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143. (번역F) 이희경이 임시정부 재무차장 이유필에게 보낸 서한  
문서번호사신 번호 2.  
발신자이희경  
수신자재무차장 이유필  

143. (번역F) 이희경이 임시정부 재무차장 이유필에게 보낸 서한

사신 번호 2.

친애하는 춘산(이유필)에게

 독일을 경유한 귀하의 1월 23일자 서신을 3월 15일 이곳에서 받았으며, 일전에 이시영과 김인전의 사신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약 열 달 전 상해를 떠난 이래 우리는 해공(신익희)에게 서신 약 18통(사신을 포함하여)과 전신을 약 8차례 발송하였지만, 그로부터 공식적이든 사적이든 서신이나 전신이라고는 한 통도 받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교신이 없다면 우리는 과업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우리는 귀하와 교신을 할 것이며, 백범(상해 임정의 경무국장)과 더불어 우리의 서신을 읽어 주실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암호는 오영선이 설명할 것인데, 암호를 비밀로 간직하기를 요청합니다). 해공은 우리의 서신도 받지 못하였거나 합의된 암호를 분실하였음에 틀림없습니다. 여하튼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이 틀림없을 것 같아 두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로부터 직접 소식을 접하기 이전에는 해공에게 또 다시 서신을 작성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1. 우리의 과거의 이력. 앞서 보고하였듯이, 우리는 작년 7월 프랑스에 도착하였으며 중국 산업은행이 폐쇄되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은행에 예치했던 돈을 한 푼도 인출할 수 없었습니다. 동시에 저는 심한 질병에 걸림으로써 미국 및 유럽의 친구들로부터 도움을 받기 이전까지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였습니다. 마침내 저는 몇 달간 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는데,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기도 전에 저는 여행 경비로 얼마를 빌려 8월에 베를린으로 왔습니다. 베를린에서 소비에트 대표를 찾아가서 우리의 소임을 설명하였으며, 그를 통해 러시아 외무부와 교신하였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때 이동휘와 박진순 역시 베를린에 있었는데 그들은 모든 가능한, 그리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우리를 방해하였고, 모스크바에서는 한형권과 고창일이 전력을 다해 우리를 훼방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러시아 당국자들은 우리를 어떻게 대우해야 할지를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형권과 고창일은 모스크바를 출발하여 베를린을 경유하여 상해로 되돌아가기 전에 러시아 정부에 자신들이 베를린에서 우리를 볼 것이고 그 후 소비에트 정부에 연락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베를린에 도착한 이후, 이 두 사람은 러시아 정부가 더 이상 우리 임시정부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한형권은 모스크바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으며 사실상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었는데 마침내 고창일이 노력하여 자신의 일부 지인을 통해 출발 허가를 얻고 한형권을 베를린으로 데려왔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우리에게 모스크바로 가지 말고 자신들과 함께 상해로 되돌아갈 것을 조언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제안을 거절하였습니다. 그 후 이들 악당은 소비에트 정부에 우리가 임정의 정당한 대표가 아니며 우리를 대표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 동안 이동휘는 모스크바에 도착하여 계속해서 우리를 방해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러시아 당국자들은 긍정적인 방향이든 부정적인 방향이든 어느 쪽으로 우리에게 어떻게 답신해야 할 바를 몰랐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약간의 노력을 하였고 이동휘 및 박진순의 행위들도 정연하게 보이지 않았으며, 또한 이곳 러시아 당국자들은 한형권과 고창일의 행위 또한 다소 의구심이 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러시아 외무부는 우리에게 러시아 입국을 허가하여 그 연락은 작년 12월 베를린으로 왔습니다. 입국 허가를 받은 이후에도 우리는 자금 부족으로 인해 즉시 출발할 수 없었고, 그 곳 학생들 중 한 명으로부터 약간의 돈을 빌린 올해 1월까지 출발이 지체되어, 1월 14일에야 출발하여 1월 19일 모스크바에 도착하였습니다. 우리가 모스크바에 도착한 때는 극동민족대회(The Congress of Communist and Revolutionary Parties of the Far East)가 개최되기 3일 전이었습니다. 