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建武 8년(A.D.32; 高句麗 大武神王 15)
에 高句驪가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므로, 光武帝가 그 王號를 회복해 주었다. [建武] 23년(A.D.47; 高句麗 閔中王 4) 겨울에 句驪 蠶支落의 大加 戴升등 만여명이 樂浪에 투항하였다. [建武] 25년(A.D.49; 高句麗 慕本王 2) 봄에 句驪가 右北平·漁陽·上谷·太原을 침입하여 노략질하는 것을 遼東太守 祭肜이 恩義와 信義로 초유하니 모두 다시 항복하였다.
그 뒤 句驪王 宮이 태어나면서부터 곧 눈을 뜨고 사람을 쳐다보니, 國人들이 미워하였다. 장성함에 勇猛스럽고 건장하여 자주 변경을 침범하였다.