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震光』 제4 · 5호 합간(중국어본)(1935년 11월호)  

『震光』 제4 · 5호 합간(중국어본)(1935년 11월호)

一. 先民의 遺蹟과 민족의 전도
一. 13세기 한국의 화약제조술과 국방문제
一. 삼국시대 대중국 외교사절의 파견
一. 동아 서적유통사의 고찰
 第1章 중국에서 고구려 · 백제 · 신라에 전해진 서책
 第2章 중국에서 고려에 전해진 서책
    第3章 중국에서 조선에 전해진 서책
    第4章 고려에서 중국에 전해진 서책
    第5章 조선에서 중국에 전해진 서책
    第6章 백제 · 고구려 · 신라에서 일본에 전해진 서책
   一. 紺嶽山의 노래
   一. 독립당재건선언

▪ 先民의 遺蹟과 민족의 전도

 한 민족의 흥망성쇠는 정해진 운명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적자생존의 처절한 경쟁의 결과인가? 三苗와 漢族의 투쟁, 왜노와 대화민족의 투쟁은 시간이 흘러 이제 대화민족과 중한 두 민족 연합세력 간의 투쟁으로 바뀌었다.

과거의 역사가 증명하듯 민족과 민족 간의 투쟁에서 승리한 민족만이 자립자존할 수 있으며, 위대한 유산을 후세에 남길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중한 두 민족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공동의 적으로부터 위기에 처한 민족과 국가를 구하는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중한 두 민족은 삼묘나 왜노처럼 경쟁에서 패배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 우리의 선인들은 동아의 개척자이자 지도자로서 찬란한 문화를 사방에 전파하는 전도사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다. 오늘날의 東三省은 과거 고구려 · 발해 · 금 · 청 등 여러 나라에 의해 개척되었다. 역대 개척과정에서 韓人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으며, 근대에 이르러서도 한인은 동삼성 개발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특히 한인들은 황무지나 다름없던 동삼성을 개발하여 맨 처음 이곳에서 벼농사를 시작하기도 하였다.

 일본의 東京 · 武藏은 고대 백제 · 신라 · 가락인들이 처음 개척한 곳이다. 오늘날까지도 이곳에는 高麗村 · 聖天院 · 高麗王碑 · 狹山勝樂寺 · 山口觀音鐘 · 白鬚神社 등 우리의 선인들이 남긴 유적과 유물이 적지 않다. 백수신사는 고대 이 지역을 개척했던 우리 선인들의 신앙의 상징으로 向島 · 西介原 등 고려촌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백 수십 곳에 산재해 있다. 志木 · 白子와 같은 지명 역시 우리의 선인들이 명명한 것이다.

 東京 · 武藏 등지를 개척했던 우리의 선인들은 모두가 당시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던 기술자들로 직공 · 피혁공 · 목공 · 화공 · 약사 등등 다양한 방면의 기술자가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武藏의 원시림을 개발하여 물길을 내고 도로를 내는가하면 여전히 미개한 수준에 있던 토착민들을 개화시켜 높은 문화수준을 자랑하는 낙원을 건설하였다.

 오늘날 열강은 다수의 식민지를 개척하여 미개한 토착민들에게 앞선 문화를 이식한 것을 자랑스럽게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선인은 이미 천수백년전 미개한 왜노에게 선진문화를 전수하고 개척정신을 발휘하여 휘황한 성과를 거두었다.

 사람들은 우리의 선인들이 고대로부터 서쪽과 북쪽으로 진출하여 많은 업적을 남긴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동쪽으로 진출하여 일본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운 사실은 소상히 알지 못하였다. 근자에 이르러 일본인 역사가가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면서 이런 사실들이 하나 둘씩 밝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武士는 본시 武藏 개척에 나섰던 여러 기술자 가운데 한 부류로 이 지역의 방위와 치안유지에 많은 공헌을 세웠으며, 이들 역시 모두가 우리의 선인들이었다.

 우리의 선인들은 서쪽으로는 중화로, 북쪽으로는 동삼성에, 동쪽으로는 일본에 진출하여 혹은 나라를 세우기도 하면서 앞선 문화를 전파하고 미개한 토착민들을 개화시키는 등 동아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이로부터 천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외세의 침탈에 속수무책으로 유린당하는 민족적 비극을 맛보게 되었다. 우리는 왜 동아의 개척자이자 지도자로 위대한 업적을 남겼던 선인들의 위업을 계승하지 못하게 되었던가!

 인도 · 이집트 · 그리스와 같은 나라들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고국이다. 이들의 문화수준도 당시 세계 최고를 자랑하였으며, 그 민족의 지혜로움도 결코 우리의 선인들에 뒤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들도 이민족의 지배와 압제로 인하여 민족 전체가 우마와 같은 생활을 영위해야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들은 어찌하여 천하를 호령하던 조상의 강성함과 지혜를 잇지 못하고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을까?

 경술년 한국이 멸망한 이후 동삼성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동삼성의 인사들은 전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사사로운 이익에만 급급하여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삼성을 근거지로 국권회복을 전개하는 한국독립당을 모든 화근의 원천이라며 점차 멀리하더니 마침내는 적의 환심을 사기 위해 한교에 대한 축출령까지 내리고 말았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동삼성 인사들의 근시안적인 태도에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9 · 18사변 이후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동삼성 인사들은 뒤늦게야 보완의 방법을 강구하며 한국독립당과 손잡고자 하였으나 이미 때가 늦었음을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근자 화북의 형세는 9 · 18사변 전야 동삼성의 형국과 너무나 닮아있다. 이제 몇 년 후면 중국 전체가 9 · 18사변 전야의 동삼성과 같은 처지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지금이야말로 중국인민이 자비심을 버리고 즉각 무장하여 전선으로 나아갈 때이다. 이태리의 침략을 당한 아비시니아는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아무런 대항도 하지 않아 조만간 멸망의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9 · 18사변 전야 동삼성의 경우처럼, 이태리의 침공을 바라보고만 있는 아비시니아인들처럼, 이민족의 침략을 수수방관한다면 머지않아 적의 깃발이 중국 곳곳에 휘날리게 될 것이다. 서리가 잦다보면 결국 얼음이 얼게 되는 것이고,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게 되는 법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음을 명심하고 중국인민은 菩薩心을 버려야 할 것이다.

