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27) 國民代表會議의 경과 사정 (제1일 회의~제74일 회의)  

27) 國民代表會議의 경과 사정 (제1일 회의~제74일 회의)

[작성자]오창환

[작성일자] 1923년 7월

[국한문 자료]

 國民代表會議의 경과 사정

 4255년(1922) 9월 상순부터 도착하는 대표가 12월 하순에 至하야는 그 수가 60에 近함으로 12월 23일부터 仝 28일까지 수차의 예비회의를 開하다가 4256년(1923) 1월 3일에 대표 60명으로 개회하게 되였다.

 그러나 1월 3일에도 겨우 개회하게 되였다. 그 이유는 일부인사(後에 改造派된)가 개회시일을 또 延期(원래는 1922년 9월 초에 개회하려던 것이 수차 연기 되였음)하려함이 엇다. 그들이 시일을 연기코자 함은 자기들의 己辦한 대표부 베흐네우진스크 공산당회의에 출석하였던 자들이 未到하고(내지에서 상해 공산당 측으로 상기 공산당회의에 참가하려고 나온 자들 중에는 그 회의를 畢하고 상해국민대표회의에까지 출석하도록 이중의 사명 곧 兩系회의의 대표위임장을 받아 가지고 나온 자가 다수이였음) 내지의 張德秀도 包涵한 대표들이 도착치 못하여 이미 내착한 대표들의 다수가 中俄領에서 來한 자들임으로 자기들의 주장이 개회 초 곳 간부선거, 회의규정, 의안배정 등에서부터 성립치 못할까 함이였다.

 그것은 여러 가지 사실을 종합하여 입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회의 규정 제24조에 ‘회의종막은 개막 후 滿 1개월로 함’이라 하는 본문을 반대하고 ‘의사종료 후 □事公決로 함’이라 주장하야 개정하던 것과 오전오후 양차 회집하려 함에 기어코 반대하던 것과 회의 중에 항상 시일 遲延策을 쓰던 것과 회의 중에 쓸데없는 이론을 고의적으로 야기하야 아무 결의사항 없이 정회하게 하던 때가 종종 하던 것과 회의경비가 부족하면 중아령 대표들은 경비 곤박으로 장시일을 논의하기 불능하야 부득이 귀환할 자가 다수하리니 그리하면 상해에 집잡고 살다가 대표위임장을 받은 대표된 자들과 북경남경 등지에서 衣食의 困難이 別無하게 지내던 자로 대표된 자들끼리 국민대표회의를 좌우하려한다는 流言이 있던 것과 자기들과 意思 同一한 대표의 수를 증가시키려 것과 기타 사실을 종합하면 內意가 어느 곳(那邊)에 있는지 명료하다. 그러나 그들은 표면주장으로는 내지의 다수한 대표가 來到한다는 통지가 있어 개회를 한 번 더 연기하자하였다.

 그런즉 이러한 事情下에서 1월 3일에 겨우 개막하게 되여 6월 7일에 폐막된 반년의 장시일을 費한 국민대표회의는 과연 如何한 波瀾중에 경과되었는가?

 이에 회의의 회록을 참조하고 필자의 手記에 據하야 국민대표회의의 경과진상을 如實히 초록하노니 이하 會錄은 국민대표회의에서 조직된 기관 즉 國民委員會에 이를 인쇄발포할 (11자 판독 불능)外 회록에 기록치 못할 당시의 암투 경과의 세밀한 정황은 伊時에 대표의 □□하엿을 筆者의 手記에 基하야 述한 此篇에서 책함이 可할줄노 信한다.

 그러므로 회의□□□□ 한 것을 본문으로 삼고 수기에 기초하여 旨하는 것을 부론으로 述하야 其 경과를 述하노라.

  ▪ 제1일회의 1월 3일(水) 출석 60인 사회 安昌浩

 국민대표회의주비위원장 南亨祐의 사회 하에서 처음 개회되다. 임시의장으로 安昌浩가 당선되고 其次 임시서기 2명을 선거한 후에 임시의장이 등단하야 국민대표회의가 개회되는 旨을 宣하고 국민대표회의만세를 3창하다. 임시대표자격심사위원과 회의잠행규정기초위원을 선거하고 臨時議長 及 書記가 정식임원이 皮選될 時까지 繼續 視務하기로 하고 정회하다.

 附論:이날 임시의장을 선거할 시에 議場內 □□ 外 不爲한 형편이 有하였다. 그것은 安昌浩가 이승만의 위임통치청원안에 관계된 자인 고로 국민대표회의의 임시의장이라도 될 수 업다고 論하는 자가 有한 것이었다.□□□□ 5, 6일 7일(일요) 8일은 대표자격심사위원에게 심사규정을 기초케 하고 □□□□ 규정기초위원에게 동 규정을 초안할 시일을 주기 위하야 휴회하다.

  ▪ 제2일회의 1월 9일(화) 출석 60인 사회 安昌浩

 이날 개회벽두에 朴健秉 姜九禹 등으로부터 다시 임시의장 安昌浩의게 대한 논의가 출하였으니 會場이 紛亂하다가 별일 없이 止하고 대표자격심사규정을 통과시키고 자격심사위원의 보고에 의하여 대표 57인의 자격을 인준하고 정회하다.

 附論:이날에 고려공산당(伊市派)대표 장건상, 李鎭 양인이 당의 조직변경으로 인하여 대표자격을 保否하고 퇴석한다는 통지서를 제출하다.

  ▪ 제3일회의 1월 10일(수) 출석 60인 사회 임시의장대리임시서기 柳善長

 임시의장 安昌浩의 사면 並 퇴석통고서가 제출되매 此에 대하여는 대표자격 확정시까지 보류하기로 하다. 대표 3명을 밧다. 北美國民會 대표 安昌浩(상해에 居留하다가 북미에서 통전이 有하야 대표되었음)의 대표자격에 대하여는 대표자격심사위원 중 姜九禹의 반대 의견서가 제출되었는데 그 이유는 ‘安昌浩는 曾히 이승만 위임통치청원사건에 관련된 자임으로 자격을 認키 難하다’함 이었다 此로 因하여 議論이 沸騰하였다.

  ▪ 제4일회의 1월 11(목) 출석 59인 사회 柳善長

 安昌浩문제에 대하야 토론이 장시간에 亙하다가 위임통치사건은 타일 議事 중에 삽입하야 査判하기로 하고 安은 합격 대표로 認하게 하다. 安昌浩의 辭免 及 退席 通告를 封還하기로 하다.

 附論:1월 12일은 安의 사건으로 휴회하다.

  ▪ 제5일회의 1월 13일(토) 출석 59인 사회 柳善長

 서기를 增選하고 대표 1인을 밧고 會議暫行規定에 대하야 토론을 始하다가 정회하다.

  ▪ 제6일회의 1월 15일(월) 출석 61인 사회 安昌浩

 대표 2인을 밧다. 대표 太龍瑞 문제(치타한인회에서 太의 자격을 부인하고 嚴崙을 대표로 파송한다는 통지서가 來하였음으로)로 토론이 장시간에 亙하다가 결국 該 兩人을 대회에 請하여다가 査問하기로 하고 회의잠행규정의 條文에 대하야 토론하다가 정회하다.

 附論:당일에 嚴崙이 대표가 확실하다 하야 의론을 끄러간 사람들은 다 上海共産黨으로 출석한 자 즉 베르흐네 우딘스크 공산당대회에 출석하였다가 상해로 來한 자들이었다.

  ▪ 제7일회의 1월 16일(화) 출석 61인 사회 安昌浩

 대표 11명을 받다. 대표 太龍瑞 문제로 장시간 토론이 잇다가 該 사건에 대한 특별심사위원을 선임하고 정회하다.

  ▪ 제8일회의 1월 17일(수) 출석 72인 사회 安昌浩

 회의규정이 전부 통과되다.

  ▪ 제9일회의 1월 18일(목) 출석 75인 사회 安昌浩

 회의규정에 의하여 정식간부를 선거할 시 투표검사위원을 선거한 후 투표한 결과로 의장은 金東三이 당선되어 즉시 陞席하다. 부의장은 尹海▪ 安昌浩가 피선되다.

 附論:이때부터 임원선거운동이 시작될 새 상해공산당이 率先으로 활동하여 兩南인사로 더불어 인선내정을 試한 後 자기들과 의견동일한 자들에게 紙片에 인명을 써서 들었다.

  ▪ 제10일회의 1월 19일(금) 출석 73인 사회 金東三

 대표1인을 밧다. 高麗共産黨(상해파) 玄鼎健 · 王三德 양인의 대표자격은 임이 해당과 동일한 명의로 출석하였다가 자격보류를 願한 2인 즉 張建相 · 李鎭이 유함으로 該 사건을 상세히 조사하기까지 역시 보류하기로 하다.

 정식간부 선거로 秘書長 及 秘書 3인을 선거하고 정회하다.

 附論:이날부터 상해공산당 측 대표들이 憾情으로 逸走하다(엄윤 상해당원의 사건과 당대표 玄, 王의 자격보류 당한 일로)

  ▪ 제11일회의 1월20일(토) 출석 76인 사회 金東三

 太, 嚴 양인의 사건에 대한 특별심사위원의 보고가 有함에 대하야 또 다시 의론이 激起하고 심지어 徐永琬(상해당원)은 당일 議場에서 黜場을 당하였다.(회의잠행규정에 의하여)

  ▪ 제12일회의 1월 22일(월) 출석 73인 사회 부의장 安昌浩

 대표 3인을 밧다. 대표자격심사위원을 정식으로 5인을 선거하고 殉國諸賢의 추도회를 본회의 정식개회 전 1일에 거행하기로 하고 정회하다.

  ▪ 제13일회의 1월23일(화) 출석 76인 사회 부의장 尹海

 대표 2인을 밧다. 회의 의정기초위원 5인을 선거하다. 본 회의개막식에 관한 일체 사항을 간부에 위임하기로 하다.

 附論:이날부터 3일간은 開幕式 準備 及 殉國諸賢의 추도회로 因하야 휴회하다.

  ▪ 제14일회의 1월 27일(토) 출석 75인 사회 金東三

 대표 3인을 밧다. 고려공산당대표 玄, 王의 대표자격은 간부에 전임하야 문답케 하되 張建相이 제시한 전문 즉 ‘제3국제공산당에서 上海派 · 伊市派를 다 부인하고 고려공산당의 신간부를 임명하였다’ 것에 대하야 此를 부인하고 該黨은 확실히 독립한 기관임을 該代表가 증명할 時는 대표로 인정하기로 하다.

