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140. (번역C) 안공근이 임시정부 전 국무원 비서장 오영선에게 보낸 서한  
발신일1922년 3월 8일
발신자안공근  
수신자국무원 비서장 오영선  

140. (번역C) 안공근이 임시정부 전 국무원 비서장 오영선에게 보낸 서한

 지난 해 11월 28일자 귀하의 3번 편지는 그곳으로부터 제가 받은 최초의 연락이었으며, 우리는 그 서신을 통해 그 곳의 상황을 처음 듣게 되었습니다. 제가 작성한 지난 달 27일자 1번 편지에서 이 쪽 상황을 언급하였으며, 여기서 다시금 상황을 언급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해 거의 반년 동안 독일에서 감금되자, 마치 우리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임무와 책임을 인식한 우리는 끝까지 노력하기로 결심하였으며, 모스크바에 도착한 이후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상황을 발견하였습니다.

 악당 고창일이 지난 해 동료 한형권과 음모를 꾸미고 임시정부의 이름을 악용하여 소비에트 정부로부터 금화 20만 루블을 추가로 받은 후 모스크바를 막 떠나려고 하였던 때에 그는 이곳 외무부(Foreign Office-외무인민위원부)에 자신이 우리가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러시아 입국을 용인해서는 안 되며, 자신과 한형권이 베를린에서 만날 것이며 그리고 그들이 자세한 내막을 알고 난 후 소비에트 정부와 연락을 취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이 베를린으로 간 이후 소비에트 정부는 이들로부터 어떠한 소식도 접하지 못하였으며, 그리하여 외무부 관리들은 매우 기이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 후 이동휘의 일당들이 와서 말하기를 (이것을 언급하는 것이 오히려 당혹스럽기는 하지만, 그 사실을 말하는 것이 친구와 그 밖의 도리라고 생각하며, 그리고 귀하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제 말의 의미를 보다 잘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베를린에 있던 이희경과 안공근은 자본주의의 원칙과 이념을 가진 정부의 대표자이며, 만약 그들의 러시아 입국이 용인된다면, 그들은 향후 소비에트 러시아에 심각한 손실을 야기할 것이므로 여하한 조건을 달아서라도 이들의 입국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시금 베를린에 한동안 억류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이동휘와 박진순의 자금 착복에 관한 보고가 다방면으로부터 들어왔으며, 이동휘가 코민테른에 의해 철저한 심문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고려공산당 사건과 관련하여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곳 외무부도 성격을 판단하고 그들이 말한 것에 대해 여하한 신뢰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외무부 위원장 치체린은 최근 누구의 진술이 맞고 누가 옳다고 판단할 수 없다고 하고는, 사실을 명확히 밝혀내는 것이 필수적이기에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표의 모스크바 방문을 용인하는 명령을 내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해서 마침내 우리의 목적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하여 현장을 돌아본 후 오히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 보였습니다. 이동휘는 이미 시베리아로 떠났고 소위 극동민족대회(Congress of the Far Eastern Peoples)는 단지 소집되기만 하였을 뿐, 공식적으로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장도에 여하한 장애도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며, 마치 우리의 노력에 커다란 전진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극동민족대회의 폐막과 더불어 4명으로 구성된 소위 외교위원회(Diplomatic Commission)는 조선대표단으로부터 선출되었으며, 나머지 40여명의 대표는 바로 지난 달(2월) 1일 이르쿠츠크로 떠났습니다. 그 다음 날 이동휘, 박애, 장도정 등 전부 5 · 6명이 시베리아에서 왔으며, 이들은 여기에 도착한 정적들, 즉 우리 둘이 곧바로 외무부와 접촉을 하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서 매우 놀랐습니다. 이동휘가 행한 첫 번째 일은 외무부 관리에게 상해임시정부가 최근 전복되었고, 임시정부의 대표들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다수의 비망록을 제출하거나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담은 보고서를 외교 당국, 코민테른 및 또한 주요 인민위원회, 관리들 및 심지어 신문 기자에게 제공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곳에서의 그와 같은 상황은 참으로 불미스러운 일이지만, 여타의 모든 일들을 언급하는 것은 사태를 오히려 진저리나게 만들 것입니다.

 본인이 다음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위에서 언급한 소위 외교위원회(선출된 대표는 김규식, 최창식, 한명세, 김시현)의 활동에 관한 것입니다. 외교위원회 김규식은 상해정부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여하한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며 6개 내지 7개의 파벌로 분열됨으로써 인민의 신뢰를 상실하였다고 외무부 당국자에게 언급하였습니다. 게다가 김규식은 상해정부가 조선의 독립을 승인받기 위해 워싱턴 회의(극동회의에 현저히 반하는)에 청원서를 발송하였으며, 그러므로 이러한 반이론적(공산주의적 원칙을 의미) 정부의 대표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김규식이 고수하는 방식으로 판단해 본다면 공산주의 원리라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칼 마르크스가 환생한 것처럼 생각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미 밝혀졌듯이 마땅히 처형돼야만 하는 수많은 악당들이 있지만, 그들의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이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고 이를 참아야한다는 것이 더욱 힘들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 같은 실상으로 인해 러시아의 외무부는 갑자기 우리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그대들의 정파가 사분오열되어 있고, 각 정파의 주장이 각기 다르고 혼란스럽게 보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특정 정파의 주장을 믿거나 공식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우며 그대들로서는 기다려야만 한다.”고 언급하였습니다. 동시에 외무부는 북경 주재 소련대표부에 임시정부의 실질적 위상 및 조선의 독립운동의 현재 진전 상황을 조사하여 모두 보고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당면 과업은 단지 연락을 취하는 일과 이곳 외무부와 함께 한형권 사건을 조사하고 이를 처리하는 것입니다. 이제 돈과 관련된 문제를 언급하고자 합니다.