 우리 한국민족이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왜 경술년 국치를 당하기 전에 적들과 생사를 건 투쟁을 전개하지 않고 허무하게 나라를 잃었는가 하는 것이다. 나라가 망한 뒤에야 국권회복을 위해 애쓰는 것은 죽은 목숨을 살리자는 것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물론 한국민족은 그간 독립을 위해 수십만이 희생되는 열렬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미 나라가 망한 뒤인지라 무수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적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하였다. 지난 30년간의 희생과 경험은 한국민족에게 때늦은 후회만을 안겨줄 뿐이었다. 중국의 애국지사들은 우리와 같은 후회를 맛보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근래 적들은 ‘만주국’ 건설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의 궁극적인 목표는 동삼성에서 한국독립당의 활동을 뿌리 뽑자는 것이며, 동시에 중한 두 민족 간의 연락을 차단하여 유사시 후환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심지어 적 내부에서는 한국독립당이 대부분 활동근거지를 중국 내지로 옮겼으니 내친김에 중국 본토까지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금 적들은 기고만장하여 자신들의 위용을 만방에 떨칠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러나 외형적으로는 강고해보이지만 적은 이미 쇠락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중한 두 민족이 한마음 한뜻으로 협심하여 적들과 생사를 건 혈투를 전개할 절호의 기회이다. 오직 이것만이 중한 두 민족의 전도를 밝게 할 방도인 것이다.

 지금 遼河의 동쪽은 물론이고 만리장성 이남 黃河 이북이 모두 동쪽 오랑캐의 수중에 들어가 있다. 적들은 이것으로도 모자라 중국 전체를 집어삼키려는 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다. 중한 두 민족이 적과 양립할 수 없음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양립할 수 없다면 결국 어느 한쪽이 궤멸되지 않고는 동아의 평화는 무망한 것이다. 옛말에 잠자는 호랑이는 벌침보다도 무서울 것이 없다하였다. 이제 중한 두 나라 장사들이 악비와 이순신을 본받아 들고 일어설 때가 되었다. 그렇다고 굳이 국가와 민족의 치욕을 씻는다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울 필요는 없다. 치욕을 씻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치욕을 씻기 위해서는 먼저 모두가 사사로운 욕심을 버려야한다. 주희는 효종에게 불세출의 위업을 이루기는 쉽지만 본심을 지키기는 어렵다고 하였다. 중원을 침범한 오랑캐를 물리치는 것은 쉽지만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기는 어렵다. 중한 두 나라 용사들이 치욕을 씻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개인적 욕심을 버려야 할 것이다.

▪ 13세기 한국의 화약제조술과 국방문제

 鄭以吾의 『火藥庫記』는 화약제조의 연원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중한 두 나라 독자들을 위해 참고로 그 전문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軍器監 副正 崔海山이 나에게 자신의 부친 최무선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이에 그 대강을 여기에 적는다. 최무선은 왜적이 육지에까지 올라와 노략질을 자행함을 근심하여 水戰에서 火攻의 계책을 생각하고, 화약을 만들기 위해 염초제조술을 구하였으나 쉽게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던 차에 염초제조 기술자인 원나라 사람 李元을 알게 되어 그를 극진히 대하면서 암중 염초제조술을 습득하고자 하였다. 마침내 염초제조술을 얻은 최무선은 여러 차례 실험을 거쳐 그 위력을 확인하고 조정에 건의하여 서력 1377년(명 태조 10년) 정사년 10월에 화약 및 화기의 제조를 담당하는 화통도감이 설치되었다. 최무선은 또한 중국인들을 모집하여 전함을 만들기도 하였다.

 서력 1380년(명 태조 13년) 경신년 8월에 왜구가 500여 척의 군선을 이끌고 전라도와 충청도에 침입하였다. 조정에서는 海道元帥 羅世, 沈德符, 崔茂宣으로 하여금 화통과 화포를 장착한 누선 80척을 이끌고 鎭浦에서 왜구를 공격하도록 하였다. 최무선이 발명한 화포를 주무기로 공격을 개시한 고려군은 적선 30여 척을 불사르고 적의 수괴인 孫時剌을 죽이는 전과를 올렸다. 진포대첩 후 조정에서는 최무선의 공로를 인정하여 많은 재물을 하사하고 純誠翊贊功臣匡靖大夫門下府事라는 벼슬을 내리는 한편 重大匡永城君에 봉하였다.

 본조의 태조께서 즉위하신 다음해인 계유년, 조정에서는 최무선의 그간 공적을 인정하여 正憲大夫檢校門下府參贊事兼軍器寺判事라는 벼슬을 하사했다. 을해년 춘삼월 최무선은 70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금상께서는 즉위하신 뒤 최무선에게 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右政丞判兵曹事를 추증하고, 永城府院君에 추봉하였다. 최무선의 아들 최해산은 아버지의 비법을 전수받아 화기를 개발했으며 군기감 主簿, 監丞을 거쳐 지금은 副正이 되어 있다. 최해산은 전하께서 내리신 명을 받들어 선친이 남긴 기술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본조 창건 초기 군기감은 거의 기능이 마비될 정도로 쇠락하였다. 이에 기축년에 별감 李韜復과 겸판사오성군 韓珪가 전하께 주청하여 마침내 자하문 안에 무기고를 세우고 각도에서 올린 무기를 저장하는 한편 군기감 건물의 신축과 보수를 진행하였다. 이어 정유년에는 화약감조청사가 완성되었다. 이에 최해산은 청사의 벽면에 화약제조의 시말을 기록하여 부친의 큰 뜻을 후세에 전하고자 하였다.