  ▪ 제15일회의 1월 29일(화) 출석 65인 사회 金東三

 대표 1인을 밧다. 玄, 王 양인의 사건에 대하야 간부에서 문답한 결과 ‘該代表가 該黨이 지금까지 독립한 기관임을 확증한다’함으로 대표로 認하다. 太龍瑞 事件에 대하여는 치따한인회에서 太가 확실한 대표라는 回電이 有함으로 太가 다시 대표로 복권되다(이상은 오전 회의).

 의정기초위원의 보고에 의하여 토의 후 爲先 下와 같이 의결되다.

1. 宣書 及 宣言

2. 보고 ㄱ. 국민대표회주비회 경과사정보고(서면으로)ㄴ. 각지방 及 단체의 사정보고(서면으로)

3. 시국문제 (이상은 오후 회의 출석 71인)

 附論:이날부터 3일간은 의정에 대한 각방의 불평으로 휴회하다. 즉 일방(후에 개조파된 자들)은 선서 及 선언을 의정에 삽입하지 말자하고 또 일방(후에 창조파된 자)은 삽입하자 하며 일방은 (후에 개조파된 자)은 시국문제를 의정에 삽입하자 하며 일방(후에 창조파된 자)은 삽입치 말자 하던 까닭이다.

  ▪ 제16일회의 2월 2일(금) 출석 77인 사회 金東三

 대표 7인을 밧다. 의정을 계속하야 하와 여히 정하다.

4. 독립운동대방침 ㄱ. 군사, ㄴ. 재정, ㄷ. 외교

5. 생계문제

6. 교육문제

7. 노동문제

8. 국호 及 연호

9. 헌법

10. 과거문제 ㄱ.위임통치청원사건, ㄴ.자유시사변, ㄷ.40만원 사건, ㄹ.虎林 密山 사건, ㅁ.寬甸統義府사건 ㅂ.기타 사건

11. 기관조직

12. 신사건

13. 선포

 附論:이날부터 상해임시의정원 人士들이 代表되여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이때까지 代表會議의 形便을 觀求하고 있다가 上海共産黨의 態度가 一變하야 自己들의 意見과 一致됨으로(상해임시정부개조) 다수□□ 승리의 節望이 □함을 見한 까닭이라. 이날에 들어온 대표 7인은 임시의정원 인사들이었다.

  ▪ 제17일회의 2월 3일(토) 출석 78인 사회 金東三, 尹海

 대표 5인을 밧다. 각 분과를 下와 같이 정하다.

1. 군사분과 2. 재정분과 3. 외교분과

4. 생계분과 5. 교육분과 6. 노동분과

7. 헌법기초위원회 8. 과거문제조사위원회

 선서 及 선언□□□□□□□□□ 각 분과위원을 선거하기 始하다가 정회하다.

  ▪ 제18일회의 2월 5일(월) 출석 76인 사회 金東三

 대표 1인을 밧다. 분과위원□□□□ 선거하다.

  ▪ 제19일회의 2월 6일(화) 출석 86인 사회 金東三

 분과위원을 계속 선거하다.

  ▪ 제20일회의 2월 7일(수) 출석 77인 사회 金東三

 대표 1인을 밧다. 회의기간은 개회날로붇어 만 1개월로 정하다. 선서 及 선언을 기초 보고하매 토론□□□□□□□□□ 하야 각 대표로 하여금 일람 考究케 한 후에 결정하기로 하다.

  ▪ 제21일회의 2월 8일(목) 출석78인 사회 金東三

 인쇄배포한 선서 及 선언문제로 다시 수정위원을 선거하다.

 附論:2월 9일 선서 及 선언문제로 因하야 휴회하다. 이유 선서 及 선언 중에 장래 分立될 개조 창조 양파의 각 □□ 주장을 삽입하려 함이다. 즉 일방 (改)은 ‘공결에 절대 복종함’이라는 문자를 삽입하려하고 일방(創)은 ‘국민대표회의는 최고의 권위를 갖는다’는 문자를 삽입하자 함이었다. 그것은 국민대표회의를 소집한 성질상으로 당연히 최고권위를 仗하고 제반문제 즉 상해임시정부문제나 각 단체에 대한 문제나 기타 문제를 임의로 처리하기 가능하다 함이 此를 주장하는 자들의 內意였고 공결에 절대복종이라는 문구를 삽입하려함은 다수를 점한 자기들의 뜻대로 회의를 좌우하기 가능하며 설혹 公決에 불복하고 탈퇴 혹은 자유행동을 취하는 대표가 有하다 할지라도 責任은 자기들에게 不在하다함을 辯說하려하는 內容이였다. 개조의 수가 이때는 다수이다 베르흐네 우딘스크 공산당회의의 위임받었던 者들과 內地 대표들이 거의 다 나온 때이었다.

  ▪ 제22일회의 2월 10일(토) 출석 79인 사회 安昌浩

 선서 及 선언 수정위원의 의안에 의하여 선서 及 선언에 대한 토론과 제의가 有였으나 아모 결정 없이 정회하다.

  ▪ 제23일회의 2월 12일(월) 출석 84인 사회 金東三

 대표 3을 밧다. 奉天韓人靑年會 대표의 자격에 대하야 疑訝가 有하야 토론이 有하다가 상세히 조사하기까지 그 자격을 보류하다.

  ▪ 제24일회의 2월 13일(화) 출석 81인 사회 金東三

 대표 4인을 밧다. 비서 及 분과위원이 사면 보선하다.

  ▪ 제25일회의 2월 14일(수) 출석 86인 사회 尹海

 선서문이 가결되고 선언의 일부가 가결되다.

 附論:15일은 음력 除夕으로 16일은 정월 1일로 因하야 휴회하다. 連하여 今 18일(일)까지 휴회하다.

  ▪ 제26일회의 2월 19일(월) 출석 83인 사회 尹海

 선언 전부가 가결되다.

  ▪ 제27일회의 2월 20일(화) 출석 81인 사회 金東三

 선서 及 선언식 거행 절차를 下와 如히 정하다.

1. 向國旗最敬禮

2. 선서 及 선언서 낭독(일동 기립)

3. 대표원 서명(선출 지역 及 단체명을 告할 것)

 국민대표회주비회 사무를 본회의 간부에게 인계 全□하기로 하다.

 附論:21일은 선서식 擧行으로 휴회되다.

  ▪ 제28일회의 2월 12[22의 오기]일(목) 출석 84인 사회 金東三

 대표 6인을 밧다. 회의 경비에 대하여 간부에서 提出한 下의 결산표대로 통과되고 금후 수입방법 及 지출사항은 간부에 전임하기로 하다.

 예산표

 본 간부에서 회의의 事를 금후 만 45개일 내에 완료하기로 예정하고 此에 필요한 회의경비는 下와 같이 예산함.

1. 大洋8千元

 내역:洋5400원 대표 120인 舍宿費, 600원 신도대표 2월度 薪水費久入, 600원 회의장경비, 250원 書記及警護員 薪水費, 100원 幹部事務實費, 50원 3 · 1절경축비, 1000원 準備金

 국민대표회의주비회 경과사정보고(서면)가 有하다.

  ▪ 제29일회의 2월 23일(금) 출석 85인 사회 金東三 · 尹海

 대표 17인의 보고가 有하다(서면낭독).

  ▪ 제30일회의 2월 24일(토) 츨석 86인 사회 金東三

 대표 21인의 보고가 有하다(서면낭독).

  ▪ 제31일회의 2월 26일(월) 출석 94인 사회 尹海

 대표 22인의 보고가 有하다(서면낭독).

 附論:27일은 3 · 1절 준비로 휴회하다.

  ▪ 제32일회의 2월 28일(수) 출석 96인 사회 金東三

 대표 6인을 밧다. 是非있던 奉天韓人靑年會代表를 합격으로 認하다. 이번 받은 壬戌俱樂部 대표에 대하야 다시 세밀히 조사하기로 되야 翻案 保留되다. 금후에 新到代表는 3월 10일까지 위임장 제출한 자 외에 수리치 않기로 하다. 의장이 3 · 1절 기념식 거행 장소와 시간을 선포하다.

 附論:3월 1일은 3 · 1기념으로 휴회하고 2일은 회의를 하고 예산에 대한 □□□으로 因하여 간부에서 휴회식혔다.

  ▪ 제33일회의 3월 3일(토) 출석 92인 사회 尹海

 대표 4인을 받다. 대표 4인의 보고(서면낭독)가 有하다. 남은 대표들의 보고는 모다 간부에서 서면으로 접수하야 시간을 절약하기로 하다.

 附論:오늘 받은 대표4인은 다 상해임시의정원 代議士들이었다. 이때까지 관망하다가 대표위임장 수리기간이 迫近함으로 그 전에 들어오려 함이였다.

  ▪ 제34일회의 3월 5일(월) 출석 98인 사회 金東三

 시국문제로 10인의 의견발표가 有하다.

  ▪ 제35일회의 3월 6일(화) 출석 97인 사회 金東三

 대표 8인의 시국문제에 대한 의견발표가 有하다.

 附論:7일은 간부에서 시국문제에 대하여 독립운동 대방침을 정한 뒤에 토의할까 말까하는 쟁론이 起하여 此를 완결하려고 간부회의를 開하기 위하야 휴회하다.동일에 간부의 주최로 시국문제를 원만 해결하려고 상해임시정부의 인사들과 함게 大新旅社에서 회의를 開하다. 이것은 시국문제에서 상해임시정부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넘어가려는 대표가 다수인 까닭이었다.

  ▪ 제36일회의 3월8일(목) 출석 99인 사회 金東三

 대표 5인의 시국문제에 대한 의견발표가 有하다. 의견발표시간을 주려서 정하다.

  ▪ 제37일회의 3월9일(금) 출석 95인 사회 金東三

 시국문제에 대하야 尹慈英 등 18인의 연서로 제출된 제의안을 秘書長이 낭독하다. 대표 5인의 시국문제에 대한 의견발표가 有하다.

