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한민』 제2호(1936. 4. 29)  

『한민』 제2호(1936. 4. 29)

4 · 29紀念의 意義

 一

 4月은 慶月이다. 11日에는 臨時政府가 成立되엿고 29日에는 虹口炸案이 發生하엿다. 3月 1日은 우리의 正當한 意思를 發表한 날이요. 4月 11日은 우리의 意思를 實現하기 爲하야 整個的 組織을 完成한 날이며 4月 29日은 그 組織的 鬥爭史上에 있어 가장 큰 戰結의 한 장을 占한 날이다. 비록 이 세 事實이 그 發生의 時期는 互相不同하나 그 中에는 不可分의 連鎖的 關係가 있나니 이는 3月 1日에 獨立을 宣言한 그 民衆의 要求에 基因하야 臨時政府가 成立되고 臨時政府의 前衛部隊인 韓人愛國團의 活動에 依하야 4 · 29의 虹口炸案이 發生한 까닭이다.

 二

 4 · 29虹口의 一役은 光復戰爭 開始 以後 未曾有의 凱旋이엇다. 이로써 우리 韓國民族은 두 팔을 뽑내고 世界를 한 번 晲視할 수 있엇다. 勿論 凱旋將軍 尹奉吉 義士는 그 偉大한 戰功의 全部를 韓人愛國團에 돌닐 것이며 韓人愛國團은 그 戰功을 臨時政府에 밫일 것이며 臨時政府는 그를 支持하는 鬥爭的 革命民衆에게 그 戰功을 드릴 것이다. 그러나 아모리 民衆에게 鬥爭的 意識이 있다 하드라도 尹義士와 같이 殺身成仁하는 最後의 義氣가 없으면 大業의 成功은 夢想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全 民族의 赤血과 熱淚로써 尹義士의 偉功을 感謝하며 12萬分의 敬意로써 尹義士의 精神을 追慕하는 同時에 尹義士 在世時에 그가 敬仰하고 追隨하든 金九先生에게 또한 謝意를 表하지 아니할 수 없거니와 只今 義士의 故鄕에 게신 아들 일흔 그 父母 男便 일흔 그 靑孀 아버지 일흔 그 孤兒들을 언제나 잊을 수 없다.

 三

 슬프다. 나라를 일흔지 30年 동안에 光復戰綫에서 貴重한 生命을 鴻毛같이 버린 英雄烈士가 한둘이 아니엇으니 비록 時期와 環境과 밋 所做의 事業을 마러 그 波及하는 影響의 範圍의 廣狹은 있엇을지언졍 萬古에 뻐치는 그 義氣만은 一般이엇다. 換言하면 倭皇을 狙擊한 李奉昌 義士와 倭魁 白川을 擊殺한 尹奉吉 義士의 意志와 事業을 互相比較하여 그 長短을 論하기 難함은 勿論이오. 그 外에 어떠한 無名의 倭仇를 撲滅한 某 無名의 義士라도 그 崇高한 精神만은 一般이다. 그럼으로 우리가 한 先烈의 事業을 頌揚하고 追慕할 때는 반드시 같은 맘으로 모든 先烈을 崇仰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事業의 獨自的 特殊性은 沒却할 수 없나니 우리가 特別히 4 · 29를 따로 紀念하자는 本意도 諸烈의 事業의 一般性을 再思하는 同時에 4 · 29案 自體의 特殊性을 確實히 認識하자 함에 있다.

 四

 4 · 29虹口의 役은 10 · 26 哈爾賓役 以後에 世界的으로 第一 큰 衝動을 이르킨 快戰이엇다. 이 쌈의 勝利는 첫재 韓國問題를 잊어가든 世界로 하여금 韓人의 正當한 意思를 再認識하게 하엿으며 둘재 反動份子의 搗亂과 彼此의 認識不足으로 漸漸 깊어가든 韓 · 中 兩國間의 巨溝를 消滅식혓으며 셋재 60年來에 一貫한 幸運으로 國勢가 暴發하야 野性을 餘地없이 發揮하든 倭敵으로 하여금 致命傷을 입게 하엿으며 넷재 戰壕에서 呻吟하는 우리 勇士에게 新生命을 注入하엿다. 또 이 쌈은 弱으로 强을 打倒하는 革命의 定律을 實驗으로 證明하엿으며 沈默의 實行이 虛僞의 空論보다 優勝함을 行動으로 說明하엿다. 이제 4 · 29를 紀念하는 우리는 이 모든 特殊性을 잘 認識함에서 紀念하는 意義를 찾을 수 있으며 眞正한 意義를 알고 紀念한 뒤에야 尹義士의 遺志를 繼承할 수 있으니 그의 精忠大節을 追慕하여 그 遺志를 繼承코져 하는 熱血이 솟아나는 愛國同志여 榮光스러운 이 하로를 意味있게 보내자.

國際情勢

 對德問題

 德國이 昨年에 第1次 爆彈宣言으로 再軍備擴張을 頒布하고 今春에 또 第2次의 爆彈宣言으로 諾卡羅條約을 破棄하고 軍隊를 萊因非武裝區域에 進駐함에 因하야 그의 威脅을 가장 늣기는 法 · 比 兩國과 英國이 크게 驚動하여 紛紛히 抗議를 提出하고 德國의 違約을 責하나 德國은 泰然하야 조곰도 退讓치 안는 一方 法俄協約에 依하야 法國의 形勢가 優勝하여짐을 憂慮하는 英國은 表面으로는 法國에 同情하는 체하면서도 裏面으로는 德國의 所爲를 庇護하는 모양임으로 아직까지도 如何한 解決이 없이 文牒과 使節이 頻煩할 따름이오.

 意阿戰情

 昨年 가을붙어 開始된 意阿戰爭은 지금까지도 繼續 中인대 這間意軍의 優勢에 因하여 阿軍이 각금 慘敗를 當하나 阿軍은 始終不屈하고 强烈히 抗戰하면서 國際聯盟에 向하야 意軍의 殘暴함과 聯盟各國이 有效한 制裁를 加치 안음을 자조 呼籲하나 聯盟과 밋 聯盟 各國에서는 阿國에 滿足한 措處를 與치 못하고 時日을 遷延할 뿐이오. 親히 陣頭에 立하여 惡戰苦鬥를 하고 있는 阿皇은 將次 退位되고야 말니라는 悲報까지 傳하는 터이다.

 俄蒙協定

 蘇聯政府와 所爲 蒙古人民共和國 政府間에는 3月 12日에 庫倫에서 凡四條의 軍事互助協定이 成立되엿는데 中國政府에서는 此가 中國의 主權을 無視하는 것이라 하야 强硬한 抗議를 提出하엿으나 蘇聯政府에서는 此에 對하야 조곰도 介意치 안이하고 不遜한 回答을 하엿음으로 中國政府에서 다시 抗議를 提出하엿으나 그 協定이 解除되기는 萬無할 터이오. 日人의 推測에 依하면 中國에서도 俄國에 向하야 某種의 要求條件을 交換으로 하야 該 協定을 默認치나 안는가 한다.

