면 일본의 전적인 보호를 받는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던 식민지 국민의 지위와 본토 국민의 지위의 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다. 이는 절대 관습에 어긋나는 일로 볼 수 없다.인도인은 영국 국민이지만 영국 제국의 다른 국민들과 같은 조건으로 다른 나라에 귀화할 수 없다. 미국은 다양한 국민 집단을 가진 공화국이다. 필리핀 사람은 마닐라에 있는 필리핀 시민을 가리킨다. 그러나 섬을 벗어나면 ‘미국 국적을 가진 필리핀 시민’이 되고, 그로 인해 미국의 보호를 받는다. 미국에서 시민권을 취득하려면 귀화와 동일한 일반 절차를 따라야 하지만 말이다.따라서 안 씨가 옛 한국 체제나 일본 체제에서 본래 국적을 없애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의 중국 국적이 합법적인가 아닌가는 또 다른 문제이며, 아무것도 그가 일본 국민임을 막을 수 없다.

4. 국제법에 따르면 개인은 ‘속지주의(lex soli)’, 즉 체포되었을 당시 있던 곳의 법에 따라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상하이 주재 일본 총영사관은 치외법권을 누리고 일본법을 적용한다.주제 밖의 얘기이긴 하지만 어떻게 안 씨가 일본 총영사관으로 이송되었는가를 알아보면 좋겠다. 그는 프랑스 조계지에서 공식 기관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때 공식 기관은 합법적인 경로로 단서를 잡았다. 체포 혐의는 4월 29일 발생한 홍커우 공원 테러 관여였다. 일본 총영사관에서 진행된 수사는 그의 사건 참여 여부에 대해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평화유지법이 규정한 또다른 중죄에 관여했음이 거의 확실하게 드러났다. 정황 상 일본 당국이 그를 체포해서 투옥하고 한국으로 압송하는 과정을 막을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없었다.

5. 현재 행정 업무 분담에 따라 사안이 부차적인 사례들은 영사관의 재판소가 다루고, 더 심각한 죄는 나가사키 법원으로 송치되는 게 관례다. 1심은 영사관의 지휘 하에 상하이에서 치러질 수도 있다. 심각한 사건들이 늘 나가사키 법원으로 송치된 것은 아니다. 재판 당사자에 따라서 혹은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가능성이 클 때와 증언을 확보해야 할 때 등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사건이 다른 법원으로 가기도 한다. 다각도로 사안을 검토한 후에 재판을 서울에서 여는 게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안 씨는 자신의 조국에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현대적인 법 적용 해석에 따른 조치이다. 합법적으로 임명된 판사들은 사실을 검토할 것이고, 합법적으로 인정된 변호사들은 일본 재판법에 따라 그를 변호할 것이다(애석하게도 올맨 씨는 제때 등록할 수 없어 안 씨를 변호하지 못할 것이다). 재판이 시작되면 증인과 관련자들은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발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자존심인 독립적인 사법체계에 그 어떤 경미한 개입도 주저 없이 저지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