조선, 상해 및 이르쿠츠크에서 온 50명 이상의 한인들은 얼굴을 붉게 칠하고서 보편적 이상을 모방하려고 하였으며, 일본인을 명예 대회장으로 선출한 이후 그의 초상화가 그려진 배지를 코트에 붙이고 돌아다녔고, 그 일본인과 다른 나라 사람들 앞에서 임정이 자본주의 이념을 가진 부르주아지와 지식인들로 구성된 친미적 정부라면서 연설과 서면 보고서를 통해 주장하였습니다. 이 점에서 김규식과 최창식은 극단적이었습니다. 이 대회는 2월 초에 폐막되었으며, 김규식, 최창식, 한명세 및 김시현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표들은 귀환하였습니다. 동시에 이동휘 또한 이르쿠츠크에서 돌아왔습니다. 각각 전 국무총리 및 내각 총장이었던 이동휘와 김규식의 수치스러운 행동들은 개인의 불명예일 뿐만 아니라 전 조선인의 수치였습니다. 설령 붉은 가면을 쓰고 약간의 돈을 모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 부끄러움도 모른 채 행동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완전히 실패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그들이 어떤 가면을 쓸 것인지를 주시해야만 합니다. 그들의 수치스러운 행동에 근거하여 그들 무리를 판단할 수 있다면, 양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상황에서도 우리는 이곳에 도착한 이래 어느 파벌도 편들지 않았고, 단지 혼란한 상황을 조사하고 그것을 정리하려고 시도하는 데 몰두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러시아 외무부 당국자들은 모든 편의 시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2. 방해자들에 관해서. 김규식과 최창식 및 그 일당이 ‘이르쿠츠크’파(안병찬을 포함한)와 제휴하고 있는 반면에, 이동휘, 박진순, 홍도 등은 이르쿠츠크파에 적대적입니다. 이들 양 정파 모두가 모든 힘을 다해 우리를 반대하고 있지만, 그들은 상호 비방전에 깊이 몰두함으로써 러시아 당국에 매일 보고서와 비망록을 작성하여 발송하고 상대방을 비방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이는 여하튼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하여 러시아 당국자들은 이들 두 정파에 대해 단지 코웃음을 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의 다른 조선인에 관한 한 약 그들 가운데 열에 여덟은 블라고베스첸스크(원문 Balgoverchensk는 Balgoveschchensk의 오기로 보임-역주) 사건 때문에 이르쿠츠크파를 지지하고 있는 반면, 이동휘와 그의 추종자들은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한형권, 김립, 박진순 그리고 금화 60만 루블 사건으로 그들은 도둑과 같은 악당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입니다.임시정부와 관련하여 이곳의 우리 백성의 대부분은 임시정부에 동정적이며, 정부를 후원하기 위한 기부를 하기 위해 재작년에 자신들이 가진 현금을 모두 모금하게 되자, 남자들은 자기 옷가지를 팔았고 아이들은 책을 팔아 그 돈을 한형권에게 주었지만, 그 당시 이에 대해 아무 것도 듣지 못하였던 사람들은 현재 임시정부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3. 한형권과 그의 잘못된 행동. 소비에트 정부가 임시정부에 제공하였던 금화 40만 루블은 다음과 같이 분배되었습니다. 즉 김립 12만 루블, 박진순 22만 루블, 한형권 6만 루블입니다. 또한 동일한 해에 남 러시아의 한인들은, 당시 멕시코화 2만 달러에 달하는, 500만 루블을 임시정부에 기부하였습니다. 그 돈을 한형권이 가로챘습니다. 하지만 한형권은 이곳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 모든 돈을 임시정부에 넘겨주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지난 봄 고창일과 한형권이 모스크바로 되돌아왔으며 (40만 루블 사건 이후) 소비에트 정부에 임정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연례 지원금으로 금화 백만 달러 또는 멕시코 달러 200만 불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9월 5일 단지 20만 달러만이 지급되었으며, 1921년 9월 25일 베를린에서 이를 수령하였습니다. 물론 그들이 상해에 도착하게 되면, 이들 악당은 수많은 거짓말을 하게 될 것이지만, 그 돈이 임정에 제공되었다는 사실을 귀하에게 명확히 하고자 합니다. 그 돈은 국민대표회의의 소집 비용이나 다른 무엇을 위해 그들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한형권이나 고창일에게 지급된 것이 아니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그래서 임정으로 하여금 이들 악당을 체포하도록 하십시오. 그 밖에 만약 임정이 그와 같은 여건을 활용하려고 하고, 국민대표회의의 소집에 있어서 한형권 및 군중들과 협력하려고 하면, 그 회의 자체는 적절한 회의가 되지 못할 것이며 임정은 커다란 타격과 비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임정이 그와 같은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면, 그것이 심각한 잘못이 될 것임을 그들로 하여금 깨닫게 해 주십시오.

