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을 거쳐 孫子 右渠023023 右渠 종래에는 右渠를 단순히 衛滿의 손자의 인명으로 보아 왔으나, 최근의 言語學的 연구에서 ‘右渠’를 語源的으로 분석하여 고조선 시대에 右渠는 ‘씨족의 생활 공동체 혹은 생활 공동체의 연합체의 우두머리직 또는 사람’의 뜻을 지닌 보통명사로 사용되고 있었으며 그 형태는 ‘우ㅅマ)(/UTK∧/)’라는 세 개의 구성형태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趙承福,「Reflection upon the Ko Tsosen Word/UK∧/」)
衛滿이 紀元前 3∼4世紀 以來 初期國家(Pristine State)로서 存在해오던 ‘濊貊朝鮮’(從來의 箕子朝鮮)을 攻滅하고, 강력한 征服國家인 ‘衛滿朝鮮’을 수립한 것은 紀元前 2世紀 頃이었다. 그런데 이 衛滿朝鮮은 衛滿의 孫子인 右渠代에 와서 發達된 鐵器文化를 기반으로 한 强固한 軍事力量을 구사하여, 주위의 諸邊方政治集團들의 對漢交易을 媒介함으로써 그 中繼貿易의 이익을 獨占하고자, 그들의 對漢貿易路를 遮斷할 것을 企圖하였다. 아울러 右渠가 이로 因한 漢帝國의 政治 ·軍事的 壓力을 견제하기 위하여 匈奴와 或種의 軍事的 提携關係를 모색하였을 可能性은 충분히 想定될 수 있다. 漢 武帝가 ‘東伐朝鮮 起玄菟樂浪 㠯斷匈奴之左臂’(『漢書』「韋賢列傳」)라고 한 發言은 당시 漢·匈奴·衛滿朝鮮 間에 전개된 政治的 關係를 充分히 示唆해주고 있다.
이러한 右渠治下 衛滿朝鮮의 漢帝國과의 諸般利害關孫의 相衝이 漢 武帝로 하여금 朝鮮征伐을 斷行케 한 決定的 契機가 되었을 것이다.
≪參考文獻≫
『漢書』卷73「韋賢列傳」
李丙燾,「衛氏朝鮮興亡考」『 韓國古代史硏究』1976.
崔夢龍,「韓國古代國家形成에 대한 一考察-衛滿朝鮮의 例-」『金哲埈博士華甲紀念史學論叢』1983.
金貞培,「衛滿朝鮮의 國家的 性格」『韓國古代의 國家起源과 形成』1986.
尹乃鉉,「衛滿朝鮮의 再認識」『韓國古代史新論』1986.
趙承福,「Reflection upon the Ko Tsosen Word/UK∧/」『國內外에 있어서 韓國學의 現在와 未來』1987.
三上次男,『古代東北アジア史硏究』1966.