 러시아의 외무부가 한형권에게 금화 40만 루블을 우리 정부의 대표 자격으로 지급한 것이 명백하며, 그 누구와도 무관합니다. 그러나 이 돈은 다음과 같이 분배되었습니다. 즉 김립에게 12만 루블, 박진순에게 22만 루블, 한형권에게 6만 루블이 지급되었습니다. 이 돈으로 인해 사방에서 엄청난 불화가 야기되었으며, 이르쿠츠크파도 이 돈의 거래 세부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비밀리에 추진된 것으로 추정되는 총 액수 및 국제관계와 관련하여 외무부는 여하한 정보 제공도 완강하게 거부하였습니다. 이후 이동휘와 한명세 자기 당의 난제들을 코민테른에 의해 해결하게 되자, 코민테른은 자체적으로 1페니도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돈 문제가 결코 논의될 수 없다고 이들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한명세는 이에 대해 응대할 수 없었습니다. 설령 이 돈으로 인해 많은 구설수가 일어났으며, 많은 보고가 이곳 외무부에 제출되었지만, 한형권이 도착하였을 때 고창일이 그와 함께 도착했으며, 고창일은 작년에 지급된 40만 루블이 한 두 사람이 아니라 우리 임정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었다고 외무부에 말한 것 같습니다. 고창일의 의도는 임정의 구성원 다수가 무책임한 사람들이며, 여하한 돈도 다시는 임정에 직접 지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이곳 외무부에 지적하려는 것 같습니다. 또한 고창일은 우리에게 한형권이 매우 어리석게 보이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비록 그 자금이 실제로 임정으로 들어가지 않았지만, 정부내 정파 중 일부가 자기들끼리 그 자금을 나누었다고 주장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 다음 이 두 사람은 외무부 사람들에게 목숨을 구걸하고 탄원서와 비망록을 제출하여 200만 루블을 요구하였으며, 그 중 단지 1/10인 20만 루블이 지급되었습니다. 그래서 임정에 지급된 것으로 추정되는 총액은 60만 루블입니다. 이곳 외무부에서 지급 결정이 난 것은 9월 3일이었고, 베를린에서 그 돈을 실제로 받은 것은 9월 25일이었습니다. 외무부는 우리에게 그 자료를 보여주었습니다. 우선, 작년 본인의 편지의 마지막에 쓴 “문제가 이렇다. 조치를 취했는가?”라는 단어를 어떻게 이해하였습니까?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이들 두 악당을 잡아 신병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도둑들이 여전히 원하는 데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방치되어 있으며 임정이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지적하는 제 형님의 편지를 며칠 전에 받았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으며, 이 모든 것이 분명 절망스럽습니다. 지난달 악당 한형권은 우리 임정이 다른 어떤 대표도 보내지 않았으며, 자신만이 전권 특사이므로, 그 누구도 대표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돈도 제공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의 전보를 북경의 소련 대표를 통해 소련 정부에 보냈습니다. 만일 어떠한 조치가 즉각 취해지지 않는다면, 귀하는 이 악당들을 잡지 못할 것이며, 김립과의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할 것입니다. 필요치 않은 쓸데없는 곳에 종종 너무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현재에조차 우리는 현재 의심에 사로잡혀서 국가적 “꿩 판매자” 같은 처지에 놓인 외교당국을 설득하는 데 성공해서 북경의 소련 대표부에 전문을 보내 한형권을 한국 임시정부의 공식대표로 간주하지 말며 그의 행방을 찾아내 곧장 통보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벌써 한 달 된 일이지만 아직 회답이 없습니다. 자신들이 지불한 두 차례의 자금이 개들 차지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명확히 판단할 수 있는 진정한 신분과 ○○를 찾아내지 않고는 한국 혁명운동을 돕지 않기로 결정할 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북경의 소련 대리인을 통해 4 · 5차례의 전보 및 수많은 보고를 하였지만, 한달이 넘도록 어떠한 답신도 받지 못했고 무엇을 해야 할 지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여행을 시작한 이후 모두 10번 이상의 전보와 전신, 7 · 8차례에 걸쳐 보고를 하였지만, 이시영의 사신 외에는 정부로부터 단 한 번의 답신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심지어 신익희로부터도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 곳 사람들의 태만 때문인지, 또는 편지가 분실된 것인지를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다소 불쾌감을 느낍니다. 상황이 향후에도 계속 이런 식으로 간다면, 함께 일하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북경 및 베를린의 소련 대표부를 통해 우리와 연락 채널을 열도록 소련정부와 조율을 했습니다. 우리는 (편지와 전보의 형태로) 암호 메시지를 보낼 수 있도록 허락받았는데, 그것은 외국 통신원에게도 허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귀하의 교신을 베를린을 경유하여 종래대로 뷔르츠부르그(Würzburg)의 우체국 사서함으로 보내거나 혹은 북경을 경유해 보내십시오. 외무부의 특별 교신 외에는 어떤 사적 서신도 운반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서신과 관련하여 주의를 기울이고, 임정으로 하여금 적어도 1주일에 한번은 연락을 하도록 하십시오. 우리는 외국인들의 눈에도 일이 잘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앞으로 종종 연락을 취해야만 합니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이곳의 외교 활동은 삼분되어 있습니다. 