 俄日衝突

 滿蒙 邊境과 俄滿 邊境에서는 俄蒙軍과 日滿軍間에 거의 寗日이 없이 衝突이 생겨서 마츰내 俄 · 日 兩國間의 戰釁은 目睷에 달린 感이 있는바 此를 憑藉하여 兩國에서는 各其 尨大한 兵力을 國境方面에 集中 配置하여 서로 警備를 두터이 함으로 一觸卽發의 勢를 形成하여 가지고 彼此에 責任回避를 圖하면서 戰備를 더욱 充實히 하는 中이다.

 俄國軍力

 蘇聯 現在의 總 兵額 160萬과 此에 附隨하는 各項 最精說의 武備는 實로 帝政全盛時代 以上에 超越하야 자못 世界第一의 軍力을 가졋는대 日本을 對象으로 하야 遠東에 配置한 軍力 卽 步兵十師團 騎兵三師團의 總 兵力 21萬과 飛行機戰車 各 1,000臺 裝甲自動車 500臺만 하여도 能히 日本軍에 對한 勝算이 있고 加之에 兵器工廠 飛行機 及 汽車製造所 各項 軍需工廠等이 遠東 各地에 六個所나 大規模로 設置되여 있고 其中에 百臺 以上을 常備하여둔 超重暴發 飛行機는 無着陸으로 日本의 中樞 各地를 襲擊하고도 歸着할 수 있다.

 中日關係

 日本은 지금 中國政府가 一個地方政權에 不過하다하야 從來 中央만을 相對로 하여오든 外交方針을 變更하야 中央을 分離한 各該 地政權과 外交하는 것이 可하다는 暴言을 發하고 今後로는 華北과 華南에서 恣意로 그 政策을 實現하려 하는대 華北駐屯軍을 刻刻으로 增加하야 華北을 積極 控制하면서 共同防共의 運動을 하고 있으며 華南에 있어서는 浪人을 蠢動하여 私運機關을 設하고 日貨를 私運傾銷 함으로서 經濟侵略을 達成하려는 政策은 福州 · 廈門 · 汕頭 等地에서는 이미 成功하고 다시 廣州와 腹地에까지도 此 政策을 實施中이오. 廣西에까지도 日本財閥의 投資가 擡頭하며 日本이 澳門을 買收하야 海軍根據地를 삼으려 한 일도 있으나 近者에는 적어도 該地에 航空 根據地를 設하려고 各方 運動 中이다.

 中美協調

 中 · 美가 從來로 取하여오든 協調政策은 依然한데 月前에 財政攷察의 任務를 띠고 渡美한 財政部 顧問銀行家 陳光甫氏와 그와 同行한 郭秉文氏가 斡旋한 結果 美國財界로붙어 1,000萬 佛의 貸款을 었어 이로써 紐約에 中國銀行支店을 設하야 從來 倫敦의 銀市가 中國의 滙兌標準이 되던 것이 紐約으로 옴기게 된다 한다.

疑雲重疊한 共黨의 統一主張

 커민턴의 시키는대로 韓 · 中이 不謀而同한 듯

 한 曲調에 마치어 부는 喇叭소리는 같을 것이니 第3國際의 命令대로 步調를 取하는 韓 · 中 共黨의 口號가 同一한 것은 必然한 事實이려니와 그래도 너무 符合하는데는 놀내지 만을 수 없으며, 또 警戒하지 아니할 수 없다. 近 10年 前에 中國에서 國共이 合作할 때에는 韓國에서도 單一戰線 協同戰線을 高調하더니 그 後 몇 해 되지 못하야 中國에서 淸黨運動이 勃起할 때는 韓國에서도 共黨들이 民族的으로 團結된 機關과 團體를 破壞하였다. 그 後 여러 해는 兩方에서 다 寂然無聞하더니 昨今 兩年에 共黨들의 大同統一의 口號가 다시 높아지기 始作하는데 그 裏面에는 이러한 內幕이 있다 한다. 最近에 俄 · 日 關係가 날로 緊張하여 畢竟一戰을 免치 몯하게 된 것을 覺悟한 커민턴은 各國 共黨에게 命令하야 抗日分子를 獲得하는 同時에 特別히 日本의 壓迫을 받고 있는 國家에서는 熱烈한 愛國分子를 吸收하야 排日運動을 强化하게 하였음으로 中國에서도 大同統一을 絶呌하게 되고 따라서 最近에는 그들의 軍事領袖 朱德 等의 名義로 如下한 通電을 發하였다 한다.

 『亡國民이 되지 안기를 願하는 同胞와 黨派는 一致하야 全國 國防統一政府를 組織하고 軍隊와 武裝團體는 一致하야 抗日聯合軍을 組織할 것이다. 그리하야 全國의 力量을 動員하야 抗日的 民族戰爭을 實行할 겄이다. 上述한 政府나 或 抗日聯合會와 같은 形式 下에서 團結한다면 그 組織하는 人物이 何人이거니나 또 그들의 過去가 如何하였음을 不問하고 我 공산군은 率先參加하여 協力하기를 躊躇치 아니하겟다. 各派 代表는 모름즉이 速히 協議하고 最近 期間 內에 抗日軍人大會를 召集하고 聯合軍組織에 對한 具體的 方法과 抗日作戰에 對한 戰略을 決定하기를 玆에 提議하는바 速히 答覆하기를 바란다』 이와 같은 通電을 發한 공산군은 方今 華北을 크게 擾亂하고 있으며 그 裏面의 事情은 大端히 複雜한바 蘇俄는 共軍으로 하야금 華北을 擾亂하야 日本의 出兵을 促進하야서 中日戰爭을 早日 實現하야 日本의 銳鋒을 먼저 折한 뒤에 漁夫의 利를 收코저 하며 日本은 이 計劃을 알면서도 저의 所謂 對華 三原則의 하나인 共同防共의 口實을 만들고저 하야 어느 程度까지 共黨의 跋巵할 便宜를 준다 하니 結局 紅白帝國主義의 中國을 犧牲할 目的은 一般이어니와 吾人은 이겄을 壁上觀火로 녁일 겄이 아니라 將來의 段鑑을 삼을 必要가 있다 한다.

臨時政府의 國際的 活躍

 巴里에 外交特派員을 두기로 하고 第一任으로는 徐嶺海氏를 任命해

 祖國光復을 爲하야 지난 18年間에 繼續奮鬥하여온 臨時政府가 急迫한 世界風雲에 機敏히 應付하야 最後의 成功을 最速한 期間에 거두고저 各 方面으로 新活躍을 하고 있다 함은 本報에 旣報한 바이어니와 近者에 外交施設을 더욱 充實히 하고저 特히 法國 巴里에 外交特派員을 두어 歐洲方面에 對한 外交事務의 敏活을 圖謀하기로 하엿는데 그 首任으로는 該地에서 10餘年間 祖國을 爲하야 努力하든 徐嶺海氏가 被選되리라 한다.

我臨時政府와 美洲韓人獨立黨

 臨時政府를 絶對擁護하고 誠意로 極力援助하겠다고

 民族革命黨 成立當時에 解消된 줄로 알엇던 美洲大韓人獨立黨은 今年 3月 初旬에 該黨 執行委員長 金乎氏의 名義로 우리 臨時政府에 公函을 보내고 아울너 金錢까지 거두어 보냇다 하니 그 黨이 아직도 依然히 存在함을 알 수 있는 바 該黨에서는 우리 臨時政府를 絶對擁議하고 極力援助할 뜻을 表示하였다 한다.

