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34) 국민대표회에서의 ‘개조파’와 ‘창조파’ 분열의 원인과 그 결과  

34) 국민대표회에서의 ‘개조파’와 ‘창조파’ 분열의 원인과 그 결과

[작성자]김규식 · 윤해

[작성일자] 1923년 11월 24일

 국민대표회의 이전까지의 전반적 상황

 3월 만세운동 이전과 이후에 형성된 정치조직들은 대부분의 경우 조직의 열악성과 각 조직들 간의 관계 부재 및 혁명대중 그 자체와의 관계 부재라는 공통적 결점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각 조직들은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3월 만세운동 시기의 전(全) 민족적 봉기를 이용했으며, 인민 대중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특성이 상이하게 변하면서 이 민족봉기는 점차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각 조직들은 이런 사실을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 시점은 각 조직들이 자신의 영향력 및 대중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조직적 사업을 최대한으로 발전시키는데 이용되지 못했습니다.

 권위 있는 단일 중심으로서 해방 사업을 능숙하게 지도할 수 있는 중심의 부재 또는 불행했던 대중 운동 이후에 만연했던 전반적으로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일부 대규모 조직들 간의 결속 부재는 내부 조직들 간의 불화가 나타나기에 충분한 토양을 제공했습니다. 이런 불화가 존재하면 어떠한 형태이든 혁명적 현상은 소멸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강력하고 통일된 중심, 사업의 조직화 그리고 분산된 모든 혁명세력의 단일화 등에 대한 불가피성을 인식하게 되면서 최근 3 · 4년 동안 긴급한 과제로 등장한 대회 소집의 불가피성이라는 슬로건이 제기되었으며, 그 규모가 크던 작던 모든 조직들은 그 대회를 통해서 전체 혁명전선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목격했습니다.

 상해에서 국민대표회의를 소집하기 위한 조직국[준비회]의 구성은 전적으로 시의 적절했으며, 사안의 흐름 자체에 의해서 구성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개별적인 조직과 인사들로부터의 질책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조선, 중국, 일본 그리고 미국 등 도처에서 125명의 대표들을 한 장소에 소집하여 자신의 과제를 충실하게 완수한 그 업적은 조직국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합니다.

 조직국은 국민대표회의를 소집하면서 자신의 과제 두 개를 제시했습니다. 즉 모든 혁명가들을 권위 있는 기관의 총체적 지휘 하에 통일시키는 것 그리고 해방운동의 중요 문제들에 대한 전술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개의 명제는 그 조직 모두가 공통적이고 동일하게 용인될 수 있는 것으로서, 모든 조직들은 조직국의 소집에 신속하게 부응할 수 있었습니다.

 ▪ 국민대표회의에서의 개조파와 창조파. 분열의 원인과 그 결과

 이 두 개의 분파는 바로 국민대표회의 대회 당시에 임의적으로 형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상해임시정부의 개조 혹은 창조에 관한 문제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으며,’ 국민대표회의의 소집 순간까지도 무엇인가 불가피한 방법 혹은 혁명세력의 통일을 달성하는데 있어 효과가 있는 방법 중의 하나로써 고려된 적도 없었습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분파가 성립되기 위한 비중 있는 선행 조건 역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다수의 조직들은 상해임시정부가 탄생한 첫날부터 그것을 지도적 중심으로 전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그것을 인정했던 이들 중에서도 거의 대부분이 임시정부를 거부하여 모든 관계를 단절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사실들로 인해 임시정부의 위신이 근본에서부터 실추되었다는 사실은 전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만약 국민대표회의가 상해임시정부 또는 전혀 신뢰를 받지 못하는 다른 어떤 기관의 주도하에 소집되었다면, 더구나 해방운동과 본질적으로 직접적인 관계를 지니고 있는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상해임시정부의 ‘개조’에 관한 토론이 ‘예정’되어 있었다면, 본 대표회의의 구성원 자체도 그렇게 많지 않았을 것이며, 혹은 아예 소집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개조’라는 아이디어의 교사자 스스로 자신의 입장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익히 인식하고 있었으며, 상해임시정부가 과거에 막대한 공적을 지니고 있어서 진실한 혁명중심 기관이라고 감히 추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두 개의 혁명중심이 존재하는 병행적 상태를 회피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조심스럽게 ‘개조’를 권고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상해파’라는 명칭으로 잘 알려진 공산주의자 대표들이 베르흐네 우딘스크(Верхне-Удинск)에서 개최된 당대회로부터 돌아와 본 대표회의에 늦게나마 도착하면서 상황이 확연하게 변했습니다. 당대회에서 분파 투쟁의 단결된 영향 하에서 그들은 ‘개조’에 관한 아이디어를 이어 받아, 그것을 선동했습니다. 또한 ‘이르쿠츠크파’라는 명칭으로 잘 알려져 있으면서 새로운 혁명중심의 건설을 지지하는 편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되는 다른 공산주의 그룹에 대항하여 ‘개조파’라는 블록을 만들었습니다.

