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164. 李始榮이 李承晩에게 보낸 서한  
발신일2월 25일
발신자李始榮  
수신자李承晩  

164. 李始榮이 李承晩에게 보낸 서한

 근자에 답서를 받고 위안이 되었습니다.

 겉만 보고 논하자면 죽음으로써 지키지 못하고 갑자기 탈퇴하였으니 책임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그 이면을 살펴보면 土崩 瓦解하여 유지할 방법이 없고 다만 怨聲과 비방만이 있으며 한 군데에서도 진심으로 원조해 준 곳이 없으니 무슨 방도로 유지해 나가겠습니까?

 弟는 일찍이 石吾의 행동이 결코 크게 착오를 일으킬 염려가 없다고 여겼는데 이번 행위의 시비는 실로 생각지도 못한 일입니다. 그러나 弟의 우정이 부족함이니 무슨 말로 남을 허물하겠습니까?

 趙 · 閔 두 곳에 보내신 편지의 대강은 전해 들었습니다. 누누이 번거롭게 함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나 하와이에 있는 몇몇 순응하는 이들과 시종을 같이 하겠다고 한다면 더는 할 말이 없겠습니다. 만약 정치원리로써 여론을 수습하려고 한다면 그 방법을 바꾸지 않고는 어찌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선전입니다. 지금 南北滿과 俄領에는 동포가 가장 많아 백만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그들 대다수가 대통령의 불법을 인정하여 가령 委任統治, 일본 영사의 환영, 기부금의 甘受, 일본 영사의 소개, 학생의 內地入送 등의 갖가지 悖談이 가위 남김없이 고루 퍼져 있다 하겠습니다.

 그 중에서 백이나 천에 하나 꼴로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사람이 있더라도 모두 默默無言입니다. 날마다 선전하는 자들은 마음을 써서 하고 있으니 해가 가고 달이 가면 처음에는 의심하다가도 끝내는 믿게 됩니다. 하와이의 『國民報』나 『委員部通信』 따위는 있는지조차 아는 이가 없으니 이대로 하와이섬 안에서만 힘을 쏟는다면 인심을 다시는 수습하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石吾의 재입각은 가위 鐵限(쇠로 된 울타리)이라 하겠습니다.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단연코 돌이킬 희망이 없습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노소를 막론하고 한 사람도 결합됨이 없습니다. 비록 독실하게 믿어서 전임시킨다 하더라도 결국 효과를 거둘 가망이 없으니 어찌 답답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제가 시기한 것이 아니라 제의 소견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제가 짐을 벗어버리겠다고 하니 형은 사실 누차 꾸짖었으나 제 같이 박약한 사람으로 어떻게 또 다시 馮婦(前漢 元帝의 後宮 馮婕妤를 이름. 원제의 虎患을 막았다고 전함)의 흉내를 내겠습니까? 상해에 기거하기도 이제는 극히 어려우니 장차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허물을 뉘우치며 자취를 감추고 숨어 살 계획입니다.

 정국이 처음에는 백성들의 촉망을 많이 받았으나 이제는 朴老(朴殷植)를 敎唆하여 허수아비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불과 5,6인이 논의를 주도하여 분열된 가운데 개헌을 주장하나 정신이 委員制에는 있지 아니하므로 재차 사표를 내게 되었고 혹자는 사직하고 떠난 자도 있습니다. 그런즉 순전히 西道人, 즉 興士團의 내각이 된 셈입니다.

 議會가 개원된 지는 이미 오래이나 議員은 자못 영성하여 모이는 것은 5,6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기도에서는 崔昌植과 呂運亨만이 출석하고 충청도에서는 오직 하나 郭憲(즉 島山의 숭배자)뿐이며, 경상도와 전라도에서는 희망이 없다 하여 관망하고 나가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것이 대략의 실정입니다.

 이제부터는 통신하기도 어렵게 되었는데 갖가지 원인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꾸짖지 말아주십시오. 勛祺를 빕니다.

 또 한 가지 회답할 것이 있는데 이 뒤로는 절대로 漢城條約 네 글자는 거론하지 않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만일 이를 이용하여 대항하려 한다면 더욱 약한 것만 드러내 보이게 될 것 입니다. 또 상해와 중국 · 俄領에서는 한 사람도 호응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대한민국 원년의 거국일치에 대해서는 비록 불완전한 점이 있기는 해도 소수의 挟憾者가 어쩌지는 못할 것이므로 말의 뜻을 이렇게 돌리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깊이 헤아리심이 어떻겠습니까? 제가 할 말은 이것 뿐입니다.

省齋 사룀. 2월 25일

이시영 무총장

· 1925년 2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