 附論:시국문제에 대하야 이제는 汎論을 停止하고 提案의 토론을 始하자는 간부내의 일부 인사(創派될 者)의 주장이 有함으로 此에 대한 상의로 간부회의를 開하기 위하야 10일은 휴회하다. 그들이 범론을 정지하고 제의에 대하야 토론을 始하려고 주장한 이유는 일부 인사(改派)들이 시국문제 의견발표 연설로 시일을 길게 끄러 회의를 연장시키려고 하는 까닭으로써 함이다.

  ▪ 제38일회의 3월 12일(월) 출석 95인 사회 金東三

 시국문제에 대한 汎論을 정지하고 임의 제출된 제안에 대하야 토론하기로 하다. 이미 제출된 제안은 下와 如하다.

 제1제의안 제의자 尹滋英 등 18인

1. 본 국민대표회의는 우리 독립운동으로써 세계 피압민족의 해방운동과 동일한 전선을 作하기로 함.

2. 본 국민대표회의는 우리 운동을 血戰에 主重하야 조직적으로 진행할 일.

3. 본 국민대표회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조직, 헌법, 제도 及 기타 일체를 실제운동에 적합하도록 개조할 일.

 제2제의안 제의자 金宇希

1. 금후에 독립운동은 전 민족의 유일한 戰血主義로 注重 진행할 일.

2. 過去 5년간에 조직된 각 기관 及 각 단체는 其 명칭의 高下와 시설의 廣狹을 勿論하고 일체 폐지하야 본 회의에서 우리운동에 적합한 헌법으로 통일적 기치 하에 一新 改選할 일.

 제1제의안이 상정될 旨를 선포하려 하매 該 提案의 3개항을 각각 一項式 독립한 안건으로 인하야 토의 결정하기로 다시 의정되다.

  ▪ 제39일회의 3월 13일(화) 출석 105인 사회 金東三

 시국문제에 대한 제의가 有하다.

 제3제안 제의자 朴健秉 등 25인

1. 본 국민대표회의는 血戰主義를 수립하야 폭력의 수단과 급진의 步調로서 독립운동을 진행하기로 함.

 제4제의안 제의자 柳時彦 등 43인

1. 본 국민대표회의는 철저한 독립 정신 하에 民主共和的 國是를 확립하야 국민의 사상을 집중하기로 함.

 제1제의의 제2항은 下와 如치 개정한 후 가결되다

 본 국민대표회의는 우리의 독립운동으로써 혈전을 主重하야 조직적 계획 하에서 급진적 步調로써 진행할 일.

 제2, 3제의안은 각각 그 제안자가 취소하다. 제1제의의 제3항은 본회의에서 수리할 바 안이라는 議論이 起하다.

 附論:本日 회의에 출석수가 105인의 다수 됨은 제1제의의 가결로 因함이니 一方(改)은 제1제의 제3항까지 가결시키기 위하야 다수 출석하였고, 一方(創)은 此를 상정붙어 반대하야 본 회의에서 수리치 안토록 하기 위하야 역시 다수 출석됨이다.

  ▪ 제40일회의 3월 14일(수) 출석 95인 사회 金東三

 제1제의 제3항 상정문제에 대하야 토론이 장시간에 亙하엿다. 즉 一方(改)은 그 제의가 제1제의를 수리하야 선포할 때에 임이 상정되얏스니 또한 당연히 상정식혀 토론 표결할 것이라 주장하며 一方(創)은 제1제의의 3항을 각각 독립안건으로 토론하자 하엿은 즉 임이 상정된 것이 안이고 또한 본 회의에서 상정식혀 토론할 문제가 안임으로 지금 상정시키려 하는 것 붙어 반대하노라 하야 相爭하였다.

 附論:本日붙어 상해임시정부를 개조하려 하는 자와 其 改造를 반대하는 자의 양방이 判然히 대립되게 되야 개조안을 주장하는 자들을 改造派라 하고 그것을 반대하는 자들을 創造派라고 局外에 立한 자들이 지칭하였다.

  ▪ 제41일회의 3월 15일(목) 출석 107인 사회 安昌浩

 昨日과 如히 토론하다가 정회하다.

  ▪ 제42일회의 3월 16일(금) 출석 98인 사회 金東三

 昨日과 如함

 附論:3월 17일은 제1제의 제3항 상정문제로 양방의 諒解를 구하기 위하야 휴회하다.

  ▪ 제43일회의 3월 19일(월) 출석 97인 사회 金東三[『독립신문』에는 3월20일]

 昨日과 如히 토론 (한줄전체 판독불능:약 37자) 되다.

 附論:3월 20일은 인원이 법정수에 未滿함으로 流會되다(법정수는 대표총수의 4분3)

  ▪ 제44일회의 3월 21일(수) 출석 107인 사회 金東三

 金昌煥 등 12인(軍人俱樂部)의 시국문제에 대한 긴급제의가 有하다. 즉 ‘본 국민대표회의는 과거 분립적 독립운동기관은 금후(1월 3일) 존재를 일체 불허하는 동시에, 連하야 상해임시정부도 과거는 認하고 금후의 존재는 부인하고 오직 실제 독립운동에 적합한 통일적 최고기관을 공고히 조직하기로 결의함’이였다.

 이때까지 상정 여부에 대하야 쟁론하던 제1제의 제3항 상정에 대하야 의장이 大決心으로 該案은 이미 상정되였은 즉, 제의자는 설명하라하니 제의자가 紛擾한 議場中에서 登壇하여 설명하려하다가 議場이 혼란하게 되매 정회되다.

 附論:의장 金東三이 本日에 와서 대결심으로 該項의 임이 상정이 되였다고 선포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자기가 개조파의 일원으로 바로 전일 밤에 相約하기를 明日 회의에는 該項 상정 自体를 하기로 함인 것이며, 둘째는 아무리 하여도 양방이 상쟁할 바에는 그 문제를 상정이나 식혀놓고 상쟁함에 가하다 함이였다. 그러나 자기도 고의로 强히 상정을 宣한 것은 수일동안 의장석에서 사방의 질문에 대하여 명확한 답변이 없이 黙視하였던 것과 항상 의장석에서 태도를 發問 가진 결과 이날에 이르러서는 단연 명확히 임이 상정되엇다 하며 강경한 결심이 有함을 표시하던 것과 私席에서 談話하던 것을 들어 可知할 것이었다. 本日붙어 4월 10일까지 비공식회의로 양방의 타협과 양해를 구하였다. 이에 개조파 즉 제1제의 제3항의 상정 의결을 力唱하든 자들과 창조파 즉 제1제의 제3항의 상정부터 반대하는 자들 양방의 주장을 記한다.

 一. 개조파의 주장

1. 국민대표회의는 독립운동을 조직적 통일적으로 진행하기 위하여 소집한 것인 즉, 그 중요한 착안점이 통일에 잇는 것이다. 현시 我 運動의 통일을 기성하려면 반드시 내지인민이 信賴하고 5개년 역사가 燔燔 하고 동서열강이 共認하는 상해임시정부를 개선하여야 능히 그 목적을 달할 것이라 함이며,

2. 상해임시정부가 물론 그 동안에 사업의 성적이 無하고 醜態가 或 有하였으나 이는 다 자연인의 淺才요 기관 즉 법인의 죄가 안인 즉, 자연인을 도태함은 가하나 기관을 증오하야 肅正의 擧에 出함은 불가 할지라 그런고로 此를 時宜에 적당하도록 개조함이 得策에 구함이며,

3. 만약 不然하야 임시정부의 존재를 부인하고 국민대표회의에서 신기관을 산출한다하면 상해임시정부를 옹호하는 군중은 의연히 분립하여 兩個의 기관이 各個 英黨의 爭으로 禍根을 또다시 미치는 害가 有하리라 함이었고.

 二. 창조파의 주장

1. 3 · 1선언 이래의 혁명군중의 열정을 냉각케 하고 連하야 政浮 無統一한 □□□분쟁으로 지나게 된 최대 원인은 상해 一隅에서 기성국가의 형식으로 虛文假具로써 정부노름을 하려는데 대하야 各方이 此를 증오하며 又는 此를 對抗하야 그 근본을 일소하려함에 在하였다. 此를 개조하여 통일을 求코져 함은 통일보다도 此로 因하야 도리혀 국민대표회의의 자체분열을 보게 할 뿐 안이라 설혹 其 정부를 개조한다 할지라도 그 정부가 不應할 것이 사실이며 각 방면의 반감을 招하여 국민대표회의의 권위만 손상되고 통일은 절망에 歸할지다. 그런 즉 통일의 策은 다만 某一 정부 某一 의회 某一 기관 某一 단체를 개조하야 통일을 구함보다 此等 전 기관을 □□의 高下와 세력의 廣狹을 물론하고 전부 취소한 후 본 국민대표회의에서 실지 독립운동에 적합하도록 신조직을 산출함에 在하다 함이었다. 타자씨이 論하면 금후에 독립운동은 선전기를 지나 擧事 준비기에 入하는 과정인 즉, 혁명적으로 實地운동에 주력함이 可함으로 과거선전의 필요로 조직된 정부의 紙上空文과 허장성세에 구애될 것 없이 독립운동을 總支配할 만한 혁명운동의 幹部다운 신기관을 조직하야 그 진행을 지도케 함이 可한 것이다. 그런 고로 상해임시정부도 3 · 1운동 당시에 方便으로 청년기 개인의 威脅下에서 성립된 것으로 일시의 時宜를 從하야 一部의 民□□□□□라는 점에서 或 有하였으나 東西列邦의 共認 운운은 선전의 言辭로 捏造에 不過한 것은 □□□□하는 바이며 또한 일시의 □□으로 □□을 □하던 人心도 漸次 其非를 覺하야 일부의 信望조차 一落한 此時에 此 정부를 개조하야 총장 차장의 活刻을 再字함은 其策을 得함이 안이며 설혹 일부의 인심이 아직도 此에 肯應하는 것이 有하다 할지라도 此는 정부의 內政을 전혀 不知타 하거나 일시에 風痱되는 徬合의 衆과 如하여 실지혁명 분자의 단결로 인키 불능한 즉 如此라 군중으로 혁명의 성공을 策함은 空想에 불과함이라 함이며,

