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建武 연간(A.D.25~55; 高句麗 大武神王 8~太祖王 3)
에 東夷의 여러 나라들이 모두 와서 朝獻 하고 入見하였다. 25년(A.D.49; 高句麗 慕本王 2)에 夫餘王이 사신을 보내어 貢物을 바치므로, 光武帝가 후하게 報答하니 이에 사절이 해마다 왕래하였다.
安帝 永初 5년(A.D.111; 高句麗 太祖王 59)에, 夫餘王이 처음으로 步兵과 騎兵 7~8千명을 거느리고 樂浪을 노략질하여 관리와 백성을 죽였으나, 그 뒤에 다시 歸附하였다.
永寧 元年(A.D.120; 高句麗 太祖王 68)에, 嗣子 尉仇台를 보내어 궁궐에 나아와서 朝貢을 바치므로 天子가 尉仇台에게 印綬와 金綵를 下賜하였다.
順帝 永和 元年(A.D.136; 高句麗 太祖王 84)에, 그 王이 京師에 와서 조회하므로, 帝는 黃門鼓吹와 角抵戲를 하게 하여 [관람시켜] 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