 해방운동 문제의 해결에 대한 진중하지 않은 관계와 무원칙한 태도는 당대회에서 국민대표회의로 이전된 당내 분파투쟁의 지속이라는 이름으로 블록을 형성하기 위해 자신을 ‘개조파’라고 성명했던 공산주의자 대표단들이 보여주었는데, 이것이 이후에 계승된 분열의 중요한 선행 조건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두 개의 중심이 형성될 경우 위험이 닥쳐올 것인 만큼, 상해임시정부의 개조가 합목적적이라는 식의, 인위적으로 과장된 선동은 대표들 내에서 그 결실을 맺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처음에는 그것에 신뢰를 표명하고 개조주의자들에 합류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해명되어지고 이런 개조의 무익함을 이해하게 되면서, 서서히 그들의 대열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상해파’ 내에서는 분열이 발생했으며, 그 파의 대부분이 ‘개조’를 거부했습니다.

 다른 측면에서 임시정부의 문제가 본 대표회의에서 그런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것을 예상하지도 그리고 원하지 않았던 모든 대표들은 그 문제가 부차적인 것이지 진지하게 관심을 보일만한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왜냐하면 임시정부는 해방운동에서 아무런 의미도 지니고 있지 않으며, 대표들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대표회의 자체의 위신과 권위를 지지하기 위해 본의 아니게 임시정부의 문제로 단결했던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그룹의 출발적 관점과 ‘개조파’의 관점 간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습니다. 즉 이 그룹은 조직과 조직 사이, 조직 내부 그리고 업무 자체 내에서의 활발한 관계를 수립하는 것으로 혁명세력을 단일화시킨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조건이 존재하는 상태에서는, 임시정부라는 공허한 위장물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전혀 우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개조파를 위해서는 임시정부 개조 문제의 불가피성이 근본적인 것이자 통일의 근본이 되며, 심지어 대표회의의 논의에 상정되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개조파의 주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본 대회는 해방운동 사업을 조직적 및 통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방법을 고안하고자 소집되었다. 해방운동의 통일은 5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면서 그 존재에 관해서는 이미 아시아에서도 그리고 서양에서도 모두 알고 있는 임시정부를 개조하는 방법으로 실현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2. 임시정부가 특별한 행동으로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지 못했으며, 많은 결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임시정부에서 근무하는 개별적 인사들의 결함에 따른 것일 뿐, 전체 정부기관 그 자체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본 정부 내에서 다양한 직위를 점유하고 있는 인사들이 면직되고 새로운 인사들이 선출된다면, 이 정부는 실로 의미를 갖추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기관 그 자체는 폐지되지 않을 것이다.

3. 만약 현재의 구성으로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기관을 설립할 경우, 임시정부를 따르던 대중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새로운 기관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실은 모든 사람들을 통일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분파적 투쟁을 첨예하게 만들 것이다.

4. 새로운 기관의 설립은 두 개의 지도 중심, 즉 구 중심과 신 중심의 동시적 존재라는 결과를 지니게 될 것이다. 이것은 재차 내부 투쟁을 강화시킬 것이며, 그로 인하여 종국적으로는 혁명세력을 분산시켜 버릴 것이다.