韓國國民黨의 新發展

 黨勢는 歐洲에까지 미쳐 將來는 支部도 設置할 듯

 韓國國民黨이 비록 成立된지는 日淺하나 그 領導人物이 全民族의 信賴하는 光復運動界의 가장 老鍊한 重鎭임으로 발서 內地와 滿洲는 말할 것도 없이 太平洋을 건너 하와이 美洲 等地까지도 革命的 羣衆의 多數가 該黨을 擁護하며, 또 該黨에 入黨하기를 願함으로 該黨에서는 以上 諸地에 支部를 設置하랴고 準備에 急汲한 바 本月 初에는 또 地中海 건너편 世界革命의 發源地 法蘭西에서 赤手空拳으로써 高麗通訊社를 創設하고 오직 祖國光復을 爲하야 弧軍弱卒로 能히 10餘年을 勇敢히 奮鬥하여오든 徐嶺海氏가 黨員되기를 請願하엿음으로 該黨에서는 크게 歡迎하는 뜻으로 卽時 入黨을 許하고 將來에 在歐 同胞 中에서 多數한 黨員을 獲得하면 該 地方에도 支部를 設置할 預定이라는데 徐氏는 우리 光復運動界에서 一般이 知悉하는 바와 같이 特殊한 天才로 法文에 能하기로는 韓人 中에 그 匹敵이 없다 하며 氏는 日常通訊事業을 經營하는 以外에 일즉이 巴里에서 法文으로 韓國歷史에 關한 著書를 發刊하야 法人社會의 歡迎을 備受하였고, 또 4 · 29虹口炸案 當時에는 法租界에 居住하는 韓人에 對한 倭敵의 不法한 行動을 放任하는 法官憲의 態度를 攻擊하여 一邊으로 民間政界의 輿論을 喚起하는 同時에 또 一邊으로 該國 政府에 抗議하여 倭敵의 跳梁을 制止함에 相當한 效果를 얻은바 이러한 攻勞가 있는 氏가 今番에 韓國國民黨員이 되는 同時에 우리의 政府 外交特派員으로 任命되는 것은 可謂 適材適任이라 할 수 있다 한다.

布哇團合會의 美擧

 臨時政府에 誠意가 極盡하고 獨立運動을 積極으로 援助함

 『하와이』의 領島인 『가와이』 섬에 사는 우리 同胞들은 여러 해 前붙어 團合會를 組織하고 在留同胞의 團結을 굳게 하야 同胞 自身의 福利를 切實히 도모하는 以外에 우리 獨立運動은 空談으로 할 것이 안이오. 實際의 特務工作이 가장 必要하다 하야 땀 흘리어 번 돈을 조곰도 앗기지 안이하고 만은 돈을 거두어 遠東으로 보내어 이 돈으로 驚天動地하는 大事件을 일으킨데 對하여는 그 同胞들에게 敬意를 表하지 안을 수 없거니와 우리 臨時政府에 對하야도 至極한 誠意를 다하야 國民된 義務를 忠實히 履行한다 하니 該地 同胞와 믿 團合會의 任員 諸氏에 對하야 謝意를 表하지 안을 수 없다.

敵神社參拜 問題에 對하야 布蛙 各 敎會 大蹶起

 各 敎會가 聯合會를 組織하고 宣傳과 反抗運動을 積極進行

 敵이 韓國耶穌敎人의 宗敎信仰을 破壞하고 그들에게 倭國의 精神을 넣어주기 爲하야 耶穌敎會經營의 各 學校 職員 學生들로 하여금 敵의 所謂 神社에 强制로 參拜하게 하려 함으로 耶穌敎信者로서는 이것이 本敎의 誠命과 信條에 違反되는 것이라 하야 그를 拒絶한 結果로 平壤 崇實專門學校 及 中學校의 校長 尹山溫 博士가 罷免되고 同 系統의 崇義女學校도 同一한 境遇를 當하여 學校當局은 勿論이오 一般信者가 大激昂 中에 있는 터이다.

 이 消息을 들은 하와이 各 敎會에서는 敵의 이러한 擧動은 確實이 韓國敎會를 逼迫하야 信敎自由를 不許하는 違憲的 非法行動이라하야 憤憿함을 익이지 못하고 積極 對付하기 爲하야 各 敎會聯合會를 組織하고 敵의 不法을 世界에 널니 宣傳하는 同時에 敵에 對한 抗議要求書를 美國 大統領 以下 上下 各 議員 및 各 敎會와 各界 名士에게 보내엿는데 모두 이에 響應하여 우리에게만은 同情과 援助를 주는바 聯合會 任員은 如下하다.

 會長 玄楯, 書記 金利濟, 總務 韓吉洙, 財務 安元奎, 理事 趙敬天 · 鄭元明 · 李泰成 · 孫昌熙

4 · 29와 韓人愛國團

 韓華文의 傳單을 發해

 韓人愛國團이 創立된지 半年이 못되야 能히 櫻田門 新公園(虹口) 大連灣의 驚天動地의 三大激戰을 行함은 一個 該團의 獨占할 榮譽가 아니라 實로 全民族的 不朽의 榮譽니 4 · 29를 맞는 韓人은 團體와 個人을 勿論하고 그 기쁜 것이 一般일 것이다. 그러나 이날을 맞음에 當하여 萬人이 瞻仰하는 만은 義士-이 모든 戰爭의 凱旋將軍을 團員으로 한 該團의 歡喜가 남다를 것은 自然한 情理며 따러서 特別한 祝儀까지 있으리라 하는데 아즉 그 詳細한 內容은 알 수 없으며 本報의 確聞에 依하면 當日에 該團에서는 韓華文 兩種의 宣傳的 傳單을 發佈하리라 한다.

疑問의 白岳會

 思想轉向者 爲해 出世 相愛會의 後身아닌지

 一進會의 後身인 相愛會를 組織하야 李容九와 같은 개짓을 하고 있는 朴春琴의 消息이 한참 潛潛하든 京城에는 지난달에 突然히 李覺鐘의 指導 下에 白岳會라는 것이 出世한 바 그 會의 標榜하는 것은 思想轉向者를 爲하야 萬般을 周旋하는 것이라고 하나 그 主管者가 前記 李 · 朴 等과 같은 走狗輩이며, 또 그 運動費의 來源이 不分明한 等 諸點을 보아서 그 會를 相愛會의 變相으로 볼 수 박게 없다 하며 거기 뫃인 人物은 如下하다.

