任那人의 歸國 요청. 新羅가 이를 방해함[彌摩那國과 新羅의 원한] ( 기원전 28년 07월 )

2년 이 해에 任那人 蘇那曷叱知가 자기 나라에 돌아가고자 청하였다. 先皇의 시대에 조공하러 왔다가 돌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蘇那曷叱知에게 많은 상을 주고 붉은 비단 1백 필을 가지고 가 임나왕에게 주게 하였다. 그러나 신라인이 길을 막고 그것을 빼앗았다. 그 두 나라의 원한은 이 때 처음으로 시작되었다一說은 다음과 같다. 御間城天皇(崇神天皇) 때에 이마에 뿔이 난 사람이 한 척의 배에 타고 越國001001 越國古代 國郡制 시행 이전의 北陸지방의 범칭이다. 현재의 福井·石川·富山·新潟의 4현을 가리킨다.닫기 笥飯浦002002 笥飯浦福井縣 敦賀市 氣比神社 부근이다.닫기에 다달았으므로 그 곳을 角鹿이라 이름하였다. 그에게 “어느 나라 사람인가”라고 물으니, “意富加羅003003 意富加羅意富를 오호(あほ)로 音讀하여 大의 뜻으로 풀이하여 대가야를 지칭한다고 보기도 한다(李丙燾, 앞의 글, p.340).닫기 國王의 아들로, 이름은 都怒我阿羅斯等004004 都怒我阿羅斯等阿羅는 于斯岐阿利叱智干岐의 阿利와 마찬가지로 신라의 閼川, 閼智의 閼, 「廣開土王陵碑」에 나오는 阿利水의 아리와 상통하는 말로 大를 뜻하는 것으로 추측된다(李丙燾, 앞의 글, p.345).닫기인데 于斯岐阿利叱智干岐005005 于斯岐阿利叱智干岐干岐는 干(khan), 汗(han)으로, 삼한사회에서는 帥長을 칭하였으며 동북아시아 민족 사이에서는 군주를 부르는 공통어로 쓰였다. 『日本書紀』에서는 旱岐라고도 칭했다.닫기라고도 합니다. 日本國006006 日本國『日本書紀』 찬자의 윤색인 듯하다. 『三國史記』 권 6, 文武王 10년(679) 12월조에는 “倭國更號日本 自言近日所出以爲名”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新唐書』권 220, 東夷傳 日本條의 “日本 古倭奴也 …… 咸亨元年(670) 遣使賀平高麗 後 稍習夏音 惡倭名 更號日本 使者自言 國近日所出以爲名”이라 한 기사에서 비롯한 것으로, 일본국이라는 국호가 이 무렵에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닫기에 훌륭한 임금이 있다고 전해 들었으므로 귀화하려 합니다. 穴門007007 穴門古代 國郡制 시행 이전에 지금의 山口縣 지방에 있었던 나라로, 畿內와 筑紫를 연결하는 內海교통의 요충이었다.닫기에 도착했을 때, 그 나라에 伊都都比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臣에게 ‘나는 이 나라의 왕이다. 나를 제외하고는 다시 두 왕이 없다. 그러므로 다른 곳으로 가지 말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신이 그 사람됨을 자세히 보니 기필코 왕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곧 다시 그 곳을 물러났으나 길을 몰라 섬과 포구를 오랫동안 맴돌다가 北海로부터 돌아 出雲國을 거쳐 이 곳에 왔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 때 천황의 죽음을 만나 (이 곳에) 머물러 活目天皇(垂仁天皇)에게 벼슬하여 3년에 이르렀다. 천황이 都怒我阿羅斯等에게 “너희 나라에 돌아가고 싶은가”라고 묻자, “매우 바랍니다”라고 답하였다. 천황이 阿羅斯等에게 “네가 길을 잃지 않고 빨리 왔다면 선황을 뵙고 모셨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본국의 이름을 바꾸되 御間城008008 御間城일본음으로 ‘미마끼(みまき)’라 한다. 任那(nima - na)를 mima - na로 발음한 것으로, 고대 우리말에서 n과 m이 서로 넘나드는 음운법칙에 따른 것이다.닫기천황의 이름을 따서 바로 너희 나라 이름으로 하라”고 명하였다. 그리고 赤織絹을 阿羅斯等에게 주어 본국에 돌아가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 나라 이름을 彌摩那國이라 부르는 것은 이러한 인연 때문이다. 이에 阿羅斯等은 받은 赤絹을 자기나라의 郡府에 간직하였는데, 신라인들이 듣고 군대를 일으켜 와서 그 赤絹을 모두 빼앗았다. 이것이 두 나라가 서로 원한을 맺은 시작이다. 일설은 다음과 같다. 