 현재 군기감은 大廳 · 冶爐所 · 造甲所 · 臺庫 · 提調庫 · 諸匠居所 등 총 82칸의 건물로 되어 있다. 군기감이 원래의 모습을 대략 회복하였으나 여전히 火藥監造廳이 미비한 것을 안타까워한 최해산은 금년, 즉 정유년 봄에 제조 李從茂를 통해 조정에 대책마련을 상주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工曹에 명하여 개경의 禮賓寺 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재들을 옮겨와 화약감조청을 짓도록 하였다. 최해산의 감독아래 수개월 만에 건물이 완성되었고, 남은 자재들로는 弓箭所를 새로 지었다.

 최해산이 책임을 맡기 전까지 군기감에 비축된 화약은 6근 4량에 불과하였고 각궁이 2백여 장, 중 · 소 화통의 숫자도 2백여 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최해산이 일을 맡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군기감의 비축량은 화약 6,980근 9량, 각궁 1,420장, 중 · 소 화통 13,500개로 증가하였으며 이외에 여타 무기류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오래 전 표류하여 충청도까지 밀려온 중국 선박에서 火器 하나가 발견되어 의정부로 보내졌다. 조정에서는 군기감판사 郭海龍에게 그 제작법을 물었으나, 곽해룡은 화기제조는 중국의 비밀로 자신도 알 수 없다고 답하였다. 그러나 최해산이 군기감에 들어온 뒤 이 화기를 보고는 이미 오래전 자신의 부친으로부터 그 이름과 제작법을 들어 알고 있다며, 그 화기는 완구라는 이름의 폭탄이라고 하였다. 이에 전하께서는 해산에게 명하여 완구를 제작하도록 하였다.

대 · 중 · 소 20여 개의 폭탄을 만들어 시험해본 결과 射距離가 백 오십 보 이상에 달하였다. 이에 전하께서는 해산을 궁으로 불러 상을 내리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정으로부터 부여받은 임무를 완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기술을 제대로 이었으니 해산이야말로 훌륭한 신하요 훌륭한 자식이 아닐 수 없다.

 해산의 부친 영성부원군의 휘는 무선이라. 천성이 총명한데다 다양한 기술서적을 섭렵한 무선은 중국어에도 능통하였다.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마음 하나로 李元으로부터 염초제조술을 배워 화약과 화기를 만드는데 평생을 바치니 그 사려 깊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왜구들이 우리 수군과 조우하였을 때 섣불리 대적하지 못하는 것은 진포해전과 남해해전에서 크게 패전하였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그때의 패전 경험을 잊지 못하는 왜구들은 화포와 화통소리만 들으면 혼비백산하여 떨린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다.

 화기는 五兵의 어떤 무기보다도 강력한 위력을 갖고 있다. 우리가 화약을 가짐으로써 국위를 더욱 떨칠 수 있게 되었고 쉽게 폭란을 제압할 수 있게 되었으니 태평성대를 유지케 하는 공이 화약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30년 계속된 왜구의 화를 완전히 제거하고 나라의 태평을 보장한 것이 화약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전에는 나라에 공이 있으면 그 공을 오래도록 잊지 않게 하기 위해 공을 세운 인물의 제사는 나라에서 지내는 것이 관례였다. 태평성대를 가져온 화약을 만든 최무선의 공은 오래도록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그의 사적과 공훈을 널리 알리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이 글을 지었노라.

▪ 三國時代之遣中使(高句麗 · 夫餘 · 薉蔑 · 馬韓 · 辰韓 · 新羅 · 百濟)

高句麗大武神王十四年遣使于漢光武公歷 31
同上大武神王十五年遣使于漢光武32
同上慕本王元年遣使于漢光武49
東夫餘夫餘絡王遣使于漢光武49
高句麗太祖王五十七年遣使于漢安帝109
同上太祖王五十九遣使于漢光武111
東夫餘夫餘王遣王子尉九台于漢安帝120
同上夫餘王遣使于漢安帝122
同上夫餘王尉九台遣使于漢安帝136
同上夫餘王夫台遣使于漢桓帝161
薉國薉王遣使于漢桓帝161
東夫餘夫餘王遣使于漢靈帝174
薉國薉貊王遣使于漢靈帝205
薉國薉貊王遣使于魏文帝(曹丕)220
東夫餘夫餘王遣使于魏文帝(曹丕)220
高句麗高句麗東川王遣使于吳太帝(孫權)229
同上高句麗東川王遣使于吳太帝233
薉國薉王遣使于魏齊王247
馬韓馬韓王遣使于晋武帝(司馬炎)277
同上同上278
同上同上280
辰韓辰韓王遣使于晋武帝280
同上同上281
馬韓馬韓王遣使于晋武帝281
東夫餘夫餘王依羅遣使于晋武帝286
馬韓馬韓王遣使于晋武帝286
辰韓辰韓王遣使于晋武帝286
馬韓馬韓王遣使于晋武帝公歷 287
同上同上289
同上同上290
辰韓辰韓王遣使于晋武帝290
高句麗故國原王遣使于晋成帝336
同上故國原王遣使于慕容皝338
同上同上342
同上故國原王遣其弟于燕343
同上遣使于晋康帝344
同上遣使于慕容儁352
同上遣使于燕355
同上遣使于秦王苻堅357
百濟百濟近肖古王遣使于晋簡文帝372
新羅奈勿遣使于秦王苻堅377
高句麗小獸林王遣使于秦王苻堅377
新羅奈勿王遣衛頭于秦王苻堅382
百濟枕流王遣使于晋孝武帝384
高句麗廣開土王遣使于慕容盛(後燕)399
同上廣開土王遣使于南燕王超405
同上長壽王遣高翼于晋安帝413
百濟腆支王遣使于晋安帝413
高句麗長壽王遣使于宋少帝423
同上長壽王遣馮婁等于宋少帝424
百濟久爾辛王遣張威于宋少帝424
同上毘有王遣使于宋文帝429
同上同上430
高句麗長壽王遣使于後魏435
同上同上436
同上長壽王遣使于宋文帝436
同上長壽王遣使于後魏437
同上長壽王遣使于宋文帝439
同上長壽王遣使于後魏439
百濟毗有王遣使于宋文帝440
高句麗長壽王遣使于宋文帝441