 李覺鐘(倭總督府前囑託), 金瓊植(前元山 勞働組合會委員長), 李恆發(前新幹會委員), 安浚(共產黨員), 柳公三(前高麗革命黨員), 韓愼敎, 辛泰嶽(辯護士), 李芳(思想事件으로 方在豫審中), 丁洪敎(前少年軍關係者), 尹弘重, 李承元, 尹貴榮, 宋梡, 金鍊學, 朴仁善, 李京植, 金仁昌, 任洛彬, 金斗炯

 李裕弼 出監說

 3年 前에 上海에서 綁票式으로 倭敵의 手中에 간 李裕弼은 本國으로 가자 卽時 釋放된 고로 光復運動者들은 卑怯한 그者의 投降을 唾罵하는 同時에 政府에서는 그 者의 職을 免하고 韓國獨立黨에서는 그 者의 黨籍을 削除하엿으며 또 平素에 그 者와 深厚한 交分이 있든 親友 中에서는 自殺을 勸告하는 書信까지 보낸 일이 있어 一時 우리 社會의 問題가 된 것은 一般이 다 아는 바어니와 그 後 얼마 아니되야 그 자의 釋放을 倭軍部側에서 反對함으로 不得已 다시 監獄에 들어가서 3年의 刑살이를 하게 되엿다고 傳하더니 지난 3月 24日 朝鮮日報에는 同月 23日에 그 者가 滿期出獄되엿는데 身體는 자못 健康하다고 報道하엿다. 海外에서는 아직 그 眞狀을 摸捉키 難하거니와 3年 前 그 當時에 이일에 對하야 緘口하고 지내든 本國新聞-그 中에도 特別히 朝鮮日報에 忽然이 그 出獄하엿다는 消息이 傳하게 됨에 對하야는 더욱 疑訝함을 免치 못할 바라고 한다.

孤松兄에게

 孤松兄! 나는 只今 兄님의 그 憔悴한 얼골과 축 느러진 억개와 그리고 웅크려 잡은 그 배를 歷歷히 그리고 있음니다. 그러나 兄님이 언제든지 흘기는 눈과 비웃는 입으로 鐵拳을 두르며 豪快하게 거리를 通過할 때는 倭敵도 두려워할 줄 암니다.

 兄님! 江南에 온 봄消息은 兄님 게신 故國江山에도 갓으렷만은 우리는 消息을 傳할 길이 없으니 나는 아직 이 紙面으로 魚雁을 代身하려 하나이다. 생각하면 어제 같은 兄님이 P女士와 佳約을 맺든 그 때에 相別한 것이 벌서 10數年이 되엿으며 그 동안 彼此에 그린 것이 懇切하엿으나 이제는 音信까지 끈어젓으니 恨 많은 世上을 咒咀할 뿐인가 하나이다.

 兄님! 兄님이 憧憬하던 우리 上海는 黑暗地獄으로 들어가고 있음니다.

 臨時政府가 옴겨가고 民團이 扶持치 못하게 된 뒤로 魑魅魎과 孤雛腐鼠가 白晝에 䌙行함니다. 桑田碧海須臾改라는 것을 누가 거짓이라 웃겠나있가! 不過 4 · 5年 以來에 우리 獨立運動의 神聖한 根據地는 썩는 냄새가 觸鼻함니다. 寶貴한 尹奉吉 義士의 피로 쌓은 塔은 走狗, 人肉販賣者, 모핀密賣者 賭博軍의 손으로 헐고 있음니다. 그 中에는 某之子某之孫도 있고 當年에 鬥士라고 하든 者도 있담니다. 3 · 1運動 當時에 內地에서 某代表로 錚錚하든 者도 돈 벌겟다고 年少輩를 꼬여 日本으로 拳鬥比褰를 하러 가며 그 아이의 父母도 이것을 默認한담니다. 주린 범과 같이 한 모퉁이에서 機會만 엿보고 있는 革命룸팬들은 그 놈들의 등골을 치기에 汨沒한 이것은 畸形的 環境에 處한 韓人이 아니고는 보기 어려운 일일 것 같음니다.

 이것이 엇지 上海에만 있는 現狀이릿가. 北平에도 그러하담니다. 倭勢를 믿고 武器로써 巡警을 亂打하는 것은 厦門에서 台灣녀석들이 하는 짓과 꼭 같지오. 倭官憲은 이것을 奬勵하고 便宜를 주며 外警이 犯人을 引渡하면 卽席에서 釋放하면서 꾸짓기를 요다음에는 미련스럽게 붓들리지 말라고 한담니다.

 兄님! 이리하야 國際間에 韓人의 價値는 漸漸 떠러지되 阿片장사는 阿片쟁이가 되고 게집장사는 제 게집까지 일어버리는 悲劇만 演出하고 있음니다. 萬一 中國에서 倭놈이 宣戰하는 날에는 韓人은 玉石俱焚의 禍를 當할 것이니 엇지 이 現狀을 輕忽히 看過하겟나있가?

우리는 이것을 防止하며 肅情하려고 猛烈한 活動을 하고 있음니다.

 兄님! 우리는 最短期間에 上述한 모든 怪現狀을 退治하며 또 우리가 活動할 만한 新舞台를 작만하고 兄님을 歡迎할 것이니 한번 大勇氣를 내여 監獄같은 本國을 버서나서 平日에 憧憬하든 上海로 오시기를 懇切히 빌고 붓을 놓나이다. HS 生

   尹奉吉義士의 驚天爭日하는 義擧를 追慕하자

   韓人愛國團을 前衛로 한 우리 臨時政府를 口協하자

4 · 29 當時의 情形

 驚天動地의 大壯擧로서 世界의 耳目을 驚動하고 敵의 肝膽을 서늘케 하야 그들의 沖天의 氣勢를 餘地없이 挫折한 4 · 29 虹口炸案은 우리의 獨立運動이 있어온 以來 未曾有의 大事件으로서 우리에게 莫大한 衝動을 준 同時에 우리 民族의 無上한 聲譽가 되엿다.

4 · 29 直前의 情勢

 野慾이 勃勃한 倭敵은 9 · 18事變으로써 滿洲를 强佔하고 餘威를 乘하야 無名의 大軍을 上海에 出하여 當地에 駐屯하든 第19路軍으로 더부러 1個月餘의 大戰을 行하고 整個的 動員의 應援이 없는 19路軍은 不得已 自行退陣함에 因하야 倭軍은 戰敗의 境으로붙어 도로혀 戰勝의 地位에 立하야 自方에 有利한 協定을 成하고 意氣洋洋하엿다. 그 反面에 單薄無援한 軍力으로 精銳雄厚한 倭軍으로 더부러 惡戰苦鬥하야 一時는 敵에게 莫大한 損失을 주엇으나 맟음내는 敗戰의 境遇에 至한 第19路軍 믿 이를 熱狂的으로 應援하든 羣衆은 失望과 憤怒가 넘치고 아울러 敵軍을 陷沒하야 그들로 하여금 淞滬原野의 寃鬼가 되게 못함과 黃浦江頭의 孤魂이 되게 못한 그 痛忿한 것을 무엇에 比할 수가 없엇다.

4 · 29 當日의 光景

 淞滬停戰恊定을 成立한 倭軍은 오히려 大軍을 上海에 留屯하고 退去할 생각을 하지 안엇다. 그리다가 4月 29日에 至하여는 저희 天皇의 天長節을 慶祝할 兼 今番의 戰勝을 祝賀하기 爲하야 當地 虹口新公園에서 閱兵式과 慶祝會를 開하엿다. 自家의 危險을 警備하기 爲함이라기보다 自家의 威嚴을 자랑하기 爲하야 져들은 海陸空軍 全部를 出動하고 所有의 가즌 武器와 兵車로써 場內와 場外의 警備를 가장 森嚴히 하야 鐵筩같이 만들어 놓앗다. 이러한 틈을 뚤코 들어가 靑天霹靂을 내릴 줄이야 뉘가 뜻하엿으리오.