4. 한형권의 터무니없는 행동. 지난 해 한형권과 고창일이 모스크바를 떠나 베를린으로 가려고 할 때, 한형권은 최치은(Choi Chi-eun)을 대리 특사로 지명하였습니다. 매우 어리석은 이 인물은 한형권의 요리사 겸 비서로 고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소위 대리 특사가 박명오(Pak Myung Oh)라는 작자를 자신을 대신하는 대리 특사로 임명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조선 인민과 임시정부의 명성이 상상을 초월하여 수치를 당하였습니다. 또한 지난 봄 한형권은 40만 루블 사건 때문에 옴스크에 한때 수감되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지난 해 모스크바를 떠나면서 이곳 외무부에 자신이 상해에 도착하게 되면 모든 자세한 사항을 교신할 것이며, 이번 봄 4월 경에 이곳으로 되돌아 온 이후에 이곳 외무부에 위임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올 해 2월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임정의 유일한 공식 대표이며, 임정이 여하한 대표도 임명하거나 파견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전보를 북경에서 이곳 소비에트 정부에다 보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곳 외무부 당국자들은 임정으로 하여금 소비에트 정부와 교신을 하도록 하고 우리가 임정의 대표로 임명되었음을 확증하는 전신을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언젠가 이 같은 사실을 전보로 발송하였듯이, 우리는 이 문제에 이미 주의를 기울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5. 최근의 보고에 따르면 김립이 상해에서 피격을 당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입니까? 박진순과 이동휘가 40만 루블 지출 건과 관련하여 허위 보고서를 또한 작성하였으며, 그들이 베를린에 체류하는 동안 동일한 보고서를 이곳 코민테른에 제출하였습니다. 하지만 코민테른은 일부 조사를 통해 그 보고서가 거짓임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박진순이 곧 체포될 것처럼 보이는 반면에, 그 사건에 연루된 다른 인물들은 약간의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안병찬은 자신의 변화무쌍한 방식을 고수하고 있으며, 그를 아끼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편 그를 때려서 죽일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다수 있습니다. 김규식과 최창식 및 다른 동료는 국민대표회의의 소집 제안에 관한 비망록을 작성하였으며, 이 회의의 개최 비용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요청하는 비망록을 러시아 정부에 제출하였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당국자들은 그와 같은 문제가 단지 조선의 내부 문제이며, 따라서 러시아 정부로서는 어떤 민족의 내부 문제에 관여하기를 원하지 않기에, 할 일이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엄청난 수모를 당하였으며, 최근에는 심지어 러시아 당국자들이 이들과의 면담을 거절하였습니다. 그것은 단지 그들만의 수치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수치입니다. 이 밖에 그들은 이르쿠츠크파의 도구가 되었으며, 일부 조선인들은 심지어 면전에서 그들을 모욕하였으며, 그들을 살해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김규식은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의 대표로 참석하였고, 그 후 구미위원부 위원장으로서 워싱턴에서 활동하였으며, 임정을 위해 그리고 임정의 이름 하에서 모든 기간 동안 활약하였습니다. 지금은 임정이 ‘외교 정부’이자 ‘친미 정부’이며 ‘자본주의적 정부’ 라는 등의 비판을 일삼고 있는 반면에, 우리의 독립군을 학살한 이르쿠츠크파를 돕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붉은 거짓 가면을 쓰고서 일본인들에게 접근하고 이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우리의 내부 문제를 이들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6. 우리가 받고 있는 대우. 러시아 당국자들이 조선 민족의 혁명 운동에 많은 강조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설령 우리가 많은 진영으로부터 비판을 받고는 있지만, 그들은 숙소, 음식, 통신 시설 등에 있어서 우리를 매우 각별하게 대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 악당 한형권에게 두 번이나 사기를 당하였던 그들은 이제 모든 거짓말쟁이 사기꾼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곳에 있는 한 그 누구도 무엇을 막론하고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싸움이나 수치스러운 행동 및 분규에 연루되지 않고 단지 우리 고유의 과업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당국자들은 우리와 더불어 일을 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단 한 가지 사실은 우리와 임정 사이에 교신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통신 수단의 확보 필요성을 우리에게 조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는 한형권이 이곳에 체류하는 2년 동안 임정과 단 한 통의 교신도 하지 못하였던 바, 이는 많은 의구심을 야기하였습니다. 신임장만을 보고 신뢰하다가 두 번이나 속았기 때문에, 그들은 단지 신임장 하나만 보고서 우리를 대우함으로써 또 다른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는 걱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밖에 임정으로부터 교신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들은 임정이 전복되었다는 소문이 진실일 수 있다거나 혹은 설령 임정이 존재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공식 대표로 승인을 받지 못하였을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그들은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물론 우리는 임정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야심찬 적대자들이 매일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일은 우리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으며, 여하한 성급한 말도 자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임정으로부터 편지 한 통도 없게 되자, 우리는 실망하고 있고, 임정의 대표로서 이곳 러시아인들을 대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제가 신뢰를 얻고 있지 못하다면, 임정은 저를 소환하는 대신 다른 인물을 파견하는 것이 나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심지어 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서 거의 일 년 동안 단 한마디의 언급도 없다는 것을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7. 임정에 대한 본인의 요구와 견해. 첫째, 북경에 있는 신뢰할만한 한인이 북경의 러시아 대표와 접촉하기 위한 인물로 선임되어야만 하며, 철저히 이해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앞서 언급한 대표를 통해 이곳 소비에트 정부와 연락을 취하며 전보를 통해 우리가 임정의 공식 대표임을 확증해야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우리가 보낸 전신과 서신에 관해 문의를 하고, 그리하여 우리와의 통신 채널을 개통해야 합니다. 둘째, 적어도 일주에 한 번 우리와 교신을 하십시오(만약 북경을 경유하여 교신을 할 경우, 제 이름이나 이곳 외무부의 보호 아래 있는 대한민국 정부 사절단으로 보내십시오. 그리고 만약 김갑수를 통해 베를린을 경유하여 보낼 경우, 제 이름만 사용하십시오. 셋째, 김만겸 및 오영선과 좋은 관계를 유지 하십시오 (김만겸은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입니다) 그리고 상해의 러시아 비밀 대표와 접촉하는 동시에 한형권과 고창일을 사로잡고 이들로부터 돈을 찾으십시오. 넷째, 필요하다면 임시정부나 의정원에서 마음이 변덕스럽지 않고 반대를 무마하기 위한 태도를 취해야만 하는 그와 같은 새로운 인물들을 임명하십시오. 다섯째, 여하튼 다음 6월에 이곳을 떠날 것으로 예상되며, 심지어 임정이 집단 사퇴를 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 때까지 제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여섯째, 임정이 본인에게 송금한 멕시코화 500달러를 받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에 관해서 듣지도 못하였습니다. 예치되었던 은행을 통해 이 문제를 확인해주기 바라며 그 돈을 그 곳 임정이 되돌려 받도록 하거나 혹은 은행을 통해 연락을 취하여 독일에 있는 김갑수에게 지급되도록 하십시오. 일곱째, 현재 큰 어려움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 그 곳의 여러분들을 도와주지 못해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끝까지 견디어 내기를 바랍니다.