同上同上公歷 443
百濟毗有王遣使于宋文帝443
同上同上450
高句麗長壽王遣蕫于宋武帝455
百濟蓋鹵王遣使于宋武帝457
同上同上458
高句麗長壽王遣使于宋武帝458
同上同上459
同上同上461
同上同上462
高句麗長壽王遣使于後魏文成帝462
同上長壽王遣使于宋孝武帝463
百濟蓋鹵王遣使于宋孝武帝463
高句麗長壽王遣使于後魏465
同上同上466
同上同上467
同上長壽王遣使于宋明帝467
百濟蓋鹵王遣使于宋明帝467
高句麗長壽王遣使于後魏468
同上同上469
同上同上470
同上長壽王遣使于宋明帝470
百濟蓋鹵王遣使于宋明帝471
高句麗長壽王遣使于宋明帝472
同上長壽王遣使于後魏孝文帝472
百濟蓋鹵王遣使于後魏孝文帝472
高句麗長壽王遣使于後魏孝文帝473
同上同上474
同上同上475
同上長壽王遣使于宋後廢帝475
同上長壽王遣使于後魏477
同上同上477
同上長壽王遣使于宋順帝478
同上長壽王遣使于後魏479
加洛加洛莊王遣使于南齊高帝(蕭道成)公歷 479
高句麗長壽王遣使于南齊高帝481
同上長壽王遣使于後魏484
同上同上485
同上同上486
同上同上487
同上同上488
同同同上489
同同同上490
百濟東城王遣高達, 楊茂, 會邁, 三人于南齊武帝490
高句麗文咨王遣使于後魏491
同上同上(一年凡四次)492
高句麗文咨王遣使于後魏493
同上同上(年二次)494
同上同上(年二次)495
百濟東城王遣王茂, 張塞, 陳明, 慕遺, 四人于南齊明帝495
高句麗文咨王遣使于南齊明帝496
同上文咨王遣使于後魏498
同上同上499
同上同上500
同上同上501
新羅智證王遣使于後魏502
高句麗文咨王遣使于後魏504
同上同上504
同上同上506
同上同上507
同上同上508
新羅智證王遣使于後魏508
高句麗文咨王遣使于後魏509
同上文咨王三次遣使于後魏510
同上同上512
同上文咨王遣使于梁武帝512
百濟武寧王遣使于梁武帝512
高句麗文咨王遣使于後魏公歷 513
同上同上514
同上同上515
同上文咨王遣使于梁武帝516
同上文咨王遣使于後魏517
同上同上518
同上安藏王遣使于梁武帝520
新羅法興王遣使于梁武帝521
百濟武寧王遣使于梁武帝521
高句麗安藏王遣使于梁武帝526
同上同上527
同上安原王遣使于後魏532
同上同上534
百濟聖王遣使于梁武帝534
高句麗安原王遣使于梁武帝534
同上安原王遣使于東魏535
同上安原王遣使于梁武帝535
同上安原王遣使于東魏536
同上同上537
同上同上538
同上同上539
同上同上540
同上同上541
同上安原王遣使于梁武帝541
百濟聖王遣使于梁武帝541
高句麗安原王遣使于東魏542
同上同上543
同上同上544
同上陽原王遣使于東魏545
同上同上546
同上陽原王遣使于魏文帝546
同上陽原王遣使于東魏547
同上同上548
同上同上549
百濟聖王遣使于梁武帝公歷 549
高句麗陽原王遣使于北齊文宣帝550
同上同上551
同上同上555
同上平原王遣使于陳世祖561
同上平原王遣使于北齊564
新羅眞平王遣使于北齊564
高句麗平原王遣使于陳文帝566
百濟威德王遣使于陳567
百濟威德王遣使于北齊567
新羅眞興王遣使于陳568
新羅同上570
高句麗平原王遣使于陳570
新羅眞興王遣使于陳571
新羅眞興王遣使于北齊572
百濟威德王遣使于北齊572
高句麗平原王遣使于北齊573
高句麗平原王遣使于陳574
百濟威德王遣使于後周武帝577
高句麗平原王遣使于後周武帝577
新羅眞智王遣使于陳578
百濟威德王遣使于後周578
百濟威德王遣使于隋文帝581
高句麗平原王遣使于隋文帝581
高句麗平原王遣使于隋文帝582
百濟威德王遣使于隋582
高句麗平原王遣使于隋583
百濟威德王遣使于陳584
高句麗平原王遣使于陳585
高句麗平原王遣使于隋585
百濟威德王遣使于陳586
百濟威德王遣使于隋589
高句麗嬰陽王遣使于隋591
新羅眞平王遣使于隋594
高句麗嬰陽王遣使于隋公歷 597
百濟惠王遣使王辯那于隋598
高句麗遣使于隋600
百濟武王遣使燕文, 王孝鄰于隋請伐高句麗606
百濟武王遣使于隋608
加洛遣使于隋608
百濟武王遣使于隋611
百濟武王又遣國智牟于隋611
百濟武王遣使于隋614
新羅眞平王遣使于隋615