 金九先生에게 周到한 指示와 鄭重한 告別을 받고 準備한 爆彈을 볜도(밥그릇)와 水甁에 넣어가지고 敵의 눈을 속이고 드러온 尹奉吉氏는 뎌들 首魁들만이 一處에 蝟集하기를 기다리고 있엇다. 하늘이 도으신지라 當日 上午 11時 40分에 敵軍總司令 白川大將 以下 第3艦隊司令官 野村中將, 第9師團長 植田中將, 駐華公使 重光, 居留民團長 河端, 駐滬總領事 村井 等이 司令台위에 뫃여 서서 저희의 國歌를 부르고 있는 그 刹那에 尹奉吉 義士의 손으로 던진 爆彈은 맟음내 台上 正中에서 爆發되여 그 威儀堂堂하던 首魁者들은 肉散血飛하고 場內는 悽慘한 修羅場이 되고 말엇다. 結果로 河端은 當場에 卽死하고 植田과 重光은 折脚되고 野村은 失明하고 白川은 200餘個에 彈片이 박혀서 約 1個月만에 죽어서 軍艦에 실어 갓다.

4 · 29事件의 影響

 이 大事件이 發生되자 狼狽倒地한 敵은 報復의 手段으로 하야 擧事한 尹奉吉氏를 現場에서 捕虜하고 다시 當日에 法租界에 와서 當時 우리 民團長이던 李裕弼邸에서 安昌浩先生을 逮捕하고는 其 翌日 淸晨부터 當時의 우리 機關所在인 普慶里 四號를 爲始하여 嚴恒燮 · 金朋濬 · 故 金澈 · 安恭根 · 朴昌世 · 崔錫淳 · 趙素昂 · 尹琦燮 等 諸氏의 家宅을 搜索하엿으나 하나도 所得이 없엇다. 다만 그들의 餘憤으로 前記 幾個場所에서 金德根 · 張鉉瑾 · 金德穆 · 朴華山 · 車均燦 · 李東一 · 朴濟道 · 朴濟建 · 李基咸 · 張相國 · 胡聖源 等 11靑年을 잡아다가 取調한 結果 아모 政治의 干涉이 없음으로 1週 乃至 1個月間 拘留하엿다가 䆁放하고 金德根 · 張鉉瑾 두 靑年은 本國까지 押送하엿다가 釋放하고 安島山先生만은 6月 2日에 本國에 護送되여 敵廷에서 役4年의 判決을 밧엇다. 侵略者 日本에 對하야 極度의 敵愾心을 가지는 中國上下는 尹義士의 擧義에 對하야 熱烈한 同情과 援助를 與하는 同時에 日人에게 阿諂하든 當時의 法租界當局이 國際法例를 違反하야 中國의 國籍을 가진 安昌浩氏를 逮捕하야 日人에게 引渡한데 對하야 各界에서 嚴峻한 抗爭을 하엿고 西人 各 報界에서도 모도 우리에게 同情하야 正義를 主張하고 우리 社會에는 여러 가지 現象이 만히 닐어낫다.

尹奉吉 義士의 略傳

 東洋天地를 震動하던 俄日戰爭은 當時 滿洲鐵路 經營權을 貪내든 美國大統領 루스벨트氏의 斡旋으로 媾和條約을 締結하고 韓國에 對한 日本의 自由行動을 承認하게 되니 從此로 5,000年 相繼하든 榮譽로운 韓國의 運命은 風前의 燈火가 되여 朝不保夕의 悲境에 陷하엿다. 비록 國內에서는 無數한 愛國志士들이 慷慨한 戰鬥를 하엿으며 國外에서는 李雋鬥士가 熱血로써 韓國의 抑寃을 海牙에 訴하엿고 이어서 安重根 義士가 日月을 꾀일만한 義氣로써 哈爾濱에서 敵魁를 快殺하엿으나 日本의 勢力은 膨脹하고 奸細의 跋巵는 日甚하며 帝國主義列强은 韓國을 爲하야 귀를 막어서 畢竟 正義라는 것은 韓人과는 何等의 相關없는 名詞가 되고 말엇다. 그러나 慈悲하신 祖宗은 罪孼만은 이 子孫을 永遠히 버리지 아니하시매 無窮花 花園에 香氣가 가득하고 伽倻山 그늘에 瑞光이 빚이어 忠南 禮山郡 德山面 杮梁里에 一位 英俊豪邁하고 義氣가 絶倫한 天下無敵의 大勇士가 出生하니 이가 곳 尹奉吉 義士다. 때는 隆熙 2年 戊申 5月 22日이니 海牙事件이 나든 다음 해요 伊藤 暗殺事件과 李完用 暗殺事件이 닐어 나던 前해다. 이와 같이 邦國에 多事하고 世上에 波蘭 많은 때에 尹義士가 出生하게 됨은 實로 時勢가 英雄을 기다린 까닭이라 하겟다. 그러나 襁褓에 든 이 애기가 後日에 일어버린 國家를 光復하고 씰어진 民族을 復興식히기 爲하야 殺身成仁함으로써 敵의 肝膽을 서늘하게 하고 世界의 耳目을 震動할 줄이야 어띠 夢想이나 하엿으랴. 이 애기가 漸漸 자라매 聰明이 過人코 才德이 兼備하야 凡人으로는 따르지 못할 點이 만은지라. 7歲에 私塾에 入學하여 工夫하기 始作할 새 不滿幾月에 師父와 先輩는 義士를 指稱하야 才童이라 하엿다. 春風和氣와 같은 義士의 親切한 態度에는 秋霜烈日과 같은 急激하고도 剛直한 大無畏의 精神이 潛在하니 남들이 義士를 別名하여 갈오되 『살가지』(狸)라 하엿다.

 어엿슬적붙어도 同侔들과 다토아 敗한 때가 없었으며 歐打을 當할지라도 끝까지 睡罵로써 反抗하되 울지 아니하엿다. 甚至於 先生님이 종아리를 따리려 하야도 두 눈을 크게 뜨고 안차게 처다만 보고 잘 順從치 아니하엿다. 15歲 時에 學業이 벌서 成熟하야 文理를 通하게 되매 作書做詩에 造詣가 相當하엿나니 다음의 詩는 그 해에 父老들의 試驗에 應하야 落韻成詩 한 것이다. 『不朽聲名十氣明 十氣明明萬古晴 萬古晴心都在學 都在學行不朽聲』 16歲에는 1年間 新學間을 自修하고 17歲 以後에는 數年을 繼續하야 育英事業 및 農村啓發에 努力하엿다. 天이 有意하야 이미 英雄을 韓國에 주엇으니 엇지 無心하랴 義士의 年紀가 비록 幼稚하나 그는 蓋世의 義氣와 拔山의 武勇이 있는지라 5,000年의 燦爛한 祖國의 榮華와 先民의 偉業을 追慕하여 어린 가슴을 태웟으며 三島의 小賊이 無窮花 三千里에 橫行하며 神聖한 倍達族이 死線에 徬徨함을 目到하고 붉은 피를 끌이엇다. 和暢한 봄東山에서 목메여 나오는 저 杜鶰聲을 듯고 피눈물은 얼마나 흘리엇으며 蕭瑟한 金風에 淒涼하게 울리어 오는 저 버레소리를 듯고 긴 한숨은 얼마나 지엇으랴. 그러나 救國救民의 大志를 품은 義士는 兒女態度를 더 길게 같지 아니하엿다. 漸漸 長成하여 年紀가 23歲에 至하매 義士는 恍然大覺하여 自己의 人生權을 定하엿다. 『眞正한 生은 鐵拳으로 敵을 撲滅함에서 求할수 있다. 敵의 毒手에서 坐而待死 하는 것은 自殺만도 못한 것이다. 人生이 一老하면 鐵拳은 無所用이오. 더구나 棺속의 鐵拳은 썩을 것 박에 없다』 이것이 그의 人生觀이다. 이 覺悟를 가진 義士는 平日 귀에 暗暗錚錚하든 臨時政府를 찾어 鴨綠江을 通過하엿다. 悠悠한 江流는 그의 遠大한 뜻을 더욱 굳게 하엿으며 一輪의 皓月은 그의 明朗한 氣節을 더욱 뚜렷하게 하엿다. 그러나 이것을 알 사람이 거 누구엿드냐. 그의 굿세인 맘속에는 한 모퉁이에 川邊의 細柳와 같이 부드러운 구석이 있엇으니 孝誠이 至極하고 慈愛가 深切한 義士로써 늙은 父母와 弱한 妻子를 다 소기고서 가만이 情든 故國을 떠날 적에 뼈끝에 사모치는 말할 수 없는 心情이 없엇으랴만은 한 家族을 사랑하는 맘보다 그 民族을 사랑하는 맘이 더 크엇든 까닭에 義士는 모든 것을 一刀로 끈엇다. 그러나 古來로 英雄에 多寒士라. 義士인들 엇지 이를 免하랴.