유. 엠. 부찐,『古朝鮮』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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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에 이르러서는 유인해 낸 漢나라 亡命者수가 대단히 많게 되었으며, 天子에게 入見치 않을 뿐만 아니라 眞番 주변의 여러 나라들024024 衆國 本 史料에서는 眞番과 인접한 國家들은 ‘衆’(무리)과 ‘國’(나라)의 두 글자로 表記하고 있다. 한편『史記』에서의 ‘衆國’이란 表現은 다른 史料들, 특히『漢書』와『資治通鑑』에 비추어 보아, 韓半島 南部의 部族聯盟體를 指稱하는 ‘辰國’을 의미한다는 辰國說도 開陳되고 있는 實情이다. (李丙燾,「蓋國과 辰國」 pp. 238∼241) 그러나 辰國이라는 나라 하나만이 存在하였다고 보는 것은 解釋上 難點이 없지 않다. 설사 辰國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하여도 그것은 여러 나라 가운데서 하나인 辰國이지, 옛 三韓땅에 辰國만이 있었다고 보는데는 無理가 따른다. 이러한 見解는 字句의 是非에 關心을 두고서 ‘衆’字와 ‘辰’字의 區別에 解釋의 焦點을 맞춘 것이지만, 오히려 근본적인 문제는 당시 存在하였던 政治集團의 性格糾明에 있는 것이다. 즉, 眞番 등의 이름이 나타나는 것은 오히려 朝鮮과 ‘衆國’ 혹은 ‘辰國’ 뿐만아니라 ‘眞番’도 문제의 對象이 됨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衆國’ 가운데 하나인 ‘辰國’으로 解釋한다 할 때, 그것은 ‘眞番’과 對比되는 政治發展上의 意味를 內包하게 되는 것이다. 一般的으로 辰國說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本 史料를 ‘眞番’의 位置比定에 있어 매우 중요한 史料로 活用하고 있고, 또한 眞番을 例로 들어 당시의 政治發展段階를 考慮함이 없이 國名으로서 辰國을 主張하고 있는 것이다. 結論的으로 衆國인가 辰國인가 하는 問題는 衆國 가운데 하나인 辰國이라고 보는 것이 合當한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에 朝鮮과 辰國 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同時期에 存在했던 政治集團으로서 兩者만을 認識하는 姿勢는 再考할 必要性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本 史料를 ‘眞番旁衆國’으로 把握하는 見解가 ‘眞番旁辰國’으로 새기는 辰國說의 그것보다, 當代의 實相을 좀 더 정확히 理解할 수 있는 立場이 아닐까 한다.
≪參考文獻≫
李丙燾「‘蓋國’과 ‘辰國’」『韓國古代史硏究』1976.
千寬宇,「三韓의 成立過程」『史學硏究』26, 1975.
金貞培,「辰國의 政治發展段階」『領土問題硏究』創刊號, 1983.
리지린,「진국(삼한)에 대한 고찰」『고조선연구』1964.
金兆梓,「封邑邦國方辨」『歷史硏究』1956年 第 2 期.
三上次男,『古代東北アジア史硏究』1966.
유. 엠. 부찐,『古朝鮮』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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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올려 天子에게 謁見하고자 하는 것도 또한 가로막고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

註 023
右渠 : 종래에는 右渠를 단순히 衛滿의 손자의 인명으로 보아 왔으나, 최근의 言語學的 연구에서 ‘右渠’를 語源的으로 분석하여 고조선 시대에 右渠는 ‘씨족의 생활 공동체 혹은 생활 공동체의 연합체의 우두머리직 또는 사람’의 뜻을 지닌 보통명사로 사용되고 있었으며 그 형태는 ‘우ㅅマ)(/UTK∧/)’라는 세 개의 구성형태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趙承福,「Reflection upon the Ko Tsosen Word/UK∧/」)
衛滿이 紀元前 3∼4世紀 以來 初期國家(Pristine State)로서 存在해오던 ‘濊貊朝鮮’(從來의 箕子朝鮮)을 攻滅하고, 강력한 征服國家인 ‘衛滿朝鮮’을 수립한 것은 紀元前 2世紀 頃이었다. 그런데 이 衛滿朝鮮은 衛滿의 孫子인 右渠代에 와서 發達된 鐵器文化를 기반으로 한 强固한 軍事力量을 구사하여, 주위의 諸邊方政治集團들의 對漢交易을 媒介함으로써 그 中繼貿易의 이익을 獨占하고자, 그들의 對漢貿易路를 遮斷할 것을 企圖하였다. 아울러 右渠가 이로 因한 漢帝國의 政治 ·軍事的 壓力을 견제하기 위하여 匈奴와 或種의 軍事的 提携關係를 모색하였을 可能性은 충분히 想定될 수 있다. 漢 武帝가 ‘東伐朝鮮 起玄菟樂浪 㠯斷匈奴之左臂’(『漢書』「韋賢列傳」)라고 한 發言은 당시 漢·匈奴·衛滿朝鮮 間에 전개된 政治的 關係를 充分히 示唆해주고 있다.
