卓淳國과 百濟에 사람을 보냄 ( 246년 03월01일(음) )

46년 봄 3월 乙亥 초하루 斯摩宿禰卓淳國001001 卓淳國欽明天皇 5년 3월조에는 㖨淳이라고 나오는데 대개 오늘날의 大邱로 비정되어 왔으나 최근 경남 창원지방에 있었던 가야연맹의 한 小國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에 따르면 탁순국은 6세기 전반에 高靈의 대가야국을 주축으로 한 후기 가야연맹에 소속되어 있다가 534년에서 541년 사이에 신라에 복속되어 멸망하였으며 欽明紀에 나오는 阿利斯等 또는 己能末多干岐는 창원 탁순국의 마지막 지배자로 추정된다고 한다.닫기에 보내었다斯麻宿禰는 어떤 姓氏의 사람인지 모른다. 이 때 卓淳王末錦旱岐가 斯摩宿禰에게 “甲子年 7월에 백제인 久氐·彌州流·莫古002002 莫古『三國史記』 권 24, 近仇首王의 즉위 이전 즉 近肖古王 24년(369) 고구려 故國川王이 백제를 침략하자 태자인 近仇首王이 나가 싸웠다. 근구수왕이 계속 진격하자 장군 莫古解가 道家의 말을 빌려 중지할 것을 요청한 적이 있는데, 이 두 사람이 동일인이 아닐까 추측된다.닫기 세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백제왕이 동방에 일본이라는 귀한 나라가 있음을 듣고 우리들을 보내어 그 나라에 조공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길을 찾다가 여기에 왔습니다. 만약 신들에게 길을 통하도록 가르쳐 준다면 우리 왕이 반드시 君王에게 덕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라 하였다. 이 때 久氐 등에게 ‘전부터 동쪽에 귀한 나라가 있다고 들었지만 아직 왕래한 적이 없어 그 길을 알지 못한다. 바다가 멀고 파도가 험하여 큰 배를 타야 겨우 통할 수 있을 것이니 비록 길을 안다 하더라도 어떻게 도달할 수 있겠는가’라 하였다. 그러자 久氐 등이 ‘그렇다면 지금은 갈 수 없겠습니다. 그렇지 않고 가려면 다시 돌아가서 배를 갖춘 뒤에 가야 하겠습니다’라 하고 ‘만약 귀한 나라의 사신이 오면 반드시 우리나라에도 알려 주십시오’라 하고 돌아갔다”고 하였다. 이에 斯摩宿禰는 從者 爾波移와 卓淳人 過古 두 사람을 백제국에 보내어 그 왕을 위로하였다. 이 때 백제 肖古王003003 肖古王『三國史記』 권 23에 보이는 肖古王이 아니라 같은 책 권 24에 보이는 13대 왕인 近肖古王(346 ~ 375)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닫기은 매우 기뻐하며 후하게 대접하고, 다섯 가지 빛깔의 綵絹 각 1필과 角弓箭 및 鐵鋌 40枚를 爾波移에게 주었다. 또 보물창고를 열어 여러 가지 진기한 것들을 보여주며 “우리나라에는 이같은 진기한 보물들이 많이 있다. 귀한 나라에 바치고자 하나, 길을 알지 못하여 마음만 있을 뿐 따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使者에게 부쳐서 바친다”고 하였다. 이에 爾波移가 일을 받들고 돌아와서 志摩宿禰에게 보고했다. 바로 卓淳으로부터 돌아왔다.

註 001
卓淳國 : 欽明天皇 5년 3월조에는 㖨淳이라고 나오는데 대개 오늘날의 大邱로 비정되어 왔으나 최근 경남 창원지방에 있었던 가야연맹의 한 小國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에 따르면 탁순국은 6세기 전반에 高靈의 대가야국을 주축으로 한 후기 가야연맹에 소속되어 있다가 534년에서 541년 사이에 신라에 복속되어 멸망하였으며 欽明紀에 나오는 阿利斯等 또는 己能末多干岐는 창원 탁순국의 마지막 지배자로 추정된다고 한다.
註 002
莫古 : 『三國史記』 권 24, 近仇首王의 즉위 이전 즉 近肖古王 24년(369) 고구려 故國川王이 백제를 침략하자 태자인 近仇首王이 나가 싸웠다. 근구수왕이 계속 진격하자 장군 莫古解가 道家의 말을 빌려 중지할 것을 요청한 적이 있는데, 이 두 사람이 동일인이 아닐까 추측된다.
註 003
肖古王 : 『三國史記』 권 23에 보이는 肖古王이 아니라 같은 책 권 24에 보이는 13대 왕인 近肖古王(346 ~ 375)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국가명
加耶
百濟
주제분류
정치>외교>사신>파견·영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