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169. 朴殷植이 李承晩에게 보낸 서한  
발신일대한민국 7년 4월 1일
발신자朴殷植  
수신자李承晩  

169. 朴殷植이 李承晩에게 보낸 서한

 零南 仁兄 台鑑

 요사이 또 台座의 거취문제로 이미 전보를 보냈는데 생각건대 이미 살펴보셨겠습니다. 尊兄의 아량과 高致로 의당 이런 일을 가슴 속에 담아 두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弟로서는 불안함이 아주 심하고 부끄럽고 어색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제는 하나의 녹녹한 썩은 선비입니다. 본성이 恬淡하여 남들과 겨름이 없습니다. 어떻게 늙고 병든 몸으로 정계의 시비 속에 말려들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더구나 태좌와는 서로 信愛함이 본래 두터웠습니다. 마땅히 협조하는 도리를 다해야 하는데 어떻게 배치되는 사단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표면상으로 보면 정국면에서 서로 번갈아 나가고 물러가고 하는 것이 마치 서로 용납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어찌 그리 공교롭습니까? 다만 일이란 오래 되면 반드시 밝혀지는 법이고 또 공정한 안목이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구구히 스스로를 변명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번에 정국이 변경된 것은 태좌께서 상해를 떠나 멀리 있으면서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아서 몸소 정무를 주간하고 친히 민정을 살피지 못하여 온갖 조치가 그 타당성을 얻지 못한 데서 연유한 것입니다. 사람의 집에 주인이 없으면 그 집안 살림이 반드시 어지러워지는 법입니다. 하물며 나라의 정무에 있어서 이겠습니까?

 작년 南滿洲事變이 확대된 이후로 정부는 더욱 대중의 원망을 받게 되었고 인심은 갈수록 과격해져서 모두가 개혁이란 한 길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원인이고 다른 문제는 모두가 소소한 것들입니다. 『詩經』에 이르기를 “몸소 하지 않고 친히 하지 않으면 서민이 믿지 않는다(不躬不親 庶民不信)” 하였습니다. 지금 남만주사변으로 말하더라도 태좌가 이곳에 있어 몸소 순시하고 위무하거나 혹은 사람을 보내 위로했더라면 틀림없이 이러한 참극 비극한 奇禍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책임질 사람이 없어 끝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니 가련한 것은 죽고 떠도는 우리 무리와 우리 백성들 뿐입니다.

 태좌께서 만일 그 상세한 정황을 들으셨다면 의당 소리내어 울고 눈물을 흘리셨을 것입니다. 구애된 바가 있어 오늘은 그만 생략하겠으나 다른 경로를 통해 필시 그 상세한 내용을 들으실 날이 있을 것입니다. 진실로 善政과 良策이 중추기관에서 나왔다면 사람들이 모두 정부를 아끼고 받드는 마음을 가졌으니 어찌 바람을 일으키고 물결을 일으킬 사람이 있겠습니까? 설사 있다 하더라도 대중이 용납치 않았을 것이니 무엇이 걱정이겠습니까? 그런데 정부의 갖가지 실책이 여기서 그치지 아니하니 비방은 산처럼 쌓이고 대중들의 분노는 불처럼 일어나 필경에는 실패를 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원인을 말하자면 모두가 태좌가 몸소 하지 않고 친히 하지 않은 연고입니다. 번연히 깨닫고 반성해 보시면 남을 허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는 이 자리에 오래 있을 사람이 아닙니다. 늦어도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이 우리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무심히 왔다가 무심히 가는 것이 나의 분수에 알맞습니다. 그러나 四肢는 기왕 빌려서 가지고 있는데 萬象은 다 비었으니 이른바 진짜 나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옛 책을 끼고 옛 은거로 돌아간다면 역시 나의 옛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겹겹이 쌓인 大洋을 넘지 못하니 만나뵐 기약도 없고 天涯에 고개를 돌리니 나의 심회만 괴로울 뿐이외다. 병석에 누워서 대필을 시키자니 자세한 말 다하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台祺를 빕니다.

대한민국 7년 4월 1일 제 朴殷植 敬

· 1925년 4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