8. 모스크바에 있는 조선노동조합 위원장에게 조선인들이 독립운동을 위해 모금한 기부금에 감사를 표하고 그러나 한형권이 임정에는 한 푼의 돈도 전달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재무부 명의로 작성하십시오. 그리고 그 편지를 제게 보내십시오.

9. 이르쿠츠크에 있는 한국군과 관련하여 러시아 정부는 그 부대의 해산을 원하였으나 이들의 배치에 대한 적절한 방안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한편 백위파(white guards)의 활동과 동해의 일본군으로 인해 한국군은 러시아 제5군(Russian Fifth Army)에 잠정적으로 편입되었습니다. 연해주에 있던 조선 빨치산(Korean partisan) 파견대(총 1만 명 남짓)는 러시아 정부에 조선 파견대가 독자적인 행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청원서를 발송하였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이르쿠츠크’파 사람들이 만약 그 부대가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용인을 한다면 그들 자신의 생명이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에 의견이 일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소위 조선인 군사위원(회)(Voin-com)은 한국군이 충분히 훈련되지 못하였고 통제 불능이 될 수 있기에 여전히 러시아 군에 배속되어야만 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보냈습니다. 이 문제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하였으며, ‘이르쿠츠크’ 조선인 군사위원(회)의 여망에 부합하여 결정될 개연성이 있습니다.

이희경

· 1922년 3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