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189. 金九가 李承晩에게 보낸 서한  
발신일十年 十一月 二十日
발신자金九  
수신자李承晩  

189. 金九가 李承晩에게 보낸 서한

 雩南 先生 台鑑

 月前 上椷은 想已入鑑 而尙無回敎 悵缺何已, 謹拜詢此辰, 道軆萬寧, 遠慕不已, 少弟, 依劣而已耳.

 (월전의 上椷은 생각건대 이미 받아보셨을 터인데 아직도 回教가 없으시니 섭섭합니다. 삼가 절하여 묻건대 道軆 萬寧하신지 遠慕이옵니다. 소제는 여전하옵니다.)

 先生께서는 아죽까지 무슨 慍念이 게서々 回敎부터 안으시는 지 알 수 업슴니다만은 前者에 弟가 愚直所致로 先生께 잘못간 일이 잇드랴도 弟은 每事에 直衷에서 한 일일 터이고 무슨 野心으로 先生을 打倒하지 안엇을 것까지는 諒解하여 주시기 바라오며 況又 우리 獨立運動을 하든 人士들이 검은 主義 붉은 主義 온갓 派別로 分離되는 此時에 先生과 弟브터 疎隔하게 지낸다면 大業에 對한 大害가 안임니까.

 前者에 上陳함과 갗이 弟나 石吾(李東寧)가 政府를 維持하려고 卑薄無能한 솜씨로 名義일망정 雜輩에 手中에 너치 안으랴고 際此 嚴冬에 袷衣도 着지 못하고 면서 이 片紙를 쓰는 情衷도 좀 아라주서야 하지 안슴니까. 政府 집稅로 訴訟을 當케 되엿으니 首領을 지내신 先生님인들 마음에 엇더켓슴니까.

 方今 滬上에서 共公演說 席上에서 先生과 徐博士(徐載弼)의게 對한 非難演說을 한 者가 有하니 卽 呂運亨인데 緣由는 『中外報』 記者 李廷變과 崔麟이가 歐美에 遊歷하다가 回國하여서 國內 人士의 歡迎 席上에서 李廷燮의 말이 하와이 가다가 李博士를 만낫지요. 國內에서 自治運動을 하는 것이 엇더함니까? 李博士 대답이 그것이라도 하는 것이 좋타고 합듸다. 美洲에서 徐博士를 만낫지요. 國內에서 自治運動을 하는 것이 엇더함니까? 徐氏 答도 나는 오래 海外에 在하야 國內 事情을 모르니 그것이라도 하여야 되겟다면 反對치 안켓다고 합듸다. 英國에서 신펜党 領袖를 보앗지요 우리가 自治運動을 하는 것이 엇더냐? 한즉 自治運動은 絶對 不可하다고 합듸다 라고 말을 한즉 歡迎하든 人士들이 신펜党 領袖의 말이 올소구려 햇다는 것이외다.

 此 事實에 對하야 弟는 事實이 안이라고 생각하오나 先生이나 徐博士를 面談할 期(機)會가 없으니 거긔서 各 報紙에 嚴格한 聲明이 없으면 先生 等에 不名譽보담도 우리 運動에 큰 影響이 及할 줄 認함으로 冒悚仰陳하나이다.

 그리고 先生과 徐博士가 다 『三一報』에 顧問이신데 今般 北京에서 李海明이 容萬(朴容萬)을 處刑한 것을 暗殺이라고 하고 長篇說을 記載한 것은 우리 獨立運動者는 勿論 某々 主義者들도 『三一報』를 唾罵할 것이라. 우리가 容萬의 敵 總督府에 投降하고 木藤놈과 同行하여 秘密 入國하야 鐵道旅館에서 留連하면서 機密費를 밧아가지고 나온 일이 發覺되여 靑年들이 銃殺하려고 함을 알고 朴은 秘密히 하와이 가서 勞動同志들을 여 資金을 募集하야 가지고 北京에 潜來하야 中國 女子를 妾를 蓄하고 淫을 宣함으로 李海明이 銃殺하고 卽席에 被捕되여 中國 法廷에서 調査한 結果 政治犯으로 五年役을 宣吿한지라. 朴妾이 容萬의 平時에 運動하든 文蹟을 提出하고 이러한 歷史가 잇는 사람을 偵探이라 하는냐 抗告하는 것을 안 北平 우리 各 團體도 聯合 證明을 하고 政府에서 中政府에 容萬의 罪狀이 事實임을 函證하엿음니다.

 源々 批誨하여 주심을 바라오며 더욱 道體自重하심 바라나이다.

十年 十一月 二十日에 크리쓰마쓰禮節 準備에 苦心하는 小弟 金九 忙草

· 1928년 1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