(未了)

▪ 書籍流通考

 序

 目次

 第1章 自中國傳至高句麗百濟新羅之書目(公歷 372~928)

 第2章 自中國傳至高麗之書目(公歷 928~1346)

 第3章 自中國傳至朝鮮之書目(公歷 1401~1788)

 第4章 自高麗傳至中國之書目(公歷 959~1342)

 第5章 自朝鮮傳至中國之書目(公歷 1678~1714)

 第6章 自百濟高句麗新羅傳至日本之書目(公歷 276~642)

第1章 自中國傳至高句麗百濟新羅之書目(東晋, 唐至 5代初)

書目傳送使者贈者被贈者公曆
佛經佛像等秦僧順道秦王符堅高句麗小獸林王372
佛法胡僧難陀東晋孝武帝百濟枕流王384
佛經律等釋曇始東晋孝武帝高句麗廣開土王396
佛經佛法等釋阿道基羅高句麗僧阿道新羅訥祗王417
易占  加洛國407
易林式占 宋文帝百濟毗有王450
毛詩湼槃等經百濟使者梁武帝百濟聖王541
佛經論 等 1,700卷陳劉勰陳文帝新羅眞興王565
佛經俊伽勝曼經新羅僧安弘唐太宗新羅眞興王575
老子道德經唐人沈叔安唐高祖高句麗榮留王624
三藏四百餘函新羅僧慈藏唐太宗新羅通度寺646
文館詞林 50篇新羅人唐武后新羅神文王685
吉凶要禮新羅人唐武后新羅神文王685
搜玄義鈔疏新羅僧勝詮唐僧賢首新羅神文王680
探玄記 20卷同上同上新羅僧義相680
敎分記 3卷同上同上同上680
玄義章雜義 1卷同上同上同上680
華嚴梵語 1卷同上同上同上680
起信論疏 兩卷同上同上同上680
12門論疏 1卷同上同上同上680
法界無差別論疏 1卷同上同上同上同上
天文圖新羅僧道證唐中宗新羅孝昭王692
最勝王經新羅金思讓唐中宗新羅聖德女王703
孔子像新羅金守忠唐玄宗新羅聖德女王717
七十二弟子像同上唐玄宗新羅聖德女王717
兵法 15卷新羅人武烏 新羅元聖王786
花鈴圖 2卷同上同上同上同上
澄觀譯華嚴經新羅僧梵修唐德宗新羅昭聖王799
佛經苦干函新羅僧丘德唐文宗新羅興輪寺827
佛經苦干軸新羅人元弘唐宣宗新羅文聖王851
大藏經新羅僧默後唐明宗新羅敬順王928
大藏經新羅普耀禪師吳越王新羅海王寺同上

第2章 自中國傳至高麗之書目(5代宋元至明初)

書目傳送使者贈者被贈者公曆
大藏經東僧洪慶後唐明宗時閩人高麗太祖帝釋院928
大藏經麗僧如可宋太宗高麗成宗989
大藏經 2,500册麗人韓彦恭宋太宗高麗成宗991
御製秘藏詮同上同上同上同上
逍遙詠同上同上同上同上
蓮花心輪同上同上同上同上
宋本九經麗人王罕崔彬宋太宗高麗貢生991
經史曆日麗人郭元宋眞宗高麗顯宗1016
史記同上同上同上同上
漢書同上同上同上同上
後漢書同上同上同上同上
三國志同上同上同上同上
晋書同上同上同上同上
聖惠方等同上同上同上同上
宋朝登科記同上同上同上同上
御製詩麗人郭元宋眞宗高麗郭元1016
佛經一藏麗人崔元信宋眞宗高麗顯宗1019
聖惠方麗人韓祚宋眞宗高麗顯宗1021
陰陽二宅書同上同上同上同上
乾興曆同上同上同上同上
釋典1章同上同上同上同上
大藏經同上契丹高麗文宗1063
大藏經同上宋神宗高麗開國寺同上
文苑英華麗人金上琦宋神宗高麗宣宗1085
刑法文書同上被拒同上同上
太平御覽同上被拒同上同上
開寶通禮同上被拒同上同上
佛經 1,000冊麗僧義天宋哲宗高麗宣宗1087
佛經 3,000冊同上同上同上同上
王安國詩集高麗貢生宋元厚之高麗貢生1086
冊府元龜黃宗慤買來高麗宣宗1091
北史同上同上同上同上
太平御覽 1,000冊王嘏宋哲宗高麗肅宗1098
宋開寶通禮同上同上同上1098
神醫普救方同上宋人賣高麗王嘏買來1098
大藏經遼使蕭朗遼帝高麗肅宗1099
太平御覽 1,000冊麗人吳延龍宋哲宗時買高麗肅宗1101
大藏經 3部麗僧慧照遼人賣慧照買1106
大藏經遼使高存壽遼帝高麗睿宗1107
宋樂典譜指訣圖同上宋徽宗高麗睿宗1112
銀字大藏經麗人自作同上高麗明宗1181
新雕大藏經麗人自雕同上高麗高宗現存海印寺1251
朱註諸經(七傳於安士俊
八傳於正文)
南宋時所賣高麗人買於金陵1200
經籍 10,800冊麗人柳衍元朝私賣高麗忠宣王買來1314
朱註諸書麗人白頣正元朝高麗白頣正得於元1314
經史子集麗人安珦元朝私賣安珦自買1305
祭器樂器同上同上同上同上
孔子畫像同上同上同上同上
七十二弟子像同上同上同上同上
經籍 4,371冊麗人柳衍元朝元宗高麗忠肅王1315
程傳周易麗人禹倬元朝順宗高麗忠惠王禹倬卒於1342
刊行朱註四書未詳未詳麗人權溥卒於1346

