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麗, 百濟, 任那, 新羅가 來朝함. 韓人을 동원하여 韓人池를 만듦 ( 276년 09월(음) )

7년 가을 9월 高麗人·百濟人·任那人·新羅人이 함께 來朝하였다. 그 때 武內宿禰에게 명하여 여러 韓人들을 이끌고 연못을 만들게 하였다. 때문에 이 연못을 이름하여 韓人池001001 韓人池『古事記』 應神段에, “亦新羅人參渡來 是以建內宿禰命引率 爲役之堤池 而作百濟池”라는 비슷한 기사가 있다. 韓人池와 百濟池는 모두 歸化人에 의하여 축조된 것이라는 점에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百濟池는 奈良縣 北葛城郡 百濟村의 땅에 비정되고, 韓人池는 奈良縣 磯城郡 川東村의 唐古池에 비정되기도 한다. 이하 應神·仁德 兩紀에는 이와 같은 治水土木·土地開發 등 농업관계 기사가 많이 보이는데, 일본에 있어서 이와 같은 治水土木의 성행은 우리나라에서 歸化人이 많이 渡來하던 시기와 맞물려, 이들이 새로운 농업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울러 歸化人에 의한 農耕의 발전은 일본 大和朝廷의 경제적 능력을 증대시키는 데 기여하였다.닫기라 불렀다.

註 001
韓人池 : 『古事記』 應神段에, “亦新羅人參渡來 是以建內宿禰命引率 爲役之堤池 而作百濟池”라는 비슷한 기사가 있다. 韓人池와 百濟池는 모두 歸化人에 의하여 축조된 것이라는 점에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百濟池는 奈良縣 北葛城郡 百濟村의 땅에 비정되고, 韓人池는 奈良縣 磯城郡 川東村의 唐古池에 비정되기도 한다. 이하 應神·仁德 兩紀에는 이와 같은 治水土木·土地開發 등 농업관계 기사가 많이 보이는데, 일본에 있어서 이와 같은 治水土木의 성행은 우리나라에서 歸化人이 많이 渡來하던 시기와 맞물려, 이들이 새로운 농업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울러 歸化人에 의한 農耕의 발전은 일본 大和朝廷의 경제적 능력을 증대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국가명
高句麗
百濟
加耶
新羅

주제분류
정치>외교>사신>파견·영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