2. 통일을 위함은 일반이나 상해임시정부를 개조하야 그 목적을 達하려할지라도 상해정부 자체가 반대할 것이며 各方에서 此를 반대하든 자들도 의연히 분열되어 도로혀 분쟁을 심하게 함인 즉, 이것이 得策이 안이라 함은 上에 말함과 如하거니와 또한 금후의 독립운동 통일은 事□의 통일이라야 완전한 통일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독립운동 중견의 □力을 잡은 진정한 혁명 분자가 충분한 준비로 勇往盟進함에 從하야 他分子가 此에 吸收되면 자연히 事□과 운동진행으로 대국이 통일될 것이니 내지의 인심도 亦此에 傾하야 何지방 何단체를 물론하고 實力을 질러 국내에 先入하야 其勢을 張하는 곳에 인심도 集注될 것인 즉, 통일도 사업으로 조직적 실지운동을 爲하여야 가능할 것이며, 상해 정부의 잘못은 자연인의 罪는 □定의 罪가 안이라 하는 解說法은 일종 論理的 浮戱에 불과하는 것이니 □□광복치 못한 금일에 在하야 정부 운운의 존재는 其 志操가 無한 것이다. 오직 宣傳의 방편으로나 일시 其 名義를 □내할 것인 바는 현금의 如한 時期에 在하야 또 다시 기성국가의 형식을 從함은 유희극에 불과할 뿐 아니라 여하한 인물이 其局에 當할지라도 그 결과는 필경 무가치한 □手□□□ 入할 것이다. 정부 운운의 공상적 □□의 □으로 3 · 1운동의 혁명적 기운을 소멸에 發하고 심지어 독립운동으로 하여금 중지상태에까지 陷케 한 今日에 처하야 오히려 此를 襲하야 통일 운운의 쌍성 偕下에서 此의 개조를 唱함은 이유가 없는 것이며 상해 교민의 □□□□□□□ 選擧하야 조직된 임시의정원에서 산출되여 而今에 총장 2인 밖에 남지 아니함을 불구하고 국민대표회의를 愚弄하야 기성국가 諮詢機關 然하게 視하야 통일의 성의가 一毫無한 행동을 감행하는 정부를 개조함은 혁명군중의 반박을 도로혀 招하는 것이다. 임이 전국민을 대표하야 최고권위를 仗하였음을 선언한 이상은 내외 許多한 독립운동기관 중에서 이 상해임시정부를 개조하야 그 계통을 承할 이유가 없는 것이며 차라리 此를 산출하야, 그는 임시의정원에서나 말할 바요 한국의 최고기관으로 자처하는 상해정부의 存在를 임이 무시하고 국민대표회의주비회 선언에 基하야 회합한 국민대표회의 석상에서는 논의할 바도 안이라 함이며.

3. 상해 정부를 개조안이한다 하여 상해 정부 옹호하는 자들이 분립되는 것이 통일을 缺하는 것이라 하면 상해정부를 개조한다 하여 개조를 반대하는 자들이 분립하는 것은 엇지 통일에 欠缺이 되지 안는다고 생각하는가.우리 사업은 엇지 하였든지 실제운동을 標準할 것이라 함이었다.

 軍人俱樂部는 대표회의에 來參한 군인들과 그 외 상해에 잇는 군인 합 12인명으로 조직된 것인데 그 성립정신은 不偏不倚하게 特立하야 실지적 운동에 주력하도록 국민대표회의 여론을 喚起코져 함이었다. 이날붙어 4월 10일까지 비공식회의하는 동안에 되어간 정황은 대략을 초록하건대 大東旅社(4월 6일)에 간부회의를 開하고 安昌浩의 주창으로 시국문제는 의정 중 노동문제가 종료될 시까지 보류하고 그 동안에 상해임시정부는 국민대표회의 내로 入하도록 노력(安昌浩가 능히 들어오게 할 수 있음을 장담하였다)하야 들어오게 하며 국민대표회의는 임시정부가 들어오는 것을 받아 같고 국민대표회의에서는 그대로 신기관을 조직하며 소위 계통은 자연적 계통이 되고 창조도 자연적 창조가 될 것이니 이러하면 능히 兩方이 합치할 수 있다하여 개조안을 自行取消하지 아니하면 간부에서 棄却하기로 하였고 金錣洙(간부 내 개조파 1인이요 상해당의 유력자)로 하여곰 개조안의 취소를 保證케 하고 安昌浩도 임시정부의 들어올 것을 보증하였다. 이 회의에서 이렇게 장담하고 나선 安, 金은 결국 아무 성공도 없고 그 성공되지 못할뿐더러 金은 自黨에서 많은 논박을 당하였다. 개조파로 잇던 安과 金이 如此이 장담하여서 自進한 이유는 33프락치(兩西, 兩南, 上海黨)가 動搖되여 자기들의 주장이 虛地에 歸할까 염려하였든 까닭이었다. 이에 대해 상해당 프락치에서는 개조하려는 전의 결의가 變하야 창조하자는 결의로 변할 운동이 有하였다. 4월 8일에는 간부회의에서 下와 如한 제의가 통과되엿다.

 국민대표회의는 과거의 紛糾를 일소하고 미래에 신국면을 전개하기 위하야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은 노동문제를 종료하기 전에 무조건으로 국민대표회의에 들어오게 하고 국민대표회의는 새로 制定하는 헌법에 의하야 중앙기관을 조성하기로 결의함.

 이 제의는 4월 6일에 간부회의에서 相論하던 말에 의하야 통과된 것인데, 이날 간부회의에 安昌浩가 未參하얏다.

 4월 9일 밤에 간부회의가 有하였을 때, 安昌浩가 8일 회의에서 결의된 것에 대하야 이의를 喚하야(4월 6일 간부회의에서 말하던 것은 含口言하고) 大論爭이 起하얏다. 이날 밤에 상해당 프락치에서 파열전이 有하얏다.(개조결의가 임시정부의 금후≪1월 3일 후≫存在를 부인하고 국민대표회의에서 신기관을 조직하자는 결의로 변하얏다.

 4월 10일 아침에 간부회의에서 長時間에 쟁론이 有하다가 保留策(회의 제45일에 제출된)이 결정되다. 간부내의 개조파는 개조안을 자행 취소하기로 보증한다고 간부회의록을 작성한 비서 金綴洙는 자기 의사 不合과 자기 동지들의 攻駁을 不照하야 不知何落處로 회의에서 先退하얏다. 그동안 十餘次의 비공식회의에서는 아무 隱匿없이 개조안에 대한 論戰이 有하였을 뿐이엿다.

  ▪ 제45일회의 4월 11일(수) 출석 93명 사회 安昌浩

 의장이 간부를 대표하야 這間 회의가 多日 停滯된 것이 未安하다는 禮辭가 有한 후 금일붙어 정식회의가 계속 개회되는 旨를 宣하다. 상해애국부인회 대표 교대(金淳愛 대 吳義橓)를 認하고 자격심사위원의 보고에 의하여 오의순을 대표로 밧다.

 시국문제에 대한 呂運亨 등의 下와 如한 제의가 有하다.

 본 국민대표회의는 내외 각 독립운동단체를 통합하야 一大獨立黨을 조직하기로 결의함.

 시국문제에 대한 아래와 같은 간부에 요구안이 가결되다.

 시국문제에 관한 일체 미진 사건은 본 회의의사 順序 중 노동문제가 종료할 때까지 보류하기로 결의함

 附論:이날부터 4월 15일까지 피차의 誤解를 求하기 위하야 휴회되다

 이날에 교체된 상해애국부인회 대표사건에 전말은 아래와 같다.

 4월 9일에 김순애가 시국문제에 대한 의견발표로 통일을 목적하고 모인 이 대표회의가 壯한 일이다. 그러나 그 통일을 위하는 방법이 각각 다르다 나는 또 정부 노름하는 데는 반대하도다. 實體업는 虛名에 辭하나하는 일은 과거의 전철을 다시 보는 것이라. 나는 창조하고 하려 한다. 다만 실제운동 표준하고 뭘 하여야 될 줄로 안다는 뜻으로 해설하였다. 그날 밤으로 오의순 김마리아 梁함아 등이 상해애국부인회의 임시회의를 소집하고 대표 김순애가 본회의 의사에 반대되는 창조의 뜻으로 연설하였다는 이유하에서 그 대표를 사면키하고 其代에 오의순을 선정하야 개조를 주장케 하였다 이날 밤 회의에 그 회장 김순애에게는 알리지도 안이하고 청하지도 안이 하였다. 그뿐 만아니라 김순애를 대표로 선정하고 아모 注意를 준 것도 없이 전권을 委任하였던 것이다. 그 내막에는 개조파의 無數 증가시키려는 陰謀가 伏在하였던 것이다. 회장 김순애는 請하지 안이하고 회의하였든 일과 처음에는 아모 注意준 것도 없이 전권으로 위임하얏다가 지금에 이르러 돌연히 시국문제에 대한 의견 발표로 因하야 대표를 변경함에 대하야 그 자체 내에서도 시비가 분분하얏다.

 이날에 김순애가 대표사면통지서와 함께 장문의 의견서가 제출되얏다.

  ▪ 제46일회의 4월 16일(월) 출석 97명 사회 金東三

 간부로부터 4월 하반기의 임시예산표가 제출되야 그대로 통과되다.

 임시예산표

一. 洋 1815円 4월 하반기 留宿費 대표 121인(4인은 이미 소환되얏음) 매명 15원식

二. 洋 200 회의장소비

三. 洋 100 간부사무실비

四. 洋 600 임시비 합계 2715원

 군사분과와 재정분과의 보고가 有하였다. 군사분과는 다시 修正키 하다.

 附論:이날부터 회의진행 중에 개조의 대표들이 早退하야 인원이 법정수 미만으로 정회된 때가 頻頻하얏다.

  ▪ 제47일회의 4월 17일(화) 출석 94명 사회 尹海

 재정분과에 대한 토론이 有하다가 인원이 법정수 미달으로 정회되다.

  ▪ 제48회회의 4월 18일(수) 출석 87명 사회 金東三

 회의규정 제20조에 개회는 총원 4분3 이상의 출석을 요함이다 규정하얏으나 출원이 항상 법정수에 미만되여 정각에 개회되지 못할 뿐 만이라 중간에 유회되는 일이 종종 有한 즉, 이 폐해를 先히 교정함이 가하다는 간부에 긴급요구가 有함에 其 救濟策을 토론하다가 동 제21조에 但項으로 정각에 至하야 법정수에 10인 이내가 미만하더라도 개회함을 得함을 삽입고저는 제의가 이었으나 토론 중간에 조퇴한 대표가 다수하야 법정수가 미만으로 정회하다.

