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120. 金九, 자신이 虹口公園 폭탄투척사건의 주모자임을 스스로 밝혀  

120. 金九, 자신이 虹口公園 폭탄투척사건의 주모자임을 스스로 밝혀

[9일 上海 전문] 韓國革命黨 영수 金九가 상해 각 신문사에 편지를 보내 자신이 4월 29일 발생한 홍구공원 폭탄투척사건의 주모자임을 스스로 밝혔다. 이 편지에서 김구는 尹奉吉이 휴대한 폭탄 두 개는 자신이 특수제작하여 직접 건넨 것이며, 일본 민간인을 포함한 다른 나라 사람이 무고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거사에 신중을 기하라고 당부하였음을 강조하였다. 이 편지에 의하면 두 개의 폭탄 가운데 하나는 일본 군 · 정 요인 암살용이고 다른 하나는 거사 후 자살용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거사 당일 아침 김구로부터 폭탄 두 개와 大洋 4원을 건네받은 윤봉길은 자동차 편으로 홍구공원으로 향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아울러 이 편지에서 김구는 東京에서 일황을 제거하기 위해 의거를 일으킨 李奉昌도 자신의 지시를 받고 행동에 나선 것임을 인정하였다. 김구의 편지에 의하면 이번 사건의 범인인 윤봉길은 한국 禮山의 빈농 출신으로 부모가 건재하고 부인과 어린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윤봉길은 지난해 8월 상해에 도착하기 전까지 한동안 靑島에서 일본인 中原이 경영하는 세탁공장에서 점원으로 일하였다. 상해에 도착한 뒤에는 잠시 모 공장에서 직공으로 일하다 그만두고 거사 직전까지 홍구시장 내 식품점에서 점원으로 생활하였다. 그런 도중에 얼마 전 韓人愛國團에 가입하였다 한다.한인애국단은 김구가 조직한 비밀기관으로 단원의 선발과 임무부여는 전적으로 김구의 결정에 따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문사에 보낸 편지에는 거사 사흘 전 윤봉길이 한국국기 앞에서 서약서를 들고 찍은 사진 한 장이 동봉되어 있었다. 김구의 자술에 의하면 그는 금년 59세로 1896년 일본군장교 土田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탈옥하였다 한다.1909년 安重根이 伊藤博文을 살해한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재차 투옥되었다가 석방되었던 그는 1911년 다시 당시 조선총독이던 寺內 암살사건에 연루되어 15년형을 선고받았다. 다행히 진정한 신분이 탄로되지 않아 죽음을 면한 김구는 감금된지 5년만에 석방되었다 한다. 비록 가진 것은 권총 몇 자루와 폭탄 몇 개에 불과하지만 조국이 광복될 때까지 결코 투쟁을 멈추지 않겠노라 맹세한 김구는 조만간 상해를 떠날 것이라고 하였다.

▪ 『大公報』, 1932년 5월 10일;『白凡金九全集』 제4권, 5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