素戔嗚尊과 韓鄕의 金銀 ( 기원전 )

어떤 책에는 말하였다. 素戔嗚尊이 “韓鄕의 섬에는 金銀이 있다.001001 韓鄕의 ~ 있다韓鄕은 신라, 가야지역을 의미하는 듯하다. 『三國志』 魏志 東夷傳에 弁·辰韓에 철이 많이 난다고 하였으며, 『古事記』 와 『日本書紀』에서 “金銀彩色 多在其國”, “西方有國 金銀爲本”, “金銀之國”, “金銀蕃國”이라 하여 신라를 金銀의 나라로 묘사하고 있다. 신라의 國號인 徐伐 혹은 徐羅伐과 金官加耶의 異稱인 須那羅를 이 지방의 金銀 혹은 철생산과 관련시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末松保和,『任那興亡史』,1949, p.138).닫기 만약 내 아들이 다스리는 나라에 배가 없으면 좋지 않다”하고는 수염을 뽑아 뿌리니 삼나무가 되었다. 또 가슴의 털을 뽑아서 뿌리니 이것이 전나무가 되었고 꽁무니의 털은 비자나무가 되었으며 눈썹의 털은 녹나무가 되었다. 그런 다음 그것들의 쓰임새를 정하여 이르기를 “삼나무와 녹나무 이 두 가지 나무는 배 만드는 데 쓸 만하고 전나무는 祥瑞로운 궁전을 짓는 재목으로 쓰며 비자나무는 천하 백성들이 장사지낼 때 죽은 이를 눕히는 도구로 쓸 만하다. 또 모름지기 먹을 수 있는 80종의 나무를 모두 심어라”하였다. 이 때 素戔嗚尊의 아들 五十猛命과 그의 누이 大屋津姬命 그 다음인 柧津姬命, 무릇 3명의 神 역시 나무종자를 널리 퍼뜨릴 수 있었으므로 명을 받들어 紀伊國으로 건너갔다. 그 후 素戔嗚尊은 熊成峯002002 熊成峯紀伊國과 出雲國에 ‘구마나리(くまなり)’란 지명이 있으며, 우리나라의 熊津도 ‘구마나리’로 칭하여졌다. 素戔嗚尊의 행적에 관한 이설이 많기 때문에 그가 살았다는 熊成峯의 구체적인 위치는 알 수 없다.닫기에 살다가 마침내 根國으로 들어갔다. 棄戶는 우리말로 須多杯(すたへ)라 하고 彼는 磨紀(まき)라 한다.

註 001
韓鄕의 ~ 있다 : 韓鄕은 신라, 가야지역을 의미하는 듯하다. 『三國志』 魏志 東夷傳에 弁·辰韓에 철이 많이 난다고 하였으며, 『古事記』 와 『日本書紀』에서 “金銀彩色 多在其國”, “西方有國 金銀爲本”, “金銀之國”, “金銀蕃國”이라 하여 신라를 金銀의 나라로 묘사하고 있다. 신라의 國號인 徐伐 혹은 徐羅伐과 金官加耶의 異稱인 須那羅를 이 지방의 金銀 혹은 철생산과 관련시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末松保和,『任那興亡史』,1949, p.138).
註 002
熊成峯 : 紀伊國과 出雲國에 ‘구마나리(くまなり)’란 지명이 있으며, 우리나라의 熊津도 ‘구마나리’로 칭하여졌다. 素戔嗚尊의 행적에 관한 이설이 많기 때문에 그가 살았다는 熊成峯의 구체적인 위치는 알 수 없다.
국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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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인적교류>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