  ▪ 제49일회의 4월 19일 출석 90명 사회 金東三

 昨日에 토론하던 제의에 대하야 동 제의자로 下와 如히 수정한 후 가결되다.

 단 법정수에 10인 이내가 미만할지라도 現場數 3분 2 이상의 요구가 有할 시는 개회함을 得함. 또한 연일 유회됨으로 무고 1일결석, 無數早退者에게는 회의규정 제27조를 적용하야 1일회의의 停權을 명하기로 하다.

 재정분과보고에 대하여 토론하다가 다시 修正케하고 군사분과보고에 대하야 토론하다가 정회하다.

 附論:수일 동안 조퇴자와 결석자가 다수한 이유는 개조파에서 노동분과까지 速케 결의되고 보류되었던 시국문제의 제의안이 다시 토론되기 전에 상해임시정부로 하야곰 국민대표회의에 들어와 개조안이 가결되게 하려고 노력하기 위하야 국민대표회의에 매일 출석하든 대표들 또한 상해임시의정원 代議士가 되게하야 入院케 하여 其 외에 개조를 찬성하는 인사 數三人이 합석하야 자기들에게 新道한 자들 捧하야 欠缺된 각도 대의사로 임명하얏다. 의정원 내에 다수를 점한 후 국민대표회의 내로 정부가 들어갈 제의를 가결식히도록 周旋하로라고 가급적 국대회가 遷延되도록 애쓴 까닭이다. 그것은 의정원 속기록 제24호 제□張에 씨인 文時煥에 말 곳 국민대표회의가 계속 개회치 못하면 그 책임이 의정원에 잇소. 한말을 보던지(문시환은 대표요 상해당원이다) 긋대 金尙德(개조파 一人의 대표)의 제의(의정원 속기록 제24호 제6張) 곳 필요로 인한 시에는 의정원의원 반수 이상 제의로 총원 4분3 이상의 출석, 출석원 3分4 이상의 가결로 認한 각 독립운동단체 각 지방인민이 특별히 선출한 대표로 조직된 국민대표회의에서도 임시정부의 헌법개정 또는 중대사건을 처리함이라 함을 보아 可히 알 것이다.

  ▪ 제50일회의 4월 20일(금) 출석 78명 사회 金東三

 군사문제의 일부가 통과되다.

  ▪ 제51일회의 4월 21일(토) 출석 88명 사회 尹海

 법정수 4분 3에서 10인 이내가 미만하더라도 개회하기로 개정하얏으나 오히려 그 수에도 미만하야 유회되는 폐가 있음으로 此에 대하야 다시 토론하다가 그 규정을 개정하되 개회는 정각의 출석원으로 함이라 하였다. 하오 5시에 정회하였다. 밤 8시에 다시 개회하고 군사문제에 대하야 토론하다가 또 일부를 통과시키고 동 11시에 정회하다.

 附論:‘개회는 정각의 출석원으로 함’이라는 제의는 개조파에서 하엿다. 그럼으로 창조파에서는 만일을 우려하여 일시는 그 제의에 반대하였다.

  ▪ 제52일회의 4월 23일(월) 출석 67인 사회 尹海

 군사문제가 전부 통과되다. (국민대표회의에서 조직된 기관에서 선포한 선포문에 기재되었음) 하오 5시에 정회하였다가 밤 8시에 다시 개회하고 외교문제 전부를 통과시키다.(선포문에 기재되었음)

  ▪ 제53일회의 4월 24일(화) 출석원 76인 사회 安昌浩

 생계문제를 토론하여 일부를 가결하고 하오 5시에 정회하엿다가 밤 8시에 다시 개회하고 생계문제에 대하야 토론하다가 11시에 정회하다.

  ▪ 제54일회의 4월 25일(수) 출석 75인 사회 尹海

 생계문제에 대하야 토로하다가 정회하다.

  ▪ 제55일회의 4월 26일(목) 출석 76인 사회 安昌浩

 생계문제가 전부 통과되다. (선포문에 기재되었음) 하오 5시에 정회하였다가 다시 밤 8시에 개회하고 재정문제를 토론하다가 10시에 정회하다.

  ▪ 제56일회의 4월 27일(금) 출석 72인 사회 安昌浩

 재정문제에 대하여 토론하다가 정회하고 다시 밤 8시에 개회한 후 原議題에는 入치 못하고 국민대표회의의 대표로서 상해 임시의정원의 대의사로 출석한 자를 처리할 문제로 토론하자는 긴급제의가 有하매 此 제의에 반대하는 자(개조파)가 有하야 상호 쟁론하는 듕에 의장이 아무 이유 없이 정회를 宣하며(그때의 시간은 9시였다 밤 회의는 흔이 11시에 정회하였다) 議場에 紛擾가 起하다.

 附論:이날 밤 회의의 사회자로 잇던 安昌浩가 부당하게 독단으로 정회를 宣한 일에 대하여 정회한 후에 즉시 辱을 보다.

  ▪ 제57일회의 4월 28일(토) 출석 67인 사회 安昌浩

 昨夜 紛擾事件으로 토론이 有하다가 정회되다. 다시 밤 8시에 모여 재정문제를 토론하다가 일부를 통과시키고 11시에 정회하다.

  ▪ 제58일회의 4월 30일(월) 출석 56인 사회 尹海

 本日은 단군어천절이라 하야 오전회의는 휴회하고 밤 8시에 개회하고 의정원 대의사가 되야 兩 회의에 들락날락하는 대표들의 문제로 장시간 토론하다가 의장이 국민대표회의의 대표로서 상해 임시의정원의 대의사가 될 수 업는 일인 즉, 대표로서 대의사가 된 자는 대표를 사면하거나 不然하면 대의사를 사면함이 가하다 선포하매 議場이 騷擾하얏다. 11시에 정회하다.

 附論:국민대표회의의 대표로 임시의정원에 출석한 자인 즉, 文時煥(개조파 상해당원) 金尙德(개조파) 鄭光好, 鄭仁濟(개조파) 裴洪吉(개조파 상해당) 등 5인이었다. 이 대에 분과보고가 迅速히 통과됨으로 개조파에서는 회의 중에서 些少한 欠點이라도 있으면 吹毛求疵的 辯論으로 시간을 보내려고 전력하여 조금만 하면 紛擾를 일으켰다. 그 이유는 의정원 내에서 자기 이들(들이) 운동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아니하는 까닭이엿다. 5월 1일은 노동절임으로 휴회하고 2일은 議解 문제로 휴회하다.

  ▪ 제59일회의 5월 3일(목) 출석 85인 사회 金東三

 등사판 인쇄물 이스크라에 독립운동자에게 대한 侮辱設이 記載되었는데 이것은 대표 중에서 발행하는 것이라는 臆談 추측으로 의론을 분기케 하다(개조파에서). 金世爀 등 12인 대표의 聲明書가 장내에 배포되다. 그 성명서는 같은 대표로서 달은 주장을 가진 대표를 배척한다하여 개조론을 주장하든 대표들이 크게 격분을 發하야 장내가 일시 소란하였다.

 附論:김세혁 등 12인의 대표들의 성명서는 군인구락부의 결의에 依함이엿다. 그 성명서의 主文은 ‘본 국민대표회의는 과거 분립적 독립운동기관의 금후(4256년 1월 3일)존재를 일체 불허하는 동시에 從하야 상해임시정부 及 임시의정원도 과거는 認하고 금후의 존재는 불허하고 오직 實際 독립운동에 적합한 통일적 최고기관을 革固히 조직하기로 성명함.

 실행조건

1. 右 성명의 의견을 찬동하는 이는 五等과 함께 국민대표회의를 진행할 것이며 此에 반대하는 이는 한갓 편견만 가지고 고집하야 紛糾를 做出하는 자로 認하고 국민대표회의에 同席함을 불허하기로 함.

2. 五等은 此로써 국민대표회의를 최후일각까지 적극 진행하기로 함’ 이였다.

 이 성명서에 서명한 자는 金世赫(擎天), 李靑天, 洪震宇, 裵天澤, 蔡英, 金昌煥, 安武, 金重勳, 蔡君仙, 崔峻衡, 申日憲, 林炳極 등 12이였다.

 이 12인 대표(군인구락부원)가 如此한 성명서를 發하게 된 이유는 너무 이론에 從하야 회의를 끄러가며 紛擾를 니를키기를 위주로 하며(개조파) 改創 양파의 주장은 膠着되여 잘못하면 國民代表會議가 파열(당시 개조파는 의정원 방면에서 활동하는 일도 無效됨을 알게 됨으로 자기의 주장대로 회의가 진행되지 못할 것 갓흐면 탈퇴하자는 비밀계획이 有하였음. 군인구락부원 배천택≪改派 유력자≫이 군인구락부회의 석상에서 개조파가 탈퇴한다는 말을 하엿음)될 憂慮가 不無함으로 제51일 회의에 제출(改派案)되여 결정된 案 ‘개회는 정각의 출석원으로 함’에 의하든지 또는 본 국민대표회의는 국민전체의 사활 문제되는 독립운동을 위하여 모드인 회의이지 團與團이나 어떤 정당 數派가 각기 이해문제를 해결하려고 모드인 회의가 안인 즉, 일부 탈퇴가 본 국대대표회의의 하등관계가 無하고 다만 그런 非行을 敢爲하는 자에게 □責이 될 것뿐이라 하여 憤慨하며 증오하야 武人의 英斷을 브리며 강력적으로라도 속히 실제에 효력이 있는 일을 토론하도록 하며 회의는 절대 破裂못하다 라는 것을 뵈임이라.