第3章 自中國傳至朝鮮之書目(明至淸乾隆)

書目傳送使者贈者被贈者公曆
文獻通考趙溫明惠帝朝鮮太宗1401
元史明人黃儼明成祖朝鮮太宗1403
18史略同上同上同上同上
山堂考索同上同上同上同上
諸臣奏議同上同上同上同上
大學衍義同上同上同上同上
春秋會通同上同上同上同上
眞西山讀書記同上同上同上同上
朱子成書同上同上同上同上
古今列女傳明人王峻甫同上同上1404
通鑑綱目明人黃儼明成祖同上1406
四書衍義同上同上同上同上
大學衍義等同上同上同上同上
孝慈皇后傳具宗之同上同上1408
勸善書 300部明人黃儼同上同上同上
書 50部同上同上同上同上
爲善陰駡書 600冊李之崇同上同上1417
五經四全金時遇明宣宗朝鮮世宗1426
性理大全同上同上同上同上
通鑑綱目同上同上同上同上
五經四書朴安信同上同上1433
胡三省音註通鑑南智明英宗朝鮮世宗1436
宋史1部黃致身明景宗朝鮮端宗1454
大明會典同上明武宗朝鮮中宗1518
會典辨誣改本全書兪泓明神宗朝鮮宣祖1588
吾學編閔磬男明神宗時買來朝鮮光海朝1615
弇山堂別集同上同上同上同上
全唐詩金昌集淸康熙時買來朝鮮肅宗朝1713
古今淵鑑同上同上同上同上
佩文韵府 等 300餘本同上同上同上同上
周易折中李樴淸雍正時得之朝鮮景宗1723
朱子全書同上同上同上同上
康熙字典李增同上朝鮮英祖1729
性理精義同上同上同上同上
詩經傳說同上同上同上同上
彙纂音韻闡微 等同上同上同上同上
圖書集成 1部同上淸乾隆時買來朝鮮正宗時1788

第4章 自高麗傳至中國之書目(五代末期至唐 · 元末)