 창조파들이 주장하는 명제 중에서 중요한 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우리는 선전 수행의 시기를 벗어나서 적극적인 투쟁의 수행을 준비해야 하는 순간에 근접해 있다. 혁명세력의 통일은 조직들 그리고 국민대표회의에 의하여 고안된 원칙을 수행함에 있어서 단결하고 활발한 관계를 수립하는 방법으로 달성될 수 있을 뿐, 지도 중심으로서 편파적인 인식을 지니고 있으면서 그 어떤 것이든 신뢰를 상실한 기관을 개조하는 방식으로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2. 과거의 실수와 부족은 상해임시정부를 세운 의정원에 의하여 규정된 형식 및 틀과 연관되어 있는 임정 요원들의 형편없는 사업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조직 업무 및 전반적으로 조직 내 혁명 대중과의 연계장치가 조악하게 구성된 결과이다. 상해임시정부와 같이 비관적인 조직의 비현실적인 행정적 관청의 개조만으로는 어떠한 경우에도 혁명사업을 지도할 수 있는 유일하게 필요하고 실질적인 그런 유능한 기관을 확보할 수 없다.

3. 격렬한 혁명적 봉기의 시점에서 발생한 임시정부는 일본의 독특한 민족적 제국의 권력에 대항하는 일부 대중의 구체적 슬로건이었다. 임시정부가 실질적인 사업을 수행하려 했을 때도, 임시정부 자신은 사업을 지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며, 열의도 없고 능력마저 없다는 사실을 드러냈을 뿐이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임시정부를 향한 대중의 열기가 급속도로 냉각되었으며, 결국 대중을 상대로 한 영향력을 모두 상실했다.

4. 대회가 모든 혁명 집단의 한결같은 소망이자 그들 열망의 대변자였으며, 대회의 결정이 모두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상해임시정부 자신도 혁명조직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만큼, 대회에 복종해야만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대회가 심지어 개조주의자의 심정으로 임시정부를 개조한다 해도, 임시정부는 대회에 대응해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자신의 의정원과 함께 죽지 않고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는 재차 이전처럼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며, 목적은 ‘개조주의자’들에 의해 파괴되었을 것이다. 또한 임정이라는 기관의 개조는 임시정부보다 의심할 바 없이 더 큰 공적을 지니고 있는 수많은 다른 기관들의 요구를 우선적으로 동반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혁명세력을 통일시킬 수 있는 가능성과 방법에 대한 두 집단의 관점이 정반대이며, 그것에 대한 태도 그 자체도 근본부터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부분적으로 개조주의자들 역시 스스로도 임시정부의 개조에 관한 결의를 그들의 성명처럼 대회가 실행한다 해도 단일한 중심을 건설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임정 자체가 그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런 상황을 고려했으며, 대부분의 개조주의자들은 국민대표회의의 회의에 참여하면서도, 동시에 의정원에서도 임시정부의 개조에 관한 결의를 실행하려는 목적에서 의정원 회의에도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며, 헌법의 모든 조항에 의하여 마치 손발이 묶여 있는 것처럼 ‘의정원’의 의원 자격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민대표회의에서 행한 투표의 대다수가 개조주의자들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이에 그들은 회의장에서 나가버렸습니다.

 국민대표회의의 중요 목적은 통일,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혁명세력의 통일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개조주의자’들이 이탈한 것을 고려하면 이런 목적은 부분적으로 달성되었습니다. 만약 국민대표회의까지 우리가 두 조직의 통일된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상해임시정부의 개조를 주장하던 자들을 제외하면, 이제 그들은 국민위원회를 중심으로 통일되었습니다. 이것은 국민대표회의의 업적이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해방운동 사업은 보다 더 직접적이고 더 근접하게 목적을 추구하는 보다 더 올바른 노선에 올랐다는 사실 역시 의심할 바 없습니다.

 ‘개조주의자’들에 대해 언급하자면, 그들의 블록은 확고한 토대에 기초한 것이 아닌, 급조된 것으로서, 이미 그들은 국민대표회의에서 완전히 이탈했다는 사실로써 대규모 분열을 조장했습니다. 이 블록에 속한 대표들은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습니다.

 ‘개조주의자’들은 국민대표회의에서 이탈한 이후 큰 노력을 들여 임시정부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것은 객관적으로는 완전히 논리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그들의 노력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생각이 근거 없는 것이며, 기초가 썩은 건물은 수리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주):우리는 이 보고서에서 상해 대회에서의 그룹들을 편견 없이 설명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김규식(Ким Кюсик)

윤해 (Юн Х.)

블라디보스토크

1923년 11월 24일

· 문서번호:РГА СПИ. Ф.495, Оп.135, Д.73, Лл.233~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