 그 동안에 개조파에서 간부에 대하야 數次 휴회를 요구하였다. 그것은 4월 晩日 내로 혹은 5월 2일 내로 혹은 5월 5일 내로 임시정부가 국민대표회의 內로 들어 올 터이니 조금만 참아 달라함이었다. 그 중에도 의장으로 잇는 金東三이도 수차 휴회를 요구하였다. 安昌浩와 如한 者는 今番에만 임시정부가 들어 안이오면 余는 창조보다 더 심한 창조파로 나가겠다고 하였다. 그럼으로 5월 4일로 9일까지 6일간은 휴회하였다. 그러나 趙琬九의 의정원에 대한 성토문이 출하고 임시의정원 의장은 긴급제의(임시의정원의 ‘임시정부의 헌법개정을 국민대표회의에 위임하자는’ 결의가 무효라는 旨를 선포하였다. 일이 이 같이 되매 간부에서 계속 개회하려하였다. 그러나 개조파에서 또 다시 1일만 휴회하여 주기를 요구하였다. 그것은 자체의 결속을 위함이었다. (의정원운동에 실패한 후 개조파 자체의 분열이 生하기 始하였음) 그리하여 겨우 5월 10일에야 개회하게 되였다. 그래도 오히려 부족하야 10일 밤에 개회하게 되었음을 不拘하고 윤자영 등은 시간 지연책으로 滑稽的 제안을 제출하여 시간을 空費하다가 11일 회의에서 의안을 취소하다.

 임시의정원의장 尹琦燮의 긴급제의 결의안 무효 선포에 대한 전말을 상해 독립신문 제161호≪1923.6.13≫ 제1면에下와 如히 기술되었다. (‘통과된 긴급제의’ 都寅權 等 二十餘 議員의 連署로 提出되여 討論되던 臨時憲法改正案에 對하야는 歧論이 多하야 議事에 澀滯를 生할 뿐 外라 몃몃 議員들의 退席으로 말미암아 法定數가 不足되여 議事가 進行되지 못하먜 臨時政府로 하여곰 國民代表會議에 對한 態度를 速히 表示케 할 必要가 有하다 하야 文時煥으로붙어 緊急提議를 提出되니 卽院의 權道로써 지금 上海에 開會된 國民代表會議로 하여곰 大韓民國臨時政府憲法을 改定케 하며 又는 其他 重大事件을 處理케 함이었다.

 ‘其後 院內의 爻象’ 前 項에 通過된 議案에 對하야 自初로 反對의 意見을 가젓던 議員들은 不滿함을 품고 議長 尹琦燮으로 하여곰 該決議案을 政府에 咨達치 안코 도로혀 無效를 宣布(此에 對한 抗議가 有하야 곳 可決하엿슴)케 하고 또 政府當局者인 盧伯麟氏도 此를 代表會議에 移牒코져 아니함으로 同決議案을 贊成하든 議員들도 此로써 大局收拾과 各方統一의 望이 全無하다 … 리니되뫼 의정원에서 다수 의원은 사직退院하였다. 최근에 의정원에서 긴급제의가 통과되든 날 개조파들은 성공이 된 줄 알고 크게 기뻐하였다. 상해임시정부의 불과 2,3인 임시의정원에 불과 10수인(畿湖선출의원)은 條理 軌道를 찾으니 그 후에 大事는 不能하고 자기의 입지 주장만을 위함이었다.

  ▪ 제60일회의 5월 10일(목) 출석 62인 사회 金東三

 재정문제 전부 통과되다(선포문에 기재). 교육문제 전부 통과되다(선포문에 기재). 밤 8시에 개회하고 노동문제에 대하여 토론하다가 11시에 정회하다.

  ▪ 제61일회의 5월 11일(금) 출석 70인 사회 金東三

 노동문제 전부 통과되다.(선포문에 기재) 의장이 의정 중 독립운동대방침 이하 각 분과의 의안은 此로써 종료됨을 선포하고 아울러 노동문제 종료 시까지 보류되엿든 시국문제를 지금부터 다시 토론할 것이 下 선포하매 시국문제에서 제출되얏다가 未了된 제의안을 비서장이 下와 如히 낭독하다.

1. 尹滋英 등의 임시정부 개조안

2. 金宇希 등의 신기관 건설안

3. 朴健秉 등의 國是 확립안

4. 呂運亨 등의 신독립당 조직안

 이상 제의안 중 國是案은 申肅이 동 제의자를 대표하여 취소하다. 개조파의 휴회요구가 有하여 하오 3시에 정회하다.

  ▪ 제62일회의 5월 12일(토) 출석 52인 사회 尹海

 시국문제 보류하였던 제의안 제2, 제4의 제의는 동 제안자들이 취소하다. 대표 鄭信 등 31인의 휴회 청구서가 有하였으나 處理치 아니하고 회의를 계속 진행할 새 下와 如한 긴급제의가 有하였다. ‘시국문제결의안은 임이 결정된 양안으로서 종결하고 보류안 중 제의자로서 취소한 者 外의 각 의안은 一切 棄却하기로 함’ 此境 □□□□은 次會에 하기로 하고 정회하다.

 附論:會의 延長 □□□는 개조파의 정회, 휴회, 유회 등 방법에는 벌서 厭症이 생겼다. 이날도 개회선포 후에 휴회청구서가 들어왔다. 그 이유는 이때까지 求한다 하면서도 互相 對面이 一無하던 論解 그것을 진행하려고 함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 회의가 개조에 걸려 터덕 거릴 필요가 없으니 속히 회의를 진행하자는 提起함을 불구하고 司會者는 재삼 懇請하야 휴회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대표들이 不應하여 회의를 계속 진행하게 되었다. 그 청원자에 대하여서도 또한 신임할 수 없었다. 그것은 휴회청원서에 서명한 대표 2인이 그날 회의에 출석하였으므로 그 이유를 問한 즉 자기는 그 청원서를 不知하노라 하여 혹 전에 개조파에 所屬하였든 일이 있음으로 의례히 분노할 줄 알고 자기의 동의없이 서명함 듯하다고 답하였다. 이 말을 듣고 그 날 출석한 대표들은 청원서에 대하여 惡感을 가졌다. 그 전날에도 개조파에서 요구하는 휴회된 날은 출석도 안이하고 서면으로만 휴회를 요구하였다. 그 전에도 諒解를 구한다는 구실 下에서 회의만 연장하게하고 자기들의 프락치만 튼튼하게 하던 자들이다. 금번 請원도 亦然다고 인함이었다. 시국문제안을 표결에 付코져 하매 간부로부터 휴회 청원을 제출한 자들과 합석하여 표결하자는 요구가 有하여 來會로 미렀다. 이날에 남은 제의안은 개조안 뿐이였다. 5월 14일에는 간부의 주최로 양파의 調和協議會를 開하였으나 아무 □□도 無하였다.

  ▪ 제63일회의 5월 15일(화) 출석 72인 사회 安昌浩

 국민대표회의가 불통일이라는 이유 하에서 서간도 及 한족회 대표 金東三(의장), 裴天澤(비서장), 李震山, 金衡植 등 4인이 본 단체로서 소환명령서가 來한 것을 示하고 퇴석하다. 부의장으로 있던 尹海가 정의장이 되고 申肅이 부의장으로 被選되고 비서 吳昌煥이 비서장이 되다. 제62일 회의 즉 6월 12일에 제출된 긴급제의 3代□□을 留猶함이며 또한 시국문제를 더 토론하지 말자 함은 분규 문제를 해결치 않고 二개의 정부를 산출코져 함인 즉, 此等의 제의는 당연히 수리치 못할 것이라 하야 吳永善, 白南俊, 徐永琬, 鮮于爀, 尹滋英, 趙尙燮, 文時煥, 尹敬一 등이 극렬히 반대하다가 시간이 盡하여 정회되다.

 附論:이날에 金東三 배천택 씨로 간부를 보선하는 때에 개조파는 심히 冷靜하였다. 그것은 자기들 내부의 己定한 결심이 有하던 까닭이었다. 이날 회의에서 탈퇴하려함을 강경히 주장하는 분자들은 自派에 向하여 눈짓을 하여 일어나 탈퇴하는 성명을 하라는 뜻을 표시하였다. 그러나 不應하였다. 그것은 그때까지 三三프락치 즉 개조파 푸락치 內의 兩西派가 아직 태도를 미정하였든 까닭이었다.

 ∙제64일회의 5월 16일(수) 출석 65인 사회 尹海

 개회벽두에 대표 趙尙璧, 徐永琬, 尹滋英, 裵洪吉, 鮮于格[爀], 文時煥(상해당), 白南俊, 吳義橓, 金尙德, 趙尙燮 등 10인이 회의를 부인하노라하고 회의에서 탈퇴함을 성명하고 퇴석하니 宋秉祚는 아무 말이 없이 퇴석하였다.

 附論:5월 17일 간부에서 개조파의 諒解를 구하기 위하여 휴회하다.

  ▪ 제65일회의 5월 18일(금) 출석 40인 사회 尹海

 탈퇴 성명한 대표와 기타 대표 합 41인의 會議 否認 통고문이 來하다. 양해에 대한 문제로 장시간 토론한 결과 此에 대하여 권고문을 발하기로 하다. 그 권고문은 下와 如하다.

 勸告文

 4256년 5월 18일 국민대표회의장 尹海 비서장 오창환

 본월 16일 付 귀하 등의 연서로 발포한 통고서는 실로 회의 前途의 불상사이며 따라서 그 통고서의 내용이 전혀 誤解가 안임이 없음은 怪駭千萬의 意外事라 하나이다. 현명하신 귀하는 問責自問할지라도 自解할 것이 없어 다시 辨解를 不要하옵고 다만 본 회의는 우리 운동의 실제적 진행과 現下의 大局통일을 위하는 合心으로써 이에 회의의 공결에 의하야 귀하 등에게 此等의 誤解를 一掃하고 내일회의붙어 출석하심을 懇切이 권고하오며 아울러 회의의 근본 方針을 원만히 의결하기를 衷誠으로 바라나이다. 이상

  ▪ 제66일회의 5월 19일(토) 출석 40인 사회 尹海

 전 회의 제62일에 제출된 긴급제의가 가결되다. 의정순서에 의하여 국호문제에 대한 제의가 有하다. 즉 ‘국호는 韓으로 함’이였다.

 附論:이제는 개조파 즉 탈퇴한 자들로 더불어 양해를 엇을 길이 없어다. 그러나 幸여나 하는 희망으로 회의의 원만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런 고로 5월 22일까지는 이 일에 시간을 費하고 휴회하였다. 5월 19일 밤에 임시정부 국무총리 盧伯麟은 국민대표회의장 尹海를 南洋旅社에 청하여 정부와 국민대표회의가 經事合致할 旨를 言明하였다. 그리하여 20, 21, 22일은 휴회하고 일방으로는 개조파에 향하여 회의에 다시 합치하도록 교섭하며 일방으로는 윤, 노의 비밀회의를 향하고 정부와 합치하야 할 일에 대한 相議가 有하였다.

