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羅王子 天日槍의 歸化와 神物[天日槍의 정착과 후손] ( 2년 -0월-9일(음) )

3년 봄 3월 신라 왕자 天日槍001001 天日槍『古事記』 應神天皇條에는 天之日矛라 하였다. 귀화의 동기와 경로 등은 위의 기사와 차이가 있다. 즉 “又昔有新羅國主之子 名謂天之日矛 是人人蔘渡來也 所以人蔘渡來者 新羅國有一沼 名爲阿具奴摩 此沼之邊 一賤女晝寢 …… 姙娠生赤玉”이라 하고, 그녀가 일본으로 도망하자 찾아나서 그녀가 숨어있는 難波(지금의 大阪 지방)에 도착하였으나, 神의 저지로 多遲摩國(但馬國)에 정착함으로써 인삼을 전래했다는 내용이다. 이는 일면 『日本書紀』 垂仁天皇 2년조 都怒我阿羅斯等에 대한 일설과 동일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해서는 기원전 무렵 辰韓人의 일본 이주설화로 풀이하거나(李丙燾, 『韓國史大觀』, 1964, p.64 ; 金錫亨, 『초기조일관계연구』, 사회과학원출판사, 1966 ; 三品彰英, 「天之日矛歸化年代攷」, 『日鮮神話傳說の硏究』, 1943), 『三國遺事』 延烏郞 細烏女 설화와 비교하여 태양신화의 이동 전설로 보기도 한다(蘇在永, 「延烏郞細烏女說話考」, 『국어국문학』 36, 1967 ; 李寬逸, 「延烏郞細烏女說話의 한 硏究」, 「국어국문학』 55 ~ 57, 1972).닫기이 귀화했다. 가지고 온 물건은 羽太玉 1개, 足高玉 1개, 鵜鹿鹿赤石玉 1개, 出石小刀 1자루, 出石鉾 1자루, 日鏡 1개, 熊神籬002002 神籬『日本書紀』 권2, 神代 下 9段의 高皇産靈尊의 勅에 ‘天尊神籬’가 보이는데, 이는 屋內外에 특별히 만든 곳으로서 神이 강림하는 장소를 뜻한다. 여기에서 天日槍이 가지고 왔다는 神籬는 신이 강림하는 장소에 까는 일종의 돗자리와 같은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닫기 1개 등 7가지였는데,003003 七物『古事記』 應神天皇條에는 『玉津寶』에 근거하여 “珠二貫 又振浪比禮 切浪比禮 振風比禮 切風比禮 又奧津鏡 邊津鏡 幷八種也”라 하고, 이들은 但馬國 出石郡 出石鄕에 있는 伊豆志坐神社의 八前大神이 되었다고 하였다.닫기 但馬國004004 但馬國지금의 兵庫縣 북부지방이다.닫기에 보관하여 항상 神物로 삼았다일설은 다음과 같다. 처음에 天日槍이 작은 배를 타고 와서 播磨國에 정박하여 宍粟邑005005 播磨國 宍粟邑지금의 兵庫縣 播粟郡이다.닫기에 있었다. 그 때 천황이 三輪君의 시조 大友主와 倭直의 시조 長尾市를 播磨에 보내어 天日槍에게, “너는 누구이며, 어느 나라 사람인가”라고 물었다. 天日槍이, “저는 신라 국왕의 아들인데, 日本國에 聖皇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나라를 동생 知古에게 주고 귀화하였습니다”라 대답하고, 물건을 바쳤는데 葉細珠, 足高珠, 鵜鹿鹿赤石珠, 出石刀子, 出石槍, 日鏡, 熊神籬, 膽狹淺大刀 등 8가지였다. 이에 (천황이) 天日槍에게, “播磨國 宍粟邑이나 淡路島 出淺邑의 두 읍 중에서 너의 마음대로 살도록 하라”고 조를 내렸다. 이 때 天日槍이, “신이 장차 거주할 곳에 대하여 만일 天恩을 내려 신이 원하는 곳을 허락하신다면, 신이 직접 여러 나라를 돌아보고 마음에 드는 곳을 지급받고자 합니다”라고 아뢰니, 이를 허락하였다. 이에 天日槍이 道河006006 道河지금의 宇治川을 일컫는다.닫기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북으로 近江國007007 近江國지금의 滋賀縣 坂田郡 近江町 箕浦 부근이다.닫기 吾名邑008008 吾名邑지금의 滋賀縣 蒲生郡 龍王町 綾戶의 蒲生郡 長村 神社 부근으로 추측된다.닫기에 들어가 잠시 머물다가 다시 近江으로부터 若狹國009009 若狹國近江國의 북부지역이다.닫기을 거쳐 서쪽으로 但馬國에 이르러 거주처를 정하였다. 近江國 鏡村谷010010 鏡村谷지금의 滋賀縣 蒲生郡으로 한때 鏡宿으로 일컬었는데 鏡村谷은 鏡山의 동쪽 기슭에 있다.닫기 陶人011011 陶人鏡村谷이 있는 鏡山 가까이에 須惠란 곳이 있는데, 5세기 무렵 한반도에서 전래된 陶質土器 須惠器는 이 곳의 이름과 관련된 듯하다. 天日槍을 따라와 鏡村谷에 도착하였다는 陶人도 그러한 관련에서 기록에 전승된 것으로 짐작된다. 須惠器의 일본 전래에 대해서는 崔鍾圭, 「美術上으로 본 韓日關係­陶質土器와 須惠器­」, 『古代韓日文化交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0 참조.닫기은 바로 天日槍을 따라온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天日槍은 但馬國 出嶋의 사람 太耳012012 太耳『日本書紀』 권6, 垂仁天皇 88년 7월조에는 ‘前津耳’ ‘前津見’이라 하였다.닫기의 딸 麻多烏와 결혼하여 但馬諸助를 낳았다. 諸助는 但馬日楢杵를 낳고 日楢杵는 淸彦을 낳았으며 淸彦田道間守를 낳았다.

