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1) 통첩  

1) 통첩

▶上海臨時政府 도중

 肅啓 본회는 일반국인의 의사와 여론에 其여 現今 시세의 喚起와 要求에 의야 今此 혼란분규의 상태에 陷 시국을 수습하야 민심과 군사의 완전한 통일로써 我 國家의 광복을 卑日히 실현케 할 견지 하에셔 左의 결의문을 정하고 玆에 此를 통고하며 幷히 임시의정원의 취소를 요구하노니 此書가 전달된 후 만 3일 이내에 可否의 答覄을 표면하야 발송하되 若後 기일 내에 答覄이 無하거나 불명 혹 불응의 答覄이 유 時는 본회는 부득불 자유 행동을 취하겟사오니 照亮하심을 敬要

  ▪ 군사통일회 결의문

 본회는 일반 국인의 의사를 대표하야 상해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을 일체로 불승인하고 且其 過去 及 將來의 諸般 시설을 무효로 認며 본회는 기원 4252년 4월 23일 內地 국민대회에셔 조직 발포된 대조선공화국 임시정부의 계통을 承하야 一新히 조직하기로 결의함.

 甲. 상해임시정부 불승인에 관한 이유

1.상해임시정부는 원래 상해 一隅에 在한 극소수인의 사심으로써 만세 도중 內地 국민대회에셔 조직발포된 정부를 무시하며 겸하야 내분지 동포의 의사를 博採하지 아니하고 국부적으로 조직되엿스며 且其신조직의 벽두에 당하야 對美위임통치청원사건이 발로됨을 불구하고 李承晩이 其 首領의 位에 당하엿으니 其조직이 근본적으로 부정당하고 不神生한 바오.

2. 상해임시정부는 성립 이래 독립운동에 대하야 可擧할 성적이 無할  아니라 反히 俄領 국 민의회에 대하야 무성의한 타협을 개시하던 당시에 사기적 수단으로써 내지정부 奉戴의 조건을 상해정부 개조의 형식으로 幻作하엿으며

3. 상해임시정부는 其團員의 3년간 施政니 각각 自家의 私黨을 植하며 문호를 立함의 야비적 행위으로쎠 其영향은 점차 일반사회에 파급되어 독립선언 당시에 거국일치로 통일되엇던 민심을 분열케 하엿으며

4. 상해임시정부는 국가의 無上한 수치로 민족의 막대한 汚辱인 對美위임통치청원사건에 관하야 對方으로 미국에 향하야서나 內로 國人에게 향하야서나 外로 우방에 향하야 일언의 변명이 無할  아니라 反히 각원은 매국매족의 행위를 감행한 이승만을 절대로 擁戴하야 外로 국가의 체면을 不因하고 內로 민족의 정신을 현혹케 하니 대미위임통치에 대하야 묵인 혹 雷同의 책임이 自有 바다.

 乙. 상해임시의정원 불승인에 관한 이유

1. 상해임시의정원은 원래 상해 一隅에 在한 극소수인 즉 자칭 某某 道대표로써 내외지 동포의 의사를 가급적으로도 博採하지 아니하고 국부적으로 성립되엇으니 其 조직이 근본적으로 부정당한 바오.

2. 상해임시의정원은 대미위임통치청원의 죄를 査劾하지 아니할  아니라 反히 상해임시정부 조직 당시에 대미위임통치청원사건이 임의 전파됨을 불구하고 其 청원자 이승만을 국무총리로 且其 연루자 安昌浩를 내무총장으로 推選하고 且 상해임시정부 개조 당시에 미국에 在하야 대통령이라 자칭한 國賊인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안창호를 노동국 총판으로 推選엿으니 역시 위임통치에 대하야 묵인 혹 찬동의 책임이 有며

3. 상해임시의정원은 상해 一隅 극소수인의 의사로써 내지 국민대회에셔 조직 발포된 정당하고 신성한 정부를 무시하고  상해임시정부에셔 俄領 국민의회에 대야 사기적 교섭을 행한 事에 협동하야 상해정부개조의 형식을 취하엿으니 역시 대국분열의 책임을 難逃할 것이다.

기원 4254(1921)년 4월 27일

軍事統一會議

內地國民公會대표朴容萬
美領布哇 국민군대표金天浩
 朴承善
 金世晙
北墾島국민회姜九禹
西墾島군정서宋虎
內地광복단權敬止
미령布哇독립단權承根
 金鉉九
 朴健秉
內地조선청년회대표李章浩
  李光東
俄領대한국민의회대표 南公善
內地노동당대표金甲
內地통일당대표申肅
  申達模
  黃學秀

· 『이화장 소장 우남 이승만 문서:동문편(8)』, 267~2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