이러한 右渠治下 衛滿朝鮮의 漢帝國과의 諸般利害關孫의 相衝이 漢 武帝로 하여금 朝鮮征伐을 斷行케 한 決定的 契機가 되었을 것이다.
≪參考文獻≫
『漢書』卷73「韋賢列傳」
李丙燾,「衛氏朝鮮興亡考」『 韓國古代史硏究』1976.
崔夢龍,「韓國古代國家形成에 대한 一考察-衛滿朝鮮의 例-」『金哲埈博士華甲紀念史學論叢』1983.
金貞培,「衛滿朝鮮의 國家的 性格」『韓國古代의 國家起源과 形成』1986.
尹乃鉉,「衛滿朝鮮의 再認識」『韓國古代史新論』1986.
趙承福,「Reflection upon the Ko Tsosen Word/UK∧/」『國內外에 있어서 韓國學의 現在와 未來』1987.
三上次男,『古代東北アジア史硏究』1966.
유. 엠. 부찐,『古朝鮮』1986.
註 024
衆國 : 本 史料에서는 眞番과 인접한 國家들은 ‘衆’(무리)과 ‘國’(나라)의 두 글자로 表記하고 있다. 한편『史記』에서의 ‘衆國’이란 表現은 다른 史料들, 특히『漢書』와『資治通鑑』에 비추어 보아, 韓半島 南部의 部族聯盟體를 指稱하는 ‘辰國’을 의미한다는 辰國說도 開陳되고 있는 實情이다. (李丙燾,「蓋國과 辰國」 pp. 238∼241) 그러나 辰國이라는 나라 하나만이 存在하였다고 보는 것은 解釋上 難點이 없지 않다. 설사 辰國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하여도 그것은 여러 나라 가운데서 하나인 辰國이지, 옛 三韓땅에 辰國만이 있었다고 보는데는 無理가 따른다. 이러한 見解는 字句의 是非에 關心을 두고서 ‘衆’字와 ‘辰’字의 區別에 解釋의 焦點을 맞춘 것이지만, 오히려 근본적인 문제는 당시 存在하였던 政治集團의 性格糾明에 있는 것이다. 즉, 眞番 등의 이름이 나타나는 것은 오히려 朝鮮과 ‘衆國’ 혹은 ‘辰國’ 뿐만아니라 ‘眞番’도 문제의 對象이 됨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衆國’ 가운데 하나인 ‘辰國’으로 解釋한다 할 때, 그것은 ‘眞番’과 對比되는 政治發展上의 意味를 內包하게 되는 것이다. 一般的으로 辰國說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本 史料를 ‘眞番’의 位置比定에 있어 매우 중요한 史料로 活用하고 있고, 또한 眞番을 例로 들어 당시의 政治發展段階를 考慮함이 없이 國名으로서 辰國을 主張하고 있는 것이다. 結論的으로 衆國인가 辰國인가 하는 問題는 衆國 가운데 하나인 辰國이라고 보는 것이 合當한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에 朝鮮과 辰國 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同時期에 存在했던 政治集團으로서 兩者만을 認識하는 姿勢는 再考할 必要性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本 史料를 ‘眞番旁衆國’으로 把握하는 見解가 ‘眞番旁辰國’으로 새기는 辰國說의 그것보다, 當代의 實相을 좀 더 정확히 理解할 수 있는 立場이 아닐까 한다.
≪參考文獻≫
李丙燾「‘蓋國’과 ‘辰國’」『韓國古代史硏究』1976.
千寬宇,「三韓의 成立過程」『史學硏究』26, 1975.
金貞培,「辰國의 政治發展段階」『領土問題硏究』創刊號, 1983.
리지린,「진국(삼한)에 대한 고찰」『고조선연구』1964.
金兆梓,「封邑邦國方辨」『歷史硏究』1956年 第 2 期.
三上次男,『古代東北アジア史硏究』1966.
유. 엠. 부찐,『古朝鮮』1986.
주제분류
정치>외교>인적교류>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