 一雙의 鐵拳이 義士의 全 財產이엇나니 萬里遠程에 오른 異域孤客은 向할 바가 없엇다. 그러나 百折不屈하는 義士는 靑島까지 와서 선듯 某 倭人의 洗濯店에 雇傭이 되엿다. 燕雀方安知鴻鵠之志랴. 倭人은 제일 잘해 주기만 바랏지만 義士는 이 집에서 上海까지의 旅費를 準備하엿다. 이듬해 5月 8日에 드디여 夢寐에도 憧憬하던 上海에 當到하니 龍飛大海하고 虎入高山이라. 英雄이 비로소 大志를 試驗할 땅에 이르니 當時 義士의 歡喜야 붓으로 形容하여 무엇하리오. 그러나 산설고 물선 이 땅에서 누가 그 壯志를 알고 歡迎하여 줄 것이냐. 街路에 徬徨하게 된 義士는 다시 貧窮에 몰리어 어느 때는 工廠의 職工도 되엿으며 어느 때는 街頭의 小眅도 되엿으되 義士는 이로써 志를 喪치 아니하고 오직 自信과 快樂으로 기쁘게 날을 보내며 때 오기만 기다렷다. 見義思勇은 그의 氣槪라. 工廠에 있을 적에도 많은 工友를 爲하야 無理한 廠主에게 反抗하다가 解雇를 當한 일도 잇엇다.

 同心相照의 兩個 英雄의 相逢은 드듸여 驚天動地의 大事業을 做出하야 祖國의 옛 榮華를 다시 빛내게 하엿다. 義士의 企待가 헛되지 아니하야 畢竟 金九 先生을 만나니 英雄이 能知英雄之志라. 一言에 心志가 相通하야 義士는 이듬해 卽 14年 그가 25歲 되든 해 4月 26日에 韓人愛國團에 加入하는 同時에 中國을 侵略하는 敵魁屠戮하기를 太極旗下에서 壯嚴하게 宣誓하고 同月 29日에 虹口公園에서 뜻대로 成功하고 現場에서 敵의 捕虜가 된 뒤 同年 11月 18日에 上海로붙어 倭國에 護送되고 同 12月 19日에 金澤陸軍刑場에서 從容하게 就義하엿다. 所志를 完成하고 痛快하게 世上을 떠난 義士야 무슨 遺恨이 있으랴만 뒤에 남아있는 우리는 片刻이라도 엇지 義士의 恩功을 잊을 수 있으며 本國에 계신 그의 父母와 妻子며 또 그 아우들을 생각지 안을 수 있으랴.

 -尹義士가 4月 27日 新公園에서 지은 노래-

   萋萋한 芳草여

   明年에 春色이 일으거든

   王孫으로 더브러 갓치 오게

   靑靑한 芳草여

   明年에 春色이 일으거든

   高麗江山에도 단녀가오

   多情한 芳草여

   今年 4月 29日에

   放砲一聲으로 盟誓하세

     尹奉吉 義士의 烈烈爀爀한 壯志를 繼承하자.

     尹奉吉 義士를 產出한 韓人愛國團을 讚揚하자.

     우리의 運動을 더욱 强化하여 敵의 勢力을 撲滅하자.

     우리의 獨立을 速히 完成하여 尹義士의 英靈을 기쁘게 하자.

[來稿] 告楊綠君

 南華通訊을 일고서 上海 韓世光

 나는 本來 無政府主義다. 또 그 主義者에게 向하야 是非를 걸 생각을 하지 아니하엿다. 이것은 나뿐 아니라 現在 우리 革命線上에 서 있는 一般사람이 거진 다 그러할 것이다. 當年에 無政府主義者로 有名하든 中國의 『오치휘』氏도 그 主義가 中國에서 實現되랴면 적어도 3,000年 後에나 될 것이라고 失窒의 高喊을 쳣다. 이는 다 그 主義 自體가 一個 空想에 지나지 아니함으로 實現할 可能性이 없는 것을 意味한 것이다.

 그러나 南華通訊 第2號에 楊綠君이 우리 臨時政府를 自己 智慧껏 毁罵하고 甚至於 人身攻擊까지 조곰도 忌憚없이 한 이때에 臨時政府를 擁護하는 나로서는 그대로 沈默할 수가 없다. 그럼으로 나는 韓民의 貴한 紙面을 빌어서 楊君에게 數言을 告하거니와 이것이 君의 輕薄한 妄言을 警戒하는데 一助라도 있게 되면 萬幸일가 한다.

 첫재 君은 臨時政府가 土地 人民 主權의 3要素를 具備치 못한 것을 誹笑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臨時政府라는 意義를 모르는 말이다. 萬一 그 3要素를 具備하엿으면 正式政府가 될 것이 아닌가. 國家興亡에 匹夫有責이니 君이 萬一 眞正한 韓人이라 하면 그 政府가 그와 같은 逆境에 處한 것을 볼 때에 多少의 慷慨한 心志가 있을 것이어늘 君은 도로혀 이 政府를 否認하고 嘲弄한다. 아니 君은 更進一步하야 우리에게 政府가 없기를 希望할 것이며 없는 것을 더욱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强盜 日本이 韓國을 强佔하는 것을 拒絶하며 倭敵의 政府를 否認함으로 우리 政府를 要한다. 歐洲大戰時에 德國에게 國土와 人民을 다 일코 法國에서 奮鬥하던 自耳議政府를 當時의 自耳義國民이 否認하고 誹笑한 일이 있엇는가. 보라 우리 政府가 아직 寸土를 光復하지 못하였을지라도 海內外에서 그 政府를 擁護하는 民衆이 幾百幾千萬이 되지 안는가. 學窓에서 외치는 卓上空論과 實社會에서 表明되는 經驗과는 흔히 差異가 만타. 平行하는 두 線이 交叉안되는 것을 理解하는 同時에 그 線을 無窮히 延長할 때에는 交叉될 수 있다는 것까지 明知하는 것이 所謂 科學的이다. 6個의 盲人이 다 各各 코기리를 만저보고 다 各各 제가 만저본 部分만 形容하야 코기리의 全體라고 固執하는 것은 大緞히 危險한 酬酌이다.

