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濟 加須利君(蓋鹵王)이 아우 軍君(昆支)를 보냄 ( 461년 04월(음) )

(5년) 여름 4월 백제 加須利君001001 加須利君‘蓋鹵’ 혹은 개로왕의 이름인 ‘慶司’를 音寫한 표기로 보인다. 『日本書紀』권 24, 皇極天皇 원년 2월조에 蓋蘇文을 加須彌로 표기한 것이 이와 비슷한 경우이다. 개로왕은 백제 제21대 왕으로 近蓋婁王이라고도 한다. 455년에 毗有王을 이어 즉위하여 21년간 재위하다가 475년에 고구려의 침략을 받아 한강유역을 상실하고 자신도 고구려군에 의하여 살해되었다.닫기蓋鹵王이다池津媛適稽女郞이다이 불에 타 죽었다는 것을 전해 듣고 의논하기를 “옛날에 여자를 바쳐 采女로 삼았다. 그러나 예의가 없어 우리나라의 이름을 失墜시켰으니 지금부터는 여자를 바치지 않는 것이 옳겠다”라고 하였다. 이에 그의 아우 軍君002002 軍君‘軍’과 ‘昆’, ‘君’과 ‘支’는 각각 음과 뜻으로 서로 상통하는 말이다. 昆支를 琨支로도 적는다(『日本書紀』 16, 武烈天皇 4년 是歲條). 『日本書紀』에서는 곤지를 개로왕의 아우라 하였으나, 『三國史記』권26에서는 개로왕의 둘째 아들로 東城王의 아버지라 하여 兩書間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는 문주왕 3년(477) 4월에 內臣佐平이 되었으며 그 해 7월에 죽었다. 458년에 宋으로부터 征虜將軍左賢王의 관작을 받은 餘昆과도 동일인물로 여겨진다. 한편 『新撰姓氏錄』에는 昆支를 河內飛鳥戶造의 시조라 하였다.닫기昆支이다에게 “네가 日本에 가서 천황을 섬겨라”고 말하였다. 軍君이 “임금님의 명을 어기지 않겠습니다. 바라건대 임금님의 부인을 저에게 주시면 그런 다음 떠나라는 명을 받들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加須利君은 임신한 부인을 軍君에게 주며 “나의 임신한 아내는 이미 해산할 달이 되었다. 만약 도중에 아이를 낳게 되면, 바라건대 1척의 배에 태워서 다다른 곳이 어디건 속히 나라에 보내도록 하라”고 하였다. 마침내 작별하고 조정에 파견되는 명을 받들었다.

註 001
加須利君 : ‘蓋鹵’ 혹은 개로왕의 이름인 ‘慶司’를 音寫한 표기로 보인다. 『日本書紀』권 24, 皇極天皇 원년 2월조에 蓋蘇文을 加須彌로 표기한 것이 이와 비슷한 경우이다. 개로왕은 백제 제21대 왕으로 近蓋婁王이라고도 한다. 455년에 毗有王을 이어 즉위하여 21년간 재위하다가 475년에 고구려의 침략을 받아 한강유역을 상실하고 자신도 고구려군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註 002
軍君 : ‘軍’과 ‘昆’, ‘君’과 ‘支’는 각각 음과 뜻으로 서로 상통하는 말이다. 昆支를 琨支로도 적는다(『日本書紀』 16, 武烈天皇 4년 是歲條). 『日本書紀』에서는 곤지를 개로왕의 아우라 하였으나, 『三國史記』권26에서는 개로왕의 둘째 아들로 東城王의 아버지라 하여 兩書間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는 문주왕 3년(477) 4월에 內臣佐平이 되었으며 그 해 7월에 죽었다. 458년에 宋으로부터 征虜將軍左賢王의 관작을 받은 餘昆과도 동일인물로 여겨진다. 한편 『新撰姓氏錄』에는 昆支를 河內飛鳥戶造의 시조라 하였다.
국가명
百濟
주제분류
정치>외교>사신>유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