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羅의 金春秋를 人質로 함 ( 647년 (음) )

이 해 …… 신라가 上臣 大阿湌金春秋 등을 보내고001001 신라가 ~ 보내고신라는 642년(선덕왕 11, 義慈王 2) 7월에 백제에게 서쪽 변경의 40여 성을 빼앗기고, 8월에는 大耶城을 빼앗겼을 뿐 아니라 김춘추의 사위였던 都督 伊湌 品釋이 사망하였다. 이에 신라는 그 해 겨울 김춘추를 고구려에 보내 구원병을 청했으나, 고구려가 竹嶺 西北의 땅을 돌려주기를 요구하였으므로 실패하였다. 한편 『三國史記』에는 648년(眞德王 2) 김춘추가 당에 사신으로 가 구원을 청해 태종이 허락한 일은 전하고 있으나, 일본에 간 사실은 전하지 않는다. 이 기사의 내용을 그대로 따른다면 신라는 관산성 싸움 이후 한반도에서 고립되어 고구려·백제의 협공을 받고 있었으므로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일본에 김춘추를 파견하였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닫기博士 小德 高向黑麻呂·小山中 中臣連押熊을 보내 와서, 孔雀 1쌍과 鸚鵡 1쌍을 바쳤다. 그리고 春秋를 인질로 삼았다. 춘추는 용모가 아름답고 談笑를 잘하였다. ……

註 001
신라가 ~ 보내고 : 신라는 642년(선덕왕 11, 義慈王 2) 7월에 백제에게 서쪽 변경의 40여 성을 빼앗기고, 8월에는 大耶城을 빼앗겼을 뿐 아니라 김춘추의 사위였던 都督 伊湌 品釋이 사망하였다. 이에 신라는 그 해 겨울 김춘추를 고구려에 보내 구원병을 청했으나, 고구려가 竹嶺 西北의 땅을 돌려주기를 요구하였으므로 실패하였다. 한편 『三國史記』에는 648년(眞德王 2) 김춘추가 당에 사신으로 가 구원을 청해 태종이 허락한 일은 전하고 있으나, 일본에 간 사실은 전하지 않는다. 이 기사의 내용을 그대로 따른다면 신라는 관산성 싸움 이후 한반도에서 고립되어 고구려·백제의 협공을 받고 있었으므로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일본에 김춘추를 파견하였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명
新羅
주제분류
정치>외교>사신>유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