각 진영은 적대적이고 일이 신속하게 진전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바로 지금 두 그룹이 다른 곳으로 떠나야만, 우리는 과업의 진척과 관련하여 한 숨 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 얼마나 좋지 못한 채 고정되었는지 모른 채 이 사람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리라고 생각하면서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심지어 정확히 가야 할 곳도 없으며, 그리하여 그들은 정말로 가련한 상태에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것을 참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가 국민대표회의(national congress)가 소집될 것이라는 사실을 들었기 때문에, 이는 우리의 일을 더욱 지체시키게 될 것입니다. 국민대표회의가 소집되든 혹은 다른 어떤 수단을 통해서이든, 임시정부를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것은 인사 문제이며, 귀하는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기 바랍니다. 이런 이유로 귀하와 저는 이전에 여러 차례 논의하였으며, 사실상 그 문제에 관해 그것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귀하가 그 문제를 생각하게 되면, 심지어 임시정부가 외교적 협상을 시도하기로 되어있는 이 때조차도, 국무총리도 외무총장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법무총장 한 사람만이 이들 상이한 모든 지위를 동시에 처리하고 있는 바, 이는 참으로 통탄할 상황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이곳 러시아인들이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한형권이 이미 서면 리스트를 그들에게 주었고 또한 최근 모스크바에 모인 소위 애국자들과 지도자들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임정을 비방하려 하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고해왔기 때문입니다. 전에 언급하였듯이, 우리가 여기 오래 머물면서 상황을 살피는 것이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일 때문에 본인은 원래 4개월에서 6개월 정도만 떠나 있을 계획이었는데, 지금까지 너무 오랫동안 떠나 있어야만 했으며, 더 이상 오래 체류하기가 어렵습니다. 한편 이희경 박사를 여기 혼자 남겨두기는 어려우며, 설령 본인이 본인을 대신할 사람을 물색해보고 있지만, 불안감만 있을 뿐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당분간 머무르면서 버티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한편 저희 두 사람은 모든 것을 그만두고 돌아가는 것이 최선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저희가 떠난다면, 그들은 다시금 고개를 들고, 이런 저런 식으로 행동할 것인데, 이는 저희로서는 용인하기에는 생각하기조차 싫은 상황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는 것 같지만, 그리고 아직 분명히 결정하지 않았지만 저는 베를린을 향해 그 달 말 이전에 출발할 것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때 다시 전보를 칠 것입니다. 저의 마음을 견고하게 만든 것과 관련된 한 가지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독립적인 생계의 문제입니다. 게다가 어떤 공적인 일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귀하의 장인인 이동휘는 지금 코민테른 호텔에 머무르고 있는데 잘 지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제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미안하기는 합니다만, 우리가 여기에 체류한 이래 저는 한 번도 그 분을 뵙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정부 대표로서 우리의 위엄을 보존해야만 하는 것 이외에 각자가 맡은 일의 관련성 때문입니다. 이들 악당들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를 바로 확인하십시오. 그들이 주장하기를, “이동휘는 아무 것도 모르고, 매사에서 우리가 하는 것을 그는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래서 아무튼 우리가 그의 이름을 사용하고 그를 간판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온갖 수단을 이용합니다. 우리는 오늘 안병찬과 홍도가 도착했다고 들었지만 아직 그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모든 지도자들 및 거물급 인사들이 여기에 모이고 있으며, 그래서 무엇인가가 일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귀하의 아들 사진을 받았으며, 자제분은 귀하와 비교해서 장군감처럼 보입니다. 그가 건강히 잘 자라기를 바랍니다.

 제가 잊어버린 중요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약 3달 전 베크(Beck) 대령은 매우 중요한 임무를 띠고 북경으로 갔습니다. 우리는 정부에 바로 전보를 쳐서 누군가를 즉시 그곳으로 보내 그를 만나도록 하였지만, 우리는 그 일과 관련해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귀하가 그들에게 압력을 행사해서 그들로 하여금 이 문제에 착수하도록 부탁드립니다. 이희경 박사는 미국에서 그와 면식이 있었고, 그에게 신익희를 만나보라는 서신을 작성하였습니다, 그는 좋은 사람이며, 극동 상황에 정통합니다.

1922년 3월 8일 편지 2 모스크바

신암(안공근)

*문서번호:495-135-67, 8, 14-21

· 1922년 3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