  ▪ 제67일회의 5월 23일(수) 출석 41인 사회 申肅

 회의 원만 진행에 대한 장시간의 토론이 有하다가, 본일 의제 즉 국호 및 연호 문제는 중지하고 下와 如한 緊急제의가 가결되다.

 ‘現下 회의 내외의 통일책에 관한 건’

 附論:윤, 노 회합 전에 국호는 韓으로 하자는 제의가 有하였으나 盧는 此에 대하야 異議가 無하다 하였으나 오히려 개조파를 위하야(그들은 국호문제를 생명시하는 故로) 이날 회의에서도 본 문제의 토론을 중지하고 통일문제를 종일 토의하엿다.이날 밤 尹 盧 회의가 有하얏는데 盧는 尹에게 향하여 국민대표회의와 상해임시정부의 교섭을 공식으로 하야 양방이 互相 승인하는 의견을 표시하자 하매 尹은 대답하기를 국민대표회의가 상해임시정부의 승인으로 비로소 국민대표회의가 될 것이 안이며 임시정부도 과거 5년 간 정부라고 명칭하고 있은 즉, 국민대표회의의 승인으로 비로소 정부될 것이 안이니, 우리 양방의 공식회합으로 개조파의 口實을 없이하고 各方이 다 합치하는 것이 필요한 즉 明日 국민대표회의에 가서 공식회합의 길이 열리도록 노력하겠노라 하였다. 원래 정부에서는 창조파 보다 개조파를 더 미워하였다. 정부를 개조한다는 名義下에서 정부를 여지없이 무시한 까닭이엿다.정부에서도 이때에 이르러는 대세와 改造를 생각하야 정당한 길을 취하려고 고심하엿던 까닭이엿다.

  ▪ 제68일회의 5월 24일(목) 출석 41인 사회 尹海

 의장이 간부의 요구안을 보고하매 이의가 無치 아래와 같이 통과되다. ‘그 동안 퇴석한 대표 제씨에게 대하야 간부에서 회의의 공결에 의하야 출석을 노력하엿으나 아모 효력을 不得함은 그 근본문제인 대한민국임시정부문제를 해결치 못한 故이라. 이제 간부는 회의의 권위와 정신에 모순되지 안이 하는 범위 내에서 直接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그 의견 如何를 알아보며 동시에 퇴석한 대표 제씨와 회의 내외의 통일을 求하려는 것’

 附論:이날부터 5월 30까지는 정부와의 교섭과 연석대표와의 합치를 위하야 휴회하엿다.

 이날 결정에 의하야 하오 4시에 의장 尹海는 부의장 申肅, 비서 金宇希와 더불어 盧와 함께 만났다. 노는 정부측의 의견으로 5개조를 제출하엿다. 그 5개조는 盧氏가 부르고 김우희가 필기한 것이다. 此에 대해 국민대표회의 측에서도 別 異議가 없었다. 그리하야 이 5개조를 정부에서는 국무원회의의 결정을 경유하고 국민대표회의 측에서는 간부회의의 결정을 경유하야 明日 즉 25일 午正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산회하였다. 盧가 구술한 5개조는 下와 如하다.

1. 국민대표회의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서한을 送致함으로써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합동일치를 요구하는 의견을 표시할 것

2.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국민대표회의에 答覆을 송치함으로써 국민대표회의의 公決과 합치하는 의사를 표시하는 동시에 答覆書와 同 性質의 포고문을 발포할 일

3. 위의 서한 及 答覆은 現時 事情에 酌量하야 임시정부의 권위와 국민대표회의의 국민적 대회합인 성질 及 권위에 모순되지 않는 範圍 內에서 彼此 작성하야 양방이 합동 열람한 후 署名 교환할 일

4. 국민대표회의는 대한민국임시정부로서 파송할 위원 3인이 출석하야 제반의사에 대하여 발언권이 有케 할 일

5. 국민대표회의에서 別定한 헌법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임시의정원에 교부한 후(국민대표회의에서 自行 선포하는 外에) 임시정부에서 선포할 일

 이상 5개조에 대하여 국민대표회의에서는 下와 如한 서한을 송치할 것을 盧에게 제시하얏다.

 경계자 본 국민대표회의는 3.1선언 후 초유의 국민적 대화합으로 그 유일한 사명이 오직 광복운동의 장래를 위하야 조직적 諸 대방침을 의결하며 통일적 중앙기관을 조직함에 在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과거 5개년 경과 사정이 자연 비상한 시기에 처하야 각방의 의사를 원만히 합치하지 못한 것이 彼 一時의 免치 못할 事勢이엿으나 이제 국민대표회의가 개막된 이상은 민족적 통일을 위하야 독립운동의 장래를 위하야 피차 합일의 형식을 취함이 當然의 事임을 확신하는 바이다.

 본 회의는 已히 예정한 諸 대방침을 의결하얏고 不日 內에 기관조직이 실현될 순서이온 바, 今에 만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적당한 수속을 不行하고 본 회의에서 기관을 조직하면 장래에 비록 여하한 妥合이 有할지라도 그 시간까지는 통일에 결함을 難免이니 이는 진실로 국민 일반의 희망한 바도 아니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取할 정책도 안일지오. 본 회의의 목적으로 잠시라도 分立의 형식을 取함은 결코 본 회의에서 희망하는 바가 안임으로 玆에 貴意를 仰卬하오니 照亮回書하심을 敬要하노라.

 5월 25일 아침부터 국무원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개조파의 發한 성명서를 그 회의에 投入하야 異論이 자못 紛糾하였다. 따라서 5개조도 미결 중이엿섰다. 그러한 중에 국민대표회의 간부에서는 그날 오후 3시경에 삼삼프락치야 즉 개조파의 중견분자를 만나 정부와는 그것을(1줄 판독 불능) 국무원회의에서는 盧의 前夜 행동을 개인행위에 歸케 하고 말았다. 정부 국민대표회의가 合致될 전망은 없어졌다. 그래도 행여 무삼 희망이나 有할가 하야 간부는 30일까지 계속하야 임정측과 퇴석한 대표들에게 대하야 비상히 노력하였다. 그러나 아무 효과도 없엇다. 그럼으로 31일에는 부득이 회의를 開하게 되얏다.

  ▪ 제69일회의 5월 31일(목) 출석 47명 사회 尹海

 의장이 그간 회의 내외의 통일책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 밋 合應과 퇴석대표와의 合席에 대하여 온갖 성의를 다하여 노력한 사실의 顚末을 보고하다. 의장이 다시 아래 요구안을 제출하여 異議없이 통과되다. ‘퇴석대표에게 대하여 간부에서 또 한 번 다시 노력하여 보기 위하여 금일만 휴회하기로 함’

 附論:이날 밤에 일부 대표들의 주최로 삼일당내에 양방의 妥合회의를 개하였다. 노백린에게 대하야 尹海에게 5조항을 작성하여 준 것은 정부의 체면을 손상한 것이라고 공박하던 개조파는 또 다시 이날 밤에 尹海에게 향하여서는 盧에게 5개조를 締結하여 주어 국민대표회의의 권위를 下落식혔다고 一場의 喧嘩을 야기하였다. 이날 밤에 尹滋英, 尹敬一 등이 第一 極甚이 논박하얏다. 이렇게 개조파의 攻駁的 騷說로 이날 밤 회합에서도 별 효과 없이 산회되고 明日에 다시 개회하기로 하다.

  ▪ 제70일회의 6월1일(금) 출석 41 사회 尹海

 의장이 朴春根 등 7인의 연서로 임이 퇴석한 대표로 더불어 간담회를 開할려 하는 서면의 요구에 의하여 정회를 宣하다.

 附論:5월 31일 회의에서 今日만 限하야 휴회한다고 겨우 허락을 得한 간부는 그대로 廉恥를 무릅쓰고 作夜 즉 5월 31일 밤에 妥合, 회의를 그대로 開하기를 요구하다가 의장이 대논박을 당하다가 겨우 7명의 요구서를 빙자하고 艱辛이 정회하고 昨夜의 妥合會議를 계속하여 보앗으나 아모 효과가 無하얏다. 그 7인은 朴春根, 林源, 金鼎夏, 禹鐸, 朴愛, 崔成弼, 朴應七 등인대 다 상해당 당원이엿다. 그들은 이후에 중립자로 自處하엿다. 그러나 다 상해당 프락치에서 개조를 주장하는 자들이다. 상해당에서 그 후에 신건설안을 결정식혀 노코 당 자체 내의 風波로 실행이 못된 後로는 개조도 주창할 수 업고 창조도 주장할 수 업는 처지에 잇었다. 그럼으로 그들은 개조파나 창조파나 다 일반으로 증오할 것이라 하엿다. 그러나 終當에는 회색태도를 취하야 개인 자신의 편익을 취하려 한 자도 不無하엿다. 아조 창조파에 가담한 자도 有하엿다. 또한 그 7인의 노력으로 三方面(정부측, 퇴석 대표측, 회의진행 대표측)에셔 각 3인式의 대표를 선출하야 三方聯合會議를 開하려고 하엿으나 역시 성공치 못하엿다.

  ▪ 제71일회의 6월 2일(토) 출석 47인 사회 尹海

 퇴석대표 45인의 제2차 통고문과 부의장 安昌浩의 통고문이 有하얏다. 국호는 韓으로 통과되다. 연호는 紀元을 쓰기로 가결되다.

 附論:이날에 제출된 45인의 통고문에 서명한 자 중에 2인은 이날 회의에 출석하여 자기는 서명한 일이 없엇다 하고 그 외의 2인은 임이 소환된 자들이엿다.6월 4일에는 또 정부에 대한 交涉일로 휴회되엿다. 6월 4일 아츰에 盧伯麟의 請邀로 因하야 간부에서 尹海 申肅이 정부사무실에 往하얏다. 그곳에는 개조파들도 잇엇다. 아모 효과 업는 쟁론으로 終局을 짓고 말엇다.