註 001
天日槍 : 『古事記』 應神天皇條에는 天之日矛라 하였다. 귀화의 동기와 경로 등은 위의 기사와 차이가 있다. 즉 “又昔有新羅國主之子 名謂天之日矛 是人人蔘渡來也 所以人蔘渡來者 新羅國有一沼 名爲阿具奴摩 此沼之邊 一賤女晝寢 …… 姙娠生赤玉”이라 하고, 그녀가 일본으로 도망하자 찾아나서 그녀가 숨어있는 難波(지금의 大阪 지방)에 도착하였으나, 神의 저지로 多遲摩國(但馬國)에 정착함으로써 인삼을 전래했다는 내용이다. 이는 일면 『日本書紀』 垂仁天皇 2년조 都怒我阿羅斯等에 대한 일설과 동일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해서는 기원전 무렵 辰韓人의 일본 이주설화로 풀이하거나(李丙燾, 『韓國史大觀』, 1964, p.64 ; 金錫亨, 『초기조일관계연구』, 사회과학원출판사, 1966 ; 三品彰英, 「天之日矛歸化年代攷」, 『日鮮神話傳說の硏究』, 1943), 『三國遺事』 延烏郞 細烏女 설화와 비교하여 태양신화의 이동 전설로 보기도 한다(蘇在永, 「延烏郞細烏女說話考」, 『국어국문학』 36, 1967 ; 李寬逸, 「延烏郞細烏女說話의 한 硏究」, 「국어국문학』 55 ~ 57, 1972).
註 002
神籬 : 『日本書紀』 권2, 神代 下 9段의 高皇産靈尊의 勅에 ‘天尊神籬’가 보이는데, 이는 屋內外에 특별히 만든 곳으로서 神이 강림하는 장소를 뜻한다. 여기에서 天日槍이 가지고 왔다는 神籬는 신이 강림하는 장소에 까는 일종의 돗자리와 같은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註 003
七物 : 『古事記』 應神天皇條에는 『玉津寶』에 근거하여 “珠二貫 又振浪比禮 切浪比禮 振風比禮 切風比禮 又奧津鏡 邊津鏡 幷八種也”라 하고, 이들은 但馬國 出石郡 出石鄕에 있는 伊豆志坐神社의 八前大神이 되었다고 하였다.
註 004
但馬國 : 지금의 兵庫縣 북부지방이다.
註 005
播磨國 宍粟邑 : 지금의 兵庫縣 播粟郡이다.
註 006
道河 : 지금의 宇治川을 일컫는다.
註 007
近江國 : 지금의 滋賀縣 坂田郡 近江町 箕浦 부근이다.
註 008
吾名邑 : 지금의 滋賀縣 蒲生郡 龍王町 綾戶의 蒲生郡 長村 神社 부근으로 추측된다.
註 009
若狹國 : 近江國의 북부지역이다.
註 010
鏡村谷 : 지금의 滋賀縣 蒲生郡으로 한때 鏡宿으로 일컬었는데 鏡村谷은 鏡山의 동쪽 기슭에 있다.
註 011
陶人 : 鏡村谷이 있는 鏡山 가까이에 須惠란 곳이 있는데, 5세기 무렵 한반도에서 전래된 陶質土器 須惠器는 이 곳의 이름과 관련된 듯하다. 天日槍을 따라와 鏡村谷에 도착하였다는 陶人도 그러한 관련에서 기록에 전승된 것으로 짐작된다. 須惠器의 일본 전래에 대해서는 崔鍾圭, 「美術上으로 본 韓日關係­陶質土器와 須惠器­」, 『古代韓日文化交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0 참조.
註 012
太耳 : 『日本書紀』 권6, 垂仁天皇 88년 7월조에는 ‘前津耳’ ‘前津見’이라 하였다.
국가명
新羅
주제분류
정치>외교>인적교류>귀화
정치>신이>기타>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