譽田天皇의 탄생[新羅征伐, 于老傳說] ( 200년 12월14일(음) )

12월 戊戌 초하루 辛亥 譽田天皇을 筑紫에서 낳았다. 그래서 그 때 사람들이 낳은 곳을 宇瀰라고 불렀다일설은 다음과 같다. 足仲彦天皇이 筑紫 橿日宮에 머무르고 있을 때 신이 沙麽縣主의 祖인 內避高國避高松屋種에게 신탁하여 천황에게 “천황이 만약 보배의 나라를 얻고자 한다면 실제로 주리라”고 깨우쳐 주었다. 다시 말하기를 “거문고를 가지고 와서 황후에게 바쳐라”고 하였다. 곧 신의 말을 따라 황후가 거문고를 탔다. 이에 신이 황후에게 신탁하여 가르쳐 주기를 “지금 천황이 바라고 있는 나라는 비유하면 사슴의 뿔과 같아서 실속이 없는 나라이다. 지금 천황이 타고 있는 배와 穴戶直踐立이 바친 水田, 즉 大田이란 것을 폐백으로 하여 나에게 제사를 잘 지내면 미녀의 눈썹과 같은 金·銀이 많은 눈부신 나라를 천황에게 주리라”고 하였다. 이 때 천황이 신에게 “비록 신이라고 하지만 어찌 거짓말을 하는가. 어디에 나라가 있다는 말인가. 또 내가 탄 배를 신에게 바치면 나는 어느 배를 타야하는가. 그러나 어떤 신인지도 모르니 그 이름을 알고 싶다”고 대답하였다. 이 때 신이 그 이름을 일컫기를 “表筒雄, 中筒雄, 底筒雄이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세 신의 이름을 일컫고 또한 거듭하여 “나의 이름은 向匱男聞襲大歷五御魂速狹騰尊이다”라고 말하였다. 이 때 천황이 황후에게 “듣기 거북한 말을 하는 婦人이다. 어찌 速狹騰001001 速狹騰速狹騰尊이라는 말은 天照大神을 천상으로 보내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하늘에 오른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천황이 ‘어찌 速狹騰이라 하는가’라고 비난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는 速狹騰을 ‘はやさあかり’라고 읽을 수 있는데 ‘さ’는 神稻를 뜻하고 ‘あかり’는 죽음을 뜻하므로 神稻가 枯死한다는 의미가 되어 천황의 급작스런 죽음을 예언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한다.닫기이라고 말하는가”라고 하였다. 이 때 신이 천황에게 “왕 그대가 이같이 믿지 않으니 반드시 그 나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오로지 지금 황후가 임신한 아들이 얻게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날 밤 천황이 갑자기 병이 나서 죽었다. 그 뒤 황후가 신의 가르침을 따라 제사지냈다. 즉 황후는 남자의 복장을 하고 신라를 정벌하였다. 이 때 신이 (황후에게) 머물며 인도하였으므로 배를 따라 파도가 일어 멀리 신라까지 미쳤다. 이에 신라왕 宇流助富利智干002002 宇流助富利智干신라왕이라고 되어 있으나 사실은 『三國史記』 권 45, 昔于老傳에 나오는 于老가 아닐까 한다. 이에 의하면 于老는 奈解尼師今(196 ~ 229)의 아들로 舒弗邯의 관등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宇流助富利智干이라 표기한 듯하다.닫기이 나와서 맞이하여 무릎을 꿇고 왕의 배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臣은 지금 이후로 일본국에 있는 신의 아들에게 內官家가 되어 조공을 끊지 않겠습니다”라 하였다. 또 일설은 다음과 같다. 신라왕을 사로잡아 해변에 데리고 가서 왕의 무릎뼈를 빼고 돌 위에서 기게 하였다. 조금 있다가 목베어 모래 속에 묻었다. 그리고 한 사람을 머물게 하여 신라의 재상으로 삼고 돌아왔다. 그 후 신라왕의 처가 남편의 주검을 묻은 곳을 몰라서 혼자 재상을 꾀일 생각을 하였다. 곧 재상을 유인하여 “당신이 왕의 주검을 묻은 곳을 가르쳐 준다면 반드시 후하게 보답하고 또 제가 당신의 아내가 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재상이 속이는 말을 믿고 주검을 묻은 곳을 몰래 알려 주었다. 그러자 왕의 처가 나라 사람들과 함께 의논하여 재상을 죽이고 또 왕의 주검을 파내어 다른 곳에 장사지냈다. 이 때 재상의 주검을 왕묘의 밑에 묻고 왕의 널을 들어 그 위에 얹고 “높고 낮음의 순서는 진실로 이와 같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를 천황이 듣고 다시 매우 화가 나 크게 군대를 일으켜 신라를 멸망시키려고 하였다. 그래서 軍船이 바다에 가득차서 나아가니, 이 때 신라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곧 서로 모여 함께 의논하여 왕의 처를 죽이고 사죄하였다.003003 신라왕을 사로잡아 ~ 사죄하였다『三國史記』 권 45, 昔于老傳의 于老傳說에서는 이와 달리 于老의 妻가 왜의 使臣을 醉하게 하여 불태워 죽임으로써 남편의 원수를 갚자 倭人들이 분노하여 金城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하였다.닫기 이에 군대를 따라갔던 表筒男·中筒男·底筒男 세 神이 황후에게 “우리 荒魂을 穴門山田邑에서 제사지내도록 하라”고 가르쳐 주었다. 이 때 穴門直의 조상인 踐立과 津守連의 조상인 田裳見宿禰가 황후에게 “神이 머물고자 하는 땅을 반드시 받들어 정하여야 합니다”라고 아뢰었다. 그래서 踐立을 荒魂을 제사지내는 神主로 삼고 穴門山田邑에 祠堂을 세웠다. 신라를 친 이듬해 봄 2월에 황후는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穴門豐浦宮으로 옮겨 갔다. 그리고 천황의 널을 거두어 바닷길로 서울을 향했다. 이 때 麛坂王 忍熊王이 천황이 죽고, 또 황후가 서쪽을 정벌하고 천황의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

註 001
速狹騰 : 速狹騰尊이라는 말은 天照大神을 천상으로 보내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하늘에 오른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천황이 ‘어찌 速狹騰이라 하는가’라고 비난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는 速狹騰을 ‘はやさあかり’라고 읽을 수 있는데 ‘さ’는 神稻를 뜻하고 ‘あかり’는 죽음을 뜻하므로 神稻가 枯死한다는 의미가 되어 천황의 급작스런 죽음을 예언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한다.
註 002
宇流助富利智干 : 신라왕이라고 되어 있으나 사실은 『三國史記』 권 45, 昔于老傳에 나오는 于老가 아닐까 한다. 이에 의하면 于老는 奈解尼師今(196 ~ 229)의 아들로 舒弗邯의 관등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宇流助富利智干이라 표기한 듯하다.
註 003
신라왕을 사로잡아 ~ 사죄하였다 : 『三國史記』 권 45, 昔于老傳의 于老傳說에서는 이와 달리 于老의 妻가 왜의 使臣을 醉하게 하여 불태워 죽임으로써 남편의 원수를 갚자 倭人들이 분노하여 金城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하였다.
국가명
新羅
주제분류
정치>왕실>국왕>신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