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177. 李承晩이 李始榮(?)에게 보낸 서한  
발신일7년 4월 22일
발신자李承晩  
수신자李始榮  

177. 李承晩이 李始榮(?)에게 보낸 서한

 보내주신 글은 잘 받아 보았습니다. 상해 정국의 情形은 수시로 바뀌어 마치 아이들 장난과 같습니다. 다만 내버려두고 상관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데 故人께서 아직도 나를 잊지 않으시고 이토록 일러주시니 감사하기 그지 없습니다.

 상해에 있는 인사들의 견해는 미주와 하와이에 있는 사람들의 것과 매우 차이가 있습니다. 만일 네 소견을 버리고 나만 따르라 한다면 옳겠습니까? 그러나 의견을 교환하고 처지를 바꾸어 생각한다면 반드시 서로 양해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사실대로 공표하여 원근으로 하여금 분명히 알게 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이번의 정변은 저들이 오래 전부터 노려오던 것인데 틈을 엿보지 못하다가 石吾가 총리가 되자 비로소 단서를 열어서 이러한 亂階를 조성한 것입니다. 弟는 미리 짐작하고 누누히 글로 알려드린 바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이루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는 만큼 말한들 무엇하겠습니까?

 이제는 한번 敎令을 발하여 議院을 해산해야 합니다. 사람을 임명하여 組閣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나 동서에 있는 우리 동포들의 심리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지금은 비록 조각을 한다 해도 오래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각지의 인심 동향을 기다려 보고 그들이 원하는대로 단행할 계획입니다.

 崔鎮河가 전한 6천여 원이 人口稅라는 말은 애당초 이치에 맞지 않는 말로서 족히 저들이 허무한 일을 날조한 죄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요사이 들으니 형께서는 종종 玄楯에게 서신을 보냈고 현은 이를 興士團에 밀통했다 합니다. 그 眞否는 알 수 없으나 다 쓰지는 않겠습니다.

 안녕을 빕니다.

7년 4월 22일 雩南 頓首

 管見(參考件)

 議院의 불법이 위원부에서 논한 바와 같다면 아마 奏效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난 5년(1923) 素卬(趙素昻)이 의장으로 있을 때에 13의원의 의안을 번복했는데(즉 彈劾案 및 贊成代表案) 이때 원내에 있은 자는 10여 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나에게 이로우면 묵과하고 나에게 불리하면 성토한다면 사람이 승복하지 않습니다.

 改憲에는 반대합니다. 다만 원년에 제정한 것만이 가히 거국일치라 하겠습니다. 비록 완전치 못하고 정돈되지 못한 조항이 있다 하더라도 소수의 편견으로는 절대로 개정할 수 없습니다. 또 이렇게 주장해야만 체면도 섭니다. 만일 漢城條約을 거론한다면 사람마다 잠꼬대 한다고 비웃을 것입니다. 한성 두 글자는 원년 가을에 효력을 잃어서 사람들이 잊은 지 이미 오래입니다. 지금 묵은 일을 들어 다툰다면 그 이치에 어그러져 실패할 것은 더욱 뻔한 일입니다.

 의원 해산의 교령에 대해서는 증거를 들어 聲罪하지 않을 수 없는 바 그 대략은 아래와 같습니다.

 (1) 趙尙燮 · 李裕弼 · 吳永善 등이 말한 13의원의 희망은 이치를 벗어난 것인데 감히 교환조건으로서 이른바 代表會案에 찬성하였고 이어서 불신임안과 탄핵안이 있어서 人言이 비등하고 聽聞이 해괴하였다. 정작 13의원 중에 都寅植이 俄領에서 分贓記를 간행하여 배포한 것을 보면 安昌浩 · 이유필 · 조상섭 · 오영선 등이 일을 빙자하여 횡령한 형적이 숨길 수 없이 분명하였다. 또 林得山 · 金朋濬 등으로 하여금 權道라 칭하고 민국의 일체의 憲律을 대표에게 양여한다는 怪論이 있었다. 또 崔昌植 · 呂運亨 등이 俄京에서 韓馨權의 나쁜 전철을 답습하여 민국을 모욕함으로써 국제적 위신을 실추시켰다.

 이상의 갖가지 負犯은 머리카락을 세듯 이루다 헤아릴 수가 없으나 허울을 고쳐서 악에서 벗어나 선을 행하리라 기대했다. 최 · 여 등은 작년 이래로 悖謬와 符同하여 위법과 패행이 갈수록 더욱 심하여 오늘에 이르러서는 그 극에 달하였다.

 본 統領은 운운한다 하고 말미에 겸손히 모두가 자기의 잘못이라는 뜻과 직위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부기한다.

 한편으로 해산하고 한편으로 改組하는 일을 조소앙으로 하여금 주관하게 한다. 李東寧을 외무와 총리에서 면직시키고 趙素昂에게 총리를 겸임시킨다. 金九 · 趙琬九 · 金承學 · 鄭信 · 鄭光好 · 金澈 등은 모두 좋으나 弟만은 다시 합작하기를 원치 않는다.

 改組는 이곳의 형세로 보아 행해지지 않을 것이니 재차 특례를 써서 임시로 하와이에 설치하고 金永琦 · 張鹏 등과 함께 암꿩처럼 엎드려 항거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7년 전의 지위를 얻기란 또한 어려울 것이다. 각 방면에서 엿보고 방해하는 것들이 심히 많기 때문이다.

 崔鎮河란 자가 당국에 서신을 보내서 많은 말을 한 모양이나 작년에 거둔 人口稅 미화 6,478원과 담보금 4,462원에서 정부에 보낸 것은 2백여 원에 불과하다. 이런 일은 모두 잠복했다가 후일 구실거리가 될 것이다.

· 1925년 4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