書目傳送使者贈者被贈者公曆
別序孝經高麗人高麗光宗後周世宗959
越王孝經新義 8冊同上同上同上同上
皇靈孝經 1冊同上同上同上同上
孝經雌雄圖 3冊同上同上同上同上
智論疏麗僧諦觀高麗光宗吳越王弘俶960
仁王疏同上同上同上同上
華嚴骨目同上同上同上同上
五百門同上同上同上同上
貝多葉經同上高麗文宗遼度宗1075
小華集麗使朴寅亮高麗朴寅亮宋神宗1080
印造經論疏抄 600
函共 7,300餘帙
麗僧義天高麗宣宗宋神宗1085
1086
靑紙金書晋譯華嚴經 1部 同上同上同上
靑紙金書唐正元譯華嚴經 1部 同上同上同上
靑紙金書唐聖証譯華嚴經 1部 同上同上同上
共三本 180卷 皆象籤金軸包匭嚴飾 同上同上同上
百篇尙書麗使李資義高麗宣宗宋哲宗1090
荀爽周易 10冊同上同上同上同上
京房易 10冊同上同上同上同上
鄭康成周易 9冊同上同上同上同上
陸續注周易 14冊同上同上同上同上
虞飜注周易 9冊同上同上同上同上
東觀漢記百念 7冊同上同上同上同上
謝承後漢書 130冊同上同上同上同上
韓詩 22冊同上同上同上同上
葉遵毛詩 20冊同上同上同上同上
呂悅字林 7冊同上同上同上同上
古玉篇 30冊同上同上同上同上
括地 500冊同上同上同上同上
輿地志 30冊同上同上同上同上
新序 3冊同上同上同上同上
說苑 20冊同上同上同上同上
劉向七錄 20冊同上同上同上同上
劉欽七毗 7冊同上同上同上同上
王方慶園亭草木疏 27冊同上同上同上同上
古今錄騐方 50冊同上同上同上同上
張仲景方 15冊同上同上同上同上
元白唱和詩 1冊同上同上同上同上
深思方同上同上同上同上
黃帝針經 9冊同上同上同上同上
九墟經 9冊同上同上同上同上
小品方 12冊同上同上同上同上
陶隱居效騐方 6冊麗使李資義高麗宣宗宋哲宗1090
尸子 20冊同上同上同上同上
淮南子 21冊同上同上同上同上
公孫羅文選同上同上同上同上
水經 40冊同上同上同上同上
羊祐老子 2冊同上同上同上同上
羅什老子 2冊同上同上同上同上
鍾會老子 2冊同上同上同上同上
阮孝緖七錄同上同上同上同上
孫盛晋陽秋 33冊同上同上同上同上
孫盛魏氏春秋 20冊同上同上同上同上
于䝳晋記 22冊同上同上同上同上
16國春秋 102冊麗使李資義高麗宣宗宋哲宗同上
魏澹後魏書 100冊同上同上同上同上
魚豢魏略同上同上同上同上
劉璠梁典 30冊同上同上同上同上
吳均齊春秋 30冊同上同上同上同上
元行冲魏典 60冊同上同上同上同上
沈孫齊記 20冊同上同上同上同上
楊雄集 5冊同上同上同上同上
班固集 14冊同上同上同上同上
崔馹集 10冊同上同上同上同上
汲冢紀年 14冊同上同上同上同上
謝靈運集 20冊同上同上同上同上
顏延年集 41冊同上同上同上同上
三敎珠英 1,000冊同上同上同上同上
孔逭文苑 100冊同上同上同上同上
類文 370冊同上同上同上同上
文館詞林 1,000冊同上同上同上同上
仲長統昌言同上同上同上同上
杜恕禮論同上同上同上同上
諸葛亮集 24冊同上同上同上同上
王羲之小學編 1冊同上同上同上同上
周處風土記 1冊同上同上同上同上
張揖廣雅 4冊同上同上同上同上
管絃志 4冊同上同上同上同上
王祥撰音樂志同上同上同上同上
蔡邕月令章句 12冊同上同上同上同上
信都芳撰樂書 9冊同上同上同上同上
公羊墨守 15冊同上同上同上同上
穀羊廢疾 3冊同上同上同上同上
孝經劉卲注 1冊同上同上同上同上
孝經韋昭注 1冊同上同上同上同上
鄭志 9冊同上同上同上同上
爾雅圓贊 2冊同上同上同上同上
三蒼 3冊同上同上同上同上
埤蒼 3冊同上同上同上同上
衛宏宮書 1冊同上同上同上同上
通俗文 2冊同上同上同上同上
凡將篇 1冊 司馬相如著同上同上同上同上
在昔篇 1冊同上同上同上同上
飛龍管 1冊同上同上同上同上
聖學管 1冊同上同上同上同上
勸學篇 1冊同上同上同上同上
晋中興書 80冊同上同上同上同上
古史考 25冊同上同上同上同上
伏候古今注 8冊同上同上同上同上
三輔黃圓 1冊同上同上同上同上
漢官解詁 3冊同上同上同上同上
三輔決錄 7冊同上同上同上同上
益部耆舊傳 14冊同上同上同上同上
襄陽耆舊傳 5冊同上同上同上同上
嵆康高士傳 3冊同上同上同上同上
玄晏春秋 3冊同上同上同上同上
于䝳搜神記 30冊同上同上同上同上
魏名臣奏 31冊同上同上同上同上
漢名臣奏 29冊同上同上同上同上
今書志 10冊同上同上同上同上
世本 4冊同上同上同上同上
申子 2冊同上同上同上同上
隋巢子 1冊同上同上同上同上
胡非子 1冊同上同上同上同上
何承天姓苑同上同上同上同上
高士廉氏族志 100冊同上同上同上同上
十三州志 4冊同上同上同上同上
高麗風俗記 1冊同上同上同上同上
高麗志 7冊同上同上同上同上
子思子 8冊同上同上同上同上
公孫尼子 1冊同上同上同上同上
愼子 10冊同上同上同上同上
晁氏新書 3冊同上同上同上同上
風俗通義 30冊同上同上同上同上
氾勝之書 3冊同上同上同上同上
靈憲圖 1冊同上同上同上同上
大衍曆 1冊同上同上同上同上
兵書接要 7冊同上同上同上同上
司馬法同上同上同上同上
漢圖 1冊同上同上同上同上
桐君藥錄 2冊同上同上同上同上
黃帝太素 30冊同上同上同上同上
名醫別錄 3冊同上同上同上同上
曹植集 30冊同上同上同上同上
司馬相如集同上同上同上同上
桓譚新論 10冊同上同上同上同上
劉琨集 15冊同上同上同上同上
盧諶集 21冊同上同上同上同上
山公啓事 3冊同上同上同上同上
書集 80冊同上同上同上同上
應璩百一詩 8冊同上同上同上同上
古今詩苑英華集 20冊同上同上同上同上
集林 20冊同上同上同上同上
計然子 15冊麗使李資義高麗宣宗宋哲宗1090
黃帝針經黃宗慤高麗宣宗宋哲宗1091
京氏周易古 10冊同上高麗宣宗宋哲宗1093
高麗歷代實錄 185冊尹頎高麗忠宣王元成宗1307
印造大藏經麗人元瓘使者高麗元瓘四明天童禪寺1312
印造大藏經 50藏麗人洪淪高麗忠宣王杭州上竺寺1312
同上 各 一部同上同上杭州高麗寺同上
同上同上同上杭州下竺寺同上
同上同上同上杭州集慶寺同上
同上同上同上杭州仙林寺同上
同上同上同上杭州明慶寺同上
同上同上同上杭州崇先寺同上
同上同上同上杭州妙行寺同上
同上同上同上杭州靑蓮寺同上
同上同上同上杭州惠力寺同上
大藏經全藏 1部同上同上杭州高麗寺1314
高麗與遼金宋外交事蹟同上同上元順宗1342

第5章 自朝鮮傳至中國之書目(自淸康熙以來)

書目傳送使者贈者被贈者公曆
石洲集淸人噶朝鮮肅宗淸康熙1678
荷谷集同上同上同上同上
玉峯集同上同上同上同上
挹華集同上同上同上同上
蘭雪軒集同上同上同上同上
圃隱集同上同上同上同上
正氣歌同上同上同上同上
桂苑筆耕同上同上同上同上
史略同上同上同上同上
古文眞寶同上同上同上同上
近代墨刻法帖同上同上同上同上
東人科擧體詩賦表論同上同上同上同上
各體文大字同上同上同上同上
眞草同上同上同上同上
古今詩文淸人尙壽朝鮮肅宗淸康熙1895
東文選同上同上同上同上
蘭雪軒集同上同上同上同上
崔孤雲集同上同上同上同上
金生體筆帖同上同上同上同上
匪懈堂筆帖同上同上同上同上
竹南筆蹟同上同上同上同上
東國詩文金昌集朝鮮肅宗淸康熙1713
東文選二秩 15冊李崐朝鮮肅宗淸康熙1714