 둘재 君은 말하기를 臨時라는 것은 一定한 短期間을 意味함에 不拘하고 臨時政府의 臨時는 앞으로도 永遠할는지도 모른다 하고 그 理由로는 朝鮮獨立이 될지라도 萬一 第2派나 第3派가 實權을 잡게 되면 臨時政府가 正式政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들엇다. 이 얼마나 損福할 呪咀며 輕薄한 譫辯이냐. 또 말하기를 『그러면 너는 朝鮮의 獨立을 믿지 안는가. 臨時政府가 正式政府될 날이 있다는 것을 밋지 안는가』하고 나(楊의 自稱)를 革命의 叛徒라고 할는지도 모른다 하엿다. 이로써 君도 朝鮮獨立이 되면 正式政府가 생길 것을 믿으며 正式政府가 될 것을 믿지 아니하면 革命의 叛徒가 되리라는 것까지 두려워하는 것을 알곗다. 이것이 宗敎家의 이른바 사람마다 萻薩의 맘과 魔鬼의 맘을 가젓다는 것이냐. 君이여 將來 正式政府가 成立될 때에 第2派나 第3派가 實權을 잡는다 하야 臨時政府가 반드시 正武政府가 못될 것을 무엇에 根據하야 證明하는 것인가. 過去 20年 歲月에 臨時政府의 責任을 가젓든 人物은 한 派의 사람만이 아니엇든 것을 모르는가. 甚至於 共產黨가치 臨時政府를 제 手中에 넣지 못해서 모든 凶計를 다 부리는 것을 君의 눈으로 보지 안는가. 君의 武斷的 偏見은 再論할 價値도 없거니와 臨時政府를 擁護하는 吾人은 이 政府가 將來에 正式政府가 될 것을 確信하며 또 그렇게 되도록 努力하는 것이다. 萬一 君의 理論을 承認한다 하면 그 理論이 엇지 臨時政府에만 適用될 것이냐. 現在의 南華聯盟도 將來에 國內에서 光復運動者나 共產主義者가 權勢를 잡는 同時에 中國에서도 그렇게 된다면 絶對로 存在치 못하게 될 것이니 차라리 只今에 解散하는 것이 當然하지 아니하냐.

 셋재 君은 말하기를 臨時政府는 敵國의 侵犯이나 反對派의 革命을 두려워할 必要가 없음으로 倒壞될 念慮가 없다고 하엿다. 그러나 臨時政府가 倭敵에게 襲擊을 當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오. 最近에도 赤色分子의 搗亂으로 許多한 風波를 겪엇다. 君이 이것을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君은 또 말하기를 汽車間에서나 무슨 곧에서도 政府를 支持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무엇을 指稱하는 것인지 甚히 瞹眛하다. 이러한 事實도 없거니와 臨時政府도 한 革命機關인 以上 반드시 巨樓大廈에 있어야 할 것은 안이다. 君의 論法에 依하면 人民과 領土를 要치 아니하며 反對黨의 破壞運動을 받지 아니하는 團體와 機關은 汽車間이나 麻省판에서도 維持할 수 있으니 念慮없다는 말이 될 것이다. 이것이 或 君의 입으로 君의 말을 하는 것이나 아닌지 君은 또 臨時政府가 江南의 勝地를 찾어 단인다고 嘲笑하였다. 그러나 君 等이 本國에 있지 아니하고 上海에 와 있으며 君 等의 團體를 本國에 두지 아니하고 南華에 둔 것을 생각하면 다시 더 嘲笑할 理由가 없을 것이다. 君 等이 上海를 死守하는 것이 가장 革命的이며 가장 큰 자랑거리로 생각하는가. 아마 君 等도 必要에 應하야는 福建이나 南京 又 或 太倉 等地에 來往한 일도 있엇겠지.

 넷째 君은 또 8道의 代表를 뽑아 國會를 組織하며 國務領을 閣員이 다 돌녀 할 수 있으니 돈 100元이나 들여서 假字 감투 하나를 사서 쓰고 無雙의 榮光으로 알든 그 냥반들에게는 이것도 無意味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하였다. 海外에서 8道 代表를 뽑아 議政院을 組織하는 것이 勿論 完全하지 아니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革命時期에 處한 吾人의 一種 非常辦法이다. 至於 國務領 云云하야는 벌서 녯 歷史가 된 것이니 再論할 必要도 없거니와 돈 100元 들여서 감투 하나를 사 쓰고 榮光으로 알든 양반은 누구를 指稱한 말이냐. 이와 같이 없는 事實을 揘造하야 人의 名譽를 毁하랴 하는 卑劣한 言動은 도로혀 君의 前程을 爲하야 크게 警戒할 바이다. 所謂 自由意思를 尊重하며 絶對平等을 主張한다는 君 等은 君 等의 主義만이 가장 合理的이오. 가장 科學的이라하며 君 等의 行動은 一毫도 誤謬가 없는 듯이 모든 罪過는 남에게 轉嫁하랴 하지만 君 等 自體는 무슨 까닭에 領袖다툼으로 分裂이 되였으며 贓物分配 不平均으로 彼此 反目을 하였나.

 다섯째 君은 말하기를 한 가지 特色은 그네도 또한 時代의 潮流를 吸取하여서 가장 唯物的인 것도 없지 안타. 金九와 같은 忠實한 首腦人物로도 義士 · 烈士 피를 팔어서 뜬 돈푼이나 생기었을 적에는 臨時政府를 不顧하다가 困難한 形勢를 當할 때에는 또다시 들어오고 만다고 하였다. 君이 이믜 金九 先生을 忠實한 首腦人物이라고 歎服한 以上 그에게 非義의 일이 없으리라는 것도 良心上 許諾할 것이다. 그가 臨時政府를 全然 不顧한 일도 없으며 現在에 政府의 職任을 다시 가진 것도 自己個人에게 何等 困難이 有함에 因함이 아니오. 反動分子를 鎭壓하고 政府를 鞏固히 만들고저 함이오. 金九 先生이 義士나 烈士의 피를 판 일이 없다고 그의 信徒 中에서 義 · 烈士가 생긴 까닭에 內外國人의 도음을 받은 것은 事實이나 큰 事業을 經營하는 者로서 正當한 도움을 請하며 正當한 도움을 拒絶치 아니함은 當然한 일이어늘 이것을 구태여 피를 팔엇다고 이름 짓는 것은 君의 齷齪한 心理만 表現함에 不過하지 아니한가. 그 義士들과 何等의 關係가 없는 君 等은 그 義士 때문에 보내는 外國人의 同情을 橫領하지 아니 하였는가. 돈은 말할 것도 업시 쌀까지도 들어가지 아니 하였나. 이것이야말로 眞正한 不義의 일이다. 君은 남을 보고 唯物的 傾向이 있다고 비우섰지만 萬一 이 世上에 一點의 革命道德도 업고 羞恥도 모르는 極端의 唯物的 傾向을 가진 者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躊躇치 안코 君 等이라고 指摘하고 싶다. 왜 君 等이 金九 先生의 주는 돈을 받을 때에는 『革命領袖는 오직 先生뿐이외다. 무었이든지 指導하시는대로 하겠소이다』 하다가 그 돈을 얻지 못하는 때는 도로혀 侮辱과 誹笑를 加하는 때문이다. 上海를 君 等의 唯一한 活動根據地로 認하고 上海 民衆을 君 等의 宣傳對象으로 하면서 上海 吾人의 社會를 君 等이 가장 不安하게 하는 까닭이다. 走狗를 應懲하는 것은 何等의 不安을 感할 것이 업거니와 殘疲한 韓人 아직 아모 强權도 가지지 몯한 韓人의 私有財產붙어 强奪하기 始作하는 것도 君 等은 革命事業이라 하는가. 當然히 打倒할 倭敵 및 列强의 强權도 있으며 當然히 沒收할 幾億萬의 敵產도 있지 아니한가. 이러하고도 上海 民衆 아니 全世界의 民衆은 君 等만 擁護하리라고 꿈을 꾸는 것은 可憐한 일이 아닌가. 楊君이여 남을 毁謗하기에 힘쓰지 말고 먼저 自身을 爲하야 三思하라.