  ▪ 제72일 6월 5일(화) 출석 41명 사회 尹海

 憲法起草委員의 보고가 有하매 다시 수정할 필요가 有함으로 朴應七, 禹鐸, 朴春根(7인 요구서에 서명하였든 이들), 徐丙浩, 元世勳, 鄭仁濟, 柳藎, 柳善長, 朴景喆, 盧武寧 등이 피선되다. 機關組織人選銓衡委員으로 張鵬翼, 鄭寅敎, 朴景喆, 吳昌煥, 朴應七, 朴春根, 李民昌, 金世赫, 姜受禧 등이 피선되다. (이는 회의를 속히 진행하기 위하야 헌법통과 前임을 불구하고 선정한 것이다)

 附論:이날 밤 또 다시 정부사무실에 三方이 會集하얏다. 昨夜에 정부측의 대표자라 하든 趙鏞殷, 洪鎭은 업고 노백린이 정부의 提案이라는 것을 뵈이는대 여기에 대하야 개조파도 반대하고 창조파도 반대하얏다. 그러나 국민대표회의 의장으로 출석하엿든 尹海는 최후의 고충으로 憲法會議案을 제출하야 그 條理軌道에 억매이여 잇는 자들의 便宜를 準하야 통일을 圖謀하려 하엿다. 그 헌법회의라는 것은

1. 임시의정원과 국민대표회의의 비공식연석회의에서 헌법회의를 조직하되 양방에서 選擧한 人數와 人名대로 선거할 일

2. 헌법회의에는 헌법 형법 제도 制定의 일체 의결권을 위임할 일

3. 헌법회의 위원이 선거되는 동시에 임시의정원은 自行 解散하고 국민대표회의도 閉會할 일 등을 뜻하는 것이엇다. 개조파가 찬성하엿다. 그런데 安昌浩의 異論이 出함으로 이제는 간부의 능력으로도 회의를 더 遲延할 수 없으니 明日 정오 전으로 회답하라하고 歸來하였다. 6일 정오까지 기다려도 회답이 없엇다. 그럼으로 개조파들에게 향하야 정부의 의사가 이러한 즉 개조를 하야도 불응할 터이니, 이제도 국민대표회의를 합치하야 진행하지 안캇나뇨 하고 물엇다. 그러나 개조파에서도 아모 대답이 업엇다. 그럼으로 이번 사실까지 보와도 개조파에는 통일을 爲함보다도 통일을 爲名하고 개조를 구실로 하야 자기들의 무슨 소망을 達하려 하였든 者이 다수하였든 것을 可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정부와 국민대표회의가 합치될 가망이 잇는 것을 개조파에서 沮害하야 성립치 못하게 한 것을 보든지 條理軌道를 주창하는 정부당국의 의견에 적합하도록 헌법회의를 조직하자 함에도 불응하는 정부의 태도를 보고도 그대로 국민대표회의를 계속 진행할 생각이 업는 것을 보면 개조파 그들의 의사를 가히 알 수 잇는 것이다. 그때에 국민대표회의에서 개조한다고 결의하야도 정부에서는 듯지 안이할 것이 사실이엿다. 이상의 사실과 같이 백방으로 타합과 양해를 구하엿으나 필경은 아무 成効가 업서 더 一步도 更進할 수 업시 되엿다. 그리하야 국민대표회의 내에서 여러 가지 의론이 生하엿다. 혹은 회의가 임이 양측에 分하야 통일의 缺陷을 生하엿은 즉, 피차의 충분한 覺悟가 生할 時까지 無期로 정회하자 하며 혹은 전민족의 革命精神을 발휘하며 독립운동의 실제사업을 力行하기 위하야 계속 진행하자하며 이때까지 사실을 종합하면 개조파 그들이 통일을 위함이 안인 듯한 행동이 다수하엿다. 그들과 지금 구차히 형식상으로 합치된다 할지라도 그 실제에 至하야는 여하한 구실 하에서든지 또한 분리를 作하야 아모 효력이 無할 터인 즉, 의사 동일한 대표끼리 合力하야 장래 사업의 성적으로 正評을 待하고 지금은 회의를 진행하자 하엿다. 그때의 사정으로는 회의를 진행하지 안이 할 수 없엇다. 과반수의 대표가 탈퇴하엿을지라도 그들의 행동이 애매하얏다 그리고 임시정부측 인사들도 理論과 條理에 心醉하엿다. 그러한 때에 또한 實地運動 實際準備하든 者들까지 무의미하게 해산하면 독립운동을 위하는 자는 한아도 업는 것이 될 것이다. 또한 독립운동을 위한다 하면 그 자리에서 회의를 그대로 정회할 수 업는 것이엇다. 그럼으로 결국 회의진행하자는 論이 일치되야 의연이 회의를 진행하게 되엿다.

  ▪ 제73일회의 6월 6일(수) 출석 39인 사회 申肅

 헌법에 대한 토론이 有하다.

  ▪ 제74일회의 6월 7일(목) 출석 46인 사회 尹海

 禹鐸 등 6인 及 張基永의 서면으로 탈퇴성명이 有하였다. 헌법이 통과되다(선포문중 기재). 과거문제 해결은 該 위원회의 보고가 有한 후 國民委員會에서 査辦게 하다. 國民委員 33인을 선거하다. 國務委員 5인 중에서 먼저 4인만 선거하다. 고문을 선거하다(선포문중 기재). 新事件에 관하야 다수의 결의가 有한 후 선포문을 殘務處理委員에게 위탁하고 본회의의 의정순서 종료됨을 선포하다. 폐회동의가 有한 후 의장의 下와 如한 폐회사가 有하고 독립만세 3창으로 폐회하다.(의장의 폐회사를 左에 記함)

 諸君-본 의장은 본 회의의 命을 閉하게 된 이 순간에 임하야 滿腸의 感慨을 抑止키 不安하오다. 본년 1월 3일 개막 후 금일까지 합 147개일 동안 수차의 비공식회의를 제하고 공식회의 뿐으로 74차인 금일에 타국 조계 一隅의 비밀회합으로 刻刻으로 늦기는 불안 중에서 이와 같이 많은 시간에 허다한 분규 중에 한업는 고통-比할 데 없는 번뇌-일 즉, 우리 역사에서도 세계 어는 사회에서도-거의 比較가 업다고 할만한 悲劇중에서 끗까지 인내의 力과 持久의 力으로 최후의 금일이 有케 한 제군의 絶倫한 誠力에 대하야 본 의장은 滿腸의 열성을 다하야 감사하노라. 본 회의는 유사 이래 초유의 국민적 대회합으로 그 사명은 오직 現下의 지체상태에 陷한 독립운동을 진작하며 과거의 모든 분규를 해결하야 금후 독립운동은 통일적 조직적으로 진행하려함에 在하엿든 바, 불행히 중간에 상해임시정부 개조 운운의 문제로 일부 대표의 탈퇴하는 불상사가 演出되야 본 의장은 제군과 함께 임시정부 방면과 개조 주장하는 인사와 회의에 합치되기를 專力하엿으나 一效를 不察하고 마츰내 원만을 결한 이 현상에서 회의를 종료하게 됨은 제군과 함께 非感을 不堪하는 바이다.

 그러나 吾等의 주관으로는 국민대표회의는 독립운동을 위하야 모인 회합이고 결코 어느 국토잇는 국가의 政權에 대한 處□를 위하는 회합으로 認치 안이하는 이상은 상해임시정부 문제를 해결치 못하엿다고 독립운동까지 중지할 수 없다는 견지에서 環境의 협박을 불고하고 본 회의에서 규정한 순서에 의하야 진행하게 된 바이다. 吾等은 본 회의의 종국이 원만치 못하다 자인하는 동시에 공연히 최고권위의 名을 藉하야 誤解이든 正解이든 우리와 주견이 相異한 인사에게 대하야 脫退를 요구할 하등의 능력이 無한 것을 자백하는 바이다. 그 뿐 안이라 최후에 오인의 手로 조직한 기관은 천하의 政權視하기를 요구치 안는 동시에 吾人도 政權視하지 안이 하는 바이다. 이는 다만 독립운동중앙간부 즉 혁명중앙간부일 뿐으로 暫時라도 政爭化함을 □上의 □□으로 認하는 바이다.

 吾人은 이미 수차 성명한 바와 如히 敵에 대하여는 積極의 수단을 취하는 동시에 內에 대하여는 여하한 분규가 有할지라도 독립운동을 위하야 하등의 抗拒할 여가가 無할 뿐 안이라 절대로 소극태도 즉 무저항주의를 確守하자는 것이 吾人의 공통한 이상이다. 그러나 時時로 성의를 다하여 일동일치를 노력함이 吾人의 지대한 책임임을 또한 자인하는 바이라.

 吾人은 유력한 독립운동자로 자칭함을 조금도 주저하지 안는다. 吾人과 정견이 상이한 인사들도 역시 우리와 같은 독립운동자로 認하노라. 그럼으로 吾人이 금후 독립운동에 충분한 力을 다하는 동시에는 독립운동자로 어찌 감히 독립운동을 반대하리오 그럼으로 통일에 대한 吾人 과거의 노력과 금후의 노력이 결코 허위에 귀치 안이할 것을 확신하는 바이라.

 吾人은 ‘말’로 통일의 실천자인 동시에 ‘일’로 통일의 성공자 될 것을 確信 不疑하노라.

 용감한 독립군이신 제군! 건전한 혁명가이신 제군-제군은 제군의 책임있는 손으로 조직한 제 대사업을 가장 힘있게 실행하야 我國民의 대이상을 신속히 실현하사이다.

 본 의장은 삼가 이말로써 폐막의 辭를 述하노라. 이상

 附論:이날 아츰에 임정내무총장 金九의 국민대표회 해산 명령이 有하얏다. 또한 임시정부의 국무원 포고문이 잇엇다. 해산령과 포고문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旣成國家的 □咎□을 가진 것을 알 수 잇는 것이다. 그럼으로 국민대표회의에서 임시정부해산명령을 下하려고 주장하는 대표가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러한 氣□을 一笑에 付하였다. 그러한 무용의 문자의 刻을 誠하는 것이 국민대표회의 威信을 損傷함이라 하엿다. 과반년의 시일을 費하여 개회된 국민대표회의는 이제 실제 혁명적 운동을 준비하는 자들의 手로 결국 하였다.

國民代表會議의 經過事情 終

4256(1923)년 7월 일

筆者 國民代表會議 秘書部의 一員으로 읻은 吳昌煥

· 문서번호:РГА СПИ. ф.495, Оп.135, Д.72, Лл.148~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