第6章 自百濟高句麗新羅傳至日本之書目與工藝(自晋至淸)

書目與工藝傳送者贈者被贈者公曆
池沼掘築法韓人百濟古爾王時倭王應神276
縫衣女工百濟女工百濟古爾王倭王應神283
易經·山海經·孝經百濟人阿直岐百濟古爾王倭王子奉爲師傅284
(日本儒敎之始)論語百濟人王仁百濟古爾王倭王應神奉爲師傅285
織造法百濟人西素同上同上285
鐵的與鐵質高句麗人高句麗美川王倭王仁德324
(日本□狩之始)□狩法百濟人灑君百濟近肖古王時倭王仁德354
醫書及醫家新羅人金波珍漢紀武新羅實聖王倭王允恭受診414
樂工新羅人新羅訥祗王倭王允恭453
技術家百濟人百濟蓋鹵王倭王雄略463
革工高句麗人須婁其上努婁其長壽王倭王雄略493
五經百濟五經博士殷揚爾百濟武寧王倭王繼禮513
五經百濟五經博士殷揚爾同上同上516
法華經等百濟僧惠慈百濟聖王倭太子奉爲師552
(日本佛法之始)佛經像論等百濟使者斯致契同上以蘇我稻目向原家爲寺同上
醫學百濟人醫博士同上倭王欽明553
易學百濟人五經博士同上同上同上
曆法百濟人曆博士同上同上同上
五經博士 等百濟人百濟威德王倭王欽明554
佛工, 寺匠百濟人百濟威德王倭王敏達577
佛像新羅人新羅眞平王倭王敏達579
(日本尼之始)度尼法高句麗惠便居士高句麗平原王倭王敏達584
佛舍利百濟人百濟威德王倭王崇峻588
(日本受戒之始)受戒法百濟僧同上同上同上
寺工師百濟人 太良末太文
     賈古子三
同上同上同上
瓦工師同上同上同上同上
鑪盤工師同上同上同上同上
畵工師百濟人白如同上同上同上
佛工百濟人多須那同上倭女王推古593
佛法師百濟僧惠慈同上倭女王推古595
佛師百濟僧慧聰同上同上同上
曆法天文地理百濟僧觀勒百濟武王倭女王推古602
遁甲方術書同上同上同上同上
日本造紙之始造紙
墨及丹靑之佛法師
高句麗僧曇徵法定高句麗嬰陽王同上610
伎樂歌舞法百濟人味摩之, 已中
芳, 加多意三人
百濟武王倭女王推古612
架長橋法同上同上同上同上
佛像新羅人新羅眞平王倭女王推古616
佛法師高句麗僧惠灌高句麗榮留王倭女王推古625
百工祖師高句麗僧慧慈同上同上同上
築城法百濟人百濟末年倭王天智665
畵師百濟人河成新羅哀莊王倭王平城808
陶工學朝鮮人宣祖時倭將秀吉1593
馬術同上仁祖時倭將家光1635
書籍同上仁祖時倭將家光1642

▪ 紺嶽山의 노래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릴 때 거대한 산봉우리 하나가 우뚝 솟으니 그 모양이 하늘을 향해 치솟는 용과 같더라.

 나라의 한가운데 우뚝 솟은 봉우리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거리낄 것이 없더라.

 삼산과 오악이 같은 듯 다르고, 만방에 산이 없는 곳 없지만 어찌 감악과 비교할 수 있으랴. 세상이 이대로 끝난다 해도 우리의 국맥은 영원히 이어지리라.

 역대의 제왕들은 예를 숭상하여 삼월이 되면 하늘에 제사 올리고, 일년 사계절 하늘과 땅에 지내는 제사가 끝이 없더라.

 감악산의 신당은 붉은 빛으로 치장하여 천궁보다 화려하네. 북으로는 지수가 감싸 돌고 남으로는 도봉에 연결되니, 푸른 대나무와 자줏빛 단향목은 호랑이와 표범보다 더욱 위용을 보이더라.

 붉게 타오르는 두견은 하늘의 작품인가. 밝은 눈빛에는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하다.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구가하니 춤추는 무희는 한 떨기 부용이련가.

 사시사철이 아름다운 우리의 낙토가 어느새 이리와 승냥이의 놀이터로 변하고 말았네.

 땅은 거칠어지고 거둘 곡식도 없는데, 이리와 승냥이는 검은 이 드러내며 설치는구나.

 서호에 내리는 가을비 맞으며 언제 나라를 되찾을 수 있을지 시름에 잠기노라.

▪ 독립당 재건설선언

 이제 한국독립당은 민족혁명당(대일전선통일동맹에 가입한 10여개 단체 가운데 5개 단체가 연합하여 구성한 신단체)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한국독립당의 재건설을 추진하는 한편 우리의 주의와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일관되게 노력할 것을 선언한다.

 한국독립당이 재건을 추진하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순수한 민족주의적 주장에 근거한 대의를 지켜나가기 위해서이다. 아울러 기미독립운동의 정맥을 잇고 간단명료한 혁명이론의 체계를 완성하여 대중의 갈망에 부응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독립당의 본령을 고수하고 진영 내부의 결속과 정화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와 정치주장을 같이하는 동지들을 위해 독립당의 문은 항상 열려있다. 언제 어디서든, 개인과 단체를 불문하고 함께 우리의 주의와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의향이 있는 동지들의 동참을 기대한다.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한국독립당은 이 선언을 통해 국내외 각계 인사와 동지들에게 우리의 기본 이론을 실현하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을 약속하는 바이다.

4268년 9월 25일

한국독립당 동인

1935년 11월 출판 진광사 발행

▪ 국가보훈처, 『해외의 한국독립운동사료』(Ⅶ):중국편(3), 1993, 149~1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