   祝 韓民創刊

  有是國有是民

  有是黨有是報

     金起元

其罪可殺의 甲甯昌植輩

 上海의 僑胞를 꼬여 子女는 倭의 學校로 貧困者는 宿泊所로

敵 外務省 囑託으로 上海倭領事館에서 여러 해 동안 개질을 하면서 一面으로는 所謂 朝鮮人會라는 幽靈團體를 組織하여 我 光復運動者에게 直接間接으로 莫大한 害毒을 주고 있는 李甲寗의 罪狀은 世所其知하는 바어니와 그놈은 倭놈과 함께 昨年에 仁成學校를 壓迫하야 畢竟閉門의 悲境에 陷하게 하고 그 後에 또 韓人의 子弟를 꼬여 倭學校에 入學식히고저 極烈히 運動을 하였다는데 그놈과 같은 개들이나 또 그놈의 卒徒輩인 不正業者 卽 몰핀 密賣者와 人肉 販賣者들은 貴여운 子女를 倭校에 보내여 이믜 그 數爻가 24에 達하였다 하며, 또 自稱 朝鮮의 에디손이라는 孫昌植은 狡滑成性하여 發明을 憑藉하고 騙財를 專門하며 近年에는 倭女로 계집을 삼고, 또 撲殺 當한 容魯의 뒤를 이어 前記 朝鮮人會의 副會長이 되야 會長 甲寗을 壓倒하고 頭等走狗가 되랴고 倭敵에게 非常한 阿諂을 다하는 中 倭領館의 密令을 받어 貧困한 同胞를 麻醉시킬 目的으로 無料 宿泊所를 設置하고저 韓人에게 公然히 募捐하였다 한다. 이와 같이 人面獸心의 行動을 敢爲하고 있는 走狗들은 이믜 獨立運動界에서 死刑을 내린지 오랜즉 이것들을 撲殺하는 것은 一般 獨立運動者의 權義에 屬한 것이니 그놈들의 壽命은 도마 위의 고기와 같다 하야 吾人 社會에서는 크게 注目하고 있다 한다. 그 박에도 走狗의 走狗 노릇을 하는 者와 走狗의 頭目이 되려고 서로 競爭을 하고 잇는 者가 었지 한둘뿐이랴. 이런 무리들의 末路가 멀지 안었을 겄이다.

[韓民 第2號 4 · 29紀念 附錄]

 宣誓文(謄本)

 나는 赤誠으로써 祖國의 獨立과 自由를 回復하기 爲하야 韓人愛國團의 一員이 되야 中國을 侵略하는 敵의 將校를 屠戮하기로 盟誓하나이다.

大韓民國 十四年 四月 二十六日

宣誓人 尹奉吉

韓人愛國團 앞

尹義士가 虹口公園에서 舉義하기 前 數日에 金九 先生에게 贈한 詩

 巍巍靑山兮 載育萬物 鬱鬱蒼松兮 不變四時

 濯濯鳳翔兮 高飛千仞 舉世皆濁兮 先生獨淸

 老當益壯兮 先生義氣 臥薪嘗膽兮 先生赤誠

 暴發 前 1分間 敵이 國歌를 唱하는 刹那

 蠻凶의 日本은 無名의 師를 上海에 出하야 戰勝하고 餘威를 仗하야 倭皇의 天長節인 4月 29日에 天長節 祝賀 兼 勝戰을 慶祝하는 當日의 虹口 新公園一帶에는 敵方 所有의 海陸空大軍을 出動하야 飛機 · 鐵甲車 · 坦克車 · 大砲 · 機關鎗 等으로써 警備를 森嚴히 하야 물샐틈 없이하고 場內에는 敵의 文武大官及數萬羣衆이 參集하야 熱狂的 慶祝을 하고 있엇다. 이러한 現場에 將次 敵魁들의 頭上에 霹靂을 내리울 1個 壯士가 두 주먹에 爆彈을 움켜쥐고 正當其時를 엿보고 있는 줄이야. 神이 아닌 저들이 엇지 夢想에나 뜻하엿으리오. 霹火가 터질 一分鐘前까지의 敵軍의 首魁 白川大將을 비롯하여 第3艦隊司令 野村中將, 第9師團長 植田中將, 駐華公使 重光, 駐滬總領事 村井, 居留民團長 河端 等 文武主腦者 全部가 그들의 死所인 台上에 뫃여들어서 意氣揚揚하야 그들의 國歌인 『君代』歌를 高唱하고 있엇다(右의 寫眞은 바로 爆發되기 前 一分 鐘間의 光景:사진 생략).

 暴發 後 1分間 霎時間에 修羅場化

 그들이 台上에서 國歌를 불으느라고 벌니고 있던 입을 담을기 前 그 瞬間에 壯士의 손에서 떠난 霹靂 불덩이는 그들이 뫃여선 그 台上正中에 一毫의 差錯이 없이 떠러지고 말엇는데 天崩地坼하는 霹靂一聲에 台上에 뫃여섯든 그들은 거의 身首異處의 格으로 飛散亂倒되고 台는 문어지고 現場은 霎時間에 修羅場으로 變하였다. 물 끌틋 하는 羣衆은 쥐구멍을 찾느라고 야단이오. 台上에 있던 河端은 當場에 卽死하고 白川은 全身 200餘處에 彈片이 백여서 5月 26日에 마츰내 絶命되고 野村은 失明하고 植田과 重光은 折脚되여 비록 죽지는 안엇으나 殘廢不具者가 되고 말엇다. 主將이 死하고 大員이 傷하고 使節이 損하여 氣高萬丈하던 者들이 一旦에 無面渡江이 되엿으니 無名한 一個壯士의 손에 그 元凶과 巨魁가 이같이 崩倒된 것은 神人이 다 놀내지 안을 수 없엇다(左의 寫眞은 바로 爆發된 後 一分鐘間의 光景:사진 생략).

▪ 『한민』 제2호, 1936년 4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