과거에 都怒我阿羅斯等이 자기나라에 있을 때에 황소에 농기구를 싣고 농막에 가려했는데, 황소가 갑자기 없어져 그 자취를 찾아보니 발자취가 한 郡家에 머물렀다. 당시 한 노인이 “너희가 찾는 소는 이 郡家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郡公 등이 ‘소가 짊어진 물건으로 미루어 보니 반드시 죽여서 먹으려는 것이다. 만약 그 주인이 찾아 오면 물건으로 배상하자’라 하고 곧 죽여서 먹었다. 만약 소 값으로 어떤 물건을 얻기를 바라는지 물으면 재물을 바란다고 하지 말고 郡에서 제사지내는 神을 얻고자 할 뿐이라고 말하라”고 하였다. 얼마 후 郡公 등이 와서 “소 값으로 어떤 물건을 얻기를 바라는가”라고 하자, 노인이 가르쳐준 대로 대답하였다. 그들이 제사지내는 신은 흰 돌이었다. 흰 돌을 소 값으로 주었으므로 가지고 와서 침실 속에 두었더니, 그 神石이 아름다운 童女로 변하였다. 이에 阿羅斯等이 크게 크게 기뻐하여 동침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阿羅斯等이 다른 곳에 간 동안 동녀가 갑자기 없어졌다. 阿羅斯等이 크게 놀라 자기 부인에게 “동녀가 어디로 갔소”라고 물으니, “東方을 향해 갔습니다”고 대답하였다. 곧 찾기 시작하여 드디어 멀리 바다에 떠서 日本國에 들어갔다. 그가 찾던 동녀는 難波009009 難波현재의 大阪市이다.닫기에 나아가서 比賣語曾社神이 되었고 또 豐國010010 豐國豊前·豊後를 합한 지역의 古稱으로, 『古事記』의 大八島生成神話에서는 筑紫島가 筑紫國·豐國·肥國·熊曾國의 넷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풍국이라는 명칭은 고대 國郡制의 성립과 함께 소멸하고, 대신 풍전국·풍후국으로 칭해졌다.닫기의 國前郡011011 國前郡후일의 豊後國 國埼郡으로, 지금의 東國 東部·西國 東部·豊後高田市 및 杵築市의 일부를 포함한 지역이다.닫기에 이르러 다시 比賣語曾社神이 되어, 이 두 곳에서 함께 제사를 받았다.

註 001
越國 : 古代 國郡制 시행 이전의 北陸지방의 범칭이다. 현재의 福井·石川·富山·新潟의 4현을 가리킨다.
註 002
笥飯浦 : 福井縣 敦賀市 氣比神社 부근이다.
註 003
意富加羅 : 意富를 오호(あほ)로 音讀하여 大의 뜻으로 풀이하여 대가야를 지칭한다고 보기도 한다(李丙燾, 앞의 글, p.340).
註 004
都怒我阿羅斯等 : 阿羅는 于斯岐阿利叱智干岐의 阿利와 마찬가지로 신라의 閼川, 閼智의 閼, 「廣開土王陵碑」에 나오는 阿利水의 아리와 상통하는 말로 大를 뜻하는 것으로 추측된다(李丙燾, 앞의 글, p.345).
註 005
于斯岐阿利叱智干岐 : 干岐는 干(khan), 汗(han)으로, 삼한사회에서는 帥長을 칭하였으며 동북아시아 민족 사이에서는 군주를 부르는 공통어로 쓰였다. 『日本書紀』에서는 旱岐라고도 칭했다.
註 006
日本國 : 『日本書紀』 찬자의 윤색인 듯하다. 『三國史記』 권 6, 文武王 10년(679) 12월조에는 “倭國更號日本 自言近日所出以爲名”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新唐書』권 220, 東夷傳 日本條의 “日本 古倭奴也 …… 咸亨元年(670) 遣使賀平高麗 後 稍習夏音 惡倭名 更號日本 使者自言 國近日所出以爲名”이라 한 기사에서 비롯한 것으로, 일본국이라는 국호가 이 무렵에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
註 007
穴門 : 古代 國郡制 시행 이전에 지금의 山口縣 지방에 있었던 나라로, 畿內와 筑紫를 연결하는 內海교통의 요충이었다.
註 008
御間城 : 일본음으로 ‘미마끼(みまき)’라 한다. 任那(nima - na)를 mima - na로 발음한 것으로, 고대 우리말에서 n과 m이 서로 넘나드는 음운법칙에 따른 것이다.
註 009
難波 : 현재의 大阪市이다.
註 010
豐國 : 豊前·豊後를 합한 지역의 古稱으로, 『古事記』의 大八島生成神話에서는 筑紫島가 筑紫國·豐國·肥國·熊曾國의 넷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풍국이라는 명칭은 고대 國郡制의 성립과 함께 소멸하고, 대신 풍전국·풍후국으로 칭해졌다.
註 011
國前郡 : 후일의 豊後國 國埼郡으로, 지금의 東國 東部·西國 東部·豊後高田市 및 杵築市의 일부를 포함한 지역이다.
국가명
加耶
新羅
주제분류
정치>외교>사신>유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